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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록 실중어요(室中語要) 58. 그것은 똥오줌을 뿌리는 격이다
[운문스님께서 어느 땐가 말씀하셨다.
"손가락을 튕기고 기침을 하며 눈썹을 드날리고 눈을 깜짝이며 백추를 잡고 불자를 세우거나, 혹은 원상(圓相) 그리는 것은 다 올가미를 씌우는 일이다.]
한 때 운문선사가 법을 보이셨다.
이 때 거론한 향상일구(向上一句)를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손가락을 튕기고 기침을 하며 눈썹을 드날리고 눈을 깜짝이며 백추를 잡고 불자를 세우거나,”라는 것은 일종의 선기방편(禪機方便)으로 행하는 것인바 몸을 체(體)로 하고 몸을 움직이는 것은 용(用)으로 삼으며 그 형상은 바로 상(相)인 것입니다.
이렇게 체상용(體相用)을 일으켜 세워 상대로 하여금 이 체상용을 이용하여 이심전심(以心傳心)을 알아차리게하는 것이 선기방편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에서 “혹은 원상(圓相) 그리는 것은 다 올가미를 씌우는 일이다.”라고 하시는 것은 불교의 근본대의는 바로 진리(眞理)입니다. 진리는 진실여상한 진여실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주만유의 삼천대천세계가 어떻게 생겨 났으며 어떻게 작용을 하여 이러한 일체의 유정과 무정과 색과 공이 작용을 일으켜 지금의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고 있는가?라는 근본 물음이 바로 진리인 것입니다.
그래서 운문선사는 이러한 선기방편으로는 진리를 드러 낼 수도 없고 말로도 못하니 언어도단(言語道斷)이라 하였고 글로도 쓸수없으니 불입문자(不立文字)라고 하였고 마음으로도 그려 낼 수 없으니 심행처멸(心行處滅)이라고 했습니다. 즉 마음으로 공상 망상 허상 괴상 그 어떻한 마음의 작용으로도 그려 낼 수 없는 형이상학적인 이 우주의 법칙과 자연의 법칙과 인가들의 삶의 법칙과 모든 것은 어떻게 이렇게 생겨났으며 그 실체적 진실은 무엇일까?
이것이 불교이며 선사들의 선기방편입니다. 그러나 운뭄선사는 이런 몸짓과 형상으로는 “다 올가미를 씌우는 일이다.“라고하십니다.
왜 올가미를 씌우는 일이라고 하였을 까요?
올가미란 조작이요 형식과 습관과 인식으로 닥아오는 것에 이름을 붙이고 차별과 분별로 만들어진 거짓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진리의 당체는 그 어떻한 방편이나 형상이나 행위로서도 밝혀 낼수 없어니 어쩔 수 없이 말을 하고 글을 쓰고 마음으로 그려보지만 진리는 그 어떻한 방편으로도 그릴 수 없는 것이 진리라는 불가사이한 일인데 이렇게 선기방편을 쓰는 자체가 조작이요 방편입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원상(圓相)은 일원상(一圓相)이라고 하는데 일원상의 선기방편으로 사용한 그 내역을 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일원상(一圓相)
둥근 원을 불교에서는 일원상이라고 하는데, 우주 만유의 본원 또는 원융무애(圓融无涯)한 법을 상징한다.
선종에서는 1천 7백 화두 중 하나로,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일원(一圓)의 근본을 추구하는 화두로 통한다. 선방(禪房)에서는 흔히 벽에 이 상을 그려 놓고 참선을 하는데, 이는 언어가 끊어진 선정에 들기 위해서이다. 휴정이 지은 선가귀감(禪家龜鑑)에는 혜능(慧能)이 제자들에게 여기 한 물건이 있는데 본래부터 한없이 밝고 신령하여 난 것도 아니고 죽음도 없었다. 이름 지을 길이 없고 모양을 그릴 수도 없다. 이 한 물건이 무엇인고? 라고 묻는 내용이 나온다. 이에 하택 신회는 모든 부처의 근본이요, 신회의 성품입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여기에 나오는 한 물건이 바로 일원상이다.
선종의 종지를 밝힌 신심명(信心銘)의 저자 삼조 승찬(三祖 僧璨)은 이렇게 노래한다.
원만함이 큰 허공과 같아서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다.
이 구절은 바로 원상의 의미를 나타낸 것이다. 원상에 대한 설명은 승찬이 처음이지만, 이를 일원상으로 그린 것은 남양 혜충국사가 선구자로 97가지 그림으로 가르쳐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애써 보아도 도저히 그 전체를 바로 가르칠 수 없어 이것을 가르친다면 입을 열기 전에 벌써 가르친다며 알거나 알지 못한 데에 있지 않다고 했다. 그러므로 일원상의 이치를 분명히 알면 팔만대장경이나 모든 성인이 소용없다고 법정 스님은 설명을 덧붙였다.
일원상(一圓相)에 대한 문답은 벽암록(碧巖錄) 33칙에 나온다. 진조(陳操)는 당나라 때 사람으로 선을 수행하였으며, 나중에 상서(尙書)의 관직에 올랐다. 자복여보(資福如寶)는 당 말 오대(五代)의 선승으로 위앙종(위仰宗) 앙산 혜적(仰山慧寂)의 손자 제자이다.
진조가 자복을 뵈러 갔다. 자복은 진조가 오는 것을 보고는 이 일원상을 그렸다. 진조와 자복이 문답하는 진조간자복(陳操看資福) 공안을 자복원상(資福圓相)이라고도 한다.
벽암록 제69칙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남전(南泉)이 땅 위에 일원상을 그리면서 말했다. 말할 수 있으면 즉시 떠나겠다.
남전 보원(南泉普願)은 남전이 고양이를 베다의 남천참묘(南泉斬描)의 공안으로 유명한 선사인데, 그는 마조도일(馬祖道一)의 제자이다. 마조가 어떤 승려를 시켜 편지를 경산법흠(徑山法欽, 714-792) 화상에게 가져다주도록 하였는데 그 편지 속에는 일원상이 그려져 있었다.
경산은 편지를 열어 그것을 보자마자 붓을 가져와 일원상 속에다 한 점을 찍었다. 뒤에 어떤 승려가 이 이야기를 혜충 국사에게 하였더니, 국사가 말했다.
흠(欽) 스님이 오히려 마조 스님에게 속았다.
사유소사행각회 사문왈 여리차간다 소년야 왈리화상좌우장급팔년 사왈 판 득개습마 소사어지화일원상 사왈 지차개 경별유 소사내화파원상후례배(師有小師行脚迴 師問曰。汝離此間多 少年耶。曰離和尙左右將及八年。師曰。辦 得箇什麽。小師於地畫一圓相。師曰。只遮箇 更別有。小師乃畫破圓相後禮拜)。소사(小師) 스님이 행각 중에 돌아와 회운 선사를 뵈니, 선사가 물었다.
그대가 여기를 떠난 지 얼마나 되는가? 화상 곁을 떠난 지 8년이 되었습니다. 무엇을 얻었는가?
무엇을 얻었는가? 아마 그가 스승의 곁을 떠날 때, 스승은 그를 붙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8년 동안 그를 기다렸을 것이다. 그것이 스승의 마음인 것이다. 모두가 무심코 흘리고 스치고 지나가는 곳에 머물고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기다린다. 스승의 마음은 가장 낮은 곳에서의 기다림이다. 8년의 세월이 흐른 뒤 어느 날 그는 다시 찾아왔다.
소사(小師)는 땅에다가 일원상(一圓相)을 그렸다. 그것뿐인가? 또 있는가? 소사 스님이 이에 곧 일원상을 지웠다. 그리고는 절을 올렸다.
그다음이 없었다면 어떻게 그가 일원상을 그렸다는 것을 알겠는가? 오직 아는 자만이 비로소 은혜를 아는 것이다.
원상을 처음 그린 사람은 육조 혜능의 제자인 남양 혜충(南陽慧忠)이라고 전한다. 혜충 선사의 제자인 탐원 응진(耽源應眞)은 원상의 참뜻을 연구한 사람인데, 위앙종 앙산 혜적에게 그 뜻을 전했다. 그래서 위앙종에서는 수행자를 가르칠 때 원상을 자주 사용하기 때문에 원상에 관련된 문답이 아주 많다. 위앙종은 오대 무렵에 일시 성행했으나, 송나라 때는 쇠퇴하여 맥이 끊어지니 그 기간은 150년에 불과했다.
선종에서는 제자를 접하거나 인도하는 법어(法語)를 내릴 때 자주 손가락이나 털이개(拂子), 여의(如意, 대나 나무로 만든 구름 모양의 홀), 주장자(柱杖子, 설법이나 행각 할 때 쓰는 지팡이) 등으로 공간이나 대지에 일원상을 그리거나, 붓으로 일원상을 그린다. 이는 진실하고 절대적인 진리인 불심(佛心), 불성(佛性), 진여(眞如), 대도(大道) 등의 근본 뜻을 표시하는 것이다.
선승은 먹 자국도 분명하게 일원상을 그리고서 거기에 착어(着語, 짧은 평)를 붙이거나, 아니면 일원상 세 글자를 쓰거나 한다.
이러한 일원상은 단순한 원이 아니라 절대적 진리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원상 자체가 될 때 불심을 체득하는 것이며, 남전이나 자복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碧巖錄).
일원상(一圓相) 또는 간단히 원상은 교조(敎祖) 소태산 대종사가 26세 때 대각(大覺)하여 천명한 진리로 대각 후에 여러 종교의 경전들을 열람하다가 우연히 금강경(金剛經) 사상이 자신이 깨달은 일원(一圓)의 진리와 상통됨을 보고 감탄하였다. 다른 종교의 성인(聖人)들도 비록 표현은 다르나 대개 비슷한 진리를 암시하고 있었다. 따라서 교조는 유교의 태극(太極)·무극(無極)이나 도교(道敎)의 자연(自然)·도(道), 불교의 법신불(法身佛) 등이 모두 일원의 진리에 대한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고 보기에 이르렀다. 일원은 동양의 전통에서 보면 성품(性稟)에 해당 된다. 현상 만물은 모두 일원의 근본 이법에 의하여 존재한다. 모든 부처와 성인은 일원의 진리를 수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원불교에서는 신앙의 대상이자 수행의 표본으로 삼는다. 교조 소태산 박중빈(朴重彬)은 20여 년간 수행한 뒤 깨달았을 때의 심경을 언어나 문자를 초월한다는 의미에서 하나의 원으로 표시하고, 일원은 곧 우주 만물의 본원이며 모든 부처와 성인의 심인(心印)이고 중생의 본성 자리라고 하였다. 또 생겨남도 사라짐도 없는 도와 인과응보의 이치가 서로 융합되어 기틀(相)을 세운다고 하였다.
원불교에서 일원상은 인간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4은(四恩), 즉 천지, 부모, 동포, 법률에 보답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천지는 유일무이한 것이고, 부모는 원만 평등하며, 동포는 순환하여 궁(窮)하지 않는 속성을 지니고, 법률은 그 자체에 진리성이 드러나는 것을 뜻한다. 불문에 들어와 이러한 공안을 참구 한 뒤 원불교를 개교한 소태산은 일원상을 원불교의 상징, 즉 종지(宗旨)로 삼았다. 따라서 원불교는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 수행의 표본으로 삼고 있다.
라고 학술적으로 적고 있는데 . . .
이 무명납승이 쓸데없이 한 마디를 붙인다면 고등학교 때 하숙을 하다가 외숙이란 분이 부산 구덕산 원각사라는 곳에 있었는데 거기서 외숙옆에 방에 하숙을 하고 있다 불교에 인연이 생겼습니다.
그 때 나도 모르게 절에 있으니 법당에 참배하고 밤낮으로 큰제를 지내고 불공을 올리고 하는 것을 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절집에 훈습되어 갔습니다. 스님들이 항상 모여서 법회를 하고 제를 올리면 푸짐한 과일과 맛있는 떡과 나물등 초 호화로운 음식에 젖어 일반인들이 잘 먹지 못하는 과자와 쪼그랫 과일 등을 마음 놓고 먹을 수 있어 절이 너무 좋았습니다. 나도 몰래 천수경을 외우고 연꽃도 만들고 하다 보니 절풍속에 젖어서 살았습니다.
그러다 19살 때 농촌에서는 부잣집인 아버지가 평생내 병이라고는 몰랐고 일년 삼백육십일을 술에 취해 살아가시다 첫 번째 병원에 가시어 삼일밖에 못산다는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듣고 다음날 형님은 상주가 있어야 한다면 절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바로 상주가 되어 촌으로 올라와 농사를 지을 사람이 없으니 촌에 눌러앉게 되었습니다. 그 때 생겨난 농협단위조합이란 것이 생겨서 그 조합장의 권유로 끌려가다 슆이 단위농협으로 돌어가 삼년만에 퇴직하고 부산 당감동에 있던 동양고무라는 회사에 노무과에 입사를 하게되였으며, 그 당시 새로 생겨난 의료보험이 생겨나 재단 이사장으로 근무하였으며, 또 삼년만에 그 때 처음으로 나온 스포츠센타를 차려 장사를 했으며 장사를 하면서 주식회사 동양고무에서 알은 중소기어사장들을 많이 알은 덕분으로 동양화제보험회사에 입사하여 6개월 만에 전국 보험왕이 될 만큼 실적이 좋았습니다.
육개월 만에 다른 화제보험에 소장으로 발령을 받았으며 또 6개월 만에 제일화제 부산영업소 소장으로 승승장구로 출세를 하였습니다
그러다. 건설현장에서 알은 삼익건설회사 회장의 사장 4촌동생을 만나는 인연으로 건설업계에 진입하였으나 단종업인 골조회사라 계속 실패를 하다 아파트의 붐으로 분당과 일산의 아파트 단지에서 아파트 인데리어를 시작하여 엄청난 돈을 벌고 한국 건설업계의 회장이나 사장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인맥으로 아파트 인테리러업계 최초로 아파트 분양시 마이너스 분양이라는 획기적인 제도를 만들어 아파트 분양의 새로운 시스탬을 만들어 전국 아파트로 지금도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다 한국에서는 베란다 업계의 선두주자인 ㈜포창이란 회사가 아이맴에프라는 시대사항에 따라 분양이 안 될 때 회사가 부도처리 되었을 때 이 회사를 인수하여 다 해결하여 전국적으로 근 삼년을 신문에 도배를 시키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 때는 이 납승이 불교 경전공부 10년을 마치고 참선을 하고 있을 때 였으며 참선을 할 때 그렇게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주식회사 한길을 만들어 명성을 날릴 때 이 납스은 참선 7년만에 한 소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납승의 한 소식을 소개하려면 책을 한권 쓰도 모자랄 것이라 생략하고 이 세상을 전부 전도몽상(轉倒夢想)이며 빛으로 된 삼천대천세계가 한 빛으로 인하여 생겨나고 멸한다는 한 소식으로 그날 자로 그 동안 다니든 절에 올라가 내가 만들다 싶이 한 절에서 인사하고 회사로 출근하여 회사를 모든 것은 이사진에게 일임하고 나와 이름 모를 절에 들어가 그냥 일이나 하는 잡부처럼 그렇게 출가를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토굴을 지은 것이 화엄정사였습니다. 하천부지에 무허가 건물인 빈 집을 사서 자성불전이란 현판을 붙이고 일승법회라는 이름으로 시작을 하니 일승법회가 무엇이며 스님이 하는 말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기복불교와 행위불교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는 수수꺼끼처럼 법을 펼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인터넷을 다시 배워 차린 불교카페가 바로 원오스님이란 불교카페입니다. 2004년 참나를 찾아 참되게 살라라는 주제로 수덕사 선카페인 선 이야기에 올린 글이 이 납승이 법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어 작금의 무명 납승으로 살아온 25년의 전법이였습니다.
그 기록은 다음 불교카페 원오스님과 네이브 불교카페 원오스님 페이스북과 유트뷰 원오선사로 일승법을 펴고 있는 무명납승인 것입니다. 저는 출가하고는 선불교인 선어록에 빠져 한 시도 놓지않는
조사선에 대하여 한가닥 끈을 놓지 않고 처음 책으로 나온 “있는 그대로 완전한 자유”라는 마조스님의 선어록을 보설하였으며 백장록 강성이라 책자와 황벽산의 메아리라는 책으로 집집하였으며 지금은 임제록 법안록 운문록을 보설하고 있지만 이제 납승의 형편으로는 책으로 출판할 힘이 없어 인트넷에만 기록되어있는 조사선 사가어록의 보설집으로 인연있는 선객을 지도하고 있을 뿐입니다.
위에서 열반문에 대하여 보설하였지만 사실 열반경의 내용을 보면 실참수행을 통하지 않고는 열반문을 통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운문스님은 앞의 향상일구를 설하신 후 이렇게 말후구를 날립니다.
[불법(佛法)이라는 두 글자에는 근처에도 못 가는 말이며, 말했다 하면 그것은 똥오줌을 뿌리는 격이다.“]라고 아주 못을 밖아버립니다. 불법이라는 ”두 글자에는 근처에도 못가는 말이며”라고 하시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말이나 행주좌와 어묵동정의 몸짓으로 선기방편을 베풀고 있지만 이것은 오직 방편일 뿐 불교는 아니라고 하십니다. “말했다 하면 그것은 똥오줌을 뿌리는 격이다.”라고 하시어
“불교는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일 뿐인데 무슨 그런 몸짓이나 말이나 글이나 마음으로 지어내는 번뇌망상인 견문각지로 어떻게 그 사람의 마음에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전해 줄 수 있겠느냐?
그러니 작금의 한국에서는 수많은 수행방편중에서도 간화선(看話禪)을 하고 있습니다 만 벽암록의 저자인 원오 극근선사의 백암록 이후에 대혜 종고스님의 간화선으로 내려 오고 있지만 사실 조사선은 스님들이 하고 중생들은 간화선을 한다는 풍습처럼 조사선이 한 창일때는 한번만 들어면 바로 깨닮은 조사선으로 수많은 일반제가 신자들이 깨어나 바로 깨달아버리니 조사라는 큰 스님들이 스님 짖을 할 수가 없는 지경이라 이렇게 의심을 키워 의심병 환자로 만들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듭니다.
성불인연 맺으소소 옴 바아라 믹~~~~!!!!!!!!!!!!!
조사선(祖師禪) 운문록(雲門錄)을 들어시어
인연성불(因緣成佛) 하시어서 붓다(佛陀) 같이 살아가소!
일승법문을 시절인연삼아 인연성불 하옵시고 대원성취 하옵소서 !
원오선원 명상쉼터 천안시 두정동 611_1번지 5층(041)551 8546
무명 납승 원오선사 010 8748 6006 옴~바아라 믹!!!_()_
탁발성원 보시구좌 농협 351 1042 1598 93 대한불교 정토회

첫댓글 조사선(祖師禪) 운문록을 통하여 한국불교 1300년의 선사중에서 선어록의 해설서를 쓰신분은 처음입니다. 조사선(祖師禪)의 보설을 통하여 인연성불 하시어서 본불본락 하옵소서 옴~바아라 믹!!!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