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구속사 강해
신령한 나라에 대한 아브라함의 증거
아브라함이 애굽의 왕 바로의 손에 사라를 빼앗길 뻔했다가 하나님의 전권적인 개입으로 아내를 다시 얻게 된 사건은 두 가지의 새로운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첫째, 이 세상의 절대적인 권세를 가진 애굽의 왕이라 할지라도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왕의 존재란 이 세상에서 최고의 권좌를 의미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왕들을 지배하는 분이시다. 그들도 아브라함과 다를 바 없는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의 권세 가진 자를 신뢰하고 그들에게 생명을 위탁하기 위해 아부하는 것보다는 근본적으로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신 하나님을 신앙하는 것이 인간으로서 의당히 가져야 할 자세인 것이다.
아브라함은 미처 그런 의식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당시 세대가 이미 어두움 속에 깊이 빠져 있었기 때문에 아브라함도 당시 사람들의 관습에 따라 자기보다 권세 있고 힘있는 자를 거역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인격은 누구나 동등한 것이다. 왕이든 백성이든 그리고 남자나 여자나 하나님 앞에서 동등한 인격자로 대우받아야 하며 생존에 대한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권리이다. 따라서 아무도 이 권리를 무시하거나 탈취할 수 없다.
둘째, 새로운 민족을 세우시고 새 나라를 건설하겠다는 창세기 12:1-3에 나타난 하나님의 언약은 아브라함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사라에게도 동등하게 주어졌다는 사실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새 나라를 건설하실 것이라는 언약을 대표로 받은 것뿐이지, 실제적으로 그 언약에 참여할 사람은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사라와 그 후손들까지도 모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아브라함은 새 나라를 건설할 새 인류의 대표자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새 나라를 건설하시겠다는 언약의 당사자로서 그리고 그 언약에 참여하는 모든 새 인류의 대표로서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것이다. 이 언약 앞에서는 그 언약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동등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때문에 아브라함과 사라는 언약 앞에서 동등한 위치에서 서 있는 것이다. 이것은 장차 태어날 후손들도 마찬가지이다.
1. 신령한 나라의 특성
새 나라를 건설하겠다는 언약은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신 여호와께서 적극적으로 성취해 나가신다. 때문에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 언약을 성취해 나가시는가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역사 속에서 언약을 성취해 나가시는 하나님의 동반자로 서 있는 것이다. 즉 아브라함과 사라의 생애는 하나님께서 언약을 성취해 나가시는 증인으로서의 삶이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새 민족을 이 세상에서 불러내어 그의 나라를 건설할 것이라는 의지는 이미 아브라함을 부르신 말씀 속에 명확하게 나타나 있다(창 12:1-3). 이것은 노아 홍수 이후 하나님을 반역하고 인간들의 나라를 건설하겠다고 천명한 바벨탑 사건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홍수 이후 인류는 독자적인 통치 체제를 구축하고 인간들이 중심이 되는 나라를 건설하고자 했었다(창 11:1-4). 이 바벨탑 사건은 인간들의 경영(οικονομια)이 상당한 조직력과 고도한 문명을 자랑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수행하는 것보다는 아담과 가인의 뒤를 이어 바벨탑을 쌓음으로서 하나님을 반역하는 자세를 취했다. 이미 밝혀진 대로 인간이 하나님을 반역할 때에는 분명히 그에 따른 심판이 있기 마련이다. 하나님은 바벨탑을 쌓은 인류를 외면하기로 하셨다. 이것이 그들에게 내리신 심판이었다.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가 없는 세상에서 인간들끼리 생존을 위해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하고 가혹한 형벌인가는 그 후 인류의 역사를 보면 얼마든지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저주가 임한 이 세상에서 구별되고 분리되어 새롭게 한 민족을 세우고 한 나라를 건설하심으로서 창조의 목적을 이루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가 아브라함을 부르신 사건 속에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창 12:1-3). 그래서 새 나라는 하나님에 의해 건설되어야 한다. 새 민족에 의해 건설될 이 나라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있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구현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어야 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2. 신령한 나라의 국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하여 새로운 민족을 이루실 것이라는 언약이 어떤 방법으로 구체화되어 나타나게 될는지는 아브라함도 알고 있지 못했다. 반면에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사건을 통하여 점차 그 언약이 성취되어 가는 과정을 알아 가게 되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아직 하나님의 언약 성취에 대한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고 있을 때 발생한 또 하나의 사건이 하란에서 아브라함을 따라 나선 조카 롯과의 이별이었다.
애굽에서 나온 아브라함이 다시 가나안의 벧엘에 이르렀을 때에는 바로에게서 받은 선물 덕분에 많은 재산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상당한 수의 일하는 사람들을 거느리게 되었다. 그러자 아브라함의 하수인들과 롯의 하수인들 사이에 자주 다툼이 발생했다. 많은 식솔들이 함께 거하다 보면 발생할 수 있는 사소한 시비거리가 마침내 아브라함과 롯을 분리시키는 데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롯과의 헤어짐에 대하여 아브라함은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그 후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재차 언약을 확인해 주실 때, 아브라함은 롯과의 헤어짐에서 무언가 심상치 않은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조카 롯이 아브라함을 떠나자 여호와께서 언약을 재차 확인해 주신 것이다(창 13:14-17). 즉 롯이 떠난 이후 여호와 하나님은 가나안을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주겠다는 언약을 다시 확인해 주셨던 것이다.
그것은 새 민족을 세우시겠다는 언약에서 롯이 제외되었음을 의미한다. 즉 새 나라를 건설할 새 민족은 유일하게 아브라함의 자손이어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아브라함은 의당히 롯의 후손들도 신령한 나라의 새 민족에 포함될 것이라고 여겨왔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일단 롯을 아브라함과 분리하여 내신 후 아브라함의 자손들만을 가지고 새 나라의 백성으로 삼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여기에서 신령한 나라를 세우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아브라함은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애굽에서 사라를 바로에게 빼앗길 위기에서 건지신 사건과 롯의 분리 후에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가나안을 주시겠다고 확약하신 사건 사이에는 아직 분명하지는 않지만 이 두 사건 사이에는 누가 하나님께서 세우실 신령한 나라의 백성 될 것인가에 대한 것과 깊은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의 언약을 성취해 나가시는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가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건설될 것인가에 대하여 상당히 막연한 기대감만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일련의 사건들을 통하여 매우 구체적인 지식을 갖게 되었다. 그러한 경험을 통하여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대한 주인 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아브라함은 그 땅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자기의 후손들을 통하여 새로운 나라를 건설할 곳이기에 더욱 관심을 갖고 소중히 여기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