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어디서부터 오해가 시작되었으며...
어디서부터 곡해되기 시작했을까?
어떤 이들은 “구원은 창세 전에 예정(택정)되었다. 그래서 택정받은 사람은 결코 구원을 상실하지 않는다” 라고 말한다.
그러나 또 어떤 이들은 “그렇지 않다” 라고 말한다.
“구원은 상실될 수 있으며 개인의 삶의 여부에 따라 버림 당할 수 있다”라고 한다.
이것은 단순한 견해 차이가 아니다.
그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중간지대를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의 말도 일리는 있어”라고 그냥 지나가기에는 너무 큰 결과가 기다린다.
마치 진화론과 창조론이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이 둘은 결코 공존불가하다.
한 쪽은 구원에 있어 인간이 할 것이 없다.
하나님이 다 해 놓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 쪽은 목숨 걸고 구원을 이뤄야 한다.
전자는 후자에게 행위구원이라고 몰아붙이고 후자는 전자를 사변적이라고 한다.
결코 양립할 수 없다.
어느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잘못하면 믿고도 지옥으로 갈 수 있다.
성경이다.
성경을 근거로 해서 둘 다 나온 주장이다.
다른 한 쪽이 성경이 아니라 그냥 사변이라면 문제가 될 것이 있겠는가?
둘 다 “성경이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느냐”라고 말한다.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예정해놓으셨다는 말씀은 성경에 있다.
(행3:20)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엡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롬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엡1:3-7)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예정론은 있다.
성경에 분명히 있다.
그러나 다른 쪽에서는 예정이 아니라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이라 한다.
(딤전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딛2:11)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계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3:14-16)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7: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마22:1-10)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그들이 돌아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벧후3:9)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분명한 것은 구원에 관해서 성경이 양면성을 갖고 있지 않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는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는 저렇게 믿어도 되도록
하시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속성은 결코 그렇지 않으시다.
진리는 명백하며 하나다. 오직 하나 뿐이다.
그렇다면.....
둘 중에 하나가 심하게 곡해한 것이다.
곡해에서 끝날 수 있는 문제라면 문제도 아니다.
그것은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문제다.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는 성경이 가르치는 바가 아닌 사람이 만든 교훈이다.
마치 예수님 당시 “장로들의 유전”이라고 말씀하셨던 그것처럼....
(마15:1-9) 그 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아니하나이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거늘 너희는 이르되 누구든지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둘 중 하나는 이 두려운 책망을 피할 수가 없다.
지금 이 시대, 둘 중 하나에 속한 교회와 신학교, 신학자, 그리고 성도들은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구원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교리를 믿고 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구원의 도를 모르는 것보다 더 잘못된 것은 곡해된 것이다.
불행한 것은 그 교리가 성경이라고 오해하고 있다는 것이며 또 그것이 성경을 잘 요약한 것이라고 속고 있다는 것이다.
단 한 번도 조사해보지도 않고…
이 불행은 결국 지옥으로 이끈다.
그렇다면 어느 한 편의 사람들은 이 시대가 만든 잘못된 교리라는 괴물에 치명적으로 끌려가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결론적인 말로 시작한다면 많은 분들이 반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을 꺼내 놓고 증명해나가려 한다.
만약 반발심이 일어난다면 그냥 잠시 접어두고 끝까지 읽어 보시길 바란다.
누구나 주의(主義 , ism)에 빠져있다.
그래서 발전이 없다.
결론은 이것이다.
개인예정론은 성경에 없다.
성경에 있는 예정론은 공동체 예정론이다.
그러므로 창세 전에 각 한 사람을 예정(택정)했다는 것은 심각한, 그리고 아주 불행한 성경곡해의 결과다.
성경에서 개인에 대한 예정은 오직 예수님 한 분 밖에 없다.
(행3:20)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다른 예정에 관한 것은 공동체다.
“우리, 그들” 이란 단어에 집중해서 읽어보라.
(엡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롬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엡1:3-7)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이것은 개인에 관한 예정 말씀이 아니라 공동체 예정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믿음의 요구에 합당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자녀 공동체다.
바로 그 공동체를 예정하셨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은 창세 전에 믿는 자들(믿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앞으로 분명한 정의가 있을 것이다)로 구성된 자녀 공동체를 만드실 것을 예정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 예정된 공동체 안에 들어 올 수 있는 자는 “누구든지”다.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목마르거나!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다 이 공동체에 들어 올 수 있다.
하나님은 할 수만 있다면 모든 사람이 다 들어오기를 원하신다.
(벧후3:9)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어떤 사람이라도 멸망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 때문에....
(요3:14-16)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어쩌면 개인 예정 구원론 주의(主義 , ism)에 젖어 있는 사람에게는 반발심도 생길 것이다.
아마 이 말씀 외에도 개인예정에 관한 수많은 말씀들이 생각 날 것이다.
여기도, 저기도...
그 문제는 하나씩 해석해 나갈 것이다.
오해가 풀어질 것이다.
아마 계속 읽어 나간다면 충분히 오해가 풀어지면서 그 동안 내 눈을 덮고 있던 수건이 벗어지면서 성경이 보이게 될 것이다.
개인 예정론이라는 바탕 위에 서있는 칼빈주의를 보게 될 것이다.
칼빈주의는 결코 성경이 아니다.
칼빈주의자들은 칼빈교리가 성경이라고 확신하고 있지만 성경이 아니다.
성경적이라고 생각했다면 오해한 것이다.
성경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인간의 교훈(장로들의 유전)이다.
개인 예정은 없다.
그러므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빌2:12)
주께서 읽는 자들의 눈을 여시길....
신종국목사
첫댓글 이확실한 말씀을통해 귀있는자는 성령이 교회에게 전하는 멧세지를 듣기를 원합니다~~~
순화된복음이 아닌 성경이 말씀하는 "구원"을 귀담아 들어보고 ,교리가 말하는 "구원"이아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구원의도에 귀를 기울여서 이 기회에 흔들리지않는 구원의 관을 정립하자구요~~~구원에 있어서는" 론"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는데......이유는 론이란 학설을 말하기 때문이고,구원에 관한말씀은 성경에 정확히 기록되어 있음에도 해석하는 이들이 자기들의 편리에 맡게 해석하기에 구원론이란 말을 하지만.........
'구원'이란 말은 너무도 귀하고 감격적인 단어임에는 틀림이 없지요~~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갑시다!!!!
샬롬!!!
다음편이 너무 기대가 되는군요~~~~~
개인예정이나 공동체예정이나 같은 것입니다.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분리되는것 같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같은 것입니다
우리의 머리털 마져도 세신바된 그분의 전능함 앞에는 예정이란말은 그냥 평범한 용어일뿐입니다. 즉 하나님께 예정이란용어는 현재 시점이고 인간에게는 미래의 시점인것입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사람한테나 예정이라는 용어가 사용되는 것입니다.하나님의 예정은 현재적인 용어일뿐이고 그분은 창세기를 쓰실때 이미 요한계시록을 예정하신 것입니다.
너무 예정이란 용어에 민감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한테나 적용되는 용어일뿐입니다. 신종국목사님의 개인적 견해일 뿐입니다.
성경에는 분명 개인에관한 예정과 공동체에 관한예정이 같다고 말씀한구절이 한군데도 없는걸로 압니다만......
신종국목사님은 신학교에서 오랫동안 원전강해를 하신분으로 알고있슴니다.이글은 신목사님 개인견해가 아니라 지금이시대에 많은깨어있는 목회자님들이나 성도님들이 동의하는걸로 알고있습니다.저 역시 신목사님의 말씀에 동의하고 있슴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저도 신종국목사님 말씀 늘 기대합니다..
구원을 이루어 간다고 한다면 언제까지 또 얼마만큼해야 구원이 이루어 지는겁니까? 살인자인 모세. 살인교사죄인 다윗 .우상숭배를 협찬한 솔로몬. 예수님 십자가 선상에서 죽은 강도. 이런 사람를은 언제 구원을 이룬것인가요? 우리에게 주신 단번의 믿음 예수님의 보혈 말구 내가 죽을때까지 뭘해야 구원 이 이루어지는걸까요 그러면 불교랑 별차이 없는데......
인터넷에 회자되는 순진한 초등학생의 시험 답안지가 종종 신선한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경우들이 있죠!
예를들면 이런 것입니다.
시험문제는 샌드위치를 만들 때 빵 안쪽에 버터를 바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였습니다.
아이의 대답은 <두쪽 다 바르면 너무 느끼해서....> 였습니다. ㅎㅎㅎ
이 아이의 대답은 맞았을까요, 틀렸을까요?
틀린 답으로 채점되었습니다.
제3자적 입장으로 생각할 때 한편으론 틀리지 않은 답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선생님이 그 대답을 틀린 것으로 채점한 이유는,
선생님이 원하는 답은 <빵 속에 야채의 수분이 베어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는 것이었습니다.
상급을 주시는 행위에 대해서 좀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시험을 볼 때 모두가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답을 써 냅니다.
그러나 정담으로 채점되는 사람은 바로 출제자의 의도에 맞는 답을 써내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성경말씀을 읽고 그것을 바르게 해석하려면
성경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에 맞는 해석을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식대로 해석해 놓고 맞다고 우기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즉, 선한 행위와 악한 행위의 기준은 하나님의 뜻에 있다는 것이고,
믿는 자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잘 헤아리고 분별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행위가 잘한 행위라는 것이죠!
그렇지 않은 행위들은 모두 불법적인 행위들이 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고, 예언을 하고, 각종 권능을 행했다고 하더라도
사람의 입장으로야 백번 지당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을 했다고 여기더라도
하나님은 불법을 행한 자!로 판단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않고 말씀대로 행하지 않은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일이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일인지 먼저 살피는 일이 중요한 것이며,
이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행위를 앞서 주장하는 것은 위험하다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점으로 채점하실 수 있는 행위를 하자는 것이죠!
칼빈주의는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과 행위를 떼어 놓을 수 없지만,
행위는 바른 믿음에서 기인된 행위라야 된다는 것과,
그런 행위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면, 즉 구원받은 사람이면 나타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살아있는 능력있는 믿음을 먼저 키우는 것이 교회가 할 일입니다.
믿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것이며,
사탄 마귀를 대적하는 성령의 검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마지막 날에 사탄마귀를 물리치는 주님의 도구도
그 분의 입에서 나오는 날선 검(말씀)이라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바른 신앙인으로 키워지기를 소원합니다.
<예정>이란 <주님이 그렇게 하시겠다라는 그 분의 의지>입니다.
주님이 그렇게 하시겠다라고 성경 여러 곳을 통해 말씀해 주셨고,
그 경륜의 비밀을 이루실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 비밀의 경륜은 에베소서 3장에 잘 나타나 있고,
계시록 10장 7절에서는 마지막 나팔이 울려 퍼질 때
하나님은 그 예정하심을 선지자들을 통하여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강학상 예정론이며,
이것이 잘못된 것이면 하나님은 거짓말 쟁이가 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옳고 하나님은 언제나 정의로우시며 그릇됨이 없으심을 나는 믿습니다.
칼빈교리를 공격하더니 이젠 하나님 말씀까지 공격하는군요!
저는 신학적인것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만약 예정론이라면...모든사람이 다 구원 받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거짓인건가요???
교회 안에는 본인이 구원 받았다고 믿는 신자들이 거의 태반입니다..일주일에 맞이못해
하루 와서 그것도 1시간 드리는 예배..그래도 자기들은 예수 믿으니 구원 받았다는 식의 신앙..
"영접기도"따라 했으니 구원 받았다는 신앙...
뭔가 모순이지 않을까요??
행위론자 입장에서는 속터져 죽을 일이지요?
그러나 사람의 믿음의 분량과 신앙의 성숙도의 차이는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인정하지 못할 때 판단과 정죄가 일어나고
그것이 성도간 분란으로 이어집니다.
빌립보 교회가 그랬고 지금 우리 교회도 그랬습니다.
이럴 때 사도 바울은 어떻게 가르쳤습니까?
그 믿음의 분량이나 신앙의 성숙도의 차이를 인정하고
하나님만을 기뻐하고 찬양하라고 하셨습니다.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빌3:16)."
속터져 하시기 대신에 마땅히
자기의 할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속터져 하는것은 아니구요.(전 행위론자가 아닙니다 ^^)
믿음의 분량대로라는 것은 알지만 믿음의 분량대로 행동하는 것과 아예 구원받지도 않았는데
본인이 구원받았다고 여기며 마음대로 하는 것은 다르지요(전 그런 사람들을 두고 한 얘기입니다 )
이건 믿음의 분량대로랑은 거리가 먼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고 선행을 베푸는 일들, 이건 믿음 안좋은 사람들도 할수 있으니까요..
저 역시 예정론을 믿고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정말 하나님께서 구원받는 백성들을 미리 정해 놓은셨다면..?? 반대로 구원 받지 못하는 사람도
정해져 있다는 것인데..그런 사람들은 너무 불쌍하지 않을까요?
세상 모든 사람들이 구원 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그럼 그건 뭔가요??
솔직히 많이 혼란스럽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는 것이 맞습니다.
하나님이 그렇다고 말씀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타락하라고 사람을 창조하시지 않으셨다라는 걸 잘 아시지 않습니까?
천하 피조물 가운데 하나님의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존재는 사람 뿐일 것입니다.
예정이란 하나님의 전지전능 하심을 인정할 때
그렇게 되어질 것을 이미 아셨다는 의미일 수도있고
결과론적으로 택하심을 입은 존재와 유기된 존재가 이미 판가름 되었다는 의미 일 수도 있습니다.
농부가 씨를 뿌릴 때 가라지가 하나도 섞이지 않을 거라고 예측하지는 않습니다.
비록 가라지가 섞인다 하더라도 결실을 볼 것을 예정하고 뿌리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사람을 판단하거나 정죄해서는 안됩니다.
어떤 사람이 구원을 받았고, 어떤 사람이 유기되었는가를 우리가 판단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행위로서 판단을 한다면-이것을 행위론을 따른다는 의미에서 행위론자라 말합니다-
사람이 구원받은 자와 유기된 자를 판단하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내 생각에 구원받지 못한 존재라 여겨지면
그를 불쌍히 여기고 그를 위해 기도하며 그를 구원의 도, 즉 복음을 받아 들이도록
수고하고 애쓸 것입니다.
이것이 전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전도하는 자인 것이며,
세상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갖는 자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판단을 금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구원 받지 못한듯 보이는 자를 판단하는 것은 아닙니다..
진실을알자님 말씀처럼
제가 무슨 판단할 자격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인것을요..
전 그런자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이 아닙니다.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교만인지 압니다
"그런 자들이 구원 받았다고 예정이 돼 있는거라면..
또는 신실한 자라도 택함을 받지 않은 자로 예정이 됐다면..뭔가 이상하지 않나? " 하고
혼란스러웠습니다..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설명해주신것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