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법에 따라 반성을 하고 있을 때는,
수호령, 지도령이 곁에 와서, 본인을 지키고 있다.
마(魔)는 절대로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명상을 끝내면, 금방 잠들 수 있다.
이와 같이 반성의 명상을 계속해 가는 동안에,
수호령, 지도령과의 교류가 시작되고, 대화가 가능하게 되어 간다.
결국 마음의 구름이 맑게 개어,
언제, 어느 곳에 있어도, 수호령, 지도령의 인도가 가능하게 되어 간다.
명상은 제 1 단계에서 제 9 단계까지 있다.
수호령, 지도령과의 대화는, 제 4 단계이다.
제1단계는, 반성이다.
제2단계는, 반성 후의 마음의 통일.
제3단계는 수호령, 지도령과의 교류이며, 그런 다음,
제4단계로 들어간다.
이러한 구별은, 반성을 거듭하여,
마음의 구름을 벗기고,
일상생활에 반성의 결과를 실천함으로써,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제5, 제6, 제7....상승해 가지만,
제6까지 갈 수 있는 사람은 극히 한정되어 있다.
제8은, 여래의 명상이며,
앉아 있으면서 외계의 움직임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환하게 알 수 있다.
제9는, 고타마 붓다, 예수, 모세의 명상이다.
이 명상은 과거세의 수행이 쌓여,
신과 직접 교류할 수 있게 된 사람의 경지이다.
여기에는 여타의 사람은 근접할 수 없다.
과거세의 수행에 의해서,
또한 금세의 덕을 쌓는 것에 의해,
제6단계까지는 누구든지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상의 단계가 되면, 상당히 어려운 것이다.
아무튼 반성의 명상은,
모세도, 예수도, 석가도 실천했던 중요한 수행법이었던 것이다.
(주;
세상에는 노를 젓는 방법은 많이 나와 있다.
하지만 노를 젓는 방향에 대한 가르침은 거의 없다.
심지어는 자기의 직업도 노를 젓는 방법이 아닌가 한다.
목적없이 노를 젓기만 하면 어디로 갈 것인가.......
그렇게 노를 젓기만 하다 보니.
어느 기슭에 닿았는지를 모르겠다는 말도 들린다.
나의 경지(경험한 내용이)가
어떠한 경지인지를 모르겠다고도 하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또 노를 젓기만 하다보니,
일어나는 현상이 어리둥절하기만 할 것이다.
방향이 정확하면,
일어나는 현상은 자신의 생활이 지극히 정상적인, 바른생활이다.
다시 말해서 목적지는,
마음은 평안한 상태이고, 생활은 바른 생활이다.
마음의 원점은
팔정도의 여덟가지의 올바른 길에 대한 올바름의 기준이다.
뜻있는 분들은 참고하시도록...
9. 신은 빛이며 나와 함께 존재한다.
인류는, 신의 자식으로서의 인격을 지니고,
대우주체의 각 세포와 함께,
신의 마음인 대조화로, 유토피아의 건설을 위해서,
영원한 전생윤회(轉生輪廻)를 되풀이하고 있다.
스스로, 더욱 풍부하고 넓고 둥근 마음을 완성하여,
대생명과 조화하기 위해서,
지금도 윤회를 하고있는 도상(途上)인 것이다.
지구라고 하는 장소에 적응한 육체주(肉體舟)를 타고,
우리의 혼*의식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불안정한, 고체적 물질계의 혼란한 부조화한 세계에서,
일초일초 지나가는 중에
여러가지 체험을 쌓아가면서 수행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체험한 일체의 현상, 상념과 행위는,
우리의 의식의 내부에 있는,
기억 연합령(記憶聯合領)이라고 할 수 있는 상념대(想念帶)에 기록되어 있다.
과거세의 체험과 상념도,
잠재된 상념대(想念帶)에, 깊숙히 저장되어 있는 것이다.
이 위대한 보고(寶庫)의 문을 열 수 있는 것은,
신(神)도, 타인도 아니다.
자기 자신의 올바른 상념과 행위의 수양을 쌓아감으로써,
신의 마음과 조화되었을 때,
내재된 불지(佛智)는 열리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마하반야바라밀다’라고 가르치고 있다.
내재된, 위대한 지혜에 도달한다는 뜻이다.
의식계는, 3차원의 물질적인, 고체적 불안정한 세계와는 달리,
가장 정묘하게 모든 것을 만들어 내는,
실재의 세계이며, 고차원의 세계이다.
스스로 구해서 편협하지 않은 (팔정도로) 인생항로를 건너는 수행자는,
결점을 진솔하게 인정하고,
집착이 없는 반성을 해서, 항상 전진해야 한다.
스스로의 마음속의 위아(僞我)를 극복할 수 있는 자야말로,
진실로 선아(善我)를 깨달은 용기있는 자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고차원의 세계로부터,
스스로 부모와 출생지를 선택하여,
육체선조로부터 계승되어 온 육체라는 배를 타고,
혹독한 장님의 인생을 체험하고 있는 수행자이다.
투쟁도 파괴도,
인류가 신의 자식으로서의 자각을 잊어서 만들어 내고 만,
부조화한 상념의 산물임을 알아야 한다.
멀지 않아 인류는,
모두 동포라는 위대한 불지(佛智)에 눈뜨고,
공존공영의 유토피아를 스스로의 손으로 건설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부조화한 혼란은,
오랜 역사 속에서 인류가 만들어낸 업(業=카르마)이지만
언젠가는 그 어리석은 부조화한 모든 현상으로부터 탈피하여,
인간은 신의 자식이라는 존엄을 자각하여,
스스로 풍부한, 신의 뜻에 따른 큰 자비로 넘치는 마음을 만들어 갈 것이다.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지상계의 혼란과 미망은,
이윽고 다가올 신의 나라, 광명의 세계에 이르는 발판인 것이다.
역사의 과정 속에서, 혼란을 만들어 낸 부조화한 자들의 행동을,
우리는, 태어나는 전세(前世), 실재계에서 지켜보면서,
선배들의 잘못을 두 번 다시 범하지 않는다고,
마음에 맹세하고 태어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실을, 육체주를 타고 태어났을 때부터 잊고 만 것이다.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