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3일 화요일 아르메니아 예레반, 코비랍, 코타이크
* 아르메니아 예레반 호텔 주변 풍경
아침 일찍 일어나서 호텔 밖을 산책하며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 시가지를 둘러보았다. 두 개의 큰 술 제조 공장 건물이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다. 노아방주가 머물렀다는 성스러운 아라랏산의 이름을 딴 ARARAT이라는 상호를 크게 설치한 붉은 색 건물의 술 제조공장도 있고, 호텔 바로 건너편에는 회색 크고 긴 건물의 술 제조공장도 있다. 도로변 다리에는 지금 스위스 대통령이 방문 중이어서 환영하는 의미의 스위스 국기가 많이 걸려있다. 아르메니아는 세계은행이 다 들어온 곳이다. 그래서 스위스라고 불릴 정도다. 아르메니아는 해외거주자가 많다. 전 세계 60여 개국에 걸쳐 약 900만 명의 아르메니아인들이 분포되어 있다. 그 중 공식적인 이민자는 대략 50만명 정도다. 아르메니아 본국에는 380만 명의 인구가 남아있다. 해외거주자가 더 많은 나라다. 터키 대학살과 독립 그리고 주변국의 전란으로 세계 각국으로 이주해서 그렇다. 미국과 러시아에 각각 100만 명 정도 거주하고, 조지아, 프랑스, 이란, 레바논, 시리아, 아르헨티나, 캐나다 등에 다수가 실고있다. 해외에서 경제적으로 성공한 해외거주자들이 송금하는 돈으로 아르메니아의 경제가 가동될 정도다. 총면적 29,800㎢로 한국의 경상남북도를 합친 남한의 1/3 정도 크기의 작은 나라다. 수도인 예레반은 라즈단 강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구 120만 명의 도시다. 소련을 구성했던 공화국 가운데 하나로 서남아시아의 역사 깊은 지역에 위치한 국가다. 국경선의 변화가 상당히 심했던 지역이다. 고대 아르메니아는 지금의 아르메니아와 터키 북동부 지방에 넓게 걸쳐 있었다. 반면 오늘날의 아르메니아는 코카서스{자카프카지예) 지역의 3개 국가인 아르메니아, 조지아, 아제르바이잔 가운데 가장 좁은 면적 국가다. 터키령 아르메니아는 아르메니아와 달리 정치적으로 독립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아르메니아인들은 현재의 아르메니아 영토에 거주하고 있다. 터키령 아르메니아에는 소수만이 살고 있다. 고대 아르메니아는 한때 로마 제국에 대항할 정도로 강성했다. 많은 외세의 지배와 독립투쟁으로 혼란하기도 했다. 1916년 러시아에 지배당한 후에는 그루지아, 아제르바이잔과 함께 자카프카지예 동맹을 맺었으나 몇 달 후 해체되었다. 1920년 아르메니아 공화국으로 잠시 독립했지만, 여러 차례의 정치적 혼란 끝에 그루지아, 아제르바이잔과 함께 소비에트 공화국연방으로 재통합되어 1922년 소련에 흡수되었다. 1936년 소련 헌법에 따라 독자적인 소비에트 공화국이 되었다. 1980년대 말 아제르바이잔의 관할권인 산악지대 나고르노카라바흐에 아르메니아인들이 거주하고 있어 정치적 지위문제를 둘러싸고 심각한 소요사태가 일어났다. 아직도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문제는 미해결이며, 아제르바이잔 영토 속에 아르메니아가, 아르메니아 영토 속에 아제르바이잔이 부분적으로 속해 있어 분쟁이 일고 있다. 코카서스 3국은 주변과의 혼란한 관계로 난민들도 많이 있다. 조지아에서도 난민촌을 보았다. 조지아는 옛날의 국가명인 그루지아다. 2010년부터 세계 각국에 그루지아를 조지아로 부르도록 아르메니아 대통령이 요청했다. 자신의 국가명을 개명한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그루지아의 정식 국가명은 조지아로 불러야 한다. 이번 여행은 코카서스 3국의 이해관계도 알게 되고,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얻는 소중한 여정이다. 아르메니아뿐만 아니라 조지아에서도 포도를 이용한 술이 많았는데 이곳 아르메니아에서도 포도를 이용한 많은 술 제조공장을 본다. 예레반 시가지는 붉은 지붕의 낮은 주택이 많고 파란 나무들이 도시를 채워 조화롭고 매우 아름다운 정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