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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선(祖師禪) 운문록 수시대어 1. “짚신을 만들어 신고 행각을 떠나리라”
여태 운문선사의 선문답과 상당법문 실중어요를 마감하였습니다.
앞에 설한 것을 운문록 상권이라 하고 수시대어는 운문록 중권이라 하고 나머지 선어록의 가치가 있는 많은 선지식을 찾아 뵙고 법거량을 한 감변 등을 운문록 하권이라고 하여 세권의 어록을 남겼습니다. 물론 운문선사 당시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 제자들이 많은 시간이 지나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선가에 회자되든 화두나 수많은 스님들의 어록을 총괄적으로 제작한 선문염송집과 함께 편집되었음을 밝힘니다.
*수시대어란 원문에는 없으나 넣어서 읽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하 ‘대신 말씀하셨다는 대어[代語]’의 경우도 대부분 마찬가지이다. 대어란 수시나 거량에 대해 상대방 학인이나 대중이 대답하지 못했을 경우 그를 대신해서 대답해 주는 것을 말한다.
[수시대어 제 1편에는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스님께서 몸이 편치 않은 차에 말씀하시기를, “짚신을 만들어 신고 행각을 떠나리라” 하였는데 아무 대꾸가 없자, 다시 “그대들이 나에게 질문하라. 내 말해 주리라” 하셨다.]
여기서 “스님께서 몸이 편치 않은 차에 말씀하시기를”라고 그 때의 운문선사는 연세가 들어 몸이 생노병사(生老病死)에서 노에 해당하였음을 설명하는 부분일 것이다. 주로 깨달음을 얻은 도인들을 표현할 때 주로 흰수염과 도포자락과 긴 눈썹으로 표현하는데 이것은 도가와 유교사상에서 나온 것이지 사실은 그렇게가 않다 선사도 몸도 아프고 병고에 시달림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일반 범부들에 비하면 안심입명(安心立命)이라 마음이 편안함에 들면 수명도 길고 병치래를 많이하지 않고 죽을 때도 아무른 병세가 없이 자기 스스로 죽음을 미리알아 내가 언제 죽을지를 미리 알리기고 하고 그날이 오면 목욕재게하고 법당에 올라 역대 불보살님들의 형상앞에 절을 올려 열반에 들것을 알아 열반송도 짓고 제자들에게 유언도 하고는 정좌하고 열반에 드는 경우가 보편적이지만 서서 입적하기도 하고 거꾸로 물구나무를 서서 열반에 들기도 하고 천화라하여 몸을 없애버리기도 하여 하늘로 바로 승천하는분도 계시고 하여 열반하시는 형상 또한 신비로움을 전하기도 한다.
이 수시대어를 쓸 시점이 몸이 편치 않은 차에 말씀하시기를 이라고 그 시절의 운문선사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을 때 이 수시대어를 씀을 표현하고는 이렇게 “짚신을 만들어 신고 행각을 떠나리라” 하였는데 아무 대꾸가 없자,“라고 하신 것은 건강도 좋지 않는 시점에 이런 말을 하시면서 왜 이런 말을 하셨을까요?
선사(禪師)의 본분정사(本分情事)가 무엇입니까?
선사라고 처음부터 깨달아 안심입명에 들은 것은 아니지요. 불법을 배우고 지금도 매 일반이지만 제일 먼저 출가하면 배우는 것이 율법 율원에서 배웁니다. 그리고 강원에 갔어 경전공부를 배웁니다.
이렇게 경전공부를 마치고 나야 스님이라는 금강계단에서 사미계를받고 비구계를 받고 나서 정식 스님이 되고 율사가 되어 기복불교 행위불교의 율사가 되고 불법을 설파하는 법사가 되기도 하고 이렇게 하지 않고 참선수행을 하는 선원에 들어갔어 참선수행을 통하여 진리를 얻어 성불함을 목적으로 하는 선승(禪僧)이 되고 그렇게 참선수행을 통하여 돈오돈수(頓悟頓修)한 선승을 선사(禪師)라 합니다. 여기서 운문선사는 모든 수행을 다 마친 무위진인(無位眞人)인 조사의 반열에 이른 대선사인 것입니다.
그런 대선사가 한 때 “짚신을 만들어 신고 행각을 떠나리라”라고 하시니 옆에 있든 제자들이 무어라고 해야겠습니까?
아직 일을 마치지 못한 납승이나 학인이 행각(行覺)을 하는 일인데 대종사께서 행각을 한다니 듣는 제자들은 그 말을 어떻게받아 들어야 할까 참으로 난감한 말씀이지요.
그러니 “아무 대꾸가 없자,“라고 적은 것은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한 것은 제자로써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이렇게 아무도 대답이 없으니 하고 하신 것은 배우려는 학승이라면 당연히 촌지도 아끼지 말고 선사을 보면 무조건 내가 아직 의심이 나는 진리에 대하여 물어야 하는 것이 그대들이 할 일이고 나는 그 물음에 대하여 선기방편으로 제접해야 함이 나의 본분종사인데 왜 묻기를 않느냐? 이렇게 묻는 사람이 없으면 내가 여기에 있을 일이 없지 않느냐? 그럼으로 내가 행각이라도 하여 시절인연을 찾아 보려고 한다는 뜻으로 한 말인데 묻지를 않음을 꾸짓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중에 한 스님이 나와서 이렇게 묻습니다.
[그러자 어떤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어디로 가시렵니까?”]
이렇게 묻는 것을 보면은 주위에 같이 있었든 사람들은 학인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 하신 말씀을 직설법으로 바로 받아 듣고는 이렇게 물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운문선사는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천지사방 어디든지 근기에 맞게 가르침을 베풀고자 한다.”]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본분종사로써 나에게 내가 할 일은 누구나 나에게 진리가 되었든 불법이 되었든 아직 무심의 경지에들지 못했으면 당연히 묻고 답하는 것이 서로의 시절인연인데 그래 물어니 이렇게 답을 하십니다.
그런데 또 아무도 답하지도 묻지도 않는다 그러니 이런 멍청한 놈들아 그대들은 수행을 한다는 근본 뜻도 모른단 말인가?
옛이니 작금이나 선사앞에 가면은 사실 물을 말이 없습니다.
물어면 직설법으로 바로 가리켜 주지를 않고 묻는 것을 되묻고 역설적으로 비유법을 통하여 또 대대법으로 말씀을 하니 사실 그 향상일구는 또한 화두가 되어 버리니 물어봐야 더욱 짐만 하나 가져고 있어야 하니 묻지를 않는 것입니다.
[스님께서는 앞의 말에 대신하여 말씀하셨다.]라고 하십니다.
앞의말이 무엇입니까?
스님께서 몸이 편치 않은 차에 말씀하시기를, “짚신을 만들어 신고 행각을 떠나리라” 하였는데 아무 대꾸가 없자, 다시 “그대들이 나에게 질문하라. 내 말해 주리라” 하셨다.]한 말씀은 오직 무엇입니까 설명했듯이 선사의 본분종사가 바로 이리석은 제자들을 하루라도 빨리 견성성불(見性成佛)이란 진리를 깨우치려고 갖은 선기방편으로 참선수행정진하다보면 즉 지관(止觀) 수행을 하면 자연적으로 마음의 형상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나고 제일선천 제이선천 제삼선천 무색계천으로 차츰 발전할 때 마다 그 경계를 물어 올 것이고 그 단계마다 선승이 있어 스스로 간파하는 것이 생기기 마련이니 이것을 가리켜 주는 것이 선사인데 내가 하도 제자들이 수행정진하는 것을 보기가 힘들어 수행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역부러 행각을 갖어 시절인연을 찾겠다고 하는데도 왜 내가 그런 소리를 하는지는 알아차리지를 못하슨 이 제자들에게 물어라 내가 대답하리라라고해도 질문하는 사람이 없으니 이것이 바로 수행을 제대로 하지 않음을 꾸짖기 위하여 말을 해도 알아차리지를 못하는 제자들을 위하여 이런 선기방편을 셨으나 소용이 없으니 제자들의 마음에 새로운 하나의 직설법으로 마음 공부라는 것은 바른 안목을 기르는 것이듯이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일 뿐인 현제심을 가리켜 주기 위하여 이렇게 마음이란 체를 깨닫기는 너무나 어렵지만 지금 여기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이 그대로 체임을 알아체라고 이렇게 바로 즉시 지금 여기인 시간과 공간을 벗어나 마조선사의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를 알아체게하기 위하여 이렇게 말후구를 스스로 앞의 말은 전부 방편이다 이 말후구를 알아체는 사람이 없어니 혼자말처럼 이렇게 말려 주십니다.
[“스님께서는 강부탕(薑附湯)생강을 넣고 달인 차)을 드셔야겠군요.”] 자작자수(自作自修)입니다.
마음공부의 의심이 나지 않는다면 지금 여기 일어난고 있는 형상 그대로가 바로 안목으로 행한다면 그것이 바로 불타행이며 바른 깨달음이라는 뜻으로 이렇게 일반적 평상심에서 몸이 않좋은 선사님께서 어딜 행각을 가신다고 하시니 죄송합니다.
선사님도 지금 연세도 있으시고 몸도 편치않으니 저희들을 위하여 하신 방편임을 압니다. “스님께서는 강부탕(薑附湯)생강을 넣고 달인 차)을 드셔야겠군요.”라고 하지 못하느냐고 꾸짖고 있는 것입니다. 제법이란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평상심이 도임을 직설적으로 스스로 밝혀 주고 계신 것입니다. 돌~~~~~!!!!!!!!
성불인연 맺으소서 옴 바아라 믹~~~~~!!!!!!!!!!!
운문록(雲門錄) 수시대어(垂示代語) 2. 화살 한 발에 두 표적입니다
[상당하여 말씀하시기를, “오랜 비가 그치질 않는구나”]
이 한 때 운문선사가 말씀하신 향상일구(向上一句)를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오랜 비가”라는 말을 사용하셨는데 선적으로 본다면 “오랜 비가”이란 말은 지나간 과거심으로 돌아갔으니 이미 지금 여기는 아닌 것이다. 그리고 “비가”라는 말씀은 “비”라는 명색을 사용하였으니 이도 아니다. “그치질 않는구나”이라는 말도 차별심이요 분별심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말은 선적으로 받아 들일 수 없는 말만 골라서 사용하였다. 이 말을 글에 뜻을 새겨 본다면 말도 아닌 맘ㄹ이 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 수시대어는 주로 운문선사의 노년기에 사용하신 것이 많다.
여태 그렇게 선불교의 근본인 언어도단(言語道斷) 불입문자(不立文字) 심행처멸(心行處滅)에 전혀 맞지 않는 말을 다 어긴 것이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받아 들인다면 그대가 스스로 양변에 빠진 것입니다.
그대가 차별심이 사라졌다면 한 생각 일으키지 말아야 하는 것을 지금 여기서 차별심을 발한 것이니 무심처에 임한 안심입명(安心立命)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이 운문선사가 말한 말에 집착한 것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이것을 화타(話墮)라고 합니다. 화타에 대하여는 지난번의
법문시 밝혀 드렸습니다 참고 해 보시길 바랍니다.
선사들의 말씀을 분석해 본다면 제일 많이 사용하는 것이 역설법입니다. 그리고 사구백비(四句百非)입니다.
말이나 글이나 생각이라는 것은 다 상대성원리에 길들여진 양변이라고 하여 라고 체와 용의 도리이며, 이것을 처음으로 말씀하신분이 바로 육조 혜는선사입니다. 이것을 36대대법(對對法)이라고 합니다. 모든 마음과 말과 글은 다 이 대대법으로 분류하여 비추어 보고 이에 대하여 한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 우리 범부들의 행동이며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즉 크다 작다. 높다 낮다. 멀다 가깝다. 이것과 저것. 맞다 틀린다. 좋다 싫다. 나다 너다. 길다와 잛다. 성인과 범부. 무명과 깨달음. 지옥과 극락. 안다 모른다. 있다 없다. 간다와 온다. 깊다 앝다. 무위법과 유위법. 순류와 역류. 부정과 긍정. 등 수많은 말과 글과 생각을 분석해 보면 전부 다 양변을 가리킨다. 이 양변을 편견(偏見)이라하고 시비분별(是非分別)이라고 한다. 작금의 인류들이 살아온 역사를 본다면 살육과 살생으로 이루어진 전쟁과 투쟁과 싸움과 시비 자체가 애 일어날까? 이것은 진리를 몰라서입니다.
그럼 진리는 무엇일까? 이 양변을 회통하여 하나라는 법성원융(法性圓融)의 도리인 것이다. 상대성은 본래부터 없었다라는 진리가 화엄경의 일진법계(一眞法界)인 것이다.
이법게(理法界)와 사법계(事法界) 이사무애법계(理事無礙法界)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 이 이치와 행위가 체용의 도리이며, 마음긔 본체와 작용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럼 본체는 어디서 왔느냐? 일심(一心) 한 마음에서 왔다는 것이다. 근본은 허공이지만 이 허공은 바로 “허공은 대각에서 나왔다 하였듯이 천지창조론도 바로 한 마음이 있어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연기법(緣起法)인 인연지소생(因緣之所生)인 것이다.
그럼 인연은 어떻게 이루어 지는가?
이것은 우주의 별들이 성주괴공(成住壞空)하는 법게가 바로 선에서
는 진공묘유(眞空妙有)라고 하는 것이니까.
그럼 우주의 원리 법칙과 자연의 생주이멸(生住異滅)하는 법칙이 바로 진리인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이 모든 이치와 사랑의 생노병사(生老病死)도 사실은 우주의 법칙과 자연의 법칙되로 흘러가고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에 무슨 시비분별(是非分別)이 필요합니까?
그래서 “모든 법은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일 뿐”인 것이 됩니다.
이것이 법화경에서 말하는 제법실상(諸法實相)인 것입니다.
다시 위로 올라가 운문선사의 “오랜 비가 그치질 않는구나”하고 하신 것은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를 그린 말씀인 것입니다.
이것을 직설법(直說法) 또는 제법실상(諸法實相)을 표현한 것입니다
[하더니 (대답이 없자) 대신 말하되 “화살 한 발에 두 표적이다”라 하셧다.]
위에서 운문선사가 향상일구를 설하였는데 아무도 대답이 없자 리른 사람들 하고는 어찌 내 말을 알아 듣지를 못하는가?
그러자 제자들을 향한 자비심(慈悲心)이 이렇게 다시 알아차리라고 위에서 향상일구는 일승법으로 말을 하셨놓고는 이제 다시 체용의 도리로 돌아가 버리는 말씀입니다.
“화살 한 발에 두 표적입니다”라고 하신 뜻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 하십니까? “화살 한 발”은 한 마음의 작용인 것입니다.
작용이 일으난 근본을 물론 화살을 이용하는 사람이나 포수이겠지요. 그러니 이 한 사람이나 포수는 주인공인 체에 해당하고 화살은 마음이 작용에 해당하는데 “두 표적입니다.”라는 말씀은 한발의 화살 촉으로 어떻게 두 표적이 될 수 있습니까? 될 수 없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음의 체상용을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화살이라는 체가 어떻게 두 표적입니다. 했지 두표적을 맞힌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즉 마음이 작용을 하면 그 작용으로 인하여 형상이 드러납니다. 이 작용과 상을 두 표적이라고 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여기서 서천의 마명보살의 대승기신론을 보면은 마음의 모든 체상용의 도리를 너무나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즉 한 마음은 진여법(眞如法 )과 생멸법(生滅法)으로 갈라서 설명을 하십니다. 진여법(眞如法)은 보이지 않는 즉 드러나지 않지만 본래 우주나 자연은 불생불멸(不生不滅)이며 불구부정(不垢不淨)이며 청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즉 마음에서는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을 말하는 것과 생멸변천하는 생사가 있는 그 상을 말하는 것이 바로 생별법(生滅法)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일심(一心). 이문(二門) 삼대(三大) 사신(四信) 오행(五行)으로 잘 설파하고 계십니다. 이를 잘 참조하시길 빕니다.
성불인연 맺으소서 옴 바아라 믹~!!!!!!!!!!!!
조사선(祖師禪) 운문록(雲門錄)을 들어시어
인연성불(因緣成佛) 하시어서 붓다(佛陀) 같이 살아가소!
일승법문을 시절인연삼아 인연성불 하옵시고 대원성취 하옵소서 !
원오선원 명상쉼터 천안시 두정동 611_1번지 5층(041)551 8546
무명 납승 원오선사 010 8748 6006 옴~바아라 믹!!!_()_
탁발성원 보시구좌 농협 351 1042 1598 93 대한불교 정토회

첫댓글 조사선(祖師禪) 운문록을 통하여 한국불교 1300년의 선사중에서 선어록의 해설서를 쓰신분은 처음입니다. 조사선(祖師禪)의 보설을 통하여 인연성불 하시어서 본불본락 하옵소서 옴~바아라 믹!!!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