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4년 영화 《빨간 마후라》가 크게 히트하면서 빨간 마후라는 삽시에 한국 공군의 상징처럼 되어
버렸다. 주제가 <빨간 마후라>는 더욱 유명해져서, 영화가 나온 지 5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애창되
고 있다. 그러나 조종사들이 착용하는 것은 머플러(Muffler)가 아니라 스카프(scarf)다. 따라서 한국
공군의 상징은 ‘빨간 스카프’다. 머플러와 스카프의 차이는 새삼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우리가
머플러를 왜식 발음인 마후라로 부르는 것은 시대적 아픔이라고 해두자.

비행기에 그려져 있는 독일공군 마크는 격추시킨 적 전투기 수
20세기 초 조종석이 개방형으로 되어 있는 전투기가 개발되자 조종사들은 추위를 막기 위해 보온성
이 뛰어난 흰색 실크 스카프를 목에 두르기 시작했다. 조종석이 개방되어 있기 때문에 고공의 추위를
피하기 위해서는 뭐든 방한장비를 착용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스카프는 목을 돌려 좌우를 살펴야 하
는 조종사들의 목 피부 쓸림을 방지하는 데도 크게 도움이 되었다. 레이더나 전자계기판이 없다보니
부지런히 전후좌우로 고개를 돌려 직접 방향을 확인하고 적기를 찾아야 했는데, 그러자면 가죽 옷깃
에 피부가 쓸려 상처가 나곤 했던 것이다.
스카프는 때로 마스크로 쓰이기도 했다. 고속으로 비행하며 찬바람을 막고,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피
하고, 빠르게 날아드는 벌레를 차단하는 데도 스카프는 필수적인 역할을 했다. 때로는 엔진오일로 사
용하는 피마자기름이 조종석으로 튀어 들어오기도 했는데, 이때도 스카프를 이용하여 재빨리 틀어막
아야 했다. 미처 막지 못한 기름을 닦는 데도 스카프를 썼다. 한편 영국 조종사들이 비행 중 스카프를
착용하는 모습을 보고 돌아온 왜인 조종사들도 스카프를 착용하기 시작하면서 이름을 머플러→마후
라로 바꾸었다. 스카프는 여성들이 치장용으로 널리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남정네들이 여성들처럼
스카프를 두를 수는 없어서였다.

한국 공군에서 빨간 스카프를 최초로 착용한 분은 김영환 대령이었다. 그는 대단한 멋쟁이였는데, 전
투기를 몰게 되자 형수에게 용도를 설명하고 빨간 비단 스카프를 하나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비단
을 살 돈이 없던 형수는 자신의 빨간 비단치마를 잘라 스카프를 만들어 시동생에게 전해주었다. 김영
환은 준장 시절 유엔군사령관의 해인사 폭격 명령을 거부하여 팔만대장경을 비롯한 귀중한 문화재를
지켜낸 분이다. 김영환은 빨간 스카프를 모든 조종사들의 공식 유니폼으로 정하자고 제의했지만, 전
쟁 중이라 물자가 부족하여 뜻을 이루지 못했다. 빨간 스카프가 대한민국 공군 조종사들의 공식 유니
폼으로 제정된 것은 1953년 8월 15일부터였다.
손목시계

순종이 차던 회중시계
유럽인들은 1800년대 중반부터 1914년까지를 ‘벨 에포크(Belle Epoque. 좋았던 시절)’라고 부른다.
유럽문명의 전성기였기 때문이다. 제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유럽은 황금기를 미국에 넘겨주었
다. ‘벨 에포크’에 최신기술을 모두 집약하여 만들어낸 가장 인기 있는 품목 가운데 하나가 휴대용 회
중시계였다. 통신과 교통의 발달로 시간개념이 정밀해지면서 약속을 정확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휴대
용 시계가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다. 뒷면에 기증받는 자의 이름과 주는 목적 및 날짜 등이 적인 회중
시계는 부유층이 가장 선호하는 선물이기도 했다.
이 시기에는 문명과 문명 간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여 발칸반도는 세계의 화약고라는 별명에 걸맞
게 언제 터질지 모를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 유럽 각국은 국가가 가진 모든 기술과 자원을 총동원하
여 각종 대량살상 무기를 개발했다. 새로운 전술과 전투기술도 개발되어 누가 눈만 흘겨도 한판 붙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1870년대 프러시아에서는 병력을 가장 효과적으로 이동시킬 수 있는 철도시간
표 작성방법을 장교 교육의 핵심과목으로 편성했다. 프러시아 육군참모총장 몰트케는 1890년 군사적
목적을 위해 세계표준시를 도입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에는 회중시계보다 진일보한 손목시계가 대중화되어 군대에서는 전
투가 시작되기 전에 모든 장교들에게 손목시계를 나눠주었다. 엄청난 화력이 동원되는 현대전에서
적진 협공, 공중폭격이나 포사격 지원 등의 경우 아군끼리 시간을 정확하게 약속하고 지키는 일은 전
투의 승패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요건이었기 때문에 손목시계는 지도와 나침반처럼 중요한 필수품이
었다. 모든 작전계획도 시간별로 정확하게 수립되었다.
일차대전이 한창인 1916년 7월 1일 오전 7시가 되자 프랑스 북부 솜江에 배치되어 있는 수백 명의 연
합군 장교들은 일제히 시계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7시 30분에 호루라기를 불기 위해서였다. 호루
라기 소리에 맞춰 독일군에 총공격을 감행하기로 되어 있었다. 7시 30분 호루라기가 울리자 연합군
은 일제히 참호에서 나와 똑바로 선 자세로 독일군 진지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며 총을 쏘아댔다. 그
들은 대부분 몇 발짝 전진하지 못하고 독일군이 쏘아대는 기관총에 맞아 전사했다. 일차대전 때까지
만 해도 전투 방법이 그처럼 무모했던 것이다.

손목시계를 가장 잘 활용한 것은 조종사들이었다. 그들은 초 단위로 시간을 확인하여 약속시간에 정
확하게 폭격을 가하고 무사히 귀환할 수 있는 연료량을 계산해내야 했다. 시간계산이 잘못 되면 아군
진지에 폭탄을 떨어뜨릴 수도 있고, 시간을 초과하면 연료가 떨어져 기지로 돌아올 수 없기 때문에
시간은 곧 생명이었다. 조종사들은 육군과 달리 훨씬 정교한 손목시계가 필요했다. 이에 따라 유명
장인들이 다투어 값비싼 조종사용 손목시계를 별도로 제작하기 시작했고, 덕분에 민간에도 고급 손
목시계가 붐을 일으켰다.

최초로 만든 주문자 상표 부착 손목시계는 프랑스 까르띠에社가 만든 산토스 시리즈다. 알베르토 산
토스는 브라질에서 태어나 프랑스군에서 활동한 조종사였는데, 처음으로 전투기를 몰고 출격하게 되
자 유명 시계 장인인 루이스 까르띠에에게 조종사용 손목시계를 제작해달라고 주문했다. 까르띠에는
정확성‧내구성‧실용성‧외형 등에서 조종사에게 최적화된 손목시계를 개발하여 주문자의 성을 따서
산토스 시리즈라고 명명했다. 1904년 최초로 세상에 빛을 본 까르띠에社의 산토스 시리즈는 상굿도
값비싼 유명 브랜드로 부유층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 밖에 연합군에 손목시계를 납품하던 론진‧오메
가‧제니스‧헤밀턴 브랜드도 지금껏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다.
남보람 지음 「전쟁 그리고 패션」 소개 끝
출처:문중13 남성원님 글
첫댓글 크고 작은 집안 수리를 위한 각종 공구들이 갖추워진 집집마다 의 별도 정비소, 미국 가정의 한 생활상 입니다. 잔뒤 깎는 일로 부터 시작하는 옆집 노부부의 일상이 그러 합니다. 워낙 인건비 특히는 출장비가 비싸 손수 해결 할수밖에 없다고는 하지만 이는 미대륙의 개척정신에 바탕한 자립 정신인것 같습니다. 딸네집 역시도 손수 정비하는 공구들을 갖추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