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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강원도 평화누리길 12코스(양구 펀치볼길)
여행일 : ‘23. 10. 8(일)
소재지 :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일원
여행코스 : 돌산령터널(해안입구)→DMZ자생식물원→만대리→오유리→해안면사무소→양구통일관→후리(백두대간트레일 시점)→양구·인제경계→453번 지방도 다릿골시험장입구(거리/시간 : 14km, 실제는 만대리부터 다릿골시험장 입구까지 13.31km를 3시간 4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평화누리길’이란 북한과 맞닿아 있는 경기도의 서해안 강화도에서 강원도 동해안 고성까지의 접경지역을 동서로 연결하는 자전거 길이다. 이중 강원도 관내(철원·화천·양구·인제·고성을 경유)를 ‘강원도 평화누리길’이라 부르는데 생태·평화의 상징공간인 DMZ 일원을 가장 가까이에서 즐길 수 있는 20개 코스(370.6km)로 구성됐다. 분단의 역사와 아름다운 자연이 어우러지는 길, 평화누리길을 걸으며 평화의 염원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 들머리는 해안입구(양구군 해안면 만대리)
중앙고속도로 춘천 IC에서 내려와 46번 국도를 타고 양구읍까지 온다. 송청교차로(국토중앙면 죽리)에서 31번 국도(양구·해안방면), 임당삼거리(동면 임당리)에서 453번 지방도(해안방면)로 옮기면 ‘돌산령 터널’을 통과하자마자 12코스 시점인 해안입구에 이르게 된다.
▼ 해안면의 입구(돌산령 터널)에서 시작해 양구(해안면)와 인제(서화면)의 경계에 이르는 길이 14km의 구간. 해안면의 산하를 오롯이 횡단한다고 보면 되겠다. 문제는 종점인 양구·인제 경계에 버스가 들어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최소 453번 지방도의 다릿골시험장 입구까지 3.6km를 더 걸을 수밖에 없다.
▼ 실제는 시점(돌산령 터널)에서 3km쯤 떨어진 ‘만대리(萬垈里)’ 마을회관 앞에서 출발했다. 인근 북녘 땅에 들어선 선전마을에 대응하기 위해 주택 20여 채를 지으면서 생긴 마을이라고 한다. 1972년의 일인데, 전선 방어에 기여하기 위한 ‘재건촌’이라고나 할까? 때문에 모두가 북향이었고, 마을 한가운데에는 북쪽에서 항상 볼 수 있도록 대형 태극기를 게양하기도 했단다.
▼ 만대리는 들녘이 넓어 만호(萬戶)가 충분히 살 수 있다는 동네다. 이는 옛사람들의 이상향이 만들어낸 지명이 아닐까 싶다. 50년대 ‘라때’만 해도 한 집에 대여섯의 자녀는 기본. 부모까지 합치면 호(戶)마다 최소 일곱 명(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빼고도)이 된다. 마을 하나에 7만(萬)이라니 그게 꿈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 10 : 20. 2차선 도로인 ‘만대로’를 따라 현리(해안면소재지) 방향으로 가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산행대장은 마을회관 앞 샛길로 들어가 ‘평화누리길’과 만나라고 했다. 하지만 우린 만대로와 겹치는 ‘DMZ평화의길’을 따르기로 했다. 볼거리가 더 많다는데 망설일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 오늘은 찬이슬이 내린다는 한로(寒露). 아침 공기가 많이 차가워졌고, 더 추워지기 전에 추수를 마쳐야 하는 부지런한 농부는 눈코 뜰 새가 없다. 벼 베기가 끝난 저 들녘이 그 증거라 하겠다.
▼ 불그스레 익어가는 사과도 가을을 재촉한다. 그런데 작고 귀여운 게 우리가 익히 아는 사과와는 많이 다르다. 나도 모르게 ‘능금’이란 단어가 툭 튀어나온 이유일 것이다. 어린 시절 달지만 너무 강한 신맛에 얼굴을 잔뜩 찡그려가며 먹던 추억 속의 과일이다.
▼ 가을의 전령이라는 구절초(낙동구절초)도 한 몫을 거든다.
▼ 들녘은 온통 인삼밭에서 세운 차양막을 뒤덮였다(농경지의 60%를 차지한단다). 예로부터 인삼 하면 ‘개성’이었다. 한국전쟁 후 아래로 또 아래로 내려가 ‘금산’에 자리를 잡더니, 세월이 흘러 다시 북상, 이곳 펀치볼에 새 둥지를 틀었나 보다.
▼ 10 : 28. 가을 풍경에 도취되어 걷다보면 어느덧 ‘만대리 3반’. 법정 동리인 ‘만대리’의 자연부락(산촌·평촌·내동·운전) 중 하나인데 어느 부락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새마을’이라는 마트의 상호가 옛 추억을 소환해 줄 따름...
▼ 버스정류장에는 ‘양구군 관광안내도’가 붙어있었다. 그런데 관할 읍·면이 5개뿐이다. 접경지역 지자체들의 일반적인 특징이라 하겠다.
▼ 10 : 33. 453번 지방도(펀치볼로)로 올라섰다.
▼ 코너에 ‘농산물가공지원센터’가 들어서 있었다. 전처리실과 증숙실, 세척실, 포장기 등 시래기 레토르트(retort) 작업을 위한 장비를 갖췄다고 한다. 저 시설을 거처 ‘펀치볼 시래기’가 브랜드화 된다는 얘기일 것이다. 양구군은 시래기 수요 확대를 위해 시래기 순대, 시래기 불고기, 시래기 만두, 시래기 막걸리 등의 개발도 병행한단다.
▼ ‘DMZ평화의길’ 이정표는 우리가 ‘28코스’를 걷고 있음을 알려준다. 하지만 ‘평화누리길(12코스)에서는 벗어나 있다는 것도 알아두자. 해안면소재지에 있는 여러 명소(통일관, 전쟁기념관 등)를 둘러보려고 일부러 ‘DMZ평화의길’을 따랐다. 펀치볼 분지의 들녘을 가로지르는 ‘평화누리길’은 면소재지를 에두르며 나있기 때문이다.
▼ 10 : 36. 몇 걸음 더 걸으면 ‘오유리(五柳里)’에 이른다. 오리나무가 많다고 해서 ‘오류동’ 또는 ‘오릿골’로 불리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운천리(雲川里)를 병합하여 ‘오유리’가 되었다.
▼ ‘펀치볼 하우스’라는 브랜드를 쓰는 농가는 펀치볼 시래기의 장점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고 있었다. 천혜의 자연조건(깨끗한 땅과 가을철 높은 일교차)에서 길러 높은 하늘 바람에 말려냈다는 것이다. 참고로 식감이 부드러운 시래기는 비타민 B·C와 미네랄, 철분, 칼슘, 식이섬유 등이 풍부해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겨울철 웰빙 식재료다. 그런 시래기를 말리는데 이곳 펀치볼 만한 곳이 없다고 한다. 고산분지 지형으로, 일교차가 크고 바람이 분지 안에서 맴돌기 때문이란다.
▼ ‘DMZ펀치볼 둘레길’ 4개 노선 중 하나인 ‘평화의 숲길’도 이곳을 지나는 모양이다. ‘평화누리길’에 ‘DMZ평화의길’, ‘DMZ펀치볼 둘레길’까지, 펀치볼은 가히 둘레길 세상이라 하겠다.
▼ 10 : 45. 오유 1·2리를 지났다싶으면 해안면 소재지인 현리(縣里)가 마중 나온다. 원래 해안소(亥安所)가 있었던 곳(지명에 ‘縣’자가 들어간 이유가 아닐까 싶다)으로 춘주(춘천)부에 딸려 있다가 조선 세종 6년(1424년) 양구군으로 이속되었다. 1916년 행정구역 개편 때 자월·상평 등을 병합해 해안면의 소재지가 되었다.
▼ 초입에서 만난 ‘해안중학교’ 앞에는 ‘외솔 쉼터’가 조성되어 있었다. 옛날 이곳에는 수령이 1,000쯤 되는 큰 소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고 한다. 마을 이름 또한 ‘외솔백이’였다나? 2005년 새농촌운동을 추진하면서 나무가 있던 자리에 저 쉼터를 조성하고 소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고 한다.
▼ 해안면사무소. 이곳 해안면은 엄격한 통제를 받던 지역이었다. 까다로운 입주심사를 거친 후에도 기본적인 자유가 제한되었다. 1996년 해안면의 출입제한이 완전히 풀릴 때까지는 출입증 없이는 오갈 수도 없었단다. 하지만 지금은 시골 면소재지 치고는 꽤 번화한 모습이다. 관공서는 물론이고 숙박업소, 식당, 마트, 상점 등 웬만한 편의시설을 다 들어서 있었다. 참고로 여의도 면적의 여섯 배쯤 되는 해안면은 ‘펀치볼(Punch Bowl)’과 궤를 같이 한다. 미군 종군기자의 눈에 화채를 닮는 그릇으로 보였다는 분지(盆地)가 통째로 ‘해안면’이 되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까지 해안(海安)으로 불리던 마을은 뱀이 들끓어 바다 '해(海)'를 돼지 '해(亥)'로 바꾸고, 집집마다 뱀과 상극인 돼지를 기르면서 뱀이 사라졌다고 한다.
▼ ‘시래기·사과 축제’의 입점 부스를 모집하는 현수막이 눈길을 끈다. 해안면은 고지대(해발 400-500m)의 분지다. 그러니 고랭지채소가 잘 자랄 것은 당연, 주민들은 실한 가을무에서 수확한 무청으로 ‘시래기’를 만든다고 했다. 그게 ‘펀치볼’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돼 우리네 식탁에 올라올 것이고...
▼ 해안면의 인구는 1,200명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런데도 천주교는 공소가 아닌 본당이 들어서 있었다. 규모도 제법 크다. 가톨릭의 교세가 그만큼 실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 메인 도로를 따라 걷다보면 중학교를 시작으로 면사무소, 우체국, 119지역대, 파출소, 농협 등을 차례로 지나게 된다. 하나 더, 이곳 해안면은 무주지(無主地)로 골머리를 앓던 곳이다. 전후 입주한 주민들이 고생해서 땅을 일궈도 주인이 나타나면 빼앗길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게 이번에 해결되었다고 한다. 정부에서 감정평가를 실시한 뒤 평가금액에서 개간비를 뺀 나머지 금액으로 토지를 주민들에게 매각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 ‘해안재건비(亥安再建碑)’란다. 해안면은 ‘6.25 전쟁’ 최대의 격전지이다. 70여 년 전, 참혹한 고지전(高地戰)을 치르면서 폐허가 됐던 곳이 새롭게 태어났다는 얘기일 것이다.
▼ 마을 앞 텃밭은 무가 주인이다. 맞다. 전쟁이 끝난 뒤, 펀치볼 마을로 이주한 사람들은 남겨진 지뢰를 피해가며 척박한 땅을 옥토로 만들었다. 그 밭에서 지금 무와 배추 등이 자란다.
▼ 11 : 01. ‘현리교’ 앞 이정표. 엉터리니 그냥 지나치기로 하자. 지시대로 가면 엄청나게 돌게 되니 말이다. 우리 일행은 이정표가 지시하는 방향으로 80m쯤 가다 되돌아왔다.
▼ 다리 건너에는 ‘성황지(城隍池)’가 조성되어 있었다. 인공호수를 파고 호반을 따라 산책코스를 만들었다.
▼ 성황지는 흙탕물 저감을 위한 ‘침사지’다. 그간 이곳 펀치볼 지역은 한강수계 수질오염의 범인 중 하나로 꼽혀왔다. 강우 때마다 많은 양의 흙탕물이 하천으로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성황천에 가동보(성황지)를 만들었다고 한다.
▼ 11 : 08. 몇 걸음 더 걸으면 ‘회전교차로’. ‘DMZ평화의길’은 2시 방향의 453번 지방도(해안서화로)를 따른다.
▼ 초입에 ‘펀치볼 시래기광장’으로 들어가는 문이 만들어져 있었다. 안에는 시래기 오픈갤러리도 조성되어 있단다.
▼ 하지만 보건지소와 복지회관을 양옆에 낀 ‘힐링하우스’만 보일 뿐, 특별히 눈에 담을 볼거리는 없었다. 하나 더, 힐링하우스는 외국인 계절노동자를 위한 숙소이다. 타국에 와 열심히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열악한 주거환경을 해결하기 위해 건립했단다. 외국인 노동자 없이는 농촌이 유지될 수 없다는 요즘 현실이 반영된 시설이라 하겠다.
▼ 다음은 ‘DMZ펀치볼 둘레길’의 안내센터. 국토정중앙 최북단이라는 상징성과 전쟁과 평화에 관련된 주제로 조성한 73.2km의 숲길이다. 4개 코스(평화의숲길·오유밭길·만대벌판길·먼멧재길)로 이루어져 있고, 2021년 지리산둘레길·백두대간트레일·대관령숲길과 함께 국가숲길로 지정됐다.
▼ 하나 더, 이 길은 민간인 출입통제지역 안에 조성된 숲길로, 미확인 지뢰지역과 인접하기 때문에 반드시 안전문제 동의서 작성 및 숲길등산지도사의 동반과 안내에 따라야 한다. 또한 1일 2회, 하루 200명(선착순, 2인 이상)만 탐방 허용하고, 단체 예약은 전화 상담 우선, 숲밥 신청은 일주일 전 전화 예약이 필수이다.
▼ ‘평화의 길’ 표지석. 이곳 펀치볼 분지가 천지(天地 : 하늘과 땅)를 품었고, 천지(天池 : 백두산 산정에 있는 자연 호수)를 닮았단다.
▼ 11 : 15. 진열된 무기를 기웃거리다 ‘전투전적비’를 만났다. 도솔산지구와 펀치볼지구 전투를 함께 기념한단다. 맞다. 이곳 양구는 6·25전쟁 당시 동북방 최대 격전지였다. 전쟁 전에는 북한 지역이었으나 국군과 연합군이 38선을 돌파하면서 비로소 자유 대한민국 품으로 편입됐다. 국군은 양구지구 9개 전투에서 치열한 격전을 벌여 연전연승을 거뒀는데, 특히 해안은 도솔산·대우산·가칠봉·펀치볼 등 4개 전투가 벌어졌을 정도로 군사적 요충지였다.
▼ 도솔산지구전투(6.4-6.20간)는 귀신 잡는 ‘무적해병’ 신화를 창조했다. 미 해병대가 성공하지 못한 1000m 이상의 고산지대를 우리 해병대가 교체 투입돼 탈환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도솔산을 방문해 목숨을 걸고 고지를 탈환한 해병대에 ‘무적해병’이라고 쓴 친필 휘호를 하사했다. 펀치볼지구전투(8.31-9.20)는 한미 해병대가 휴전회담이 제기된 이후 전투력을 재정비한 북한군2군단을 격퇴하면서 펀치볼과 주변 고지를 확보하는 데 성공한 전투다.
▼ 11 : 19. 이어서 양구통일관이 길손을 맞는다. 통일에 대비하여 국민에게 북한 실상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통일의지를 고취시키는 등 통일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건립한 시설이다. 평화지역 국가지질공원 사무실과 을지전망대·제4땅굴의 매표소도 같은 건물에 들어서 있었다.
▼ 을지전망대·제4땅굴의 매표소는 휴관이란다. 관련 자료라도 얻을까 해서 들어가니 뜬금없다(휴관 중인데 왜 들어왔냐는 듯)는 얼굴로 직원이 맞는다. 자료도 ‘청춘양구’라는 양구군의 관광용 팸플릿이 전부였다.
▼ 통일전시관은 북한의 실상을 제대로 알리고 통일교육을 강화하는 곳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실상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건전한 안보관을 정립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내가 본 전시관은 20%쯤 부족하다는 느낌이었다.
▼ 북한의 실상을 알 수 있는 생활용품과 수출품, 사진 등이 전시되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같이 조잡하기 이를 데 없다. 우리네 60-70년대 것들이라고나 할까? 실제로 그런지가 궁금해 전시관에 대한 팸플릿이 있는가 물어봤지만 없다는 대답이다. 그럼 내 궁금증에 대한 해답은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
▼ 남북관계의 현실은 물론이고, 그동안의 정책 변화 등도 알리고 있었다.
▼ 윤석열 정부의 통일·대북 정책도 소개하고 있었다. 이를 강조하고 싶었음인지 사진까지 첨부했다. 통일정책은 그동안 몇 차례 큰 변화를 거쳤다. 당시 변화의 중심에 있던 대통령들의 사진도 함께 게시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 북한말 따라잡기, 북한 그림 짝 맞추기 등의 체험공간도 만들어져 있었다.
▼ 통일관 앞의 그리팅맨(greeting man)은 오늘도 고개 숙여 오가는 사람들에게 인사한다. 유영호 작가의 작품이라는데, 그는 2011년 지구 반대편인 우루과이 몬테비데오를 시작으로 세계 곳곳에 15도로 고개 숙인 초대형 알루미늄 조각상 ‘그리팅맨’을 설치해 왔다. 그리팅맨은 문화와 인종, 시간을 초월해 인사를 건네며 평화의 메시지를 전한단다.
▼ 11 : 25. 양구전쟁기념관은 9개 전투를 상징하는 기둥(상징탑)을 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공사가 한창이라며 금줄을 쳐놓았기 때문이다. 2000년 개관한 양구전쟁기념관은 한국전쟁 때 치열한 격전을 벌인 양구지역의 9개 전투(도솔산·피의능선·펀치볼·백석산·가칠봉·대우산·크리스마스고지·949고지·단장의능선)의 전쟁사를 재조명하기 위해 건립했다.
▼ 기념관은 9개의 전시 공간으로 나누어졌다고 한다. 전쟁 발발부터 휴전협정까지의 과정 설명·전사자 명단과 함께 참전 군인들의 개인 유품·무기 등이 전시되어 있고, 도솔산전투 디오라마·영상실·생존자 증언코너 등이 마련되어 있다고 했다.
▼ 통일관 광장에는 ‘DMZ평화의길’ 종합안내도가 세워져 있었다. 이곳이 28코스의 종점이자 29코스의 시점이라는 것이다.
▼ 11 : 28-44 : 전쟁기념관 우측에 있는 ‘DMZ조이나믹 체험관’은 놀이형 체험시설이라고 한다. 트렘펄린, 모험놀이, 터널놀이, 네트 놀이대, 조합 놀이대, 곡선형 짚와이어 등의 체험시설을 갖췄단다.
▼ 준비해 온 간식으로 요기를 때운 뒤, 다시 길을 떠난다. ‘평화의길’은 체험관 앞 광장을 가로지른다. 이어서 산비탈에 기대놓은 데크계단을 오른다.
▼ 11 : 44. 하지만 하시라도 빨리 ‘평화누리길’과 만나고 싶었던 우린 계속해서 453번 지방도를 따르기로 했다. 은행나무 가로수가 도열해 있는 길은 한마디로 예뻤다. 샛노란 옷으로 갈아입는 가을이면 또 하나의 눈요깃거리가 되겠다.
▼ 길가 벌통은 지극히 한산하다. 벌들도 가을준비를 마치고 휴식기에 들어 갔나보다.
▼ 해안면의 ‘쥬키니 호박’은 철이 가는지도 모르나보다. 한로가 지났는데도 튼실한 열매를 키워내고 있었다. 최근 양구상회의 호박찐빵이 입소문을 타고 있던데...
▼ 12 : 01. 그렇게 16분쯤 걸으면 작은 공원이 있는 ‘삼거리’. 평화누리길은 이곳에서 지방도와 헤어진다. 그리고는 임도를 따라 산자락으로 들어간다. 참! 오는 도중 우측에서 오는 만대벌판길과 평화누리길을 만나기도 했다. 참! 산행대장 말로는 지방도를 따라가도 된다고 했다. 조금 멀기는 하지만...
▼ 이곳에도 토사유출을 저감시키기 위한 인공호수가 만들어져 있었다. 만대천을 막아 침사지를 만들고, 그 주위에 산책로를 조성해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 아까 조이나믹체험장에서 헤어졌던 ‘DMZ평화의길’이 다시 합쳐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하나 더, 체력을 감안해야 한다며 간식도 거른 채 조이나믹체험장을 지나쳤던 80대 노익장 도반을 이곳에서 다시 만났다. 15분이나 쉬다가 온 우리보다도 더 늦게 도착했다함은 그만큼 에둘러 왔다는 증거일 것이다.
▼ 12 : 09-18. 침사지 호반을 따라 내놓은 산책로. 신경 써서 조성한 것 같으나. 내가 보기엔 10%쯤 부족한 듯. 쉬어갈 수 있는 벤치가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아무튼 이곳에서 ‘평화의길’로 진행하신 도반도 기다릴 겸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 ‘그것! 당신의 생명보다 소중한 것입니까?’ 경고판의 문구가 심상치가 않다. 미확인 지뢰와 불발탄이 산재한 곳이니 산나물 채취나 동식물 포획, 불법 개간 등을 한답시고 철조망을 넘지 말라는 것이다.
▼ 백두대간트레일 안내판도 눈에 띈다. 후리(後里) 시점에서 논장교까지의 1구간(평화염원길, 21km)이 이곳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참고로 백두대간트레일은 양구 후리에서 홍천 불발령까지 총 10개 코스 159.5km로 조성돼 있다. 2021년 산림생태적·역사·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숲길로 지정됐다.
▼ 물골교로 ‘만대천’을 건넌다. 펀치볼(해안면 분지)에 떨어지는 빗물은 모두 저 물길을 따라 ‘인북천’으로 빠져나간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을 ‘물골’이라 부른다.
▼ 12 : 25. 150m쯤 더 걸었을까(물골교에서) 또 하나의 삼거리가 나온다. 평화누리길 종합안내판과 위험지구임을 알리는 경고판 등 번거로울 정도로 많은 안내판들이 이곳이 중요 기점임을 알려준다. 이정표도 평화누리길(인제 경계 2.5km/ 돌산령 8.5km)과 DMZ평화의길, 백두대간트레일 등 3개나 세워놓았다. 하나 더, 이 구간은 ‘DMZ펀치볼둘레길’ 중 ‘먼멧재길’과도 겹친다고 했다.
▼ 왼쪽으로 올라서서 숲길을 탄다. 울창한 숲속을 구불구불한 임도가 헤집으며 지나간다고 보면 되겠다. 하나 더, 길 양옆으로는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 그 철조망에 걸린 ‘지뢰 표지판’은 이곳 해안면에 미확인 지뢰가 아직도 많이 남아있음을 나타낸다.
▼ 12 : 30. 차단기(이정표 : 인제군경계 2.0km/ 돌산령 9.0km)가 차량은 출입 할 수 없음을 알려준다. 엄중함을 알리려는 듯 초소도 세워놓았다. 군사시설보호지역, 지뢰 매설지역 등을 알리는 경고판도 서너 개나 된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산림유전자원보호지역’. 신갈·찰피·들메나무 등 희귀식물 자생지이자 유용식물 원생지라고 한다.
▼ 길은 미확인 지뢰로 뒤덮인 지역을 헤집으며 나있는 모양새다. 덕분에 길 주변은 희귀 동식물의 낙원이 되었단다. 천연기념물 금강초롱을 비롯한 희귀식물과 산양·독수리·하늘다람쥐 등 야생동물이 서식하는 산림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되어 있다.
▼ 12 : 40. 걷기 여행자들에 대한 지자체의 배려도 돋보인다. 가파르지는 않지만 오르막길임은 분명하니 쉬엄쉬엄 가라는 듯 정자를 지어놓았다.
▼ 차량 한 대가 겨우 갈 수 있는 비포장 길은 구불구불 나있다. 구절양장 같은 이 길은 쉽게 속살을 드러내지 않는다. 누군가는 이 길을 일러 인제로 넘나들던 해안 주민들의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했다.
▼ 자연석으로 만든 도로 표지판이 눈길을 끈다. 상황이 바뀔 때 ‘천천히’라는 글씨나 화살표로 나타난다. 시쳇말로 ‘라때’는 표지판이 다 저랬는데...
▼ 13 : 00. 두 번째 정자. 준비해 온 간식이라도 먹으라는 듯 식탁까지 놓아두었다.
▼ ‘이 뭣꼬?’ 드럼통을 방호벽처럼 쌓아올렸다. 그것도 겹으로. 아무러면 어떤가. 삭막한 드럼통이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예쁜 들국화를 피워 올렸다.
▼ 13 : 02. 잠시 후 만난 사거리. 인제군과 양구군의 군계(郡界)란다. 좌우로 나뉘는 임도(평화누리길은 왼쪽 임도를 따른다) 외에도 맞은편 산자락을 치고 오르는 산길이 하나 더 나있다. 펀치볼둘레길의 ‘먼멧재길’이다.
▼ 이정표(양구·인제 경계/ 돌산령 11.0km)의 방향표시가 없는 지명이 이곳이 두 지자체의 경계임을 알려준다.
▼ 먼멧재길 이정표는 이곳을 ‘숲밥 쉼터’로 적고 있었다. 펀치볼의 자랑거리로 입소문을 탄 ‘숲밥’은 지역민이 재배하고, 정성껏 준비한 다양한 산채 음식 등을 탐방객이 있는 숲길까지 찾아가서 뷔페식으로 제공하는 서비스로, KBS ‘한국인의 밥상’에서 강원도의 맛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지역특산물인 시레기·인삼·머위·우산나물·두릅 등 10여 가지의 찬이 제공되는데, 탐방 일주일 전 신청하면 주민들이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시간에 맞춰 갖다 준다고 했다. 하나 더, 20인분 이상만 가능하기 때문에 개인 여행에서는 맛볼 수 없다는 것도 기억해두자.
▼ 평화누리길 12코스인 ‘펀치볼길’은 이곳 양구·인제 경계에서 끝을 맺는다. 이후부터 탐방로는 13코스인 ‘서화길’을 따른다.
▼ 13 : 20. 먼멧재(멧돼지가 많다는 데서 유래된 지명) 삼거리에 이른다. ‘DMZ평화의길’과 ‘접경권 평화누리길’의 안내판들이 이곳이 중요 기점임을 짐작케 해준다, 이정표도 평화누리길(원통 36km/ 군시설/ 양구 1km)과 백두대간트레일(양구 후리 3.5km/ 홍천 광원리 109.5km)에서 따로 세웠다.
▼ 대암산으로 가는 임도는 자바라 문을 쳐놓았다. 이정표는 그 쪽에 군사시설이 있음을 알려준다. 하지만 출입을 통제하던 초소는 군인들이 떠난 지 이미 오래다. 세월이 흐르다보니 요즘은 핵심 시설만 출입을 통제하고 있나보다.
▼ 평화누리길 12·13코스의 경계는 인제·양구 경계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안내판(13코스인 서화길)은 1km쯤 더 걸어야 하는 이곳 ‘먼멧재 삼거리’에 세워져 있었다. 이유가 뭘까?
▼ 이후부터는 숲길이 아닌 시멘트포장 임도가 이어진다. 길 중간 중간에 평화누리길 안내판 서있고 자전거도로 표시와 시그널도 보인다.
▼ 지자체도 그늘 하나 없는 딱딱한 시멘트길이 미안했던 모양이다. 중간에 파고라 쉼터를 만들어 놓았다.
▼ 경사가 제법 가파르다. 하지만 내리막이라서 조금도 부담이 없다. 그저 진행방향에 펼쳐지는 백두대간(설악산 구간) 능선을 볼거리삼아 걸으면 된다.
▼ 13 : 53. 다릿골시험장(국방기술품질원) 진입로가 갈려나가는 지점에도 자바라 문이 설치되어 있었다(8분 전쯤 사격장 입구에서도 자바라 문을 만났었다). 문 앞에는 라이더들을 위한 쉼터도 마련했다. 하지만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자전거를 둘러메고 옆으로 빠져나오는 수밖에 없겠다.
▼ 길가 빗돌은 ‘유비무환(有備無患)’을 새겼다. 박정희 대통령이 입에 달고 살다시피 했던 사자성어다. 뒷면은 초전필승(初戰必勝, ‘라때’는 초전박살이라 했던 것 같은데)을 넣어 군에서 만든 것이란 걸 입증시킨다.
▼ 도로를 폐쇄하겠다는 공고문. 도로를 내면서 사유지가 들어간 모양인데 보상이 안 됐나 보다. 라이더들을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 14 : 15. 인북천에 놓인 다리(후평교)를 건넌다.
▼ 인북천(麟北川, 인제의 북쪽에 있다는 뜻)은 가까이는 해안면(펀치볼), 멀리는 백두대간의 향로봉, 무산봉을 지난 도솔지맥 분기봉인 북한의 매자봉 1174m에서 내려온 물길이다. 이 물은 소양강과 한강을 거쳐 서해로 흘러든다.
▼ 14 : 17. 잠시 후 453번 지방도에 이르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초입에 ‘다릿골시험장’의 입구임을 알리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으니 참조한다. 그나저나 오늘은 3시간 40분을 걸었다. 앱이 13.31km를 찍고 있으니 무척 더디게 걸은 셈이다. 해안면소재지의 통일관련 시설물 등 볼거리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얘기일 것이다.
▼ 도로변의 표지판이 눈길을 끈다. 쉬운 길(지방도 이용)과 어려운 길(우리가 걸어온 길)로 나누고, 어려운 길을 선택했을 경우 3.78km쯤 도보로 이동해야 한다는 점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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