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쌀만한 인연의 빚
3년 전쯤 된 일이다.
자신을 공무원이라고 소개한
40대 초반의 손인순(가명) 씨가 우리 연구소를 찾아왔다.
인순 씨는 같은 직장에서
남편을 만나 10년 넘게 살아왔는데
남편이 다짜고짜 아무 이유 없이
헤어지자고 한다며 어쩌면 좋으냐고 하소연을 하였다.
남편을 달래도 보고 설득도 해보았지만
남편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자신의 마음은
이미 정해졌으니 알아서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인순 씨가 결정할 때까지
자신은 본가에 가 있겠다면서 집을 나가버렸다고 한다.
그녀는 슬하에
아들 하나를 두고 지금까지 별다른 문제없이
자신의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하면서 충실하게 살아왔는데,
도대체 남편이 왜 그러는지 이유를 알 수 없어
갖은 고민을 다하다가 연구소를 찾아왔다고 했다.
인순 씨는 지금 자신이 처한 문제의 해결점을 찾기 위해
남편과 자신의 전생인연을 알고 싶다며 리딩을 부탁했다.
그리고 리딩은 시작됐다.
질문: 두사람의 전생인연을 찾아가보십시오.
리딩: 손인순 씨는 1200년 전 태국에 있는
어느 불교사원의 젊은 승려로 이름은' 마하르' 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남편은 그 젊은 스님을 따르는
'요오다' 라는 이름의 무척이나 아름다운 여신도 였습니다.
질문: 그런데 어떻게
그 스님과 여신도가 현생에 부부가 되었습니까?
리딩: 스님은 수행을 하면서 그 여신도에게 진 빚이 있습니다.
질문: 어떤 종류의 빚입니까?
리딩: 여자는 스님을 향한 사모의 정이 깊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시주를 했습니다.
질문: 스님은 여자의 마음을 모릅니까?
리딩: 알았지만 스님은 자신이 추구하는
청정법계의 길을 갈 뿐 일체의 내색을 하지 않습니다.
질문: 그때 스님은 수행정진하시어 큰 깨달음을 얻습니까?
리딩: 아라한( 마음의 자유를 얻은 자)의 경지까지 도달합니다.
질문: 절에서 시주를 받은 것도 카르마가 됩니까?
리딩: 당시 태국의 불교는
소승불교라서 일신의 깨달음을 위해 수행정진했지,
그 깨달음을 통해 중생들을
제도하는 데는 소흘한 면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스님은 많은 불자들에게 시주받았던
시주를 다시 그들에게 되돌려주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빚으로 남았습니다.
질문: 그 빚을 어떻게 갚습니까?
리딩: 보살행을 통해서 입니다.
예를 들면 업력이 두터운 불자의 집에 자식으로 태어나
그들의 업장을 정화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합니다.
또 스님은 법당을 청소하고 있는
두 남녀가 지은 업이 너무나 두터운 것을 보고
그 남녀를 제도하기 위해 그들의 자식으로 태어나는데
그때부터 한국에서의 인연이 시작됩니다.
질문: 어떤 환경의 집에 태어납니까?
리딩: 백정의 집에 태어납니다.
질문: 그들은 백정으로 살아가면서 자신들의 업을 닦습니까?
리딩: 소를 도축하는 살생의 업을 너무 많이 짓습니다.
질문: 백정이 소를 죽이는 것은
그 당시의 사회적 관습에 따른 행위인데
그러한 행위에도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합니까?
리딩: 카르마를 결정하는 것은 행위가 아니라 동기입니다.
그들은 소를 도축하면서
참회하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를 즐겼습니다.
그런 관습의 잔인성과 상통하는 잔인성을
그 자신이 지니고 있었다면
그는 카르마의 원인을 지어 놓게 됩니다.
질문: 그래서 스님은 그 두 사람의
자식으로 태어나 그들의 영혼을 정화시킵니까?
리딩: 그 사람들이 지은 과거생의 업장이
너무 두터워 그 생에서는 다 정화시키지 못합니다.
질문: 그러면 마하르 스님은
언제쯤 그 빚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까?
리딩: 요오다라는 여인에게 진
마지막 빚으로 이번 생이 끝입니다.
질문: 마하르 스님은 요오다라는 여인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서 현생에 부부가 되었습니까?
리딩: 그것은 또 다른 카르마 때문입니다.
질문: 무엇입니까?
리딩: 당시 여자는 스님을 향한
사모의 정이 너무 지나쳐
심한 가슴앓이를 했습니다.
절의 시주 또한 원래의
그 순수한 마음에서 한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현생에서는
성별을 바꾸어 태어나게 되었고,
뒤바뀐 역할을 경험함으로써
그때 진 카르마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질문: 지금 남편이 왜
이혼을 요구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까?
리딩: 은행에서 집을 담보로
돈을 빌릴 때 근저당을 설정하는데,
그 빚을 다 갚게 되면 근저당을 풀 수 있습니다.
바로 이와 똑같은 이치입니다.
스님의 영혼은 현생에 와서
전생의 카르마를 다 갚았기 때문에
지금 남편의 영혼은 그렇게
현생의 인연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지금 남편의 영혼은
고차원적이고 영적인 상태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에
남편 스스로도 자신이
왜 그런 생각과 마음을 가지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두 사람이 현생에 온 목적은 바로 두 사람이
전생에 맺었던인연을 마무리하는 것에 있는데,
이제 그 목적이 다 이루어졌으니
두 사람의 부부의 인연은 그렇게 정리되는 것입니다
질문: 전생에 아라한의 경지까지 올라간 사람이
그 작은 인연의 빚을 해결하기 위해서
다시 이번 생에 왔다는 이야기입니까?
리딩: 그 이후의 여러 생에서도
습기를 제거하기 위한 보살행의 삶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돈ㆍ오ㆍ점ㆍ수라는
네 글자가 크게 보 입니다.
깨달음에는 돈오돈수와 돈오점수가 있다
.
그중 돈오점수는
단 번에 깨달음을 얻었다고 할지라도
아직 습기(전생에서 비롯된 잘못된 습관)의
지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였기 때문에
연속적인 보살행을 통해
차차 습기를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잡초를 제거할 때 뿌리를 놔두고
풀만 베어버리면
다시 잡초가 자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단박에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전생에서부터 각인된
습은 본능적으로 무의식 속에 남아 있으므로
더 깊은 수행을 하여
습의 본질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청화 스님은 수도는 돌 깨듯이 되는 것이 아니며
습기를 녹일 때는 오랫동안 두고두고 녹여야 한다'고 했다.
반면에 돈오돈수란 계ㆍ정ㆍ혜 삼학을 닦아서
무아와 무소유인 반야의 지혜를 강조하는 것으로
천지우주와 부처의
마음으로 합일점을 이룬다는 것이다.
그래서 깨달았다는 그 자체가 더 이상
나아갈 필요가 없는 궁극의 경지이기 때문에
더 이상 도를 닦을 이유가 없다고 보며,
만약 다시 더 닦아야
한다면 아직 깨닫지 않은 것으로 본다.
돈오돈수는 해방 이후
한국불교계의 사상 정립에 주춧돌이 된
성철 스님이 주장하신 주된 깨달음의 이치였다.
그러나 어쨌든 위의 마하르 스님의 이야기에서
보인 깨달음의 이치는 돈오점수의 면이 더 엿보인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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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