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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 2008년 2월 10일 화재로 전소 - 복원 미정 |
개 요 : 숭례문(崇禮門)은 조선 태조 5년(1396)에 최초로 축조되었고 1398년 2월 중건되었다.
이 문은 조선시대 한성 도성의 정문으로 4대문 가운데 남쪽에 위치하므로, 남대문으로도
불린다. 1448년에도 크게 고쳐지었다. 이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에도 남대문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양측에 성벽이 연결되어 있었지만 1908년 도로를 내기 위하여 헐어
내고 성문만 섬처럼 따로 떨어져 있었으나, 2006년 복원 공사를 마치고 지금과 같은 모습
을 하게 되었다. 1962년 문화재보호법에 의하여 보물에서 국보 제1호로 지정되었다.
건물의 평면은 아래.위층이 모두 5칸, 측면 2칸이며, 건물 내부의 아래층 바닥은 홍예의
윗면인 중앙칸만이 우물마루일 뿐, 다른 칸은 흙바닥으로 되어있고 위층은 널마루이다.
편액의 필자에 관하여는 여러가지 설이 있으나, <지봉유설> 에는 양녕대군이 쓴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른 문의 편액은 가로로 쓰여 있으나 숭례문이 세로로 쓰여 있는것은 숭
례(崇禮)의 두 글자가 불꽃을 의미하여, 경복궁을 마주보는 관악산의 불기운을 누르게 하
기 위해서라고 한다. |
현존하는 성문 건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남대문은 전형적인 다포(多包)양식
의 건물로 견실한 목조건축물의 수범을 보이고 있는 한국 건축사상 중요한 건물의 하나이
다. 1997년 초 서울시에서 이 문의 경관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하여 조명설비를 새로이
한 바 있다.
서울 중구는 2005년 10월부터 통로 보수공사와 홍예문 입구 등 5곳에 대한 지표조사를 실
시, 조선 세종때의 것으로 추정되는 아랫부분 석축 기단과 지대석(맨 아래 기초석), 박석
(바닥에 까는 돌), 문지도리(문을 다는 돌 구조물) 등을 발굴했다. 이는 1907년께 남대문
을 관통하던 전차선로를 내면서 문 주위로 흙을 1미터 가량 쌓아올려 아래쪽 기단과 박석
들이 완전히 묻힌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따라서 중구는 시민들이 지반보다 1.6m 아래
에 있는 이들 구조물을 볼 수 있도록 중앙통로 시굴 부분을 그대로 남겨둔 채 관람시설을
설치했다. 숭례문 개방시간은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까지이며며, 숭례문의 중앙통
로인 홍예문을 따라 숭례문을 둘러볼 수 있다.
개방시간 : 10:00 ~ 17:00
대중교통 : 지하철 시청역 1,2호선 도보 10분
서울역 1,4호선 도보 10분
회현역 4호선 도보 10분
주변명소 : 남대문시장, 서울역사(사적 284호), 남산공원, 덕수궁(사적 124호), 한국은행본관
(사적 280호), 구 제일은행본점(유형문화재 71호), 명동성당(사적 258호)
정보제공자 : 중구청 문화체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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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안타까울 따릅입니다.
시대에 불신을 품은자 한사람 감당하지 못하는 이나라 현실에 가슴이 시려 옵니다....육백여년을 지켜온 선조들의 유물은 어느 한량에의해 잿더미가 돼 버리고 차후를 책임져야할 관청 나리들께서는 자물쇠를 누가 가지고 있네 핑계놀이만 열나게 하고 계십니다.. 한민족을 지들 노예로 삼아 삼십육년을 부려 먹었던 일제 놈들도 부숴내지 못했던 유물을... 이건 한 알콜중독자의 짖이 아닙니다....우리 모두의 합작품이지요..가슴이 시립니다
국보 1호가 무너 지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