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고속도로'라 불리는 88올림픽 고속도로, 내가 가던 그 날도 사망사고가 있었다. 군사정권 시절인 80년대에 올림픽을 앞두고 영호남 화합의 의미로 고속도로를 건설하였다.
지역갈등을 조장한 그네들이 지역화합을 상징하는 고속도로를 만들었다는 것은 역설아닌 역설이었다. 개통 당시는 전 구간이 콘크리크로 포장되었고 도로의 안정성이 높다는 보도가 연일 TV방송을 통해 흘러 나왔었다. 그런데, 그 후로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고속도로 신호등 88고속도로를 달리다 덕유산, 장수 방면 19번 국도로 빠져나가는 나들목 앞에 있다. 점멸등이지만 고속도로에 신호등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그 당시의 고속도로가 요즈음에 비해 기술적으로 떨어지는 데다 지리산, 덕유산 등의 산악지대를 통과해야 하는 지리적 문제도 없지 않았었다. 고속도로 주위의 지역민들의 끈질긴 요구와 지자체들의 노력으로 조만간에 4차선으로 확장된다고 하니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88올림픽고속도로 1981년 10월에 착공하여 2년 9개월만인 84년 6월에 개통하였다. 심한 곡선길과 경사도, 도로의 불안정성으로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아 '죽음의 고속도로'라 불리게 되었다.
현재 한반도 남단에서 유일하게 남은 왕복 2차선 고속도로, 유일하게 신호등이 있는 고속도로도 과거 역사의 상처처럼 머지않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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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김천령의 바람흔적 원문보기 글쓴이: 김천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