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 프로필 이미지
삼태극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자유소통광장 명량 회오리바다" 는...10배는 더 오바했어도 됀다.
궐한 추천 2 조회 623 14.08.04 23:42 댓글 32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14.08.05 01:44

    첫댓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잼있는 소설을 읽은 것처럼 그렇습니다.
    넘 길어 담에 또 들려야 것씀돠

    근디 팩트니 뭐니 그 영어가 섞여서 좀 그렇습니다.
    우리말이 좋은디 ...

  • 작성자 14.08.05 09:53

    팩트으니 이런 콩글리쉬는...
    그 도루구찌 학자님들과 ...비판가 젊은이들 특유의 말투를 숭내낸 비꼬는 형식이라 보십시요...
    저도 콩글리쉬 싫어합니다.

  • 14.08.05 02:16

    많이도 알고 있군요! 잘 보았습니다.

  • 작성자 14.08.05 09:54

    감사합니다.

  • 14.08.05 08:24

    자세한 설명에 감사 드립니다

  • 작성자 14.08.05 09:54

    열심히 하겠습니다.

  • 14.08.05 13:26

    지리적이점을 이용했지요,,좁은해협이 밀물과 썰물이 교대로 교차한 지역에서 밀물때 방어했지요,,쇠줄을 바다에 깔아 밀물에 밀려오는 적선을 중간에 차단하고,,,, 쇠줄앞에 밀려온 왜선을 박살내고...밀물이 썰물이 되는시각이 한 2시간정도,,밀물이 썰물로 전환 싯점에 쇠줄을 걷으니,,,앞에있는 왜선은 썰물에 뒤로 밀리고,,뒤에있는 왜선은 쇠줄을 걷으니 앞으로 밀리고,,왜선들은 앞에서 뒤로 쏠리고 뒤에서 앞으로 쏠리고 자기들끼리 치고박고 뒤엉킬때,,그 쪽에다가 포탄을 퍼부으니,,포탄한발이 왜선한척씩 엎어버리니,,명량물결이 밀물과 썰물이 만나서 회오리 치듯이 뱅뱅도니,,,,조선수군포탄에 죽거나 회오리 바닷속으로 휘감겨

  • 14.08.05 13:26

    가라안고..............

  • 작성자 14.08.05 17:02

    글쎄요...?...난중일기엔 어떻게 묘사됐는진 몰라도...제가 본 위의 자료들만 봐도...
    아침 썰물때 전투가 시작돼어...안위의 배가 썰물의 속도에 뒷바람까지 받아 쾌속으로 질주하여 적진으로 돌격했다 나오니...반대 같습니다.

  • 작성자 14.08.05 17:14

    또한 위 기록들을 보면 명량구(鳴梁口)라 하여...바다와 강이 만나는 항구지역을 의미하는 지역입니다.
    고로, 이순신의 선단은...육지와 인접한 강 어귀와 바다가 만나는 지점이거나...항구지역에 포진했고...
    왜노들의 선단은 외해(外海)에서 강 하구나 항구로 처 들어던 형국이요...
    또한,수백척의 왜 선단들이...수십겹으로 이순신의 함대를 포위하고 저녘때까지 교대로 근접전을 시도했다니...
    왜선들이 조류로 뒤엉킬 상황도 아니였다 보이고...일자로 서로 마주보면 치룬 전투는 아닐까 합니다.

  • 작성자 14.08.05 17:15

    쇠줄로 뭐시기한단 얘기는 한산대첩으로 알고 있고요...
    아침썰물땐 이순신의 함대가 반대방향의 왜 선단으로 돌격해 30여척을 박살냈고...
    서서히 밀물로 바뀔때쯤 왜선들이 패주하는 바람에...왜선들은 속도를 내지 못하고
    계속 이순신함대에 당한꼴이라 봅니다.
    기록들을 보건데...바다에서 강 하구나 항구로 접근하는 왜선들을...
    육지나 강 하구방향의 이순신 함대가 박살낸 정황일지 싶습니다.
    역시, 그 장소는 한반도가 아닌... 중원 남부 홍콩이나 해남(하이난)정도로 보이고요...

  • 작성자 14.08.05 17:19

    왜놈들도 죽기 살기의 혈전였고...전투가 아침부터 저녘까지 지속됐는데...
    결국 다 깨고 몇십척만 도주했다니...우리가 아는 종래의 그 기록들은...
    왜놈들이 왜곡해 지들 덜 쪽팔리게 둔갑한 소설을 역사로 믿는 실수일까 합니다.
    33척은 초전에 날라간 왜선숫자고...왜적들 배 오백여척이..아침부터 저녘까지 치뤄진 대 혈전 끝에...
    다 개박살난 세계 해전사에 전무후무한 해전이 명량해전이란 반증입니다.

  • 14.08.05 17:24

    @궐한 쇠줄로 머시기 한 것은 명량대첩이 맞습니다 ... 한산도는 바다 한가운데 떠있는 섬인지라 쇠줄을 걸만한 지형이 아닙니다.

  • 14.08.05 17:36

    @궐한 명량의 다른 말은 울돌목입니다... 어찌나 물살이 거센지... 바다가 울음소리를 낸다는 뜻입니다... 궐한님은 '입 구'자에 주목하시는 것 같은데... 이미 울돌목에 그 뜻이 숨어 있습니다...'목'은 특정한 특징을 가진 지형에 붙이는 보통명사입니다... 군대를 다녀온 분들은 '목진지'라는 단어를 기억하실 겁니다... 각설하고 울돌목은 전남 해남군과 진도군 사이의 해협이 맞습니다... 하이난성 운운하는 것은 동북공정론자들의 억지입니다.

  • 작성자 14.08.05 18:36

    @金子 예전 영화들엔 한산대첩으로도 나왔습니다....그나 저나 쇠줄 얘기 좀 역사기록에서 찾아 올리셨으면 합니다.
    다 출처불명의 소설들 같은 얘기들이니...전 확인됀 역사기록만으로 가겠습니다.

  • 작성자 14.08.05 18:44

    @金子 명량(鳴梁)이란 단어 자체에 운다는 뜻이 있는데..궂이 물돌목이라 부연설명해야할 이유도 없습니다.
    제가 찾아본 기록엔 울돌목이란 말이 거의 없고여....그냥 명량(鳴梁)하면 진동하는 소리가 울리는 일정구역이란 의미가 됩니다.

  • 14.08.05 19:48

    @궐한 원래 해남 진도 사람들은 그곳을 울돌목이라 불렀습니다... 순 우리말이죠... 그런데 님처럼 ... 먹물께나 든 양반들이 한자로 고쳐쓴 것이... 명량입니다.

  • 14.08.05 15:15

    그런데 일제 35년동안 일본놈들이 이순신 난중일기 보고 조작 할 가능성 있을까요 난중 일기 발견 되고 보아서면 오히려 없어 버리는 것이 일본놈 한테 더 유리 하지 않을까요 난 오히려 이순신이 명랑 대첩에서 상세한 전공 길고 하지 않았고 오히려 축소 전공 보고 했다 그렇게 보는데요 그 당시에 선조가 이순신 대하는 태도 라던지 그거 보고 이순신도 축소 전공 보고 가능성 더 높다고 보는데요

  • 14.08.05 18:38

    저도 그러리라고 봄니다..선조가 유명대신이나 장군들에대한 시기는 이루 말할수없었지요..노량전투에서 이순신장군님은 자결 결심으로 전투에 임하였다고 봄니다

  • 14.08.05 17:39

    난중일기는 비망록입니다... 기록으로는 남기되 공개하면 곤란한 군사기밀이 가득한 사서죠... 그런 책을 소설로 읽으면 장군께 누가 되는 매국행위입니다.

  • 14.08.05 17:43

    장기나 바둑을 둘 때... 하수들은 '수'를 보지만 고수들은 '판'을 봅니다.

  • 작성자 14.08.05 18:47

    @金子 매...매국...? ...억울하옵니더...!!!
    기밀 문서니 공개하지도 연구하지도 말고 숨겨두자.,,.?...누구 좋으라고여..?
    그 기밀 누설돼면 왜군들이 그 길로 또 처 들어온답니까...?
    참 영혼도 순백이십니다.

  • 14.08.05 19:21

    @궐한 그런 식으로 글을 읽으니 사서가 소설이 되는 겁니다... 난중일기는 16세기 책입니다... 당시엔 극비문서로 분류했어야 할 사항이...오늘날에는 상식이 된 거죠.

  • 14.08.05 19:30

    @궐한 난중일기를 대충이라도 읽었다면... 이순신이 유독 포에 관심이 많았음을 눈치챘을 것입니다... 하지만 난중일기에는... 훈련상황은 상당부분 자세히 기술되었으나... 전승을 거두는데 함포의 역할은 별로 기술하지 않았죠... 이게 바로 극비사항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나를 순백이라고 칭찬하신데 대한 보답으로 순흑이라 평하겠습니다..

  • 14.08.05 17:57

    어제 신문에 어떤 학자라는 놈이... 난중일기를 평하려면 왕조실록과 비교하라고 하던데... 그놈의 생각은 틀렸습니다... 삼도수군통제사는 오늘의 해군참모총장입니다... 왕조실록이 오히려 난중일기를 참고했다고 봐야죠... 왕조실록은... 승정원일기, 비변사일지를 기본 사초로 편찬되었는데... 기초가 되는 난중일기를 왕조실록에 견준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 작성자 14.08.05 18:51

    역사는 비교하여 공통점을 찾아내야 정사로 인정돼지...하나의 기록만을 성경같이 편취함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역사서가 아닌...그냥 종교서적이 됍니다.
    이순신 장군이... 마치 금자님 사유물인냥 금줄을 치십니다.

  • 14.08.05 19:51

    @궐한 임진,정유 양란에서... 남해안의 전황은 이순신의 기록이 더 정확할 수 있습니다... 그는 모든 정보가 모이는 삼도수군통제사였으니까요... 그 부분에서 실록과 이순신의 기록이 차이를 보인다면 어느 것이 왜곡되었다고 보십니까?

  • 작성자 14.08.06 01:20

    @金子 이순신 장군의 기록이 왜놈들 손을 안탓다 자신하십니까...?
    천진난만하십니다.

  • 14.08.06 17:06

    @궐한 난중일기가 왜놈들의 손을 탔다구요?...그러니까 함부로 다루지 말라는 겁니다... 한번 휘어진 활을 또다시 비틀면,.. 활은 오조준도 불가능한... 이상한 물건이 되고 맙니다....... 너무 어렵나요?... 미안합니다. 제 글 재주가 이정도 밖에 안되서...

  • 작성자 14.08.07 16:13

    @金子 난중일기는 이미 조선사편수위원회에 의해 일제때 재 발행돼기도 했습니다.
    난중일기 원본들도...삭재돼거나 수정한 부분들이 엄청 많다고 합니다.
    뭔 훠어진활 또 훤단 애매모호한 비유신지여...?
    님의 글이 어렵냐고여...?
    비유하자면...한국말로 하면 됄걸...월남말로 하며 논점을 애매모호하게 만드시는 재주는 인정합니다.

  • 14.08.06 17:30

    이제야 말하는데 님의 글이 얼마나 허접한 줄 아십니까... 본문 중에... 330척의 왜선 중 전투에 참여한 적선은 130여척... 님은 그걸 문제 삼았습니다만... 뭐가 문제인가요?... 330척의 배 중에 해군은 130여척이고... 나머지 200여척 중 상당수는 육군을 실은 수송선이었고... 보급품을 실은 화물선이었습니다... 당연히 호위를 맡았던 해군이 괴멸하면... 육군을 실은 배는 도망을 쳐야지... 수송선이 전함과 싸웁니까?... 역사는 소설로 읽되 논픽션으로 읽어야 하는 겁니다.

  • 작성자 14.08.11 09:26

    330척이다..그 중 133척이다..란 설보다도...5-600척이다란 기록이 압도적으로 많으며...
    33척의 왜선만이 명량에서 파괴됀거로 얘기하지만...기록들을 다 보면...아침에 치뤄진 초전에 이미31척이 박살났단 건데...저녘때까지 치뤄진 혈전에선 갸오 2척만 왜놈선박이 파괴됐단게 모순이니...
    대부분의 기록들대로,..5-600척의 왜선중...저녘까지 치뤄진 혈전에서 단 몇십척만 살아 도망친거란 기록이 더 신빙성이 있단 글이였습니다.
    이게 이순신장군의 업적을 왜곡폄하하는 글로 보이시는지여...?
    논픽션이니 뭐니 배배꽈서 선문답하지 마시고..역사기록에 충실하셨으면 합니다.
    자기가 좀 아는게 나오면 무개를 잡는 학자류들 같습니다.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