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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록 실중어요(室中語要) 59. 그대는 어쩌면 그렇게도 쇠말뚝 같으냐.
[운문선사께서 한 때 와관스님이 덕산스님의 선문답을 거론하십니다]
[와관(瓦官)스님이 덕산스님을 참례하고서는 시자가 되었다.]
와관스님에 대한 기록은 별로 없어 그냥 한 납승이라고 밖에는 소개를 못하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덕산스님은 너무나 유명한 덕산 방으로 유명하니 잠깐 소개하고자 합니다.
덕산스님
중국 선종사(禪宗史)에서 보면 임제종을 창설한 임제스님과, 운문종, 법안종의 종조(宗祖)되는 덕산(德山)스님, 이 두 분 스님을 조사들 가운데 영웅이라고 하여 칭송하고 있습니다.
덕산스님은 처음 서촉(西蜀)에 있으면서 교리 연구가 깊었으며 특히 금강경에 능통하여 세상에서, 스님의 속성이 주(周) 씨이므로, 주금강(周金剛)이라고 칭송을 받았습니다. 스님은 그 무렵 남방에서 교학을 무시하고 오직 '견성성불(見性成佛)'을 주장하는 선종의 무리가 있다는 말을 듣고 분개하여 평생에 심혈을 기울여 연구한 금강경소초를 짊어지고 떠났습니다. 가다가 점심(點心)때가 되어서 배가 고픈데 마침 길가에 한 노파가 떡을 팔고 있었습니다.
"점심을 먹으려고 하니 그 떡을 좀 주시오."하니, 그 노파가 "내 묻는 말에 대답하시면 떡을 드리지만 그렇지 못하면 떡을 드리지 않겠습니다."고 하여 덕산스님이 "그러자"고 하였습니다. 노파가 물었습니다.
"지금 스님의 걸망 속에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금강경소초가 들어 있소."
"그러면 금강경에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고 하는 말씀이 있는데 스님은 지금 어느 마음에 점을 찍으려고 하십니까?"
'점심(點心) 먹겠다'고 하는 말을 빌어 이렇게 교묘하게 질문한것입니다. 이 돌연한 질문에 덕산스님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자기가 지금까지 그렇게도 금강경을 거꾸로 외고 모로 외고 모르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 떡장수 노파의 한마디에 모든 것이 다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래서 노파에게 물었습니다.
"이 근방에 큰 스님이 어디 계십니까?"
"이리로 가면 용담원(龍潭院)에 숭신(崇信) 선사가 계십니다."
점심도 먹지 못하고 곧 용담으로 숭신 선사를 찾아 갔습니다.
"오래 전부터 용담(龍潭)이라는 말을 들었더니 지금 와서 보니 용(龍)도 없고 못(潭)도 없구만요."
"참으로 자네가 용담에 왔구만."
주금강은 또 할 말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때부터 용담스님 밑에서 공부를 하였는데, 하루는 밤이 깊도록 용담스님 방에서 공부한 뒤에 자기 방으로 돌아가려고 방문을 나섰다가 밖이 너무 어두워 방안으로 다시 들어 갔습니다. 그래서 용담스님이 초에 불을 켜서 주는데 덕산스님이 받으려고 하자마자 곧 용담스님이 촛불을 확 불어 꺼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 때 덕산스님은 활연히 깨쳤습니다. 그러고는 용담스님께 절을 올리니 용담스님이 물었습니다.
"너는 어째서 나에게 절을 하느냐?"
"이제부터는 다시 천하 노화상들의 말을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그 다음날 덕산스님이 [금강경소초]를 법당 앞에서 불살라 버리며 말하였습니다.
모든 현변(玄辯)을 다하여도 마치 터럭 하나를 허공에 둔 것 같고,
세상의 추기(樞機)를 다한다 하여도 한 방울 물을 큰 바다에 던진 것과 같다.
모든 변론과 언설이 하도 뛰어나서 온 천하의 사람이 당할수 없다고해도, 깨달은 경지에서 볼 때는 큰 허공 가운데 있는 조그만 터럭과 같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실제로 깨친 것은 저 허공과 같이 광대무변한 것으로, 이 대도라는 것에 비하면 세상의 모든 수단을 다하는 재주가 있다 하여도 그것은 큰 골짜기에 작은 물방울 하나 던지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지식이 장한 줄 알았다가 바로 깨쳐 놓고 보니 자기야말로 진짜 마군이의 제자가 되어 있었더라는 것입니다.
덕산스님은 이렇게 깨치고 나서, 사람을 가르치는 데 누구든 어른거리면 무조건 몽둥이로 때렸습니다. 부처님이 와도 때리고 조사가 와도 때리고 도둑이 와도 때리는 미친 사람이 되었습니다. 또한 한 주일마다 온 절안을 뒤져서 무슨 책이든 눈에 뛰기만 하면 모두 불에 넣어 버렸습니다. 이 덕산스님의 몽둥이 밑에서 무수한 도인이 나왔습니다. 천하에 유명한 설봉스님, 암두스님이 나왔으며, 운문스님의 운문종과 법안스님의 법안종이 또한 이 몽둥이 밑에서 나왔습니다. 이렇듯 자기개발이란 오직 마음을 닦아서 삼매를 성취해야 하는 것이지 언어 문자에 있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여기서 납승이 한 마디 붙인다면 촛불을 껏을 때 덕산스님이 무엇을 깨달은 것입니까?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를 깨달은 것입니다. 돌~~~~~~!!!!!!!
밝으면 밝은 그대로를 알아차리고 어두우면 어두운 그대로를 알아차리는 이것이 나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이고 마음이라고 부르는 이것이 바로 부처이며 깨달음이였든 것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와관스님과의 선문답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루는 함께 산에 들어가 나무를 찍는데 덕산스님이 물 한 발우를 떠다 주어 와관스님이 마시자 덕산스님이 말씀하셨다.
"알겠느냐?"물으니 와관스님은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덕산스님이 알겠느냐?라고 물었는데 이 알겠느냐?는 무엇을 물은 것입니까? 물을 떠다주어 받아 마셧으면 쉬원합니다라 든지 아니면 물맛이 별로입니다 아니면 고맙습니다.라고 하여 자기의 마음으로 회광반조(廻光返照)하여야 선문답이 되는되 이른 사람하고는 와관스님은 “모르겠습니다”라고 합니다.
이것은 지금 여기 있는 그대인 현상을 부정해 버리는 말입니다.
그러니 이른 맹추같은 놈을 보았나 스승이 일하다 더울 것 같아 물을 떠다 주었는데 이 현재를 부정해 버리니 덕산스님은 몽둥이가 있었어면 바로 후려 쳤을 것이지만, 와관스님이 스스로 깨닫도록 다시 이렇게 한 번 더 의문이 생기도로 합니다.
[덕산스님이 다시 물 한 발우를 주자 와관스님이 받아 마시니 덕산스님이 말씀하셨다.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라고 전자와 똑같이 형상을 부정해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맞다 않맞다의 물제가아닙니다. 와관스님은 사구백비로 답한 것입니다. 모른다는 것은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고 모든 것은 찰라간에 사라지는 형상에 무슨 의미와 뜻을 붙이겠습니까?
즉 덕산스님의 선기방편에 넘어가지 않고 일으나는 그대로를 다 부정해 버린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덕산스님은 그러나 현상은 찰나간에 사지지지만 찰나에 일으난 있는 그대로는 진실여상(眞實如常)한 실상인데 여기에 무위행(無爲行)을 대답하는 것은 유정(有情)을 무시한 무정(無情)물인 바위나 철이나 고정불변하는 무정물(無情物)일 것이니 여기에 살아 움직이는 마음을 절대부정으로 취부하는 그대는 그렇게 무조건 부정만 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차리게 하려고 덕산스님은 다시 한 마디 이렇게 말후구를 던집니다.
["저 모른다 한 것을 어째서 탈바꿈하지 않느냐?"]라고 하시는 것은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이 개시불법(皆是佛法)이라는 중도정견(中道正見)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뜻으로 일승적으로 일침을 가합니다.
그런데도 와관스님은 이렇게 답을 하십니다.
["모르겠습니다. 다시 무엇을 바꾸겠습니까?"]라고 반문하십니다.
무든 것은 진리의 실상은 모르는 것이 맞습니다. 알겠다 하면 바로 깨달음을 얻은 것도 범부가 되는 소리를 아는 와관스님은 “다시 무엇을 바꾸겠습니까?” 즉 본래 무일물인데 무엇있어 바구겠습니까라고 반문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이른 무정물같은 사람아 넌 살아 움직이는 활 발발한 마음의 창을 닫아버리는가 하는 말로 이렿게
한 마디의 충언을 하십니다
["그대는 어쩌면 그렇게도 쇠말뚝 같으냐."]라고 하시면서 그래 알았다 무위진인 흉내를 하지만 무위법이 유위법이고 유위법이 무위법인 중도실상(中道實相)은 아직 깨닫지를 못했구나 하시면서 대화를 마무리 하고 말아 버리시고 나무하든 일이나 마무리 하여 지게에 지고 내려 왔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선문답이 끝이 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마 덕산스님은 자기의 좌장이었든 설봉선사와 이 선문답에 대하여 서로 이야기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것이 선사들이 한 행동이나 선문답은 많은 제자들에게 그 선문답의 견처를 어떻게 보느냐는 대자비심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설봉스님이 이렇게 한 생각 일으켰을 것입니다.
와관스님의 이 쇠말뚝같은 도반을 아무래도 한번 선문답을 해 보아야겠다고 마음을 크게 일어킨 것 같습니다.
[와관스님이 절에 머문 뒤 설봉스님이 찾아가 차를 마시며 이야기하다가 설봉스님이 말씀하셨다.] 이 대목에서 왜 설봉스님은 와관스님을 찾아 갔을까요? 그 당시에만 해도 설봉스님은 선원을 차려 독립하여 수많은 제자들을 지도하고 있었는데 역부로 와관스님을 찾아간 것은 스승이신 덕산스님의 제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와 닿았음으로 그 때 선문답을 자기가 한 번 탁마를 해 보려고 찾아 갔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와관스님을 찾아가 사형사제간이니 차를 들면서 넌저시 이렇게 물어 보는 것입니다.
["당시 덕산스님 회상에 있으면서 나무를 찍던 일은 어떠하였소?"]라고 설봉스님이 와관스님에게 묻습니다.그런데 그 당시의 선문답을 알고있으니 와관스님은 이렇게 답을 하십니다.
["선사(先師)께선 당시에 나를 인정하였다오."]라고 하십니다.
즉 그 때 그 선문답에서 덕산선사께서 자기의 견처를 보고 자기를 인정하였다는 것은 깨달음을 인증하였다는 말이니 설봉스님은 아무래도 인증한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와관스님은 어찌하여 이렇게 인증을 하신 것으로 말을 할까? 하여 무슨 그 선문답의 깊은 현지는 어디에 있었으며 이것을 “모른다”는 대답으로 인증을 받았다 아무래도 설봉선사 입장에서는 인증한 것이 아니라는 입장으로 이렇게 다시 말을 하십니다.
["스님은 선사를 너무 빨리 떠나왔소."]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그 선문답에서 와관스님은 스스로 인증을 받았다고 하지만 아직 확철대오한 것은 아니라는 뜻으로 이렇게 좀 더 동산스님 곁에서 선사의 무파비를 얻었어야 하는데 그 단편적인 한 마디로 마음수행을 다 했다는 것은 당신의 편견이요 한 쪽은 보았으나 상대성인 반대편은 보지 못했다는 뜻으로 이렇게 말씀을 하시고는 설봉선사는 이렇게 한 방편을 베풀게 됩니다.
[그 때 앞에 물 한 발우가 있었는데 설봉스님이 물을 가져오라고 하여 와관스님이 바로 설봉스님에게 건네주었더니, 설봉스님은 받자마자 물을 확 뿌렸다.]
ㅎㅎㅎㅎㅎ 왜 이런짓을 하였을까요? 설봉선사야 말로 천하를 호령하던 선사인데 왜 시켜놓고 가져다 주니 바로 그 물을 와관스님에게 뿌려버렸을까요. 당연히 위에서 덕산스님과 와관스님의 선문답에서 와관스님이 직접 인증받았다는 깨달음은 깨달음이 아니라는 뜻으로 동산스님이 선기방편인 봉을 대신하여 물를 뿌려서 직지인심(直旨人心)이라 그대 스스로 내가 하고 있는 행위에 대하여 내 마음의 뜻은 전달 받아야만 되는 것인데 바로 직접적으로 차가운 물기운으로 다시 한 번 직관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스스로 깨달아 보아라는 선기방편인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한 마음을 깨달는지는 주석이 없어 모르겠으나 아마도 그 때 한 마음 회광반조하는 기회일 것이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이 가지만 그에대하여 운문선사는 이 이야기를 들려 주시고는 이렇게 향상일구를 던집니다.
[스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대신 말씀하셨다.
"양민을 짓눌러 천민을 만들지 마십시오."]라고 하신 운문선사의 깊은 현지는 어디에 있을까요?
동산스님과 와관스님 설봉스님은 운문선사의 할아버지인 대 선사들이였습니다. 설봉선사 밑에서 태어난 제자가 바로 법안선사와 운문선인 두 제자는 법안종과 운문종을 창설하신 대 선지식입니다.
그런데 설봉선사의 뒤를 이었지만 운문종을 세워 진리를 깨닫는 선기방편은 달랐든 것입니다. 법안종을 세운 법안선사나 운문종을 세운 운문선사는 그 선기방편이 달랐으니 그냥 덕산스님을 종조로 하지 않고 새로운 기풍을 떨친 것은 그렇게 덕산의 방으로는 다 통하지 않는 다는 것으로 선기방편을 세운 스님인 것입니다.
그러니 설봉스님이 아무리 뛰어난 선기방편이 있지만 와관스님에게 한 직설법은 운문선사의 방편이 아님을 밝히는 대목인 것입니다.
"양민을 짓눌러 천민을 만들지 마십시오."]라고 하신 깊은 현지는 여기서 양민이라고 한 것은 일반 백성인 양민을 칭한 것이니 평상심이 도라는 마조 도일스님의 평상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설봉스님의 마음이나 동산스님의 마음이나 와관스님의 마음이나 다 동일하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며 깨달음을 얻는 마음이 별도로 있고 평상심이 다른 것이냐? 아니라는 뜻입니다. 마조 스님은 마음은 누구의 마음이나 지금 여기 시시각각 소소영영(昭昭靈靈) 지각(知覺)하는 이것은 동일하다는 것을 말씀하셨으며 오직 물들지만 않는다면 오래된 고경(古鏡)같이 언제나 맑고 깨끗하여 항상 비추어 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동산스님이나 설봉스님이나 와관스님에게 마음을 인증하지 않는 것은 마치 손 위사람이 양민을 짓눌러 자기의 뜻이 맞고 그대의 마음 씀은 잘못되였다고 있는 것은 마치 와관스님이 천민인 것처럼 선기방편을 베푸는 것은 옳지 않다고 비판해 버리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는 마음을 부정해도 아니요 마음을 긍정해도 않되며 오직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마음인 평산심이 도임을 밝히는 대록인 것입니다. 돌~~~~!!!!!!!!
성불인연 맺으소서 옴 바아라 믹~~~~~~!!!!!!!!!
조사선(祖師禪) 운문록(雲門錄)을 들어시어
인연성불(因緣成佛) 하시어서 붓다(佛陀) 같이 살아가소!
일승법문을 시절인연삼아 인연성불 하옵시고 대원성취 하옵소서 !
원오선원 명상쉼터 천안시 두정동 611_1번지 5층(041)551 8546
무명 납승 원오선사 010 8748 6006 옴~바아라 믹!!!_()_
탁발성원 보시구좌 농협 351 1042 1598 93 대한불교 정토회

첫댓글 조사선(祖師禪) 운문록을 통하여 한국불교 1300년의 선사중에서 선어록의 해설서를 쓰신분은 처음입니다. 조사선(祖師禪)의 보설을 통하여 인연성불 하시어서 본불본락 하옵소서 옴~바아라 믹!!!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