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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유역의 남한강(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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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 23. 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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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유역의 남한강(5)
(목계나루와 목계)
남한강 유역 충주권의 목계는 어디에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조선조 말까지만 하여도 목계는 매우 번창하였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하향(下向)으로서의 목계가 처음으로 기록에 나타나기는 1636년(인조14) 김세렴(金世濂)이 일본에 통신사로 가고 오면서 기록한 “해사록(海槎錄)”에 나타난다. “인조 14년 8월 12일 남한강을 거슬러 배를타고(12척), 8월 17일 원주에 머물렀다. 19일 고개를 넘어 목계(木溪) 지평(持平) 조공숙(趙公淑)의 집에 닿으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의 전후를 살펴보아 여기에 기록된 목계는 지금의 목계(牧溪)와 동일한 지명임이 틀림없다.
위 기록에서 김세렴일행은 12척의 배를 타고 원주에 도착했다고 하는데 아마 남한강변의 흥창원으로 보이며, 여기서 대현(큰 고개의 일반명사인지 고유명사인지 알 수 없지만)을 넘어 구래촌을 경유하여 목계 지평 조공숙의 집에 당도, 당일로 충주까지 갔다는 기록으로 보아 일본으로 가는 통신사가 역이 있는 가흥을 경유하지 않고 목계를 경유했다면 목계에도 가흥과 같이 통신사와 그 일행이 쉴 수 있거나 식사를 제공할 만한 편의시설이 있지 않았겠느냐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렇게 본다면 이미 목계는 남한강변에 위치하여 중앙까지 알려진 일반촌락과는 다른 촌락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론해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산이 많고 들이 적어서 수례가 다니기 불편하여 대체로 말(馬)의 등에 화물을 싣고 다녔다. 그러나 길이 멀면 많은 운반비 때문에 적은 비용으로 운반 할 수 있는 수운을 이용하였다. 배로 왕래하는 장사꾼은 반드시 강과 바다가 서로 통하는 곳에서 이익을 주관하고 외상 거래도 하였다. 낙동강에는 김해의 칠성포, 나주의 영산포, 금강의 강경, 전주의 사탄, 한강의 동남방에 청풍의 황강, 충주의 금천과 목계, 원주의 흥원창, 여주이 백애, 춘천의 우두와 낭천의 원암, 연천의 징파도가 상선들이 거래하는 곳이다.
15세기에 정비된 관선 조운제는 16세기에 동요하고, 17~18세기에는 사선(私船) 운송체계가 운송의 중추역할을 담당하였다. 사선(私船)들은 운임을 받고 세곡을 운송했다. 이들은 어채(魚采)나 선상활동에서 더 나아가 농장의 소작료나 정부의 세곡을 운송하면서 운송 역량을 증대 시켰고 활동범위도 넓혀갔다. 게다가 17세기에는 농업 생산력의 증대로 전국적으로 농산물의 물량이 증대되고 이를 생산지에서 소비지로 운송해야 했다. 양반지주의 소작료뿐만 아니라 상품으로서의 물량도 증대되었다.
공납(貢納)이 대동법으로 개혁되면서 막대한 대동미가 운송되어야 했고, 이와 같은 운송 물량의 증대는 운송업자의 활동을 자극하여 사선인(私船人)들이 성장하는데 중요한 여건을 마련해 주었다. 특히 대동미의 운송은 선운업자들의 활동을 촉진시켰다. 대동미는 전세보다 그 액수가 많았을 뿐만 아니라 그 운송을 위해 정부가 특별히 운송체계를 마련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그 운송은 지토선(地土船) 또는 경강선(京江船)이 맡지 않으면 안 되었다. 17세기에 이르면 전세곡(田稅穀)은 6도 269읍 중 136읍이, 대동미는 5도 245읍 중 113읍이 사선을 임차하여 운송하고 있었다. 정부에서는 주로 조창 부근의 사람들을 조선의 선인으로 고용하였고, 사선도 조창 주변의 사람들을 고용하였다.
충청도는 서울의 남쪽에 위치하여 사대부들이 모여드는 곳이 되었다. 서울의 세가(世家)들은 한양과 가까운 충청도에 농토와 집을 두어 근거지로 삼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또 풍속이 한양에 가까워서 가장 많이 선호하는 곳이었다. 충청도 중에서 충주일대에 농토와 집을 마련하고 이들의 소작료가 상당한 물량을 형성하여 운송되었을 것이다. 이에 물량을 운송할 배도 증가하여 1702년(숙종28)에는 200석 내지 1,000석을 실을 수 있는 경강선이 300여척이나 되었고 그들이 받는 운임은 1,000여석이 되었다.
목계의 번성은 가흥창에 물량이 증가하면서 수송하기 위한 배도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배가 정박하기에는 접안시설이 부족하여 가까운 목계지역으로 접안하게 되었다. 목계는 제천, 원주, 충주로 통하는 길목에 위치하여 입지적 여건이 좋았기 때문이다. 특히 사선(私船)이 목계에 정박하여 상행위를 주도하게 되었다. 1750년대 내륙의 상항(商港)으로서 목계는 기타 강촌(江村)보다 번창하게 되었다. “택리지”에 [한양의 여러 강촌은 앞산이 너무 가까우며, 충주는 금천과 목계외의 나머지 강촌은 다 쓸쓸한 촌락 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2016년 01월 23일(토요일)
夢室에서 김광수
#일상·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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