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95]카페 <Positive Space 566>
수목원을 낀 대형 카페도 가보고, 왕릉을 옆에 둔 수원의 대형 카페(‘혜경궁’)나 뷰가 엄청 좋은 바닷가나 강가의 카페도 가봤지만, 일요일 아침에 찾은 김포의 대형 카페 <Positive Space 566>는 여느 카페와 유난히 달랐다. 다른 것 중의 가장 큰 것은, 2023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당시 5층 건물에 2190명)이 동시 입장할 수 있다며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는 것이겠다. 두 번째로 큰 곳은 사우디 아라비아의 ‘알 마사’카페(1050명). 진행중인 리모델링이 끝나면 거의 3000명이 커피를 마실 수 있다고 한다.
진작부터 그 ‘명성’을 들은 것은, 카페를 처음 개설하고 운영하는 사람이 전 직장의 지인(1955년생)이었기 때문이다. 지인도 볼 겸 한번은 구경삼아 가보고 싶은 곳, 어제 아내 손자와 함께 다녀왔는데, 1년에 싱가포르 등에서 절반을 산다는 지인이 마침 며칠 전에 귀국, 일요일인데도 아침부터 반바지 차림으로 나와 있었다. 안본 지가 20년이 넘었는데도 서로 변하지 않음에 놀라며, 30여분 환담을 했다. 그는 회장이고, 사장은 그분의 아내. 종업원이 93명이라고 했다. 나로서는 줘도 못하고 엄두도 못낼 사업이건만, 그분은 즐거운 마음으로, 한 달에 많은 적자가 나는 데도 '비전'을 보고 한다고 했다. 그의 주 전공은 민간인들에게 비행기를 파는 것이라는데 입이 따악 벌어졌다.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머리 속에는 온통 ‘숫자’만 가득할 게 아닌가. 아니나다를까, 휴대폰을 꺼내더니 다달이 매출액과 적자액을 보여준다. 이건 정말 ‘보통사람’이 할 일이 아닌 것이다. 4층을 아트센터(갤러리)로 운영했는데, 6월부터는 웨딩홀로 바꾸었다. 끊임없는 도전과 응전은 일너 것을 말함인가. <기네스북>에 오른 게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고 연 부담금이 있고, 처음 등재할 때 등재비도 1만파운드가 넘었다던가. 아, 그런 속내도 있구나. 어떤 개인의 특기나 신기록은 상관없는데 이익이 생기는 기관이나 조직은 꼬박꼬박 연회비를 납부해야 한다고. 의자며 탁자, 전등과 디럭스한 샹들리에며 바닥 재질도 모두 최상급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대리석들. 로비에 있는 금으로 떡칠한 시계만도 1500만원이 넘는단다. 딜럭스한 화장실 구경도 필수. 줄줄줄 이어지는 ‘숫자놀음’에 어지럽다. 역시 큰 사업가들은 '발상'부터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카페 상호처럼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방식’(positive thinking)이 아니라면 꿈도 꿀 수 없는 일일 터. 한마디로 놀라웠다.
더 좋았던 것은, 그분은 전직장에서 19년, 나는 20년을 근무하며 알게 된 사이인데, 전 직장의 OB들 근황을 들을 수 있어 였다. 말하자면 이곳과 그분은 전직장 동료들과 ‘소통의 플랫폼’인 셈이다. 80도 못되어 세상을 떠난 선배들의 얘기에 같이 가슴 아파하며, 여전히 건재하시는 90대초(33년생) ‘참 언론인’의 필력 이야기도 나눴다. 언론사 출신인지라 유독 예민한 것이 ‘보수와 진보’였다. 전직장의 보수의 대표는 김진현, 남시욱 선배등일 터이고, 진보의 대명사는 김중배 국장일 터. 성향은 비록 달라도 얘기하다 보면 어느 정도 ‘접점’이 생기기 마련 아니던가. 그는 부산 출신으로 나라가 극좌로 흐르는 것이 걱정이라고 했고, 나는 가감없이 나라가 ‘극도로 우매한 25%’에 좌지우지되면 안되며 진정한 개혁(사법, 검찰, 언론)이 먼저라고 털어놓았다. 이제 이쯤되면 ‘같음과 다름’의 차이를 서로 인정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었다.
‘포지티브 스페이스’는 알겠는데 ‘566’이라는 숫자를 왜 붙였느냐고 물으니, 이곳이 김포시 감정동 566번지이고, 그전에 자신이 인수한 가구단지를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했다고 한다. 도심에 있고 뷰도 별 볼일 없는데, 입소문이 나려면 일단 규모(주차장 포함)가 커야 할 것같았다고. 아무튼, 무슨 질문이든 시원시원 솔직하게 대답하는 그에게 정치성향과 상관없이 오랜만에 호감을 느꼈다. 놀라운 것은 아마도 2004년이었을 터인데, 그때 우연히 만나 막 직장을 그만두고 보험 컨설턴트가 된 내가 "신성한 직업을 알게 됐고, 그 일에 투신했다"며 들떠 있었다고 했다는데, 솔직히 그 기억은 ‘1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어찌 그렇게 까마득히 잊어먹었을까? 아마도 내 삶에 기억하고 싶지 않은 '유일한' 대목이어서 머리 속에서 깨끗이 지웠나 보다. 아내 앞에서 그 얘기를 하니 한없이 창피했다. 보험설계사라니?
어느 재벌회장(별세)에게 비행기 석 대를 팔았는데, 판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애프터서비스가 중요하다며, 로비 천장에 걸려 있는 비행기 모델을 보여줬다. 나에게는 그것도 몹시 신기했다. 그는 이미 1980년대 말, 자녀들을 부인와 함께 캐나다로 유학을 보낸 ‘기러기 가족’ 원조인 셈인데, 대부분 실패하기 쉬운 기러기 가족과 유학이 성공한 케이스였다. 가족 성공하고 사업 성공했으니 된 게 아니냐며 소탈하게 웃는 그가 꿈꾸는 사업이 문화적으로 국가에 공헌하고 국민에 혜택(문화생활, 문화의 향유 등)을 돌아가게 하는 일에 크게 일조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쨌거나 저쨌거나'(고향 어느 성님의 18번) 대단한 일이다. 전직장에서 모시던 분을 회사의 고문으로 수십 년째 모시고 대우를 해드렸다는 말은 진작 들었지만, 그것은 숫제 ‘사나이의 의리’일 터. 멋지게 보여 카페 정문에서 인증샷을 찍었다. 바쁘신 터라 살째기 행운을 오려는데, 언제 고급 빵들을 쌌는지 한 보따리 챙겨주는 마음씀씀이라니. 이 회장의 행운과 발전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