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30년대
1910년 한국을 병탄한 일제는 식민지 조선의 도로 정비를 통해 조선인들에게 문명의 혜택을 전달한다고 선전함으로써 조선 식민 지배의 정당성을 국내외에 설파하기 위해 시구개정 사업을 추진하였다.
동래지역은 1924년부터 시구개정사업이 진행되면서 동래성은 해체되고 관청건물도 헐리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현재 동래구청 앞과 동래부동헌 앞. 수안인정시장 등 거리는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가옥이 철거되면서 많은 사람이 고향을 떠나고 또는 산지에 움막을 짓고 생활해야 했다.
일본의 지역통치에 대한 부당성을 성토하는 대중 집회가 지속적으로 전개되는 시기였다
학소대에서 본 마을전경
마안산에서 본 읍내전경
동래구청사의 변천
동래면사무소는 장관청 앞에 있었다. 동래읍으로 승격된 후 청사가 좁고 노후하여 1933년 지금 구청자리에 2층 콘크리트로 짓고 옮겼다.
1942년부터 동래출장소 청사로 1957년부터 동래구 청사로, 1968년 3층 건물을 지어 사용해 오다
2024년 12월 30일 현 청사에서 업무를 시작했다
1934년 동래읍사무소
흰옷을 입지 말고 색있는 옷을 입자는 캠페인 모습
1942년 동래출장소
1973년 동래구청사
2024년 12월 30일 현 모습
동래읍내도로정비도
1서문자리 2.동래시장3.동래부동헌4.동래고교5.남문자리6.동래시장7.동래구청8.법륜사9.우성아파트10.명륜초교11.전차교동역자리
중앙통
현 동래구청과 우리은행 사이
동래상가
동래보건진료소
1918년~1933년까지 운영된 동래은행 본점이 있었던 곳(현 동래성당 앞)
동래줄다리기
동래줄다리기는 동래들놀음과 함께 매년 음력 정월대보름을 맞아 풍년을 기원하며 동'서부로 나누어 3일간 당기던 동래의 전통민속놀이이다.
마을마다 짚을 거두어 망미루 광장에 모여 줄다리기를 준비하고 동래시장통 일대에서 당겼다
동부는 수영,연산,안락,거제,해운대,멀리는 기장,좌천까지 서부는 복천,명륜,사직,초읍,서면,구포 등을 포함하였는데 동부가 이기면 풍년,서부가 이기면 풍어가 든다고 했다
1923년 줄다리기 기록에 참여한 인원은 무려 2만 명이 넘었다. 줄다리기가 끝나면 이긴 쪽에서 비네목과 종줄을 매고 진편 마을에서 가무를 즐기고 동래놀음을 준비하는데 세병교 또는 염창마담(안락동)에서 밤 8시에 길놀이가 출발하고 동래시장 앞에 도착하여 흥겨운 노래판이 벌어졌다
일제강점기 때 줄다리기를 못하게 하여 1936년 마지막 당겼고, 1950년대 구덕운동장애서, 1969년,84년,85,90년 등 나라 또는 지역의 큰 행사 때 한번씩 재현하다 2010년 동래읍성역사축제 때부터 온천장에서 매년 재현하고 있다.
동래줄다리기 준비모습
동래야류 공연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