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갑작스러운 죽음에
놀라 저승에도 못간 영혼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을 앓는 것보다 답답한 일이 또 있을까?
우리 주위에는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의사가 많아도,
최첨단 의료장비를
동원하고서도 원인을 알 수 없는 병들이 많다.
그리고 대개 의사들은
그런 환자에게 심인성질환이라는 판정을 내린다.
말 그대로 심인성질환이란
마음이 병의 원인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시달리는 또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올해
38살의 강인순(가명) 씨인데
그녀는
비올라 연주자로서 시립교향악단의 단원이다.
인순씨는
특이성 체질로 어려서부터
약에 대한 과민한 반응을 보여
아무리 아파도 약을 먹을 수가 없었다.
예컨대 소화제만 먹어도
전신에 심한 마비 증세가 나타나고 호흡곤란이 일어
119구급차에 실려 병원 응급실 신세를 져야했던 것이다.
그러나
발병의 원인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달리 처방을 내릴 수도 없어
아무리 실력 있는 의사라 해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지꾸 이 같은 일이 반복되자
인순 씨는 약에 대한 자신의 과민반응을
고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어디에서도 자신의 병을
고칠 수 있는 답을 얻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인순 씨는 감기라도 걸린 날이면
약을 쓰지도 못하고 그저
끙끙 앓을 대로 앓으며 버터내는 수밖에 없었다.
리딩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인순 씨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증세의 원인은
6.25 사변 중 전쟁터에서 얻은
카르마 때문이라는것을 알게 되었다.
리딩: 이 사람은 6. 25전쟁 당시 국군 대위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계곡의 전투에서 부하를 모두 잃고
미쳐버린 나머지 무서운 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질문: 무서운 일이란 어떤 일입니까?
리딩: 계곡바위 동굴 안에 숨어있던
스무 명의 나이 어린
북한군을 몰살시키고 만 것입니다
질문: 적군을 사살하는 것은
전쟁터에서 흔한 일이 아닙니까?
리딩: 분명 죄가 됩니다.
그래서 그때 몰살당한 스무 명의 나이 어린
북한군의 영혼이 영계로 가지 못하고,
지금 이 사람에게는 붙어있는 것입니다.
질문: 카르마가 있어야만 빙의가 됩니까?
리딩: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카르마는
빙의령에게 좋은 통로가 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질문: 이 사람의 특이체질과
약에 대한 과민반응을 설명해십시오.
리딩: 그들의 짓입니다.
이 사람의 몸에 있는 그때
상처입고 죽은 20명의 빙의령들은
아직도 자신들의 죽음을 인식하지 못해,
몸이 약이 들어오면
서로 그 약을 먼저 차지하려고 아우성을 칩니다
그리고 이것은 마비증상으로 나타납니다.
질문: 이 사람을 어떻게 도울 수 있습니까?
리딩: 진실로 참회하고 속죄하면
그 영혼들을 보낼 수있는 인연을 만날 수 있습니다.
질문: 보통사람들은 자신이 전생에 지은
잘못을 모르고 살아가는데
어떻게 하면 알 수가 있습니까?
리딩: 참을 수 없는
고통과 괴로움은 또 다른 가르침입니다.
그 시련을 통해 자신의 전생을 알아야 합니다.
전생에 악업을 지은 사람은
현생에서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을 맞이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고통은
곧 또다른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현실이 괴롭고 고통스러울수록 더욱
간절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참회하고 속죄하며 기도하십시오.
그 속에 답이 있습니다
리딩이 끝나고 .난 뒤
인순 씨는 재미있고 신기한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다.
얼마 전에 남편과 함께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를 보러갔는데
영화 속 장면으로
피흘리고 쓰러지는 치열한 전투가 나오자
약을 먹었을 때만 나타나던
전신마비 증세가 갑자기 도졌다는 것이다.
다행히 남편의 도움으로 그 곳에서 빠져 나오기는 하였지만,
인순 씨는 그때 분명 자기 내부에서
아우성치는 알수없는 함성을 들었다고 했다.
이후
인순 씨는 마음 한구석에서
찜찜한 기분이 가시지 않았고,
약을 먹지 않았는데도
온몸에 번갯불처럼 퍼져나갔던
그날의 전신마비 증상이 내내
마음에 걸려 무척이나 걱정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 리딩을 들으니
모든의문과 걱정, 불안이 한꺼번에
싹 가신다며 매우 놀랍고 기쁘다고 하였다.
그런데 우리는
강인순 씨의 사례에서 한 가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나라를 위해서 싸우는 군인이
적군을 죽이는 행위는 당연한 것인데,
이에 대해 개인적인 책임을 물어
다음생에서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게 한다면
과연 카르마의 정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예컨대
어떤 사람의 전생이
가축을 도살하는
조선시대의 백정이었다면
현생에 그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
그는 당시의 관습에 따라
순리대로 살아간 것뿐인데,
현생에 와서 그 죗값을
치러야하는 게 과연 합당한 처사일까.
더욱이
그는 백정으로서 가축을 도살하여
많은 사람들의 식욕을 해결해주기까지 하였는데 말이다.
우리가 한 가지 명심할 것은
카르마를 결정하는 것은
행위나 말, 글이 아닌
----바로 '동기' 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지옥 같은 전쟁터에서
동굴 속에 숨어있는 20명의 어린 적병들을
몰살시키는 행위는 분명 잔인한 짓이지만,
만약
그가 전쟁에 임한 군인으로서
국가와 동료에 대한 책임과 의리 때문에
선택의 여지없이
부득이 하게 그런 잔인한 행위를 했다면
아마도 현생에
그가 받을 카르마의 징벌은 없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20명의 북한군을 몰살했던
그는 국가와 동료를 위한 대의가 아니라
본인의 잔인성과 복수심 때문에
일을 저지른 점이 컸기 때문에
카르마의 징벌을 받게 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살아가며
경험하는 불행과 질병의 원인이
모두 카르마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행해진 수많은 리딩을 통해 볼 때,
현재에 일어난 불행과 질병은
전생에서 지은 어떤 죄의 결과로서 나타난 경우가 많았다.
한편으로 인간의 생각과 행동은
그 사람이 소속된 시대와 문화에 따라 많은 차이가 나므로
단순히 그 결과만을 가지고
죄업이다. 아니다를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자신의 아내를 손님과 동침하게 하는
에스키모인의 전통과 풍습을
오늘날의 시각으로만 판단해 죄라고 말할 수 없고,
똑같이 가축을 죽이는 죄이지만
순전히 짐승을 죽이고 싶은 욕구 때문에 그러한 것과
병에 걸려
다 죽어 가는 짐승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
행한 것은 전햐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행위를 유발하는 마음이며 동기이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무수한 외침이 있어 왔기에 한이 많다.
그 중에서 6ㆍ25는 500만 명에 이르는 사람이
억울하고 허망하게 죽어야했던 민족 최대의 비극이었다.
그때
너무도 급작스럽게 죽음을 맞은 사람들은
아직도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거나
실감하지 못해 구천을 떠돌면서 방황한다.
그러고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따스한 체온을 찾아
이 사람, 저사람 기웃거리다가
적당한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몸속에 의지하기도 한다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