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고 병들어 사회에서 소외되고, 버림받은 이들과 함께 하는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부설 자선의료기관인 ‘요셉의원’ 선우경식 원장이 18일(금) 새벽4시 선종(善終)했다.
故선우경식 원장
故선우경식 원장은 지난 2005년 10월 위의 3분의 2를 잘라내는 위암수술을 받은 후 항암치료를 받으며 투병생활을 해 왔다. 지난 3월23일(일)부터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몸이 안 좋아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지난 15일(화) 병세가 급작스럽게 악화돼 강남 성모병원 응급실로 옮겨졌으나 뇌사판정을 받았다.
요셉의원은 1987년 8월 서울 관악구 신림1동 동사무소 자리에 문을 열어 1997년 현재의 영등포역 옆으로 옮겨온 자선병원이다. 선우원장은 요셉의원 개원이후부터 20년 넘게 의료보험증이 없고, 진료비가 없어 의료기관을 이용할 수 없는 극빈환자와 영세 환자, 사회복지시설에 보호된 환자, 외국인 근로자들의 건강을 돌보아왔다.
장례는 사회복지회법인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장으로 진행된다. 빈소는 서초구 반포동 강남성모병원 영안실 1호에 마련됐다. 장례미사는 4월21일(월) 오전 9시 명동대성당에서 정진석 추기경, 김운회 주교(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대표이사), 김용태 신부(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회장) 등 사제단 공동 집전으로 봉헌될 예정이다.
유족은 어머니와 큰누나 선우정식, 남동생 선우병식, 여동생 선우명식, 선우효식씨가 있다. 고인의 시신은 천주교 길음동성당 묘원(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울대리 산20번지)에 안치된다.
‘노숙인들의 슈바이처’로 불려온 선우경식 요셉의원 원장이
오랜 항암 투병 끝에 18일 오전 4시 별세했다. 63세. ▲선우경식 요셉의원 원장 선우 원장은 2005년 위암 판정을 받은 뒤 3년여에 걸쳐 항암 치료를
받았으며 최근 병세가 악화하면서 뇌사상태에 빠져 서울 가톨릭대
강남성모병원 중환자실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다.
1969년 가톨릭 의대를 졸업한 선우 원장은 1973년 미국으로 건너가
킹스브룩주이스 메디컬센터에서 공부했다.
당시 미국의 저명한 병원들로부터 좋은 일자리들을 제안 받았지만 모두
뿌리치고 귀국을 결심했다. 고국에 돌아온 뒤 한림대 병원 의과대 교수로
잠시 근무했던 그는 1983년 당시 서울의 대표적 달동네였던 관악구
신림동에서 무료 의술 봉사를 시작했다.
특히 1987년 8월 서울 영등포 역사 뒤편 ‘쪽방촌’에 요셉의원을 개원한
뒤에는 평생 영세민, 노숙자, 외국인 노동자 등을 치료하며 이들에게
‘슈바이처’로 불렸다.
현재까지 요셉의원을 거쳐간 이들은 약 42만여 명에 이른다.
선우 원장은 요셉의원을 지원하기 위해 창간됐던 월간 ‘착한 이웃’창간호
(2003년 5월)에 기고한 글에서
“이 환자들은 내게는 선물이나 다름없다.
의사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는
환자야말로 진정 의사가 필요한 환자 아닌가.
이렇게 귀한 일은 아무나 할 수가 없는 것이기에
나는 감사하고 이런 선물을 받았으니 보답하지 않을 수 없는 것”
이라고 말했다.
▣ 선우경식 요셉의원 원장 약력
1945년 7월31일평안남도 평양 출생 1963년 서울고등학교 졸업 1969년 가톨릭의과대학 졸업 1973년~1974년 가톨릭의과대학 부속성모병원 내과 레지던트 과정 1975년~1978년 Kingsbrook Jewish Medical Center 일반내과 전공 1980년~1982년 한림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1982년~1983년 성 프란치스코 의원 근무 1983년~1986년 신림동 사랑의 집 진료소 근무 1986년~1987년 방지거병원 내과 과장 근무 1987년~2008년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부설 요셉의원 원장 2008년 4월18일선종
▣ 포상 기록
1997년 11월18일제14회 가톨릭대상 ‘사랑부문’ 수상 2002년 12월2일제1회 한미 참의료인상 수상 2003년 6월3일호암상 사회봉사상 수상 2005년 3월24일대한결핵협회 복십자대상 봉사부문 수상
요셉의원은 가난하고 병들어 사회에서 소외되고 버림받은 이들과 함께하는 서울 가톨릭사회복지회 부설 자선의료기관이다. 87년 개원 이래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약43만 여명의 영세민 환자와 행려환자를 진료했다. 매일 100여명의 외래 환자를 진료하며 이들에게 먹을 것, 입을 것, 잠잘 곳 등을 제공했다. 또한 목욕 및 이발과 같은 진료 이외의 나눔을 통해 이들이 우리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그들의 따뜻한 이웃의 역할을 하고 있다. 정부의 지원금 없이 100% 후원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1. 소속: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부설 자선의료기관
2. 연혁:
1987년 8월29일 서울 신림1동에서 개원 1997년 4월 서울 영등포역 근처 현재 위치로 이전
3. 설립목적: 가난하고 의지할 데 없는 환자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돌보며 그들이 자립하여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있다.
4. 진료대상 : 건강보호증이 없고 진료비가 없어 다른 의료기관을 이용할 수 없는 극빈환자 (행려환자-알코올 의존 증 환자 포함, 의지할 데 없는 영세 환자, 사회복지 시설에 보호된 환자, 외국인근로자 등)
어느덧 16번째 봄이다. 계절이 바뀌면 이곳 환자들도 긴 동면을 무사히 끝내고 진료실로 하나 둘 봄나들이를 시작한다. 봄이 훨씬 지나서도 진료실에서 환자를 만날 수 없다면 십중팔구 이승에선 만날 수 없게 된다. 의사로서 노숙자, 행려환자들만 만나게 되니 일정한 주거나 연락처 없는 환자들 소식, 수술 후 경과나 치료 후 상태가 궁금해도 확인할 수 없는 때가 많다. 그러다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올 때나 비로소 살아 있음을 확인하다.
16년 전, 이 일을 처음 시작할 때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되풀이되는, 환자와 의사간의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이 무슨 의미가 있는 가 고민을 많이 했다. 노숙과 알코올 중독에서 오는 자포자기로 삶을 포기한 이 환자들이 완치되는 경우는 가물에 콩 나는 격이다. 이들에게 가장 확실한 미래는 가족의 품이 아니라 길거리 어느 모퉁이에서, 혹은 시립병원의 쓸쓸한 병실에서 외롭게 한 많은 생을 마감하는 것이기에 새 삶을 찾으려는 의지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니 한번 인연을 맺으면 하늘이 준 인연이라 여기며 연민으로, 때로는 분통으로 치다꺼리를 해왔다. 좀 모자라서 제 것 못 챙기며 속 썩이는 자식을 가장 염려하고 마음 쓰는 게 부모이듯, 의사인 나는 가장 속 썩이는 환자라 할 요셉의원 환자를 진료하는 것이 모든 의료행위의 ‘꽃봉오리’라고 여긴다. 다른 모든 것을 뒤로하고 이 일에 매달 린지 어느덧 십수년. 가장 무능력한 환자, 다시 말하면 진료비를 한 푼도 낼 수 없는 이들이 다른 어떤 환자들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보물임을 발견한 것도 이 진료실이며 그런 이유 때문에 지난 세월 진료실을 떠날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이 환자들은 내게는 선물이나 다름없다. 의사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는 환자야말로 진정 의사가 필요한 환자 아닌가. 이렇게 귀한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기에 나는 감사하고 이런 선물을 받았으니 보답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겨울동안 꼭꼭 닫아두었던 창문이 조금씩 봄기운에 밀려 영등포역의 시끌시끌한 소란을 진료실로 전하기 시작하는 것과 때를 맞춰 병원 아래층 현관에서 귀에 익은 고함소리가 들린다. 지난겨울 술 끊으라고 누누이 당부했건만 오늘은 또 무슨 핑계거리를 들고 나를 찾아올지... 16년 단골환자의 봄나들이가 시작되었다.
이제는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 진료실에 오지 않으면 혹시나 하며 안부가 걱정된다. 그렇다고 이렇게 만취해 진료실을 찾으면 환자가 아니라 원수로 보인다. 그러나 어쩌랴. 그 춥고 긴 겨울동안 살아 있어주었으니 장하지 않은가. 이렇게 해서 의사인 나는 새 봄을 환자들과 함께 시작하는 행복을 누리며 한편으로 갈등한다.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환자들의 봄나들이를 반가워해야 할까 안타까워해야 할까.
- 요셉의원의 보물
(서울주보 말씀의 이삭, 2005년5월29일)
노숙인을 위한 자선 의료기관인 요셉의원이 일반병원과는 다른 점이라면 후원금과 봉사자에 의지하여 꾸려나간다는 것과 대부분의 환자가 알코올의존증이라는 병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8년 동안 수많은 봉사자와 2만5천여 명의 환자를 만났지만 요셉의원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보물, 보배라고 여기는 한 사람이 있다.
18년 전 요셉의원의 문을 박차고 처음 찾아온 그는 고아출신으로, 인근 시장에서 온갖 행패로 악명 높은 부랑인이자 알코올의존증 환자였다. 술만 취하면 난동과 욕설, 협박과 구타로 지긋지긋한 환자였지만 노숙과 술로 사는 그에게 의식주와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요셉의원은 내 집인 양 마음대로 드나드는 유일한 장소였다. 그러나 요셉의원이 해줄 수 있었던 봉사는 그를 앰뷸런스에 싣고 정신병원에 입원시켜 주는 일이었다. 18년 동안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길 무려 60여 차례, 몸도 삶도 병과 노숙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도 그는 요셉의원의 문턱을 부지런히 드나들었다. 그와 요셉의원 사이에 새로운 전환점이 온 것은 요셉의원이 그의 담당구역을 떠나 멀리 이사를 오고 나서부터였다.
그가 노숙을 청산하고 요셉의원 가족인 된 후, 요셉의원은 노숙 환자를 치료하는 새로운 기회를 찾았다.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그의 곁에서 희망과 실망이 교차했고, 헛수고요 어리석은 투자라는 갈등과 의심이 있었다. 하지만 밥과 약만이 아닌 치료, 노숙인이라는 환자가 필요한 진정한 치료의 길을 그를 통하여 배우기 시작했다. 의사로서 치료자로서 내쫓고 포기하고 싶었던 환자였던 그가 결코 보동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똑같이 소중한 사람 중의 하나라는 진실을 그의 회복이 가르쳐 주었다.
노숙인에게는 밥이 필요하다. 그러나 밥이 최선은 아니다. 노숙인은 게으르고 불쾌하지만 이 모습이 전부는 아니다. 18년 동안 요셉의원은 노숙 환자들에게 의식주와 약을 주었다. 그러나 우리의 환자들에게 어떤 치료가 필요한지를 깨닫는 데 18년이 걸렸다. 노숙인 뒤에 숨어 있는 알코올의존증이라는 파괴적인 질환은 의사인 내가 환자인 그와 18년 동안 함께 살면서 깨달은 소중한 진단이다.
지금 그는 요셉의원에서 봉사하며 자신의 삶을 알코올의존증 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성실하게 투병하고 있다. 의사인 내가 노숙환자를 구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분들의 불치병, 망가진 인격 탁이 아니다. 치료자인 내가 적절한 치료를 못해 주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요셉의원의 보물중의 보물, 보배가 되었다. 노숙과 술로 살아온 그의 부끄럽고 아픈 과거에도 불구하고 세상에는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는 진실을 확인시켜 주기 때문이다.
첫댓글 예수님.. 그 분을 당신 품에 꼭 안아 들이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