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적 내러티브와 다매체로 구성된 토탈 아트
박화영_치자와 단도 (치자와 식빵)_디지털 프린트_2007
몽인아트센터는 11월17일부터 12월2일까지 소설적 내러티브를 축으로 비디오, 설치, 사진, 페인팅, 드로잉 등의 복합매체 작업을 선보이는 박화영의 ‘치자와 단도’를 연다. 몽인아트스페이스의 1기 입주작가이기도 한 박화영은 아트센터와 인접한 지역을 전시공간이자 소설의 배경으로 차용해 ‘치자와 단도’라는 동명의 소설을 발간하고, 그 내러티브를 근간으로 다매체 전시를 펼친다. 전시공간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등장인물 별로 각각 세 개의 공간으로 구별되며, 1층의 전시실에는 ‘나’의 시점으로 사진작업 및 비디오 설치 전시가, 2층에는 ‘나’의 주변에 머물다 떠난 ‘치자’의 페인팅과 드로잉 작품들이 전시된다. 또 3층에는 진돗개 ‘단도’의 시점으로 구성된 몽환적인 멀티채널 비디오 설치를 선보인다. 박화영은 이번 전시를 통해 내러티브 속에 내재되어 있는 언어 및 소통체계, 환경과 자연, 자본과 권력, 분열된 존재, 과학과 문명의 이기, 현대사회의 암울함과 불안, 허구와 실제 등이 현실과 비현실적인 상상을 통해 연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표현했다. 문의 02)736-1446
박화영_치자와 단도 (이끼사람들)_디지털 프린트_2007
박화영_치자와 단도_비디오스틸_2007
박화영_치자와 단도 (제니스, 영혼, 그리고 단도)_디지털 프린트_2007
“어느 날 예고 없이 치자는 나의 집에 와서, 자초지종 설명도 없이 마루에 하나밖에 없는 의자에 몸을 싣는다. 천천히 고개를 오른쪽으로 살며시 기울여 눈을 감으며 귓구멍에서 흘러나오는 피곤을 펼친 손 위로 한참을 따라낸다. 그날부터 마치 자연스러운 일인 것처럼 거리낌 없이 나의 집에서 산다. 치자를 치자라 부르게 된 것은 무더운 여름 어느 날 그녀가 새하얀 치자 꽃이 핀 화분을 품에 들고 좁고 습한 나의 방에 향긋함을 안고 들어온 각인된 기억 때문이다. 사실 나는 그녀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 처음에는 대화가 도통 되지 않아 알 수 없었고, 시간이 지나서는 벙어리 여자와 나름대로 학습된 언어를 배제한 소통을 하노라고 믿고, 또 굳이 소리 내어 그녀의 이름을 부를 일도 없기에 묻지도 않았다. 몇 년 전부터 나의 집에 들어와 사는 이름 없는 개를 마음속으로 ‘단도’라고 부르듯이 그렇게 그녀를 속으로 ‘치자’라 부른다.” (중략) “나의 영혼이 1년 전쯤 어느 날 돌연 집을 나가버린 이야기를 치자에게 이야기한다. 그녀가 내가 하는 말을 다 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연신 두 눈은 나를 관통하듯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한참을 그렇게 부풀어 오른 눈으로 주시하다가 눈을 두 번 깜빡이고는 주섬주섬 가방에서 지갑을 꺼낸다. 그 속 깊은 주머니에서 겹겹이 접은 작은 하얀 종이를 꺼내고선 떨리는 손가락으로 한 겹 한 겹 펼치고 나니 사람형상이 드러난다. 막 가위로 싹둑 싹둑 거칠게 잘라 만든 듯한 모양새다. 심장 부위가 모양대로 구멍 나있고, 나름대로 눈구멍 콧구멍도 뚫려있다. 그것을 조심스럽게 내게 펼쳐 보이고서는 이내 곧 차곡차곡 다시 접어 원래 지갑 위치 속에 고이 집어넣는다. 치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나는 그녀의 얘기를 알아들은 것으로 생각한다. ‘이렇게 자신의 영혼을 접어서 지갑에 넣고 다니면 도망칠 염려가 없는 거야’라고 내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지갑을 잃어버리게 되면 영혼도 함께 분실돼지만 말이다. 이 말을 바꿔서 하면, 영혼을 방치하고 싶으면 살며시 어딘가에 지갑을 버리고 모른 척 가버리면 된다.” (중략) “영혼이 바닷가를 걷다가 모래사장 위에 파도에 실려 나온 기이한 불가사리 하나를 발견한다. 일반적으로 불가사리가 별처럼 다섯 갈래로 되어있는 것과 달리 그 생긴 것이 마치 벤쯔 자동차 마크처럼 세 갈래로 뻗어있다. 쪼그리고 앉아 그것을 자세히 관찰하니 요상하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징그럽게도 작은 입 같은 부위로 무슨 미세한 노랫소리 같은 것을 내는데, 귀를 갖다 대고 자세히 들어보니, 멜로디가 제니스 조플린의 ‘메르세데스 벤쯔(Mercedes Benz)’ 를 노래하는 것처럼 들린다. 영혼은 잠든 단도의 꿈속에 나타나 이 기묘한 불가사리의 노래를 들려준다. 노래 속에 치자에게 전할 메시지를 담고 있는 신호를 단도에게 담아 보내, 치자가 제니스와 만나 블루폰드(Blue Pond)에 함께 갈 수 있도록 안내한다.” (중략) - 박화영의 책, ‘치자와 단도’(책빵집) 본문 중에서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