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떼도둑의 밤-무갈사라이역에서 아그라포트역까지
자다 깨다 본 버스 밖 풍경은 안개가 자욱한데 나트륨등 불빛을 받아 붉은 빛이다.
한시간 삼십분 걸려 도착한 무갈사라이 역 앞도 여느 역이나 마찬가지로
밤길을 떠나는 사람들로 광장이 가득하다.
당연한 듯 열차는 연착하고 쉴 데 없는 우리를 위해 버스는 역에서 더 머무르다 가기로 한다. 이런 것이 인도의 친절이다.
역에 내려놓고 가버리면 그만인데.......
무갈사라이 역은 광장과 대합실과는 달리 한가하다. 사트나역에서 보았던 아수라장을 연상했던 나는 오리려 어리둥절하다.
우리가 예매한 표는 무갈사라이역이 아니라 그 전역에서 출발하는 표라 빈자리로 이곳까지 온다.
그런데 인도열차는 차내에서 매표도 이루어지기 때문에 우리 자리를 누군가가 차지할 수도 있다.
우리자리가 비어서 오니 누군가 대기표를 가진 사람이 열차승무원에게 자리를 구매할 수도 있는 것이다.
만일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한자리에 두 명이니 서로 싸움이 날 수도 있다.
이런 일이 일어날까봐 은근히 걱정이다.
사트나에서 바라나시로 올때도 가이드 산티 자리가 이런 문제로 다툼이 있었고, 한자리에 둘이 앉아서 왔다.
아무리 형편없는 자리라도 누울 수 있는 거와 앉아서 오는 것은 천지차이다.
인도에선 정차하는 플랫폼이 수시로 바뀌어 항상 긴장을 하고 있어야한다.
여기서도 기차가 도착할 때쯤 플랫폼이 변경 되서 허둥지둥 짐을 챙기고 급하게 옮겨간다.
근심걱정과 달리 도착한 라젠드라나가르 특급기차는 여기저기 자리가 비어있다.
워낙 많은 일행이라 같은 칸에 다 타지 못하고 여기저기 흩어졌는데 다행히 열 명 정도가 붙어있어 마음이 편하다.
사람이 적어 한가해 쾌적한 느낌과는 달리 기차는 낡아 천장에는 큰 구멍이 뚫려있고 창문은 크게 틈이 벌어져 있다.
뚫린 천장으로 쥐가 튀어나올 것 같아 박스를 뜯어 테이프로 봉하고 창문도 빈틈없이 공사를 한다.
그래도 두 번째라고 첫 번째보단 충격도 덜하고 자리 잡는 것도 수월하다.
승무원의 검표가 있고나서 가볍게 한잔한다.
인도사람들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술 마시는 사람을 그렇게 혐오한다고 하지만,
그들이 더러운 강가 강물을 마시는 것을 뭐라하지 않듯 그들도 우릴 탓할 순 없다 여기가 아무리 인도라해도.
여행의 고생이자 낭만인 이런 야간열차에서의 한잔은 빼놓을 수 없지 않은가?
두런두런 지난 이야기를 안주삼아 마시고 잠자리에 든다.
술은 마셨어도 잠은 깊이 들지 못하고 꿈결인 듯 아닌 듯 바퀴소리를 들었다 놓았다 하며 달려간다.
기차는 한참동안 서있기도 하고 고속으로 달리기도 한다.
그렇게 자며 깨며 가는데 누군가가 나를 흔든다.
눈을 깨어 처다 보니 다른 칸에 탄 일행이 가이드를 찾는다.
뭔 일인가 했더니 드디어 염려하든 일이 터졌다. 시계를 보니 3시30분이다.
와이어로 묶어놓은 트렁크 두 개를 훔쳐간 것이다.
외국인인 우리 일행 것만 노린지 알았는데 그 칸 전체가 다 털렸단다.
아예 작정을 하고 열차를 습격한 전문털이범의 소행인 것이다.
이미 일은 벌어지고 내가 할 일은 없어 다시 누워 자고 있는데, 이번에는 가이드 산티님이 나를 깨운다.
내가 덮고 있는 침낭이 군복 색이라 인도 경찰이나 승무원으로 착각한 것이다.
이들에게 경위서나 확인서를 받아야 도착지 경찰서에 가서 도난신고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승무원은 이런 일이 생기면 책임추궁이 두려워 어딘가로 숨어버린다.
그렇게 숨은 승무원을 찾고자 샨티님은 30량도 넘는 기차를 모두 뒤지고 다니신다.
사람의 마음이란게 사건이 터지면 일단 그 자리만 피하고 보자는 것은 한국이나 인도나 거기서 거긴 것 같다.
그렇게 밤은 깨다 졸다를 반복하고 해는 뜨는지 마는지 알게 모르게 날은 밝았다.
해가 뜨니 자리를 정리하고 깨어있는데 정신이 개운치가 않다.
그간 여행의 피로도 쌓이고 지난밤의 소동 때문에 더 그런 것 같다.
해가 떠 도난 사건이 잃어난 칸으로 가니 적막한 게 초상집 분위기다.
희한한 것은 인도사람들의 반응인데 이들은 잃어버리고도 경찰에 신고할 생각도 못한다.
신고하면 오히려 경찰에게 혼난단다.
계급제도가 남아서 그런지 책임소재를 잃어버린 사람에게 돌리면서 왜 귀찮게 하냐는 반응이 대부분이란다.
외국인인 우리는 큰 소리 치지만 저들은 꿀 먹은 벙어리마냥 벙어리 냉가슴 앓듯 조용히 앉아 있다.
중국인도 가방을 도난당했다는데 말도 안통하고 일행도 없어서인지 막막한 심정으로 앉아있다.
원래 일정표에는 오전 7시 30분에 도착하는 것에서 한 시간 정도 연착을 예상했는데
지리를 모르는 내가 봐도 도착은 아직 멀었다.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도 다들 언제 도착할까 묻는 사람은 없다.
그저 희망 섞인 시간을 말할 뿐.......
날이 밝으니 기차 안 풍경은 바라나시 갈 때와 거의 비슷하다.
간단한 기예를 선보이고 구걸을 하는 앵벌이 남매도 보인다.
바닥을 기면서 청소를 하는 아이가 있는데, 자기 입은 옷을 걸레삼아 바닥을 쓴다.
그렇게 하고 그 좌석에 앉은 손님에게 팁을 받으면 좋고 못 받아도 열심히 쓸고 간다.
신기료장수가 많이 올라타는 것도 바라나시 가는 열차와는 다른 풍경이다.
오랜 연착에 무료한 열차 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바깥 경치를 보는 것도 잠깐이다. 인도에서 가장 큰 평야를 달리는 열차의 바깥 풍경은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틀어주는 무성영화처럼 금방 지겨워진다.
아침 꽃단장을 한 일행도 다시 삼층 침대칸에 올라가 잠을 잔다.
꼼짝 않고 자는 그 모습이 놀라운데 침대 바깥으로 삐져나온 두 다리를 보니
어젯밤 장작위에 올려진 여인의 두다리가 오버랩된다.
죽음처럼 자는 잠이 저런 것이구나?
죽음과 잠이 다른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뒷자리에 앉은 가족은 이런 장거리 여행에 이골이 났는지 커다란 대광주리에 먹을 것을 싸왔다.
다른 칸에도 일행이 있는지 모여서 아침을 먹는 풍경이 정답다. 인도사람들은 아침을 간단히 먹는다는데
이들이 먹는 것을 보니 꼭 그렇다곤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아이가 귀여워 초컬릿을 주는데 받질 않는다.
몇 번을 권해도 받질 않아 손에 쥐어주니 그제서야 수줍은 미소를 짓는다.
초콜릿 루피를 외치며 손 벌리고 쫒아다니든 아이들이 생각난다.
아그라를 들어서니 여무나 강에는 빨랫감을 휘두르는 세탁부들이 분주하고,
강가에는 색색의 침대시트가 일광욕을 하고 있다.
여덟시간 예정이었던 열차여행은 총 열세시간이나 되어서 마친다.
드디어 아그라포트역에 내린다.
아! 인도 철도청장의 이름이 생각난다.
좌절된 영생에의 꿈 타지마할
아그라는 공업도시답게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낮 시간인데도 엷게 스모그가 끼어있다.
하루 일정으로 아그라를 돌아보려든 계획의 반은 열차가 잡아먹었으니 그만큼 포기하든 뭔 수를 내야한다.
점심을 먹자는 사람도 없고 먹으려는 생각도 없는지 바로 인도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타지마할로 간다.
타지마할은 공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1.5킬로미터 반경 내에서는 천연가스 차량이나
말 또는 자전거만 운행할 수 있게 해놓았다.
버스 주차장에 내려 마차를 타고 매표소 까지 간다.
여기서도 어김없이 일인당 100루피를 마차 당 100루피로 바꿔 놓고 6명이 한 마차에 올라타고 가는 데
나머지 30명은 버스 한 대에 100루피로 간다.
그 명성답게 입장료가 비싸다는 다른 곳의 세배인 750루피다.
입장료는 250루피지만 이곳만 500루피의 문화재보호기금을 추가로 더 내야한다.
인도에 가기 전 달러의 굴욕이란 제목의 신문기사처럼 다른 관광지와 달리 루피로만 계산한다.
그러나 사르나트의 경우처럼 달러로 받다간 입장료만 끊는데 날 샐 것 같다.
그만큼 외국인 관광객이 많고 위조지폐의 공포도 클 테니 이런 입장이 이해된다.
신문이 너무 자극적인 제목으로 제 입맛에 맞춘 추측기사로 보여 진다.
(타지마할 동문 앞 좌측으로 매표소가 보이고 오른쪽에 가방보관소가 있다.)
표를 끊는 동안 그 앞 노점에서 사모사 몇 개를 사서 요기를 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굶고는 못 본다.
많은 사람들이 다가와 화보를 사라고 하거나 자기 집 상품을 구경하라고 극성이다.
인도제일의 관광지답지 않게 컨테이너 박스를 개조한 화장실에 돈을 받고 있다.
표를 받고 줄을 서 있는데 검표직원이 나를 보고 저리로 가라는 손짓을 한다.
난 뭔 소린가 하고 이놈아 내가 새치기도 안했는데 뭔 소리냐는 표정으로 멀뚱멀뚱 처다 보니, 너 여자냐고 묻는다.
엥 이게 뭔 소리 이상해서 재빨리 앞뒤를 살피니 인도 여학생들이 재밌다 는 듯 웃는다.
그리고 앞을 보니 입구에 레이디라고 쓰여 있는 푯말이 있다. 남녀가 유별한 인도였던 것이다.
옆에 외국인 전용 입구가 따로 있어 그리로 간다.
타지마할 입장 시 가방을 가져갈 수 없다. 또한 금속물질도 가져갈 수 없다.
타지마할 대리석벽에 기념으로 낙서를 하는 사람이 있었나 보다.
생수 한 병과 영묘와 사원에 들어갈 때 신발을 감쌀 덧신을 준다.
우리는 동문을 통해 앞뜰(바깥뜰)로 들어간다. 맞은편에 서문이 있고 영묘와 일직선상에 남문이 있다.
좌우에 회랑이 길게 있는 입구는 멀리 안뜰로 들어가는 커다란 남문이 비껴 보여 기대감이 증폭된다.
안뜰로 들어가는 입구인 남문에 새겨진 문양도 아름답다.
코란의 글귀가 문을 둘러싸고 대리석을 파내어 색색 돌이나 준보석으로 채워 넣은 상감기법(이들은 이를 피에두라 두라라 한다.)
의 꽃문양도 아름답고 돔 천장을 수놓은 단순한 기하학적 무늬도 눈을 사로잡는다.
이건물 자체로도 훌륭한 구경거리인데 타지마할에 대한 기대로 단지 지나가는 문으로만 대접받는다.
너무 뛰어난 놈 옆에 있어 제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고나 할까.
문을 들어서니 보이는 타지마할은 사진으로 보던 그 모습 그대로이다.
사진과 실제가 다른 경우가 많아 실망을 하기도 하는데 여기는 사진과 너무나 똑같아 오히려 감흥이 크게 일지 않는다.
사진으로 왜곡시키거나 과장할 수 없는 완벽한 절대 아름다움이라 그런가?
(앞에 사람들이 많은 곳이 정원의 중심부인 연못이 있는 곳이다)
안뜰은 페르시아 정원 양식으로 되어있다.
페르시아의 세계관을 나타낸 것인지 쩌르버그란 이 양식은 평면을 사분할하고
그 중심에 하나의 공간을 두는 구조인데 수로로 그 구획을 나눴다.
중문을 통과하여 보이는 정경은 물길 옆으로 열을 지어 늘어선 나무들이 마치 부복하고 서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저 멀리 보이는 영묘는 아득하게 먼 느낌이라 신비감을 높인다.
정원의 중심 연못이 영묘를 바라보는 가장 좋은 자리이다.
이곳을 지나면 묘의 크기는 점점 커져 크기로 사람을 압도하며 한눈에 들어오지 않아 위압감마저 풍긴다.
영묘의 중앙 돔은 애드벌룬 같아 하늘로 떠오르는 상승 감을 주는데 그 옆에 서있는
네 개의 미나르(첨탑)가 그 상승감을 적당히 상쇄하여 지상에 붙잡아 두는 역할을 한다.
언제든지 천국이 열리면 바로 공중 부양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는 열기구와 같은 형상이다.
무슬림들은 죽은 이후에도 최후의 날 심판의 날까지 묘에 머물다가 마호멧의 심판을 받아
천국으로 들어간다고 믿는다.
살아서 사는 생은 고작 길어야 100년이지만 최후의 날까지 살날은 무한할 수도 있으니
이들은 살아서의 집보다 죽어서의 집이 더 중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심판의 날에 영생을 얻으리라는 그의 바람은 너무나 헛된 꿈이었을 것이다.
묘 안으로 들어가는 문에 온통 심판의 그날에 대한 코란의 구절을 새겨놓았지만
어찌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일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려울 것이라는
말의 뜻을 새기지 못했을까?
심판의 그날 마호멧 앞에 서기도 전에 샤 자한은 그의 아들 아우랑제브에게 심판을 받았으니
사랑을 물질로 처바른 그의 행동 때문이었으리라.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크기는 사진이 주지 못한 크기에 대한 놀라움과 위압감까지 더한다.
좌우대칭이 아닌 점대칭의 완벽한 그 구조에 무엇을 더하고 무엇을 뺄 수 있을까?
너무나 완벽한 그것에서 세세한 장식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타지마할 벽을 수놓은 대리석 부조의 그림과 상감기법으로 그린 그림들, 준보석을 이용해 꾸민 벽과 바닥 등등
그 자체로 많은 볼거리를 주는데 그야말로 장식에 지나지 않는다.
아름다운 여인에 눈 뺏긴 사람이 그녀가 입은 옷이나 장신구에 눈 돌릴 여유가 있을까?
전체의 모습이 강렬해 그 세세함에 마음을 쓸 겨를이 없어 영묘 내부모습이나 그 벽에 새겨진 문양들엔 눈길한번 주고 돌아 나온다.
내부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어 매우 혼잡하다.
시장바닥 같은 혼잡함이 빨리 그곳을 벗어나게 했는지도 모른다.
결국 여기서 허리에 차고 다니든 조그만 카메라를 잃어(?)버렸다.
물론 나중에 타지마할을 나갈 때 알게 되었지만
잃어버린 카메라도 아깝지만 그 안에 들어있을 300컷 정도의 사진이 더 아깝다.
오가다 찍은 스냅사진들이라 내가 느낀 인도가 더 많이 담겨 있을 그 사진들.
(타지마할 뒤를 흐르는 여무나강 저멀리 스모그에 가려진 아그라성이 있다.)
이 무덤을 설계한 사람은 뭄 타즈의 관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우주를 표현했는지 모른다. - 물론 시신은 그 관이 놓인 지하에 따로 있지만.
그러나 샤 자한의 관이 그 옆에 놓임으로써 그 대칭의 힘의 균형은 깨졌다.
따로 자신의 무덤을 만들려던 그의 계획은 아들 아우랑제브에 의해 좌절되고 그는 그 부인의 옆에 눕는다.
그가 그렇게 영생을 바라던 뭄타즈는 그 옆에 놓인 그의 관으로 인해 대칭이 깨지고 그녀를 축으로 돌던 우주는 회전을 멈춘다.
흑색 묘를 만들어 영생을 꿈꿨던 부부는 같이 누워 영원한 잠에 빠지니 하나를 잃고 하나를 얻는다.
이들은 왜 이렇게 대칭에 집착했을까?
선대칭도 아닌 점대칭의 완벽함속에서 추구한 것이 단지 아름다움 때문이었을까?
완벽함속에서 추구한 것은 영원성이 아닐까?
끝없이 계속되고 지속되는 순환을 대칭에서 찾은 것은 아닐까?
어디에서 보건 변함없는 것 언제보든 무엇에 가려져 있든 그것만 치우면 항상 같은 것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바로 불멸 아닐까?
불멸이니 바로 영생이다.
너무 커서 너무 넓어서 너무 높아서 어디서 보든 차이를 못 느끼는 것이 도라고 노자는 말했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바로 자연이요 하늘이다.
어느 땅에서 보든 하늘은 하늘이요 어느 땅에서 보든 태양이요 달인 것처럼
그렇다면 이들 무굴인이 지은 것은 궁전이나 무덤이 아니라 우주요 하늘이 아닐까?
그 기운을 받아 영생을 하는 영원의 집.
물론 무굴인이 믿는 이슬람교의 건축이 이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겠지.
신상을 만들지 않은 무슬림은 메카를 향해 예배한다. 메카의 중심에 서 있는 사원을 전 세계 무슬림들이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누구에겐 이런 모습을 또 다른 곳의 누군가에겐 저런 모습을 보일 때 종교의 완전성이 훼손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전 세계 어디에서 보아도 같은 모습인 건물을 지어야 하지 않았을까?
누구에게나 평등한 종교적 사랑을 표현하기에 대칭인 건물보다 더 좋은 건축물은 없었을 것이다.
타지마할 옆에는 두 개의 건물이 있다. 타지마할을 중심으로 선대칭을 이루고 있는 이 건물 중 하나는 메카를 향하고 있는 지성소를 갖춘 사원이고, 하나는 영빈관이다.
이사원에 들어서니 오히려 세부문양이나 구조들이 눈에 들어온다.
(벽에 양각한 부조의 꽃그림과 상감으로 처리한 꽃그림이 벽을 장식하고 있는 대표적 양식이다.)
타지마할에서는 안보이든 것들이 보인다는 것이 신기하다.
외관에 압도된 마음이 세부를 돌아볼 수 없게 했던 것처럼 수수하고 평범한-타지마할에 비해 그렇다는- 외관이
마음에 여유를 주어 그 안에 것들을 보게 한다.
타지마할을 보면서 내내 뭔가 가슴이 꽉 막힌 것 같은 불편한 마음이 있었는데 너무나 완벽하여
흠잡을 데라곤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없는 그 건물을 보고서 들었던 불편한마음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그것은 그가 갖는 완벽함과 그 크기에 눌린 위압감 때문인 것 같다.
바늘로 콕 찔러도 어디 한군데 들어갈 구석이 없는 완벽함 그 자체에 내 마음도 부칠 곳이 없는 것이다.
마음을 주려해도 줄 곳이 없을 때 느끼는 불편함 바로 그것이다.
같이 간 법명 스님이
“타지마할 어때요”
“다음에 또 온다면 이곳을 들르시겠습니까?”
물으신 그 의미
타지마할은 한 시간이면 충분하고 다음에 갈 아그라포트는 더 많은 시간을 갖고 봐야한다는 말씀이 내가 불편한 마음을 가질 것을 예견하고 또 보았음인가?
너무 완벽한 건축물 타지마할에서 나는 오히려 달항아리 찌그러진 원이 주는 여백을 그리워한다.
달항아리 유백색의 아름다움 속에 빠져들 수 있는 그 공간을 그리워한다.
(잔디깍는 기계를 매고 있는 소, 인도에서 소도 일을 한다는 것을 이때 처음 알았다.
길거리를 어슬렁대는 소들도 다 주인이 있어 때가 되면 젖도 짜고 할일은 한단다. )
“글쎄요 스님 안 올 것 같아요”
말은 했지만 그것은 모를 일 시간에 쫒기는 이런 급한 마음이 아닌 타지마할에 걸터앉아 밀담을 나누는 인도의 연인처럼
느긋한 시간을 갖고 즐긴다면
타지마할은 그 완벽함속에서 한쪽 문을 열고 나를 들여놓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기대를 안고 떠난다.
타지마할안에서 만난 인도인들은 모두 부유하고 행복해 보인다.
이곳에 올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인도에서 복받은 축에 드나보다.
입고 있는 사리도 화사하고, 얼굴에 짓는 미소에도 어두운 구석이 없다.
중문을 나서니 일행들이 모여 있다.
열차에서 가방을 잃어버린 두 사람도 경찰서에서 조서를 꾸미고 합류해있다.
다시 증인들을 데리고 가야한단다. 애써 밝은 표정을 짓는 그 분들을 보니 마음이 무거워진다.
똑딱이 카메라를 잃어버린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그분들을 위로할 말을 찾기가 어렵다.
동문을 나와 일행이 가방을 찾기 위해 기다리는 데 쓰레기통을 뒤지는 소가 있어 눈길을 끈다.
쓰레기통을 열고 머리를 디밀어 먹이를 먹는 어미 소 곁에 송아지가 젖을 물고 있는 모습을 보니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물고기가 그려져 있는 사찰 벽화가 생각난다.
동물도 저러한데 샤 자한 이들 집안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아버지를 폐하며 골육상쟁을 벌였으니
대리석 영묘 안에 누워 있는 삶과 저 소들의 삶 어느 것이 진정 나은 삶인지를 생각게 한다.
첫댓글 무굴제국의 영원함을 빌었다고 책에서 읽었습니다. 아무리 그러해도 너무나 완벽한 아름다움을 우리는 어떻게 표현하지 못했을 겁니다....오늘도 타지마할 이곳에 발길 머무릅니다. 그리고 다음에 또 갈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가방이 없어진걸 젤 처음 발견한게 저 였으니~..짐이 없어졌다고 소리를 지르는 순간에도 믿겨지지 않았었지요~~..그 뭐라 말 할수 없었던 순간들도 다 지나가고...나니...큰 대가 치루고 그것도 추억이라면 추억을 얻었겠지요~.....//타지마할...안보면 안될거 같은 곳이면서도 보고나서 별반 감흥이 없는...청한님처럼 여백을 찾아 서둘러 나와 밖에서 보낸 시간이 많았던..참 이상하지요~~..모놀님들의 후기를 읽다보면 거의 같은 생각들을 하는거 같아요~...고개 끄덕이며 즐겁게 읽었습니다~~ㅎㅎ..
청한님과 불침번 슨다고 쏘주.양주먹은것이 술에취해 공기에취해 인간에시달려..밤새도록 마시다가 새벽녁에 눈좀붙일랑께 웃는돌이 헉헉 거리고와 아이고 성님 가방이....오전내내 비실거리고..그리워질라고 합니다..
첫 열차에서는 오동추님이 저희팀 맞은편 침대에서 밤새우셨지요. 등만 대면 잠들것 같은데 예민한 남자..오동추님.ㅎㅎㅎ
참언니 답글이 아닌거 같어~ㅎ..
우왕좌왕~~ 정신없이 보낸 여행이었는데 청한님의 후기를 읽다보면 천천히 차근 차근 보는 느낌이예요. 한참 자고 있는데 가방이 없어졌다고 나직한 비명을 지르던 들바람님 목소리랑, 완벽함에 호흡이 멈춰지던 타지마할이랑...다시 그려집니다.
역시 청한님의 후기는 차근차근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어요^^
무갈사라이 역 광장에서 '우리 집에 왜 왔니?' 놀이도 하고 플랫홈에 들어가서 양주도 한 모금씩 나눠마시며 흥에 겨웠던 그 시간들이 우리를 시샘했던 것인지 밤새 웃음을 앗아가버렸던 아픈 기억에 pony님과 옷는 돌 님을 떠올립니다. 잘들 계시지요? 전 타지마할과 아그라성을 몽롱한 채로 부유하듯 힘알탱이 없이 다닌 터라 그저 느낌을 잡아내기 어려웠어요. 님들 덕분에 사진과 글을 통해 그나마 다시 음미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여행을 다니는 데도 다들 취향이 있는 게 지요...
그 밤을 생각하면....화장실 가고 싶은데 시커먼 남자들 서성이는 통에 혼자 갈 수도 없고..배가 터지는 줄 알았다니까요...내 배터지는 거보다 더욱 기막힌 일이 생기고야 말았지만...
"죽음보다 깊은 잠"이라는 박범신의 소설이 생각 납니다. 아침일찍 야무나 강가에서 타지마할을 볼 수 있었더라면.. 아님 해지는 야무나 강에서 한번 바라 볼 수 있었더라면 참 아쉬움이 많은 곳이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