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친이 살아계실 때, 임종하기 3개월 전 갑작스런 저혈당 쇼크로 응급실에 입원을 했었다. 대학병원은 일단 환자가 들어오면 자료수집을 위해 실험의 대상이 되기때문에 자신들이 얻기 원하는 각종 테스트를 하게 된다.
평소에 당뇨가 있었다는 보호자의 말을 기준으로 신장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조영제를 투입하고 CT촬영을 하게 된다. 문제는 CT촬영을 위해 투여한 조영제의 부작용이다. 신장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는 것이다.
그들의 말로는 치료가 됐다고 하지만, 어떻든 이미 90을 앞둔 건강치 못한 노인에게는 치명적이다. 결국 모친은 3개월 후 별세하셨다.
진단은 매우 중요하다. 제아무리 의술이 발달했다 할지라도 아픈 환자의 증세만으로는 정확하게 족집게처럼 처방을 내리지 못한다. 그래서 이것 저것 여러가지 테스트를 할 수 밖에 없다.
신자가 이 세상을 살면서 여러가지 환란과 시험을 만나게 될 때 우리는 이 시련이 왜 발생했는지를 알아야 한다. 하지만 영력이 약한 우리는 정확한 진단을 내리지 못하고 우왕좌왕 하게 된다.
하나님은 나에게 물질이라는 주제로 시련을 주셨다. 아니, 정확히는 사탄은 나를 쓰러트리기 위해 하나님께 나를 참소했다. 사탄은 나에게 물질의 문을 굳게 닫으면 저놈은 쓰러질 것이라고 참소하였다.
물질로 시험을 했던 이유는 그만큼 헌금에 대한 기쁨을 누렸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결코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헌금한 적이 없다. 나를 살려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 내가 드릴 수 있는 최대한의 물질을 드렸다.
그러나 신학교에 입학하고 공부를 하면서 부터는 일체의 수입활동이 끊어졌다. 학교를 졸업하고 1년이 지난 후 개척을 시작할 때 수중에는 무일푼이었다. 결혼때 들어온 축의금이 전부였다. 아내는 겨우 전세보증금 100만원 뿐이었다. 아내에게도 축의금이 들러왔지만 이미 장인이 별세후이고 경제력없는 장모와 큰처남은 그 돈을 모두 써버렸다고 하였다.
겨우 있는돈 털어 월세보증금을 내고 상가를 임대해 개척을 시작했지만 헌금은 너무 적어서 월세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여기에 더해 집주인은 "속한 기일내에 전세로 전환해 달라"고 요구했다. 아마도 월세를 받기가 쉽지않겠다고 판단한 때문일것이다. 결국 10개월만에 보증금은 모두 월세로 공제 당하고 쫒겨났다.
다행히 하나님은 3주후 더 좋은 장소를 더 좋은 조건으로 인도해 주셔서 첫번 위기를 넘겼다. 교회가 성장하면서 더 넓은 장소가 필요했지만 도무지 채워지지 않는 재정문제로 이전을 못하다가 결국 교회는 도리어 점점 퇴보하는 단계가 되고 말았다. 새로운 주거지로 기존의 신자들이 이사를 하였고, 더 좋은 자녀교육 여건을 찾아 타도시로 떠나버렸다.
그러다가 18년만에 목회를 사임하고 20세때의 선교사헌신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선교지로 나가게 되었지만, 역시나 재정의 문제는 열리지 않았다.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컴퓨터 수리를 통한 생활비 조달과 아파트 매각 대금을 활용하였기 때문에 10년을 버텼다. 다행히 2012년도 한인교회 청빙을 받으면서 잠시 재정의 문이 열리나 했지만 역시 2년반을 넘기지 못하고 철수하고 말았다.
2017년 재계약을 해야 하는데, 돈이 없었다. 염치불구하고 한인교회를 목회하는 친구에게 요청해 절반을 지원받았다. 하지만 더 이상은 버틸 수 없어 17년도말 일시 철수를 하게 되었다.
중도귀국 후 내가 할 일은 망설임없이 취업을 해서 열심히 돈 버는 것 뿐이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30여년 이상을 자유롭게 살던 입장에서 타인의 지시를 받는 생활은 정말이지 적응이 어려웠다. 그럼에도 어떻든 5년을 일하며 약간의 저축도 할 수 있었다. 다행히 20년초 부터 코로나 발발로 봉쇄가 되면서 선교사의 국내거주는 이상하지 않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졌다.
얼마나 돈문제에 시급했으면 20년도에는 두개의 자격증 까지 취득했다. 물론 취득과정은 너무나 험난했다. 두가지 모두 3번의 응시끝에 합격을 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힘들게 취득한 자격증은 나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고 아까운 재정만 100만원이나 소모하고 말았다.
이제서야 이 모든 얽히고 설킨 실타래를 풀게 된다. 하나님은 오늘 새벽 잠에서 깬 나에게 "너는 욥이 왜 시련을 겪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하셨다. 그러면서 "욥의 시련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그것은 사탄의 참소 때문이다"라는, 지금까지는 전혀 생각도, 알지도 못했던 깨달음을 주셨다.
사탄의 참소를 당하는 욥은 자신에게 주어지는 모든 현상에 대하여 오로지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그야말로 "주만 바라볼지라"의 신앙으로 통과하였다. 사탄의 모든 참소에서 승리한 욥은 그 이전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의 축복을 받았다.
지금 내가 고난에 처해 있다면 그 고난이 어디로 부터 온 것인지에 대한 정확한 처방이 필요하다. 그저 상식을 의존해 이방법 저방법을 쓴다면 내 어머님께 투입하지 않아도 될 조영제를 투입해 신장을 망가트린 돌팔이 의사처럼 실수할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은 결코 아무도 시험하지 않으신다. 그럼에도 성도가 시련을 겪는 것은 사악한 사탄의 질투 때문이다. 사탄은 하나님께 신실한 성도를 참소해 하나님으로 부터 성도를 시험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아내고, 성도는 원치않는 시련과 싸우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사랑하는 성도의 시련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적절한 보상을 하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