툴툴거리며 떠난 로드트립에서 파나메라와 사랑에 빠진 에피소드에 귀를 기울여보라
이제 와서돌아가겠다고 하면 너무 늦은 걸까? 군산 선유도로 떠나는 로드트립을 캠핑 여행쯤으로 생각하고 넙죽 받아들인 게 후회됐다. 침대와 부엌 딸린 캠핑 트레일러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릴에 소시지와 고기 굽는 만찬은 당연히 없고, 노랫소리 낭만적인 캠프파이어도 그림의 떡이라니….
주어진 것이라곤 혈연단신 차 한 대가 전부였다. 말이 좋아 로드트립이지 장거리 드라이브쯤 되는 셈이었다. 고백하건대, 생고생이 눈앞에 닥친 느낌이었다. 시큰둥한 표정으로 군산을 향해 차를 몰았다. 일몰 때를 맞춰 아름다운 노을이나 보고 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이상하게 이번 여정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차올랐다. 아니, 마음에 들었다. 또 한바탕 바쁘게 매거진 마감을 치르기 전에 가지는 이 마지막 여유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순전히 차 때문이었다.
왕복 500km 여정을 함께할 이번 로드트립 파트너는 신형 포르쉐 파나메라 4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휠베이스를 150mm 늘인 파나메라 4 이그제큐티브 모델(넓은 뒷자리를 가졌다)이다. 화사한 베이지 인테리어와 넓은 실내 공간 덕에 이동식 궁전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잠시 쉬어 갈 때는 더없이 좋은 휴식 공간이 되어줄 터였다. 화창한 날씨와 만개한 벚꽃까지 이번 여정을 환영하는 듯했다. 왼쪽 뺨을 따갑게 할 정도로 내리쬐는 햇살은 전날 내린 비로 젖은 노면을 눈 깜짝할 새 바싹 말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어느 한적한 시골에 다다랐을 때는 눈앞에 드넓은 초원이 펼쳐졌다. 평온하게 흘러가는 그림 같은 풍경을 눈에 천천히 담았다. 마치 한 편의 뮤직비디오 같았다. 이 순간을 노래로 표현한다면 남진이 부른 <님과 함께>가 되지 않을까?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노래의 한 구절이 절로 생각나는 곳이었으니까.
기분 좋은 포르쉐 특유의 주행 감성은 여정을 지루할 틈 없게 만드는 감초였다. V6 2.9L 트윈터보 엔진과 8단 PDK를 물린 파나메라 4의 파워트레인은 비록 라인업에서 가장 밑이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다. 정확히 말하면 타협을 모르는 마지노선은 포르쉐 배지를 만끽하기에 충분했다.
2t이 넘는 무게(2035kg)를 시원하게 지우며 차체를 빠르게 튕겨냈다. 대형세단이 0→시속 100km 가속이 5.4초(스포츠 크로노 패키지 적용 시 5.2초)가 걸린다는 사실 자체가 포르쉐다운 발상 아닌가(놀라지 마시라. 터보 S는 3.1초 만에 끊는다).
옵션으로 들어간 리어 스티어링은 정말이지 대단했다. 강력한 힘과 더불어 횡이동 또한 스포츠카처럼 날카롭게 바꿔놨다. 포르쉐라서 가능한 대형세단의 화려한 칼춤이었다. 리어 스티어링은 저속에서 회전반경을 줄여주기 때문에 급격하게 휘어진 도로를 만나도 문제없었다.
헤어핀 코너 10개는 족히 겹쳐놓은 듯한 혹독한 산비탈을 넘어갈 때였다. 5200mm 에 달하는 긴 차체 길이가 무색할 정도로 아무렇지 않게 코너를 휙휙 돌아나가는 모습을 보고 솔직히 조금 설레었다. 대형세단이 이렇게 날카롭게 코너를 베어들어 갈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마치 커다란 카이맨을 모는 듯한 감각이었다.
포르쉐는 911을 중심으로 한 스포츠카 브랜드 이미지가 강한 탓에 편한 차라는 생각을 못 하기 쉽다. 나 역시도 장거리 운전은 힘들지도 모른다고 생각 했으니까. 물론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처럼 안락한 차는 분명 아니다. 하지만 파나메라는 브랜드를 대표하는 플래그십 세단인 만큼 스포티한 아이덴티티에도 불구하고 제법 편하게 만들었다.
특히 이그제큐티브 모델은 기본 장착한 어댑티브 에어서스펜션(댐핑 편의성을 높이는 PASM 포함) 덕에 승차감이 한층 부드럽다. 더 밑으로 내려가자 한동안 고속도로에 차가 코빼기도 안 보이는 기이한 현상이 계속됐다. 이 기회를 놓칠 내가 아니었다. 336마력, 45.9kg·m를 한 줌도 안 남기고 쏟아냈을 때 차가 어떻게 반응할지 보고 싶었다.
골이 흔들릴 정도는 아니지만, 준수한 가속 성능은 전혀 기대하지 않은 속도까지 너무나도 쉽게 도달했다(최고시속 267km까지 속도를 올릴 자신은 없었다). 고속 주행에서 ‘안전’을 운운하는 게 어딘가 좀 이상하지만, 체감 속도가 실제 속도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경험했다.
어쩌면 이 차로 스포츠 주행을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냐고 따지는 이가 있을 것이다. 상관없다. 언제든 그렇게 달릴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 편한 뒷자리에 타는 용도로 사용하다가도 원할 때면 언제든지 스포츠카로 변신하는 능력은 아무 차에서나 맛볼 수 있는 게 아니다. 만약 이 차를 한 대 산다면, 부디 럭셔리와 스포츠를 넘나드는 탁월한 역량을 썩히지 말기를 바란다.
하늘이 빨갛게 무르익고 있을 군산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도착하면 비명을 지를 만큼 아름다운 노을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을 것이다. 어느새 저만치 내려온 해도 일몰 때에 늦지 않기 위해 천천히 고도를 낮추고 있었다. 파나메라와 함께 한 여정은 참으로 행복했다. 고되더라도 여기까지 오길 잘했다.
파나메라 4 이그제큐티브는 정말이지 훔쳐서라도 갖고 싶어지는 차다. 활활 타는 노을이 아우라가 되어 차를 열정적으로 빛낼 때 생각에 잠겼다. 포르쉐는 정말이지 차를 특별하게 보이게 할 줄 안다. 그리고 그 차는 진정 운전자를 특별하게 만들 줄 안다. 포르쉐 파나메라와 함께라면 굳이 석양을 찾아다닐 필요는 없다. 파나메라가 가는 곳 어디든 붉게 타오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