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짓는 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이 말씀은 단순히 욕설을 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바보!”라고 번역된 성경 원문의 그리스어 “리카”는 단순한 욕설이 아니라 “텅 빈 사람”, “가치 없는 인간”이라는 뜻인데,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존재를 깎아내리는 멸시의
말로 받아들여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니까 오늘 복음말씀에 나오는 “바보”라는 말은 누군가의 지적 장애를
비난하는 언어가 아니라, 존재 자체를 모욕하고 멸시하며 하찮게 취급하는 모욕적인 언어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을 한 사람을 ‘최고 의회’에 넘겨진다고 하신 것을 보면 그렇게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 인간을 하느님의 모상으로 보지 않고 무시하고 깔아뭉개는 태도가 얼마나 중대한 죄인지 강조하십니다.
다음으로 “멍청이!”라고 번역된 성경 원문의 그리스어 “모레”는 ‘어리석은’ 또는 ‘우둔한’을 뜻하는 말이긴 하지만, 문맥상 도덕적 ․ 영적 어리석음을 비난할 때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 나오는 “멍청이”라는 말은 상대를 향해 “하느님 보시기에 가치 없는 죄인” 으로 단정 짓는 듯한 언어였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였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이는 “불붙는 지옥”에 던져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육체적 폭력만이 아니라, 무심코 뱉은 한마디로 누군가의 마음을, 자존심을, 삶의 의미를 짓밟은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하느님의 눈에는 살인이 칼뿐 아니라, 멸시의 단어로도 일어날 수 있음을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우리의 악한 말로 형제의 명예를 훼손하고, 그의 영혼에 상처를 입히며, 궁극적으로는 그를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존엄성에서 끌어내리려고 한다면 큰 죄를 짓는 것입니다.
신약성경 야고보서에는 말이 짓는 죄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혀는 쉴 사이 없이 움직이는 악한 것으로, 사람을 죽이는 독이 가득합니다.”(야고 3,8)
오늘 예수님 말씀과 야고보서의 이 말씀을 종합해보면, 외적인 살인 행위가 아니더라도, 특정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이미 살인과 같은 죄를 지을 수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입술이 하느님의 자녀에게 상처를 주는
무기가 아니라 평화와 치유의 도구가 될 수 있기를 주님께 은총을 청하도록 합시다.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하느님의 말씀을 닮아 내 주위 사람들에게 위로와 힘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글 : 金常均 Anthony 神父 | 釜山敎區
나의 노래, 나의 소명
작년은 제가 데뷔한 지, 40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40년이라니! 어쩜 시간은 이렇게 빠를까요? 40주년을 맞이해 참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신곡도 발표했고, 전국 곳곳을 다니며 기념 콘서트도 진행했습니다. 더불어 저의 가수 인생도 다시 돌아보았습니다. ‘약사가 체질에 맞지 않아서 도망가는 심정으로 시작한 노래였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비 내리는 영동교〉, 〈신사동 그 사람〉, 〈짝사랑〉, 〈잠깐만〉, 〈또 만났네요〉 등…. 훌륭한 작곡가님, 작사가님을 만나 좋은 노래를 부를 수 있었던 것 하며, 무명 기간이나 원하지 않는 공백 기간 없이 꾸준히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 모두 큰 행운이었습니다.
이 모든 행운은 저의 재능 때문만이 아니었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모두 하느님의 은총이고 돌보심 덕분이었습니다.
‘내가 무엇이기에 이렇게 생각해 주시고 어여삐 여기시는 걸까?’ 곰곰이 생각하는데 문득, 예전의 기억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1987년, KBS 〈가요무대〉라는 프로그램에서 리비아로 촬영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이곳에는
사막에서 물을 끌어 올려 옥토화하는 ‘세계 8번째 불가사의’라고 불리는 ‘리비아 대수로’ 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이곳에는 수많은 우리나라 근로자가 파견 나가 있었는데 이번 촬영은 바로 그분들을 위한 위문 공연을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상황이 열악했던지라 뜨거운 사막 한가운데에 무대를 설치해야 했고, 근로자분들은 의자도 없이 맨바닥에 앉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공연 내내 얼마나
크게 손뼉을 치고 즐겁게 노래를 부르시는지요. 때론 울고 또 때론 웃으며 오랜 시간 지친 기색 하나 없이 즐겨주셨습니다. 그날, 공연을 마치고 오면서 먼 타국에서 가족과 떨어져 땀 흘리며 일하는 분들에게 잠시나마 외로움과 고단함을 잊을 수 있게
해드렸다는 게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릅니다. 노래가 큰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달으며 제가 가수가 된 이유와 앞으로
가수로서 어떤 마음으로 노래를 불러야 하는지를 되새겼던 경험이었습니다.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자, 주님께서 제게 주신 은총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저를 가수로 이끌어 주신 것은
제가 당신이 주신 탈렌트로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길 바라시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당신께서 주신 목소리로 이웃을 위로하고
보듬으라고 말이지요. 그게 바로 가수로서의 제 소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언제까지 노래를 부를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주님께서 주신 소명을 깊이 간직한 채, 매 순간순간 정성을 다해 노래하려고 합니다. 그럴 수 있도록 저를 이끌어 주신 하느님과 제가 계속해서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저와 저의 노래를 사랑해 주신 모든 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글·구성 서희정 마리아 作家
글 : 周炫美 小花 Teresa | 歌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