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25일(금)
* 시작 기도
(갈 1:11-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주님...
바울이 갈라디아교회에게 전한 복음은 사람들에게 받은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인한 계시복음입니다.
그 후에 예수님의 제자들 곧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의 내용을 보니 그 내용이 자기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계시복음과 같았습니다.
하여 그는 자신이 직접 받은 계시복음이 아니라 사도들이 전한 복음 곧 전승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고전 15:1-4).
왜냐하면 자기가 직접 받은 계시복음은 객관성이 없으며 가는 곳마다 사도권에 대한 도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도들로부터 전해 받은 전승복음은 그 누구도 토를 달지 못하는 복음으로써 객관적인 복음입니다.
오늘도 이 복음을 전하기 원하여 나 자신이 먼저 말씀 앞에 엎드립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이 하루도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기 원합니다.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은혜를 부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대상 15:1-15
제목 : 여호와의 궤를 그 마련한 곳으로 메어 올리고자 하여
1 다윗이 다윗 성에서 자기를 위하여 궁전을 세우고 또 하나님의 궤를 둘 곳을 마련하고 그것을 위하여 장막을 치고
2 다윗이 이르되 레위 사람 외에는 하나님의 궤를 멜 수 없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택하사 여호와의 궤를 메고 영원히 그를 섬기게 하셨음이라 하고
3 다윗이 이스라엘 온 무리를 예루살렘으로 모으고 여호와의 궤를 그 마련한 곳으로 메어 올리고자 하여
4 다윗이 아론 자손과 레위 사람을 모으니
5 그핫 자손 중에 지도자 우리엘과 그의 형제가 120명이요
6 므라리 자손 중에 지도자 아사야와 그의 형제가 220명이요
7 게르솜 자손 중에 지도자 요엘과 그의 형제가 130명이요
8 엘리사반 자손 중에 지도자 스마야와 그의 형제가 200명이요
9 헤브론 자손 중에 지도자 엘리엘과 그의 형제가 80명이요
10 웃시엘 자손 중에 지도자 암미나담과 그의 형제가 112명이라.
11 다윗이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을 부르고 또 레위 사람 우리엘과 아사야와 요엘과 스마야와 엘리엘과 암미나답을 불러
12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의 지도자이니 너희와 너희 형제는 몸을 성결하게 하고 내가 마련한 곳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올리라.
13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그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라 하니
14 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고 올라가려 하여 몸을 성결하게 하고
15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명령한 대로 레위 자손이 채에 하나님의 궤를 꿰어 어깨에 메니라.
* 나의 묵상
하나님의 궤를 옮기다 그것을 만진 웃사가 죽임을 당했다.
다윗은 언약궤 옮기기를 중단하였다.
그리고 그 언약궤는 오벧에돔의 집에 머물렀다.
그 후 석 달이 지나 다윗은 다시 언약궤를 옮겨오려고 한다.
삼하 6:12절에서는 다윗이 언약궤로 말미암아 오벧에돔의 집이 복을 받았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역대기 15장에서는 그런 동기가 없이 다만 다윗이 언약궤를 옮기는 일을 준비하고 정한 규례대로 했음이 강조된다.
예루살렘으로 언약궤를 옮기려 했던 두 번째 시도는 석 달의 간격을 두고 있다(대상 13:14).
그런데 대상 15:1절에서는 그 사이 다윗이 궁을 건축하고 하나님의 궤를 둘 장소를 마련한 것으로 보도된다.
이것은 석 달을 훨씬 넘는 기간을 전제로 하는데, 주목할 것은 법궤를 운반하고 맞이하는데 그만큼 준비했음을 강조한 것이다.
다윗은 언약궤를 옮기는 일의 첫 번째 시도가 실패한 원인을 깨달았다.
곧 언약궤는 ‘새 수레’가 아니라, 레위 사람이 메고 옮겨야 함을 다시 한 번 깨달은 것이다(2절).
여호와께서 택하신 레위인들이 궤를 메고 영원히 그를 섬기도록 정한 사실을 알았다(민 4:15; 신 10:8).
(신 10:8) 그 때에 여호와께서 레위 지파를 구별하여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게 하며 여호와 앞에 서서 그를 섬기며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게 하셨으니 그 일은 오늘까지 이르느니라.
다윗은 여호와의 궤를 안치할 곳을 마련하고 온 이스라엘을 예루살렘으로 소집하였다(3절).
또한, 그는 아론의 아들들과 레위인들을 불렀다.
레위의 직계후손으로서 그핫 자손의 지도자 우리엘과 그의 형제 120명, 므라리 자손의 지도자 아사야와 그의 형제 220명, 게르솜 자손의 지도자 요엘과 그의 형제 130명이다.
또 그핫 가문의 방계자손으로서 엘리사반 자손의 지도자 스마야와 그의 형제 200명, 헤브론 자손의 지도자 엘리엘과 그의 형제 80명, 웃시엘 자손의 지도자 암미나답과 그의 형제 112명이다.
엘리사반은 그핫의 손자이며(출 6:22; 레 10:4), 헤브론과 웃시엘은 그핫의 아들이다.
이들은 모두 862명이다.
다윗은 제사장 사독과 레위인의 지도자들을 불러 몸을 성결케 하고 궤를 메도록 지시한다(11절).
이전에 그들이 법궤를 메지 않았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그들을 찢으셨다.
그것은 그들이 법궤 옮기는 규례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13절).
이에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여호와의 궤를 메고 오기 위해 몸을 성결하게 하였다(14절).
곧 모세에게서 받은 여호와의 말씀대로 레위인들은 채를 꿰어 하나님의 궤를 어깨에 메었다(15절).
사무엘하에서는 두 번째로 언약궤를 옮기는 말씀을 간략히 다룬다(삼하 6:12-14).
거기에는 첫 번째 운반의 실패에 대한 언급이나 레위인이 궤를 메었다는 말씀이 나오지 않는다.
언약궤를 운반하는 레위인의 명단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역대기에서는 이에 대한 자세한 진술이 나온다.
첫 번째 운반의 실패는 규례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두 번째 운반은 규례대로 레위인이 메어서 옮긴다.
하나님의 궤는 하나님 현존의 표상이다.
구약에서는 선택받은 제사장과 레위인이 그 앞에 설 수 있다.
신약시대 모든 성도는 하나님의 현존 앞에 설 수 있는 제사장이다.
평범한 제사장이 아니라 왕 같은 제사장이다(벧전 2:9).
그는 하나님의 현존 앞에 설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자이다.
그리고 이 일은 규례대로 자신을 정결케 함으로 가능한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제사장으로서 완전한 제물을 드리셨다.
곧 자기 몸을 제물로 드리심으로써 그를 믿는 자를 거룩하게 하셨다.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다.
(히 10:10)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히 10:14)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룩함을 입은 자들은 그의 피를 힘입어 하늘 성소로 들어간다(히 10:19).
이것은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현존 앞에 머무는 것이다.
(히 10: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악한 시대, 사망의 권세가 활동하는 때에 생명으로 사는 길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뿐이다.
이는 새로운 산 길이며, 예수께서 죽으심으로써(육체를 찢기심으로써) 열어놓으신 길이다.
신자라도 아침에 눈을 뜨면 악한 날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환난과 곤고함이 불청객으로 찾아오나, 예수의 피를 힘입어 하나님의 현존 앞에 나아갈 때 사는 길이 열린다.
인자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힘입어 나아가는 그 길에서 기다리신다.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가 되어 아들을 힘입어 그에게 나아가는 자를 기다리신다.
탕자를 위해 아버지가 잔치를 베풀었듯이, 그에게 나아가는 하늘나라의 잔치를 누린다.
추석 연휴 둘째 날이다.
물론 베트남은 추석을 명절로 쇠지 않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출근을 하고 일상생활을 그대로 유지한다.
나는 오늘 하노이에서 선교사들 모임이 있어서 하노이에 체류 중이다.
어제 이곳에 와서 하노이에서 사역하는 조윤호 선교사와 교제를 하고 지금은 호텔에서 말씀을 묵상하고 있다.
별일이 없고 순적한 날이다.
하지만 내 안에는 환난과 곤고가 가득하다.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육신의 생각이 마음을 죽이고 몸을 굳어지게 만든다.
주를 위해 할 일이 많다는 생각에 나의 마음을 분주하게 하고 곤고함에 이르게 한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현존 앞에 설 수 있을까?
신약시대, 하나님이 정하신 규례는 오직 아들의 피를 힘입어 아버지께 나아가는 것뿐인데 말이다.
온갖 상념으로 인해 상하고 찢긴 마음 그대로 자백하며 보혈을 의지한다.
내 속에 나를 주장하는 죄악들, 끊임없이 솟구치는 부정성을 보혈로 씻는다.
그 피를 힘입어 하나님의 현존 앞에 선다.
탕자를 맞이하는 아버지의 사랑이 구속의 은총으로 인해 내게 부어진다.
나도 용납할 수 없는 나를 용납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이 내게 부어진다.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죽음이 나를 위협하나 하나님의 현존 앞에 서 있다.
그에게서 오는 사랑,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랑으로 넉넉히 이긴다.
만물 안의 그 무엇도 아들 안에 있는 아버지의 사랑에서 나를 끊지 못한다.
그 사랑으로 인해 오늘도 넉넉히 이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내게는 선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자가 바리새인처럼 선한 공로로 당신 앞에 서고자 했습니다.
나는 아버지의 유산을 받아 허랑방탕한 괴악한 자이며 돌에 맞아 죽어도 싼 자였습니다.
그런 자인데 나를 당신의 품으로 품어 주셨습니다.
나는 이 시간 아버지의 그 사랑과 은혜에 목이 매여 눈물을 흘립니다.
이 눈물은 가식이 아니길 원합니다.
주님 안에서 반짝반짝 영롱하게 빛나는 영적 다이아몬드이길 원합니다.
때로는 주의 일로 인하여 육신의 생각이 나를 사로잡아갑니다.
염려와 무력감이 나를 사방에서 욱여싸기도 합니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 모습 이대로 주님께 나아가오니 나를 불쌍히 여기사 받아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