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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우표 없는 편지 원문보기 글쓴이: 청풍명월
저자인 신형철 선생은 2014년부터 2022년까지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일하고 2022년 가을부터 서울대학교 영어영문과에서 비교문학 협동과정을 연구한다고 하는데 연구원인지 교수인지, 강사인지 밝히지 않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예술의 윤리적 역량, 윤리의 비평적 역량, 비평의 예술적 역량 등에 관심을 가진 ‘문화평론가’라고는 했다. 그러면서 『정확한 사랑의 실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느낌의 공동체』등 저작을 출간하기도 했다고 하는데 그러면 학생은 아닌 모양이다.
《인간의 역사》, 《전쟁의 역사》, 《과학의 역사》, 《신의 역사》,《사기》까지 많은 역사책들을 접해 보기는 했지만 《인생의 역사》라는 제목은 조금은 생경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것은 어떤 역사를 말하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책 부제가 ‘공무도하(公無渡河)에서 사랑의 발명’까지라고 되어 있고 ‘신형철의 시화(詩話)’라고 한 것으로 보아 시에 관해 이야기한 것으로 짐작은 된다. 시란 인생의 희노애락을 짧게, 그러나 아름답게 표현한 노래?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시의 역사가 인생의 역사라는 말도 틀리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중언부언하기보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시詩’〈공무도하〉를 먼저 보자.
가수 이상은이 〈공무도하가〉를 불렀고, 소설가 김훈은 〈공무도하〉라는 소설을 썼고, 또 진모영 감독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는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들은 이유야 달랐겠지만, 모두 〈공무도하〉내용이 각별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구지가〉,〈황조가〉와 같이 상고시대 시가인 이 시는 어떤 내용을 담았을까?
[1] 공무도하(公無渡河)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임은 결국 물을 건너시네.
물에 빠져 죽었으니,
장차 일을 어이할꼬!
시는 간단히 이렇게 네 줄로 되어 있다. 조동일의 『한국문학통사』에 따르면 “조선에 곽리자고(霍里子高)라는 뱃사공이 있었다. 어느 날 새벽 배를 손질하고 있노라니, 머리가 새하얀 미치광이 사내가 머리를 풀어 헤친 채 술병을 끼고 비틀거리면서 강물을 건너는 것이었다. 아내가 따라오면서 말려도 듣지 않고, 마침내 물에 빠져 죽었다. 아내는 노래를 지어 불렀는데, 그 소리가 아주 슬펐다. 노래를 다 부르자 아내도 빠져 죽었다. 이를 지켜본 사공은 돌아와 자기 아내 여옥(麗玉)에게 그 이야기를 하고, 여옥이 그 노래를 다시 불렀다.”라고 한다.
고조선 시대에 해당하는 이 사건은 우리보다 먼저 중국 진(晉)나라 때 최표(崔豹)에 의해 『고금주(古今注)』에 기록됐고, 이후 실학자 한치윤이 『해동역사(海東繹史)』에 설화와 가사를 함께 옮김으로써 우리 문학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대체로 남편의 죽음을 말리는 아내의 애원과 죽음 앞에서의 절망이 그려졌다. “그대여 저 물을 건너지 마오. 그대 기어이 저 물을 건너다가 물에 빠져서 죽고 말면 나는 어찌하라고”는 사건 이전의 애원이요, “님더러 물 건너지 말래도, 님은 건너고 말았네. 물에 빠져서 죽었으니 님이여, 어찌하리오.”이것은 사후의 절망을 말한 것이다.
노래가 품고 있는 인생의 비밀을 놓치지 않으려면 여기에 등장하는 네 사람, 그들의 인생의 비밀과 내면을 살펴야 한다. 인생에는 일어나려는 일이 있고 또 이를 막으려는 힘이 있다는 것과 또 아무리 막아도 일어날 어떤 일은 일어난다는 것이다. 먼저 백수광부(白首狂夫-머리 하얀 미친 남자)는 왜 죽고자 했을까? 그는 삶이 힘들어 자주 강가에 나와 강을 바라보다가 어느 날 술기운을 빌려 투신하려는 순간에 자신을 말려달라고 외쳤을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내 뜻대로’되지 않았을 것이다.
백수광부의 처는 어땠을까? 여러 번 죽으려고 하는 남편을 만류해 막아 왔으나 그날은 말릴 수가 없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는 것이다. 그가 막 물속으로 들어갔을 때만 해도 돌아오라고 절규했을 것이고, 절규였을 말들이 노래가 되었으리라. ‘네가 내 뜻대로’되지 않은 것이었다. 너란 남편이기도 하지만, 삶 그 자체이기도 한 것이다. 그녀 앞에는 ‘뜻대로 안 되는 삶 대신에 뜻대로 되는’죽음만이 남아 있었다.
곽리자고라는 사공은 두 사람이 잇따라 강물에 휩쓸려 죽는 장면을 지켜보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사공은 거대한 무력감과 허무감 속에 오늘 일은 그만두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목격한 2건의 죽음을 아내 여옥에게 설명하고 뒤따라 죽은 여인의 마지막 노래를 들었노라고 했다. 남편이 어슬프게 복원한 여인의 마지막 노래를 여옥은 온전하게 되살려냈다. 그녀는 백수광부의 처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인생을 노래한다는 것은 ‘남의 일 같지 않은’그것이었다. 부부의 죽음을 생각하느라 그들은 밤늦게까지 잠 못 들어 했을 것이다.
“나는 내 뜻대로 안 된다. 너도 내 뜻대로 안 된다. 그러므로 인생은 우리 뜻대로 안 된다.”이런 생각을 할 때 우리는 수천 년 전의 그들과 별로 다르지 않아서 들어본 적 없는 그 먼 노래가 환청처럼 들린다. 나는 백수광부다. 나는 그의 아내다. 나는 곽리자고다. 나는 여옥이다. 그것이인생이다.
[2] 「나는 누구인가」--- 김시습
이하(李賀)를 내려다 볼만큼
조선 최고라 했지.
드높은 명성과 헛된 기림
어찌 네게 걸맞을까?
네 몸은 지극히 작고
네 말은 지극히 어리석네.
네가 죽어 버려질 곳은
저 개굴창이리라.
김시습은 최초 한문소설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쓰기도 했고,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인다. 「금오신화」는 명나라 사람 구우(瞿佑, 1347-1433)가 1378년에 쓴 〈전등신화(剪燈新話)〉를 참고해 쓴 것이라고 한다. 다섯 편의 이야기가 하나같이 이승의 이야기라기보다 저승의 이야기들이다. 마치 〈천녀유혼〉영화를 보는 것 같다고 할까. 그런데 김시습이 말년에 쓴 것으로 알려진 이 시의 마지막 구절에 전율이 느껴지지 않을 수 없다. “네가 죽어 버려질 곳은 저 개굴창이리라.”은둔자의 숙명을 수락하는 구절로 읽히기도 하나, 그의 자화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의 내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브레히트’의 「살아있는 자의 슬픔」에서도 마지막 구절이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라고 하였듯이, 시를 번역한 김광규 시인은 그 마지막 구절에 “살아남은 자의 자기혐오”라고 했다. 그런데 그 혐오가 도무지 마땅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죽은 사람이 있다면, 통곡하며 시체를 묻는 사람도 있어야 하는데 세상이 생육신의 지조를 칭송하면 할수록 그는 제 안의 잠재적 배신자라는 그 무엇과 지긋지긋한 싸움을 해야 하지 않았을까.
세조의 부름에도 응하지 않겠다는 시를 써서 보내고, 그 후로도 내내 자기가 지켜야 할 약속을 지키며 살다 죽은 김시습은 아홉 살 때 자신을 알아봐 준 세종 앞에서 한 약속, 어린 임금이 쫓겨나고 끝내 살해될 때 통곡하며 한 약속을 잊지 못해, 책을 태우고 머리를 깎고 미친 척을 하면서 약속을 금오신화의 주인공들인 양생이나 미생처럼 지키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에게는 평생을 두고 지켜야 할 약속이 있었으니, 그의 인생은 고달팠으나 단 한 순간도 무의미하지는 않았다.
[3] 홀로움
고독을 이해하려면 하이데거(20세기 초중반을 대표했던 독일 철학자)의 어려운 문장도 읽어보아야 한다. 한 인간이 ‘개별화’되려면 ‘고독화’를 겪어야 한다는 것이다. “개별화 그것은 인간의 약하고 보잘것 없는 자아를 완강하게 주장하여 그가 세계라 여기는 바로 이런저런 것에다 자신을 펼쳐나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화란 오히려 개개의 인간이 그 속에서 비로소 처음으로 모든 사물의 본질적인 것에 가까이 이르게 되는, 세계의 가까이에 이르게 되는, 그런 고독화다. 그러므로 고독 속에서만 처음으로 사물과 세계의 본질에 가까워진다”(하이데거 『형이상학의 근본개념들』)는 것이다.
철학자들은 외로움과 고독의 차이에 예민하다. 그러나 대개 시인들은 외로움이 더는 외로움이 아니게 되는 순간을 가장 섬세하게 표현하기를 좋아한다. 황동규 시인은 1997년 미국 버클리대학 방문교수로 가서 거의 방안에 갇혀 지내다시피 할 때 일생일대의 외로움을 경험했다고 한다. “무언가를 찾으러 장롱 밑에 머리를 들이밀었다가 빠져나올 수 없는 상태”에 비유될만한 그 외로움을 그는 어떤 계기로, 문득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그때 ‘외로움이 환해지는’순간이었다고 한다.
그는 그것을 ‘홀로움’이라고 했다. 그것은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일까? 시인의 설명은 없지만 「홀로움은 환해진 외로움이니」하고 시로 대답한다. 그는 지금 외로울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런 그가 실란 줄기를 기어오르는 개미를 보고 있다. 개미는 위태로운 등반 끝에 드디어 꽃에 도착한다. 그다음은? 그는 아버지를 비로소 떠나보내고, 외로움은 환해져 홀로움이 되었다고 한다. 시를 보자.
「홀로움은 환해진 외로움이니」--- 황동규
부동산은 없고
아버님이 유산으로 내리신 동산(動産) 상자 한 달 만에 풀어보니
마주앙 백포도주 5병.
호주산 적포도주 1병.
안동소주 400cc 1병.
짐빔 jim beam 반병.
품 좁은 가을꽃 무늬 셔츠 하나.
잿빛 양말 4컬레.
그리고 웃으시는 사진 한 장.
가족 모두 집 나간 오후
꼭 끼는 가을꽃 무늬 셔츠 입고
잿빛 양말 신고
답답해 전축마저 잠재우고
화분 느티가 다른 화분보다 아피리에 살짝 먼저 가을물 칠한 베란다에
쪼그리고 앉아
실란(蘭) 꽃을 쳐다보며 앉아 있다.
조그맣고 투명한 개미 한 마리가 실란 줄기를 오르고 있다.
흔들리면 더 오를 생각 없는 듯 멈췄다가
다시 타기 시작한다.
흔들림. 멈춤. 또 흔들림. 멈춤
한참 후에야 꽃에 올랐다.
올라봐야 별볼일 있겠는가.
그는 꼿꼿해진 생각처럼 쪼그리고 앉아 있다.
저녁 햇빛이 눈높이로 나무줄기 사이를 헤집고 스며들어
베란다가 성화(聖畫) 속처럼 환해진다.
추억이란 애써 올라가
미처 내려오지 못하고 꼿꼿해진 생각이 아닐까.
어느샌가 실란이 배경 그림처럼 사라지고
개미만 투명하게 남는다.
그가 그만 내려오기를 기다린다.
[4] 운명
「서시」--- 한강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을 거야.
눈물을 흘리게 될지. 마음이
한없이 고요해져 이제는
아무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
당신, 가끔 당신을 느낀 적이 있었어.
라고 말하게 될까.
당신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
당신과 언제나 함께였다는 것을 알겠어.
라고.
아니 말은 필요하지 않을 거야.
당신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을 테니까.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후회했는지
무엇을 돌이키려 헛되어 애쓰고
끝없이 집착했는지
매달리며
눈먼 걸인처럼 어루만지며
때로는
당신을 등지려고 했는지
그러니까
당신이 어느 날 찾아와
마침내 얼굴을 보여줄 때
그 윤곽의 사이사이.
움푹 파인 눈두덩과 콧날의 능선을 따라
어리고
지워진 그늘과 빛을
오래 바라볼 거야.
떨리는 두 손을 얹을 거야.
저기.
당신의 빰에.
얼룩진.
너무나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엘리자베스 퀴블러의 고전 『죽음과 죽어감에 대하여』에 따르면, 죽음을 앞둔 사람은 다섯 가지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1) 내가 죽을 병에 걸렸다니 그럴 리가 없어 하고 ‘부정’하는 단계. 2) 부정이 소용없을 때부터는 왜 하필 나인가 하고 ‘분노’하는 단계. 3) 그 뒤에는 한 번만 더(혹은 조금만 더)하고 ‘협상’을 벌이는 단계. 그리고 결국 죽음이 확실해지면 4) 상실감으로 ‘우울’을 불러오게 되고 마지막에는 ‘수용’단계에 들어가 감정의 공백을 불러오면서, 그만 쉬고 싶다는 ‘텅빈 마음의 상태’를 갖게 된다고 것이다.
퀴블러보다 먼저 죽음에 관한 인간의 내면을 섬세하게 보여준 소설로는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 있다. 판사 이반은 성공의 절정에 불치병에 걸린다. 그리고 나서 비로소 삶을 되돌아보게 되면서 그동안 자신이 완전히 잘못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한 걸음씩 산을 오른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한 걸음씩 산을 내려가고 있었던 거야.”사람은 죽음을 앞에 두고서야 자신의 삶을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 삶의 진실을 처음으로 깨닫고 정확히 3일 뒤에 그는 죽었다.
죽음 없이 결코 깨달을 수 없는 진실이라는 것이 있다면, 죽음은 그야말로 결정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진실(내 인생이 엉터리라는)을 일러주는 죽음이 그 진실에 응답할 기회까지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죽을 뻔했다가 살아난 사람이 있다면 이후 그의 삶은 바람직한 방향으로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그런 행운을 누리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존재와 시간’을 톨스토이는 이 소설에서 언급하고 있는데, 그는 이반 일리치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정말로 죽기 전에’미리 죽어보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는 요지의 말을 한다.
실비아 플라스는 1959년 2월 28일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고나서, 걸작이라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로부터 4년 뒤 그녀가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일을 막아내지는 못했다. 그녀에게 불가피했을 그 죽음을 과연 누가 막아낼 수 있었을까? ‘인간은 죽는다. 카이사르는 인간이다. 고로 카이사르는 죽는다.’라는 것을 인간인 우리가 알지만, 인간 일반이 아니라 자신의 죽음은 언제나 ‘아직은 아닌’일처럼 생각하며 산다. 거짓된 망각의 세계 속에서. 그것으로부터 빠져나와 내 죽음과 대면해야 비로소 진정한 삶을 살 수 있으니 그런 가능성의 지평으로 나아가야 한다. 거기가 어디일까? 죽음으로 미리 달려가 본다는 곳은? 〈서시〉라는 것은 윤동주 시처럼 서문을 대신하는 시이므로 시집의 맨 앞에 있어야 할 텐데도, 한강의 이 시는 왜 시집의 맨 끝에 있는가? 죽음에 대한 시이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이라는 사건은 인생의 끝에서야 쓰게 되는 서시 같은 것이다. 그때서야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다시 처음인 듯 살아가고 싶어지니까. 하지만 그것은 너무 늦지 않을까. 그러나 우리 모두는 그것을 미리 쓰야 하고 매일 쓰야 하는지 모른다. “나는 죽는다”라고 시작하는 그 시를 말이다.
[5] -「사랑스런 추억-윤동주」
1942년 3월 윤동주는 부산을 떠나 4월 2일 도쿄 릿쿄(立敎)대학에 입학했다. 그가 일본에서 쓴 모든 글은 이듬해 7월 체포되면서 망실되어 버렸다. 친구 강처중에게 보낸 편지에 적어 보낸 다섯 편의 시가 남아 있을 뿐이다. 도쿄에서 교토로 거처를 옮기고 ‘재 교토 조신인 학생 민족주의 그룹’에 가담하기까지 내면의 추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직 그가 남긴 시들을 읽고 또 읽을 수밖에 없다. 다섯 편 중에 「사랑스런 추억」과 「쉽게 씌어진 시」가 포함되어 있는데, 후자보다 전자가 덜 알려졌지만 그것을 보자.
「사랑스런 추억」
봄이 오던 아침. 서울 어느 쪼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나는 플렛폼에 간신(艱辛)한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 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 떼가 부끄러울 것도 없이
나래 속을 속, 속, 햇빛에 비춰, 날았다.
기차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주어.
봄은 다 가고 ― 동경(東京)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거장 가까운
언덕에서 서성거릴 게다.
―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이 시는 유학 초기의 향수병을 달래기 위한 시가 아니다. ‘봄이 오던 아침’과 ‘봄은 다 가고’사이의 시간은 기껏 2∼3개월이 흘렀을 뿐이다. 그 사이 두세 달 전의 내가 왜 그립기까지 한 것일까? 내 안에서 무언가가 결절적으로 달라졌다는 뜻이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여기’에 있지만, ‘그날의 나’는 ‘여전히 거기’에 있다고 한 것이다. 마지막에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그 사이 늙어버린 나에게 애틋한 작별 인사를 건넨다. 불가피하게 떠나와야 할 과거의 나인데, 막상 떠나려 하자 눈물겹게 그립다는 것이다. 윤동주는 어디로 가려는 것이었을까?
잇달아 쓰인 「쉽게 씌어진 시」에 그 해답이 있다. 마지막 연을 보면,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그러니까 ‘최후의 나’를 향해 간 것이다. 최초의 나 이후로 여러 나를 살아왔지만, 그것은 여기까지 오기 위한 과정이었고 이제 더는 바뀔 수 없는 내가 되었다는 뜻이리라. ‘최후의 나’라는 말에는 자책과 자부가 아프게 엉켜 있다. 우리는 그의 자책을, 그가 얼마나 부끄러워했는지를 안다. 그러나 그의 자부, 그 부끄러움을 이겨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이 ‘최후의 나’가 탄생하면서 ‘최초의 악수’가 비로소 가능해졌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이 악수는 ‘내가 나에게’하는 악수다. 최초의 악수는 이전에는 한 적이 없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제 ‘최후의 나’가 탄생하여 ‘직전의 나’에게 손을 내민 것이다. 여기까지 오느라고 수고 했다고. 이제 너는 부끄럽지 않아도 된다고. 윤동주의 ‘최후의 나’는 등불을 들고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고 1945년 2월 16일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죽었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부끄러운 일이다.”라고도 적었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어정쩡한 이런 표현에는 아직 인생을 제대로 살아본 적도 없다는 겸손이 담겨 있다. 그러나 그는 시를 쉽게 쓴 것이 아니라, 인생을 어렵게 살았다. 자신을 넘어서려는 노력은 결국 ‘최후의 나’에 도달하려는 노력, 그것이 그를 죽게 했고, 영원히 살게 했다.
[6] 가지 않은 길
노란 숲속에 두 갈래 길 나 있어.
나는 둘 다 가지 못하고
하나의 길만 걷는 것 아쉬워
수풀 속으로 굽어 사라지는 길 하나
멀리멀리 한참 서서 바라보았지.
그리고선 똑같이 아름답지만
풀이 우거지고 인적이 없어
아마도 더 끌렸던 다른 길 택했지.
물론 인적으로 치자면, 지나간 발길들로
두 길은 정말 거의 길게 다져져 있었고,
사람들이 시커멓게 밟지 않은 나뭇잎들이
그날 아침 두 길 모두를 한결같이 덥고 있긴 했지만,
아, 나는 한 길을 또다른 날을 위해 남겨두었네!
하지만 길은 길로 이어지는 걸 알기에
내가 다시 오리라 믿지는 않았지.
지금부터 오래오래 후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지으며 이렇게 말하겠지.
숲속에 두 갈래 길이 나 있었다고. 그리고 나는…
나는 사람들이 덜 지난 길 택하였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노라고.
‘로버트 프로스트’의 이 시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이자, 가장 많이 인용되는 시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수록됐던 터라 대부분 알고 있다. ‘명사들의 애송시’로도 자주 거명된다. 이 시는 흔히 관행적인 방식으로 “두 갈래 길 앞에 선 화자가 있다. 두 갈래 길을 다 걸을 수 없으므로 순간 고민에 빠진다. 우리 인생의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을 은유한다는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안전한 길을 택할 것인가. 전인미답의 길을 과감히 택할 것인가. 화자는 후자가, ‘풀이 우거지고 인적이 없어’더 끌렸던 길을 택하게 된다. 그리고 이 선택으로 자신의 인생이 달라질 것임을 예감한다.
오직 하나의 길만 택할 수 있을 뿐인 인생의 유한성에 대한 회한이고 사람들이 택하지 않는 길을 걸어가는 자의 고독과 아름다움이다. 그래서 이 시는 인기 없는 전공을 택해 일가를 이루고 이제는 정년퇴임을 앞둔 노교수가 퇴임사를 할 때에 혹은 이제 막 결단을 한 정치인이 자신의 선택은 눈앞의 사사로운 실리를 좇은 것이 아님을 강조하면서 훗날의 역사적 평가를 각오하는 비장한 연설을 할 때도 내비치는 말이다.
그런데 이 독법이 틀렸다고 하면? 문학에는 정답이 없다. 하지만 작품의 실상과 충돌하는 독법까지 허용하지는 않는다. 두 갈래 길 중 사람들이 덜 걸어간 길을 택하겠다고 말한 뒤에 화자는 이상하게도 자신의 말을 스스로 뒤집는 듯한 “물론 인적으로 치자면 지나간 발길들로/두 길은 정말 거의 같게 다져져 있었고/사람들이 시커멓게 밟지 않은 나뭇잎들이/그날 아침 두 길 모두를 한결같이 덥고 있긴 했지만.”에서처럼 두 길의 차이를 지우면서 두 길에는 사실상 별 차이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시 후반부에 “험로를 택하는 자의 고독”이라는 감동적 요소를 스스로 악화시킨다. 그것 때문에 이것은 불필요하다고 느끼거나 심지어 삭제하고 싶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 시가 이해되지 않고 얼룩이 닦아 내지지 않는다면, 이 시를 처음부터 다시 읽지 않으면 안 된다. 두 갈래 길에 섰다.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화자는 사람들의 통행이 드물다고 느껴지는 길을 택한다. 그러나 이내 자신이 상황을 과장(잘못)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두 길 모두 사실상 별 차이가 없음을 알게 된다. 이때 ‘우리는 자신의 선택에 필연적인 이유가 있기를 원하고 또 불가능하다면 그 이유가 숭고하고 아름다운 것이기를 바란다는 것이다.’그리고 훗날 자신의 선택이 다소 미화된 방식으로 회상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최소한 이 시에는 간과되어온 다른 얼굴 하나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느 정원시처럼 다정하게 삶의 지혜를 말하는 듯 보이지만 실은 은밀한 복화술(複話術)을 구사하고 있다. 프랭크 렌트리키아는 이 시를 “양의 옷을 입은 늑대”라고 규정한 바 있고, 그 뒤 데이비드 오어는 “이 시는 캔-두 개인주의(can-do individualism - 나의 선택이 내 인생을 결정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개인주의)에 대한 경의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 인생을 하나의 이야기로 구축하려 할 때 범하게 되는 자기-기만(self-deception)에 대한 논평이다.”라고 하였다.
인생에서 절대적으로 올바른 선택이란 있을 수 없다. 일단 하나의 길을 택했다면 “가지 않는 길”에는 미련을 갖지 말라는 것이다. 물론 시인의 취지가 그런 것이었다 한들 논란이 종결되지는 않는다. 작품이 발표된 후 열리는 해석의 장에서 창작자 자신도 단지 한 명의 선수일 뿐이다. 이쯤 되면 우리는 여러 갈래의 갈림길 앞에 서 있는 것과 같다. 어떤 길을 택해야 할까 하는 것은 외로운 선택을 한 사람의 자기 긍정을 표현한 시이거나 자의적 선택에 사후적 의미를 부여하는 인간의 자기 기만을 꼬집은 시? 후회가 많은 이에게 들려주는 부드러운 충고의 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선택은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왜 그래야 한단 말인가. ‘길은 길로 이어지고’한 번 놓친 길은 다시 걸을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고 시는 말하지만, 예술(시)은 길과 달라서 맨 처음으로 계속 되돌아가 작품이 품고 있는 여러 갈래의 길을 남김없이 다 걸어도 된다는 것이다. 인생은 다시 살 수 없지만, 책은 다시 읽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말 ‘보살피다’는 ‘살피다’를 품고 있다. 살피지 않으면 보살필 수 없는 것이다. 무엇을 살피는가? 다가올 시간이 초래할 결과를 살핀다는 것이다. 이런 보살핌을 ‘돌봄’이라 부른다. 돌봄이란 무엇인가? 몸이 불편한 사람을 돌본다는 것은 그가 걷게 될 길 위의 돌들을 골라내는 일이고, 마음이 불편한 사람을 돌본다는 것은 그를 아프게 할 어떤 말과 행동을 걸러내는 일이다. 돌보는 사람은 언제나 조금 미리 사는 사람이다. 상대방의 미래를 내가 먼저 한번 살고 그것을 당신과 함께 한번 더 사는 일인 것이다.
나이 들어 말이 어눌해진
아버지가 쑥을 뜯으로 가는 동안
나는 저녁으로
쑥에 된장을 풀어
국을 끓일 생각을 한다. - 「쑥국」부분
‘생각을 한다’는 ‘생각한다’가 아니다. 이렇게 마음먹는 것을 흔히 작정(作定)이라고 하지만, 여기서는 작정(作情)이라고 쓰 보면 돌봄을 위한 작정 그것이 곧 사랑이라는 것이다. - 에필로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