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박곤걸 시인께서 생전에 은시동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천 년을 하루같이 우러르고 선망했던 저 창밖의 은빛 별이어서 밤이 새면
소망의 아침이 오듯이 우리 모두 행복합니다.
아기 햇살이 머릿결에 반짝이고 고운 한 다발의 빛깔과 한 움큼의 향기를 쥐고 손을 흔드는 꽃으로 피었습니다.
별빛이었던 은빛 詩를 이야기하며,
남은 햇살의 가을 여정에 몸과 혼과 꿈으로 배합하여 숙성시켜 온 빨간 열매가 영글었습니다.
사랑의 첫걸음에서부터 신이 내려 주는 시를 받아쓴 것일까
은시 가족들이 다듬어 내놓은 아름다운 시어들이 최상으로 정직하고 최상으로 투명하여서
이 땅에서 삶을 가꾸는 모든 이들에게 가장 인간적인 따뜻한 체온을 건네줍니다.
시를 통해서 신뢰와 감격으로 모든 이들을 껴안고 화해의 손을 잡아 줍니다.
물질의 주자와 정신의 주자가 장거리 마라톤을 해 왔습니다. 어림없는 일에 뛰어들었습니다.
만인에게 이 지역 어감의 구수한 맛깔로 보리빵의 감동을 구워 나누어 주는 일이었습니다.
이제 소망의 길을 내어다 보며, 한 해 또 한 해 보람찬 걸음걸이를 거듭해 가기를 기대합니다.
올해 다시 은시동인을 만납니다.
한빛문학동인-문채동인-은시동인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오늘에 이르른 열정을 봅니다.
1995년 박주일 시인의 문하생으로 대구문학아카데미에서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시단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시인들의 면면만 봐도 이해가 가는 동인입니다.
대구 시단에서 박주일 시인이 배출한 시인들이 전국 또는 대구에서 조명을 받고 있다 함은
문학 수련이 얼마나 치열하였었던가를 엿볼 수 있는 증거라 말할 수 있습니다.
가을이 깊어 겨울로 가는 길목에 은시동인과 함께 즐거운 한때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일시 : 2011년 11월 3일 오후 7시
-장소 : 대구 수성못 레스토랑 '케냐'
-회비 : 없으며 음식은 직접 구매하셔야 합니다
-제공 : 시하늘 가을호, 은시동인집, 백형석 시집 2권
-연락처 : 가우 010-3818-9604/케냐 레스토랑 053-766-8775
옻칠장
남주희
엄마의 옻칠장은 토닥이는 소리로 열고 닫힌다 검은머리 빗질이 끝나면 하얀 종아리를 걷어 올린 나무아래 피리 분 기억을 올린다 혀가 짧은 보름달이 쫒아와 토라진 풋살구 갈피에 꽃을 심었다 꽃가루로 분칠한 나비경칩이 궤를 붙들고 나무향에 취한 엄마의 집착을 나는 읽는다 오동나무를 건드린 사내놈의 발정으로 칩거에 들어간 그늘은 얼룩만 어룽댔다 옻칠이 벗겨진 자국에 늑대울음이 들린다며 붕어 자물쇠를 철커덕 안으로 채운다 목욕재개를 마치면 가끔 오동 집이 되는 엄마 18세 아버지를 기다리는 내간체의 종이들이 꼼지락대면 늙은 엄마는 문득문득 자란다 옻칠장 나이테에 부적을 꿰매고 밤마다 결을 맞춘 소원도 신명난다
나무로 걸어와 접붙인 세월이 까마득하다 칠이 벗겨지면 득달같이 감춰놓은 달을 품어 아랫도리가 짧은 노랫말을 잇는다 적삼 속에 개어둔 유언이 그믐으로 몰릴 쯤 추임새 없는 멜로디는 평음으로 변한다 문틈 사이로 연록의 나무냄새가 난다 기억의 새들 곁 눈질하며 어둠을 수혈받아 옻장 속에 감춘다 덜컥! 목이 매인 저 주름사이로 슬픔이 저장된다 저장된 것은 슬픔 만이 아니다 하나씩 말라가는 것에 손톱자국을 내는 것이다 다시 올올이 경經을 들이는 것이다
무심사에서
곽도경
전생을 만났다
한 삼백 년 전 그해 겨울
산속 암자에 버려졌던
그 아이
큰 스님 옆에서
고사리 손 호호 불며
예불을 드리고 있었다
마음을 비우려고 떠난 길 위에서
마음이 얼었다
무심이란 본디
관심이 없는 것
혹은 소유함을 초월한 마음일진대
무심사에서 나는
없는 마음이 터졌다
예불을 끝내고
숙소로 이어진 돌층계를 오르는
동자승의 뒷모습이
내 눈 속으로 들어와
그대로 부처가 되었다
나는
오래전 그날처럼
울며불며 산에서 내려오다
열 번, 스무 번도
더 뒤돌아보고
고가(古家)
류호숙
문살이 막 어둠 지워낸 아침,
밤새 허리 몰라보게 굽은 서까래는
아직 축축한 문지방에
부스스한 눈꺼풀을 자꾸 비벼댄다
바스스 감잎 떠는 전화벨 소리
-누구여?-
수화기가 음성을 더듬거린다
-그래, 누구여?-
-대구여, 엄마!-
-으응. 밥 먹었어?-
-아니요 아직-
-왜 안 먹어 늙은 어미도 살겠다고 먹는데-
아카시아 하얀 그리움이
처마 밑에 모여드는 늦은 봄이면
꽃빛보다 더 진한 모정慕情이
늙어 서러울 고가로 회귀한다
칠 남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갈수록 허물어질 저 앙상한 기둥을 핑계로
당분간 내 목 젖은
점점 뜨거워 붉게 잠기겠지
18세기 ‘禪詩’에서 ‘現代詩’를 읽다.
원작(原作) : 括虛(괄허) 取如禪師(취여선사)
역주(譯註) : 송남(松南) 여한경(余漢慶)
여한경
淸夜辭(※辭) 맑은 밤을 노래하다
청야사
日之夕兮澹偃蹇 햇빛도 저녁이면
일지석혜담언건 교만을 버리고
如有期兮簷雲還 기약한 듯 처마 끝엔
여유기혜첨운환 구름이 돌아오네.
風來兮石榻月到兮松關 돌 의자에 바람 오고
풍래혜석탑월도혜송관 솔 대문에 달이 뜨면
耿不寐兮徘徊 밝은 밤 잠 못 이뤄
경불매혜배회 배회하면서
謇誰與之晤言 아! 누구와 터놓고
건수여지오언 이야기를 나눌꼬?
夜冉冉兮將半存 고요히 밤은 흘러
야염염혜장반존 절반이 남았는데
一氣之孔神 일기지공(一氣之孔)
일기지공신 신비로와
誦楞伽兮旣罷 능가경(楞伽經)을
송릉가혜기파 외고 나니
聆寒鐘兮達晨 차가운 종소리 좇아
령한종혜달신 새벽이 오네.
위로
이선영
얼굴 보고 오던 사람들이
얼굴 없는 이곳에
올 리가 있는가
그리 알고 섭섭다 말게
언제나 곁에서
힘이 될 것 같아서
속 깊은 마음 다보였지
내 입장을 세워주며
자기 식탁처럼 앉던
얼굴 보고 왔던 사람들이
얼굴 없는 그곳에
올 리가 없음을
그가 떠난 뒤에야 알았습니다
특급 완행열차
정경자
기차는 창문 속 배경을
수시로 바꾸며 느릿느릿 가고 있다
허둥거리는 구름도 노란 은행나무 가로수도
다 한 번씩 품었다가 내려놓는다
그 따뜻한 모습 오래 보고 있으면
어느 듯 내가 기차를 끌고 가고 있다
잠시 마음을 쉬다 보면
측백나무 졸고 있는
낡은 간이역에 멈추어 선다
5일장 좌판에서 푸성귀를
다 팔고 돌아오는 아주머니들 우르르 몰려든다
자리에 앉아 마자 콩 타작 수다가 한창이다
무궁화호도, 나도, 저 아주머니들도
모두 삼등 인생
그러나 지금 이순간의 느림을
즐길 줄 아는 특급 인생이다
늦바람
정미상
월담도 마다 않는다 지천명을 넘어선 손돌풍 늦가을 바람 화등잔 같은 불을 켜고 오장바람에 이끌려 사족을 못 쓰고 다닌다. 늦바람은 하늘도 못 말린다고 번지르르하게 차려 입은 유똥 바지저고리 양단 마고자 머리는 진주피리 낙상하게끔 포마드로 어리강정을 하고, 바람은 차라리 올바람이 났다고 슬슬 부인 눈치 살피며 지례 방패막이로 남자가 평생 외도 한번 못하는 놈 병신이지, 여자가 투기하면 칠거지악에 드는 법, 들을 귀 있으면 들으라는 으름장 문자다, 풀잎을 잠시 눕혔다가 다시 일으켜 세우는 갑작바람이기를 빌며 인삼 다려 공경하고 갖은 솜씨 다 드려 먹성 입성 지성껏 받드는 그것이 여자의 부덕이라고 믿고 살았던 이조말기 여인들, 사철 봄바람만 불던 보금자리에 돌개바람 맞고서야 지나간 명주바람 다시 감으려고 허공에 달무리 수를 놓는 어머니, 땅이 한자나 내려않는 남모르는 한숨 쉬면서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
―유배시편 57
정숙
경상도 출신 조선족
고향 생각나면 상을 제켜놓고 젓가락으로 두드리곤 하지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내 여덟에 고향 떠나 돈 번다고 일흔에 다시 한국 갔더니
데리고 간 내 의사아들이 공사장에서 죽고 말았지
고향땅에서 돈 좀 벌어보려다가
천금보다 더 소중한 걸 잃었지
같은 핏줄인데도 그 사람들 사람차별 어지간하더군
참 세상은 받기 어려운 공만 내던지더군
일제강점시절, 피죽이라도 먹고 살기 위해
이 낯선 중국 땅까지 흘러왔지만
도저히 되받아넘길 수 없는 빠른 직구만 던져대더군
이제 겨우 좀 살만해 가는데
직구인 듯 삐끗 이상한 곳으로 빠져버리는
변화구가 우릴 가두고 말았지
밥은 먹고 살지만
말이 조국이고 고향땅이지
그 조국이 우리한테 해준 게 뭔데? 도대체
산호의 숲
정해경
이제는 고백을 해야지
끼룩거리는 갈매기 울음으로
해초의 비릿한 언어로
가슴 태우던 바위섬이 파도에 실려
떠나가는
먼-리 수평선에는
별빛 하나 타지 않는다
떠나는 뒷모습으로 출렁이며 깊이 잠기는 바다
그러나
천길 해저 암벽에는
산호의 숲이 눈부시게 타오르고 있었다
만조의 때를 기다려
은비늘 반짝이며 만리 해저 돌고돌아
헤엄쳐올 아득한
그대의 길목
해저 암벽에 꽃불을 밝히고
가지마다 타오르는 불빛
산호의 숲은 장관이다(용궁의 축제)
고리 흔들며 달려드는 숱한 고기떼
너울대며 휘감기던 해파리, 미역초
꽃게도 이제는 떠나가거라
끝내
헤엄쳐 오지 못하는 지친 연어는
스스로 백사(부서진 산호가루)에
몸을 묻는데……
산호의 숲은 꽃불을 밝히고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다
첫댓글 시와 함께 곱게 나이 들어가시는 은시 동인을
다시 초대하게 되어 무척 반갑습니다.
은시동인 시낭송회를 축하드리며, 많은 분들 오셔서 축하해주시고 즐거운 시간 함께 하길 바래봅니다.
제가 은시 동인과 함께 한 시간도 어느새 햇수로 5년 입니다.^^ 처음처럼 지금도 여전히 은시의 막내로 까마득한 선배시인들과 함께 삶을 이야기하고 시를 함께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함께 하는 시간이 되길 바라고 또 바래봅니다.^^
여름안개 님은 감회가 남다르겠지요?
은시를 사랑하는 모든 분을 초대해 주십시오. 이건 축복이고 축제입니다.
오랜만에 정 숙 선생님 뵙겠네요^^ 샘 손 잡아 본지가 오래 되었네요.
정 숙 선생님과 여러 선생님 뵈올날 빨랑 다가오길 기다립니다.
시주머님 멋진 하모니카 연주 준비해 오실거죠?^^
어쩌거나 그 날도 근무가 맞지 않는데
ㅠㅠ
늦어도 오세요. 승엽씨~~~ 우리 안 보면 보고싶은 그런 사이잖아요. 훗!
어쨌거나 시간을 맞추어서 늦어도 와야제. 한 달에 한 번 보는 얼굴 잊으면 우야노?
곽도경님의 은시동인 시 낭송회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그날을 기다리면서...
길손님~~~ 꼭 와 주세요.^^ 기다릴게요.
시낭송회에 갈려고 매월 첫째 목요일을 휴뮤일로 정했답니다
참 잘했지요? 가우쌤! 보리향님! 여름안개님!... 헤헤~~ 괜히 칭찬받고 싶어서...
와아~~~~ 해돋이님 진짜 최고에요.^^ ㅎㅎ 기다릴게요.^^
시하늘이 그런 곳이잖아요.
강요란 없고 어느 단체처럼 고삐 잡혀 있는 것도 아니고 안 보면 보고 싶고 그런 곳 말이죠.
지금 곳곳에서 시하늘의 끈끈함에 놀라고 있습니다.
모두 회원님이 이루어내신 은덕입니다.
참 잘했습니다.
171회 시하늘 시낭송과 은시동인 제9회 은시문학 출판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얼마 안 있으면 동짓날 故 박곤걸 시인님의 4주기가 되나 봅니다. 고인께서는 시하늘과 은시동인님들을 많이 사랑하셨습니다. 그 날 故 박곤걸 시인님의 시1한편 낭송할까 합니다.
정삼일 선생님의 멋진 낭송을 모처럼 듣겠군요. 고맙습니다_()_
정삼일 선생님 감사합니다. 기다릴게요.^^
그러십시오. 기다리겠습니다.
은시동인 출판기념회 및 시낭송회 개최를 마음 깊이 축하드립니다.
함께하고 싶지만 마음뿐입니다.
반갑고 즐겁고 유익한 시간 보내시고 은시 동인회의 꾸준한 발전을 빕니다. *^^
멀리서 마음을 보태주셔서 고맙습니다_()_
근무가 바뀌었는데
1차 낭송회 자리는 함께하지 못할 거 같고
2차는 참석 가능하지 싶습니다.
달려가겠습니다.
은시 동인 시 낭송회와 은시 출판 기념회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깊어가는 가을 밤,
감동과 축복이 함께하는,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낭송회에 한번 오시지요?
전문가는 아니지만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아름다운 시간에 동참해 보십시오.
이끌어 주심 고맙습니다.
같은 대구에 계시면서...
오시어요
디딤발로 마중나갈께요
출판과 낭송회 축하드립니다.
멀어서 가지 못하지만 마음은 맑은 밤이 될 거 같습니다.
옻칠장- 공영구 시인님,
무심사에서- 박선주 시인님
청야사- 여한경, 정삼일 선생님
위로- 김형숙 님
늦바람-권순진 시인님
나머지 시는 본인 자작시 낭송입니다.^^
혹시 이선영 선생님의 시 낭송회 주실 분 계시면 댓글 부탁드려요. ^^
제가 할게요^^ 이선영선생님과 통화했는데 '삼월'을 낭송을 해 달라고 하십니다.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낭독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선영 선생님 시는 제게 낭송을 해 달라고 부탁 하셨는데 그 날 제가 사회를 맡고 있어서 김형숙님께 낭송을 부탁드려 봅니다. 김형숙님 감사합니다.
네~~~ 알았습니다. 멋진 낭송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