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일곱, 자전거 타고 유럽가다.>
정태일
유럽여행을 가려고 맘을 먹은 것은, 전역을 하루 앞둔 어느 날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ROTC중위 전역을 했다. 이제는 27세 평범한 사회초년생으로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에 막 들어갈 참이었다. 그러다 문득, 20대가 이렇게 훌쩍 가버린다는 것이 너무나 억울하고 슬펐다. 불만은 점점 커져만 갔고, '어쩌면 이렇게 30대도 지나갈 것 같다'는 공포스런 감정으로 번졌다. 조바심이 난다. 이대로 오븐 속에서 말없이 팽창해가는 빵처럼 살 자신이 없다. 결국 떠나기로 했다.
나는 작정하고 떠나는 유럽 여행을 남들과 똑같이 가고 싶지는 않았다. 지난 3년 간의 시간을 한꺼번에 보상받을 그 무엇이 필요했고, 20대의 젊은 날을 오랫동안 추억할 만한 상징적이고 압축된 경험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유럽에 가기로 했다.
물론, 자전거 여행은 학생 때부터 가끔 해왔다. 3년 전 서울-부산-제주로 떠난 14박15일 하이킹의 시간은 나에게 쉼터와 같은 추억이다. 일단 자전거 여행의 맛을 알게 되면, 다른 방식의 여행은 싱겁기 그지없다. 내가 아는 한 자전거여행 만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일단 자전거로 유럽여행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자,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았다. 자전거를 구매하는 것에서부터, 분해조립, 운반은 물론이고 일정을 짜는 것까지를 혼자 하려니 생각보다 어려웠다. 여행책자 2권과 인터넷 카페를 활용하여 기본정보를 얻었다. 또한, 유럽여행 사진첩을 보면서 맘에 드는 장소를 스크랩했다. 책상 한 구석에 지도 한 장을 꺼내놓고 스크랩한 지역을 점으로 찍어 자로 쭉쭉 그었다. 엉성한 계획이었지만, 이것은 나의 상상을 현실로 바꾸는 첫 발자국이 되었다.
7월 30일, 프랑스에 들어왔다. 파리시내를 자전거로 활보한다는 것은 상상했던 것보다 엄청나게 무진장 신나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가이드북을 손에 쥐고, 불안하게 움직였지만 금방 이곳에 익숙해졌다. 물론 노틀담을 찾아가는 길에 몇 번이나 길을 잃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길을 헤메는 것조차 유쾌하다. 나는 핸들이 가는 대로 마구 페달을 밟았다. 두 뺨을 어루만지는 바람이 좋다. 무언가를 봐야 한다는 의무감 따위는 이제 없다. 여기만은 꼭 가야한다는 생각도 없다. 나는 화장기 없는 파리의 맨 얼굴을 기분좋게 매만지고 있기 때문이다. 파리의 차들은 시속 40km이상은 밟지 않으며, 시내 한복판 모든 도로에는 자전거 도로가 나 있다. 수신호를 하면 차들은 신경질 한번 내지 않고 멈추어 서거나 속도를 낮춘다. 도로에는 차와 사람과 자전거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사이좋게 살고 있다. 자전거에 대한 자동차의 배려는 눈물이 날 정도다.
8월 5일, 파리시내를 나서며 Orleans로 가는 길을 행인에게 물었다. 한 사내가 뒷바퀴에 주렁주렁 달린 짐을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기차를 타는 게 좋겠다는 뜻이다. 물론, 나의 대답은 "No thanks! No problem!"이다. 나는 미셰린 지도를 펴들고 스페인으로 향하는 N17번 국도의 한 복판을 고집스레 달리고 있다. 그런데, 이곳의 국도는 일단 시작하면, 아무런 샛길이 없다. 벌써 100km째 옥수수 밭이 계속되고 있다. 38℃가 넘는 아스팔트의 열기는 낭만적인 이미지로 가득찼던 자전거여행을 고달픈 현실로 금방 바꾸어 놓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나는 녹아버린 초코렛과 뜨거운 이온음료에 의지하며 9시간동안 160km를 끈질기게 달렸다. 9시반, 드디어 Orleans에 도착했다. 목표지점의 안내판을 발견한 그 때의 통쾌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과연 내가 기차로 이동을 했다면, 이러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인가. 로마로 가는 길은 여행기간을 고려해 기차를 탔다. 그런데 로마의 콜로세움과 트래비 분수는 생각보다 너무나 볼품 없었다. 더군다나 길바닥에 버려진 깨진 술병 때문에 타이어를 2번이나 갈기까지 했다. 차라리 스페인의 플라멩고를 한번 더 보는 것이 나을 뻔했다. 도망치듯 이태리를 떠나, 스위스로 향했다. 알프스에서의 번지점프는 잠자던 나의 모든 신경세포와 호르몬을 흔들어 깨웠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알프스의 경치를 담느라 무진장 애를 썼다. 200장이 넘는 알프스의 사진을 정리하느라 애를 먹었지만, 그 정도의 수고는 전혀 아깝지 않다. 신혼여행지 1순위다.
마지막 여행지 독일에서의 자전거여행은 매 순간순간이 감동의 연속이었다. 나는 이보다 더 훌륭한 자전거 도로는 없을 것이라 감히 장담할 수 있다. 자동차가 가는 모든 길에는 자전거가 간다. 뮌헨에서 Augsburg를 거쳐, Rothenburg, Heidelberg, Frankfrut까지 이르는 길은 그야말로 로맨틱의 환상도로다. 꼭 다시 가고 싶다. 독일에서는 자전거 여행객을 위해 저렴한 숙박시설과 대형마트, 파노라마 포인트(사진 찍기 좋은 곳), 바이크숍, 심지어는 등고선까지 모두 표시한 지도를 만들어 놓았다. 7-8월 바캉스 시즌이 되면 가족단위의 바이크 여행객들이 눈에 띄게 많아진다. 대부분의 경로가 겹치기 때문에 한번 만난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되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것도 아니다. 이곳에서 나는 너무나 고마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폭우가 쏟아지던 산중에서 헤메는 나와 함께 5시간이나 동행을 마다하지 않은 witek과 내년 월드컵을 보러 꼭 다시 오라며 주소를 건내준 Tom, 그리고 일본에서 온 자전거 여행객 유이치와의 만남은 낯선 곳에서의 힘든 여행을 풍성하게 채워주었다. 특히, 유이치와의 인연은 Rothenburg에서 Walldrum까지 3박4일간 계속되었다. 캠핑세트와 텐트를 가지고 다니며, 어두워 질 때까지 100km가 되었건, 200km가 되었건 그저 달릴 뿐이라고 말한 그의 모습에서는 왠지 모를 존경심마저 들었다. 이내 존경심은 호기심으로 바뀌어 나는 그와 함께 3박 4일을 달렸다. 헤어지는 순간 일본에 꼭 한번 놀러오라는 인사를 나누었다. 아쉬운 마음에 무언가 그에게 선물을 주고 싶어 찾은 것이, 붉은 악마 유니폼이다. 그는 나를 기억할 것이다. 내가 그를 기억하듯이.
9월 1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자전거를 다시 분해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 처음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자전거 여행은 사람을 단순하게 만든다는 것을 겨우 깨달았을 뿐이다. 하지만, "감동이란 그저 단순한 것"이라는 더 큰 사실을 배웠으니 절대 밑지는 장사는 아니다.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지금의 기억들은 점점 더 소중해질 것도 분명하다. 그러기에 나는 꼭 한번 다시 떠날 것이다. 가슴 뭉클한 무엇인가가 나를 자꾸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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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우~ 대단하십니다.. 멋지네요~^^
도전하는자여 그대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so cool !
보기 좋습니다. 부럽기도 하네요. 승리자의 모습ㅋㅋ
방법을 알려주세요. 저도 한 번 가고 싶네요. 자전거 구입부터 부탁합니다.
정말로 대단하시네요~~
저랑 동갑이네 전공군병장예비역~ㅋ
방법이 궁금하시다면, 제게 메일을....초기 계획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한글파일로 첨부하겠습니다.
메일 보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지금 답변을 작성중입니다. ^^;; 유럽 자전거 여행에 관심있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네요, 너무 기뻐요
wow~ 대단하십니다. ^^
뷰리플~~~~ 인생의 참맛을 아시는 분이네요.. 그저 감동일 따름입니다.
멋집니다 ㅠ 진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