백색전화와 1092
지금으로부터 30년 전만해도 전화(電話)는 그 무슨 잣대였다.
전화는 ㅡ
사업을하는 사람들에게는 장사를 하기 위한 기본장치였고
가정에서는 그것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잘 사는 집’으로 여겨지는 ㅡ 그런 때가 있었다.
그런때에 ㅡ
이른바 《청색전화》와 《백색전화》라는 구분이 있었다.
전화를 설치할때에 사용하는 전용회선이
개인소유로 된 것이면 그것이 "백색전화"이고
체신부(지금의 한국통신)소유이면 "청색전화"였다.
전화의 사용회선이 개인소유냐 공공의 소유냐
그것을 구분하기 위해 불리워졌던 靑,白色 전화의 구분은
가입당시 등록된 가입자대장(臺帳)의 색깔에 따라
전화국에서 구분지어 부르던것이 유래된 것이었다.
따라서 ㅡ
백색전화는 값이 엄청나게 비싸
돈주고 사기도 무척 어려웠을 뿐 아니라
중요 재산목록에 올릴수 있을만큼 자랑스러운 것이기도 했다.
.......
객지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때
고향친구가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로 전속되어 왔다.
짚덤불속에서 살아와서 그런지
맡아서 싫지않는 촌사람 냄새가 은연중 배어나
가끔은 남들로부터 웃음을 자아내게하는 그런 친구였다.
업무가 늘어나다 보니 전화를 한대 더 들여야 했다.
설치된 전화기는 흰색 전화기였다.
새로 들여진 전화였기 ㅡ
예의 "청,백색 전화" 이야기가 말머리로 등장한다.
눈만 꿈뻑거리던 고향친구가 그예 한마디 끼어든다.
「그라마..우리 전화도 억수로 비싼것이겠네...?」
「무신 소리고...?」
「이 전화가 백색전화기 아이가.!」
사람들이 껄껄거리자 오히려 그가 이해가 안되는지 묻는다.
설명을 해주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는 저도 계면쩍은지
싱긋 한 번 웃고나서 머리가 휘둘릴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준다.
「눈치없는 놈은‘간닝구’도 제대로 못하는기라..!」
(커닝:cunning을 경상도에서는 "간닝구"라 한다)
「간닝구가 우쨌는데...?」
「내가 고등학교 다닐때, 수학시험치다가 맞아죽을뻔 안했나...」
수학은 더욱 못해 시험시간에 앞자리에 앉은 친구에게
답안지를 보여달래서 그걸보고 베낀다고 베낀 답이
정답은 《log2》였는데
로그를 잘 모르던 그가 그만 1092로 썼더란다.
수학선생님 : 이 자슥아, 간닝구를 하더라도 똑바로 해라...!
▶▶
대체적으로 그렇지만 나를 비롯한 촌놈들은
다른건 몰라도 인사는 제법 한다.
1092...그 친구.
누구에게서 오던 전화를할제면 언필칭 하는 말이
「집에, 밸 일 없습니꺼..?」다.
그 인사를 하도 자주하길래 내가 흰소리를 한마디 했다.
「그집에 밸 일 있으면 우짤낀데..?」
그랬더니 그 친구.
아침에 출근할때 양치질을 하지않고 나왔던지
잇빨사이에 낀 고춧가루를 부끄럽지않게 드러내며 이런다.
「말이 그렇다는거지...안그렇나..?」
새해가 밝더니 그에게서 안부 전화가 왔다.
「집에...밸 일 없나...?」
오늘따라 그 친구의 인사가 더욱 등에 따습다.
그래서 나도 그친구의 전매특허를 여기서 빌려
여러분께 또 한번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글;무명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