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술실에 실려 갈 때는 모든 것을 두고 간다.
시계 속옷 양말 의료보험증
스트레처 카에 실려 복도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또 복도를 지나 몇 번 꺾어져 문을 들어가
수술대에 옮겨 뉘어지고
괴석(怪石)처럼 우뚝 선 마취과 의사에게
다시는 깨어나지 못해도 좋다는 선서를 하고
(좋고 안 좋은 걸 그때 어떻게 알지?)
마스크를 해 눈만 보이는 간호사가
입에서 의치를 뽑아낸다.
2
나는 모래바람이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이곳 저곳 불려다니던
모래바람이었다.
아무도 없는 데서 혼자 불리고 날리고 하기를 좋아했다.
때로 사람들 속에 나도 모르게 일어나
그들의 눈을 맵게도 했다.
외로울 때면
공터에 며칠씩
재처럼 뿌려져 있기도 했다.
지금은 바야흐로 사방에 아무도 없는 때
솔솔 소리내며 날려다닐까
그냥 수술대 위에 뿌려져 있을까.
3
마취 직전
나는 간신히 용서라는 말을 생각했다.
머리 약간 들어 방을 한 번 둘러보았다.
보이는 것은 삭막한 기계와 등불
마스크한 사람들.
앞 공간 속에서
간호사가 마스크 위로 눈을 한 번 꿈쩍했다.
얼굴에 무엇이 뒤집어씌워졌다.
갑자기 용서받은 기분!
메고 다니던 것들이 모두 사라졌다.
4
그 어둡지도 환하지도 중간도 아닌
그 동서남북이 없는
전후좌우 없고 위아래도 없는
길도 없고
그 어디 칠 북도 없는
나 자신도 없는
네 시간 반의
그 설맹(雪盲) 보행을
아무리 해도 다시 걸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