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o라는 말은 존경 예경 인사라는 뜻입니다. 파리어도 그렇고 산스크리트어도 그렇습니다. 주로 성인이나 현자에 붙여 존귀를 표합니다.
나모석가모니불이라고 하면 석가모니불께 인사드립니다. 아니면 예경을 드립니다가 됩니다. 이때 나모의 뜻은 간단명료합니다.
그런데 왜 한역 역경사들이 이 나모를 하고 많은 말 다 놔두고 한자에도 없던 귀의라는 단어를 새롭게 만들어 의역하였을까요.
귀의의 사전적 풀이는 돌아가 의지한다는 뜻입니다. 귀의 석가모니불 같으면 석가모니불께 돌아가 의지한다가 됩니다. 나모와 완전히 다른 뜻이지요.
나모는 소승불교에서 쓰고 귀의는 대승불교에서 쓰는 용어입니다. 소승불교는 부처님을 단순히 위대한 선각자, 또는 위대한 스승으로 여깁니다. 그러면 이 나모가 맞습니다.
그런데 대승불교로 넘어오면서 부처님은 구세주라는 신앙으로 바뀝니다. 그러니까 나모의 뜻으로는 너무 약하지요. 그래서 귀의라는 말이 나모를 모태로 새롭게 태어난 것입니다.
法海를 번역하면 무엇이 됩니까. 법 바다입니까? 띨딸한 사람들이 그렇게 번역합니다. 법해라고 쓰고 무량한 세계로 해석하지요. 이와 같습니다.
귀의는 돌아가 의지한다는 뜻이라고 사전은 말합니다. 그렇다면 어디로 돌아간다는 말입니까. 의지한다는 말은 알겠는데 돌아간다는 말은 좀 어렵습니다.
귀의불이라는 염불 들어 봤지요. 부처님께 돌아가 의지한다. 이게 뜻이 됩니까? 석가모니불 같으면 석가모니불께 돌아가 의지한다 이게 말이 됩니까?
귀의를 다르게 풀이해 봅시다. 목적을 바꾸는 것입니다. 돌아가 의지한다는 말은 의지한다가 목적이 됩니다. 그런데 이것을 돌아가기 위해 의지한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러니까 귀의불 같으면 부처님께 돌아가 의지한다 가 아니라 돌아가기 위해 부처님께 의지한다 가 됩니다. 그럼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돌아가는 곳이 어디냐는 것이지요.
그곳은 마음의 근원입니다. 그것을 기신론에서는 귀명이라고 했어요. 목숨의 근원 즉, 마음의 근원으로 돌아가기 위해 석가모니부처님의 말씀에 의지한다. 정확히 이런 뜻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의 근원은 어디일까요. 거기에 가려면 적어도 여기서 3대겁아승기야 플러스알파의 시간이 걸립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선종에서는 달팽이걸음 같은 수행을 하고 있으면서 일초직입여래지라 큰소리칩니다.
우리는 극락세계로 가려합니다. 거기만 가면 마음으로 환원하는 특급비법을 아미타불에게서 배웁니다. 그래서 역대 제불보살이 우리에게 아무 소리 말고 거기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정리하자면 나무아미타불이라고 하면 소승적으로는 아미타불께 예경을 드립니다 와 동시에
대승적으로는 마음의 근원에 돌아가기 위해 아미타불의 말씀에 의지한다
가 됩니다.
이렇게 해석하면 나모 속에 귀의의 뜻이 내포되어 있어서 대소승의 뜻이 그대로 다 들어있게 되는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
출처 : 대승기신론 해동소 전문 도량 원효센터 1부 법회에서 공파스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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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o와 귀의의 뜻은 완전 다르다. 왜 한역 역경사들이 나모를 귀의로 번역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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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Namo를 귀의로 번역하신 그 의미를 알게 되니 정말 신앙인으로서 믿음이 바로 서는 듯 합니다.
마음의 근원에 돌아가기 위해 아미타불의 말씀에 의지하는 대승불교의 핵심적인 신행과 가르침.
감사합니다!
열심히 정진하겠습니다 _()_
나무석가모니불ㅡ석가모니부처님께 경예드립니다ㅡ소승불교.
나무석가모니불ㅡ마음의 근원으로 돌아가기 위해 석가모니불께 의지합니다ㅡ대승불교.
멋진 해설입니다.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학생은 선생을 존경해 그 가르침을 따른다. 그때 나모가 된다.
학생은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면 부모에게 의지한다. 귀가가 된다.
대승불교신자는 여기서 한 수 더 나아간다. 그게 귀의다.
집이 아니라 극락세계로 나아가 아미타부처님의 말씀에 의지해 근원으로 돌아가는 수행을 한다.
그렇게 하기 의해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말씀인 거 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