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대왕의 환생
지금까지 만나온 많은
사람들의 전생투시 중에서
오랫동안 뇌리에 남아있는
어느 스님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그 분과 우연히 만난 곳은
5년 전 섣달 어느 날,
내가 대구의 천년고찰
파계사의 원통전에서
소원 성취 기도를 드릴 때였다.
그 날 새벽, 기도에 전념하여
입정에 들었을 때
관세음보살 몸속으로 사라지는
어느 노승의 모습이 보였다.
그 찰나의 순간에
두 모습이 교차하면서
붉은 색 도포를 입고
머리에 왕관을 쓴 사람이,
관세음보살 몸속에서 홀연히
걸어나와 내 몸을
겹쳐 스치듯 지나갔다.
그 뒤를 수많은 신하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뒤따랐다.
그때 그분이 나를 향해
엷은 미소를 지어 보였는데
그 노승과 그분의
눈빛은 닮아 있었다.
꿈이었을까?
새벽녁 차가운 바람에
정신을 차릴 때까지
겹쳐 보였던 두 사람의 모습은
여전히 눈앞에 남아 있었고.
고개를 들어
관세음 보살을 쳐다보니,
그 미소가 마치 방금 본 것 같은
낯익은 느낌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 날 아침 경내를 돌아 절
을 빠져 나오기 전에,
산책로에서 스치듯 지나는
노스님에게
합장을 하고 몸을 일으키면서
우연히 스님의 자애로운
모습을 대하는 순간,
나는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몸을 꼼짝할 수가 없었다.
지난 새벽에 보았던
그 미소와 눈빛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날 연구소에 돌아와
원통전에서 경험했던 현상들과
산책로에서 봐었던 노스님에 대한
리딩을 한 결과,
그 세 분들은
한 사람의 윤회 전생에서
각각 모습을 바꾸어
태어나신 분들이었다.
그 내용의 의미를 앞뒤를
간추려서 정리해보면,
조선시대 21대 임금이었던
영조대왕의 전후생의
배경에 관한 줄거리였다.
그리고 나서 다시 스님을
뵈올 수 있었던 것은
2004년 1월이었다.
우연히 불교 TV를 시청하면서
그분이 현재
불교 TV 회장 스님이며
파계사 주지스님이라는
사실을 그때 알게 되었다.
영조대왕에 관한 탄생설화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전해져 내려온다.
조선 숙종 때
억불정책으로 인해
승려는 도성 출입이
금지되고 부역에 시달렸다.
파계사 용파 스님은
위정자들을 만나서
파계사 승려만이라도 부역을
없게 하리라는 원을 세우고
한양으로 갔다.
그러나 남대문 안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3년의 세월이 흘렸고.
부처님의 자비를
비는 기도만 계속됐다.
그 즈음 숙종은
남대문 밖 여염집 위에
청룡과 황룡이 찬란한 광명을 놓아
하늘에 솟구치는 꿈을 꾸었다.
다음날 어전별감을 시켜
꿈속에 본 집에서 데려온 사람
다름 아닌 용파 스님이었다.
임금은 스님이
한양에 온 이유를 들은뒤
--- '사찰에 폐가 되는
일들은 없이해줄 것이나
나도 소원이 있으니 임금자리를 이을
세자의 탄생을 기도해 달라'고 소원했다.
용파 스님은
임금의 허락을 얻어 마침
한양에 와 있던 농산스님과
함께 백일기도에 들어갔다.
수락산 내원암에서 기도하던
용파 스님이 선정에 들어서 보니
임금의 원을 이루는 방법은
북한산
금선암에서 함께 기도중인
농산 스님과 자신 중 한 사람이
죽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백성 중에는 왕이 될 만한
재목이 없었던 것이다.
용파 스님은
농산 스님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나는 본사에
일이 있어 형편이 안 되니
스님께서 자비를 내어
임금자리에 올라 백성을 위하고
불교를 위해 달라.' 간청했다
농산 스님은 '허, 허' 웃으며
--- "내가 나라의
위축기도를 맡은 것으로
인을 심었더니
기도를 마치기도 전에
과가 벌써 돌아왔다." 면서
---"내가 출가한 것은
대도를 이루기 위함이지
임금이 되어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함이 아니었지만
인과의 법이 엄연하니
어쩔 수 없다."며
이 제의를 받아들였다.
백일기도 회향일 저녁,
농산 스님은 제자들에게
--- "50년 동안이나 망건을
쓰고 있어야 한다 말인가." 하고
탄식한 뒤 입적했다.
세자 탄생 기원 기도가
끝나자마자
기도 스님이 입적한 것을 두고
숙종은 눈살을 찌푸렸으나
두 스님 사이에 오간 편지를
전해 받은 뒤부터는
태자 탄생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숙종의 후궁 숙빈 최씨가
노승이 자신에게 들어오는 꿈을
꾼 뒤 잉태해 아들을 낳았다.
그가 조선 21대
임금 영조대왕이다
이듬해
1694년 왕자가 탄생했고,
숙종 임금은
왕실 위패를 파계사 경내에
기영각이라는
사당을 지어 모시게 하고
유생들의 행패와
부역의 폐해에서
스님들을 자유롭게 했다.
왕자는
농산 스님이 예언한 대로
52년 동안 재위에 머물렸으니,
---영조대왕이 바로 그이다.
영조는 임금이 된지
14년이 지난 1740년 12 월에
용파 스님이 머문
파계사 원통전을 중건하고
관음보살상을 개금하면서
자신이 입고 있던 어의를
복장유물로 넣었다.
이 도포는 1979년 관음보살상
개금 떄 불상에서 나왔는데
그 사실적 유물로 보아
윤회전생 사실에 대한 일깨움과
영조 탄생 설화에 대한 신빙성을
더하는 좋은 자료가 될 수 있다.
---(이 도포는
현재 우리나라 중요 민속자료
제220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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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자유게시판
영조대왕의 환생 ----박진여
고구마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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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23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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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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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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