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8일 중국 베이징 궁런경기장에서 열린 한중 축구국가대표 정기평가전 당시
한국인 관중들에게는 무슨일이 있었을까.
8월 사이버 세상에서는 이 문제가 한여름 날씨보다도 더 뜨겁게 달아 오르고 있다.
특히 7일밤 연세대 홈페이지에 일본의 스포츠신문기자가 썼다는 글이 올라 오면서 네
티즌들의 분노는 극에 달하고 있다. 동아닷컴 특별취재팀의 확인 결과 일본기사는 조
작된 것으로 드러났으나 폭력사건은 9일 오후 현재 부분적으로만 확인될 뿐이다.
▼경과▼
현재 대부분의 언론, 스포츠 관련 인터넷 사이트의 게시판을 도배하고 있는 이른바'중
국 훌리건'논란은 경기를 관람한 한 중국 유학생이 지난달 29일 PC통신에 '중국에서
겪은 중국인들의 난동'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리면서 시작됐다.
국내 PC통신 게시판에 올려진 이글은 순식간에 인터넷 사이트로 옮겨졌고, 몇편의 다
른 내용의 글도 함께 알려지기 시작했다.
국내뿐 아니라 주중 한국대사관의 홈페이지 '영사민원접수'란에도 29일 비슷한 내용의
글이 올라오면서 교민의 항의가 빗발쳤다.
그러나 이후 더 이상 피해자가 나타나지 않고 사실여부도 확인되지 않아 네티즌의 관
심은 멀어져갔다.
8월 7일 밤부터 8일 새벽 사이, 수천 네티즌들이 돌연 이 사건과 관련해 주중국한국대
사관, 언론사 등의 홈페이지에 분노에 가득한 글들을 올리기 시작했다.
'중국 훌리건' 사건의 재폭발 원인은 바로 7일 오후 9시 53분에 등록된 연세대 홈페이
지 자유게시판의 글.
'일본 닛칸스포츠 신문에 난…한중전…관련기사[퍼옴]'이라는 제목의 글은 잠시 소강
상태를 보이던 네티즌의 감정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내용이었다.
'asura'라는 아이디의 네티즌이 올린 이 글은, 9일 오후 현재 무려 550건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이 글은 각 대학의 홈페이지를 시작으로 대부분의 인터넷 사이트를 도
배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일본기사는 조작된 것▼
닛칸스포츠 모리야마기자의 칼럼 형식으로 돼 있는 이 글은 "중국관중들은 이영표(24
·안양LG) 선수가 한골을 성공시킨 뒤 환호하는 한국응원단을 향해 쓰레기 봉지 물병
오물등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들은 한국관중들에게 발길질은 예사였고 태극기를 빼앗
아 발로 뭉개기까지 했다. 1대0 한국 승리로 경기가 끝난뒤 서둘러 경기장을 빠져 나
가는 한국응원단을 수천명의 중국인들이 에워싸고 발길질 주먹질을 했다. 제일 충격적
인 것은 여자의 머리를 붙잡고 땅으로 끌고 가슴을 발로 짓누르는 등 눈뜨고 보기 힘
든 참혹한 모습이었다”는 게 요지다.
이글이 특히 네티즌을 흥분시킨 것은 '한국 정부의 주권상실', '한국언론의 보도통제'
, '한국여성에 대한 집단폭행' 등의 자극적인 내용 때문이다.
그러나 동아일보 심규선 도쿄특파원의 현지 확인 결과 닛칸 스포츠에는 모리야마라는
기자가 없으며 닛칸스포츠는 한중전 당시 중국에 취재 기자를 보내지 않았고 관중 난
동사건에 관한 기사를 보도한 사실도 없다는 것.
이처럼 혼선이 빚어진데는 당일 한국기자들이 현장에 없었다는 사실이 주원인이 됐다.
▼한국기자들은 어디에▼
당시 한국기자들은 경기장내 기사 송고시설이 없어 호텔로 철수, TV를 통해 경기를 보
고 송고하는 바람에 현장을 목격하지 못했다.
28일 한중전을 취재한 4개 스포츠신문 축구기자들은 모두 폭행사건에 관한 소문을 중
국현지 혹은 서울에 도착해 들었으나 현장에 없어 확인할 길이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A사 기자는 이와 관련해 "28일 중국측이 구장 내에 전화선 등 취재여건을 마련해주지
않아 한국기자들은 전반전만 관람하고 나와 호텔에서 기사를 전송했다"며 "서울에 도
착해 경기종료후 폭행사건 소문 얘기를 들었으나 당시 현장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확
인이 어렵다"고 말했다.
B사 기자는 "유사한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28일 밤 전해들었지만 사실 확인은 못했다"
며 "들은 바에 의하면 당시 상황이 경기 종료 후라 사실이라고 해도 이를 목격한 한국
기자는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C사 기자도 "28일 저녁 마찰이 있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당시 현장에 없었으므로 확
인 취재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D사 기자 역시 "얘기는 들었지만 현재 알려진 것만큼 심각한 수준의 폭행은 아니었던
것으로 생각한다"며 "라이벌 국가간 경기때 흔히 있는 마찰 정도로 알고 있다"고 말했
다.
결국 당시 현장 상황을 얘기해 줄 한국기자는 아무도 없었다.
동아닷컴 취재팀은 인터넷사이트 검색과 현지와의 전화인터뷰 등을 통해 확인취재를
시도했으나 폭행이 부분적으로 있었다는 정황은 충분했으나 구체적인 피해사례는 많지
않았다.
▼폭행상황▼
△"심각했다" - 인터넷 사이트에서 퍼지고 있는 글에는 "4천명정도가 우리 8명을 둘러
싸고 겁을 주었다. 주먹으로 얼굴을 맞아 안경이 깨지고 깃발에 허리를 찍혔다. 돌도
날라오고, 난 벽돌이 날라오는 것을 겨우 피했다."<정우영(china), 7월 29일>
"저는 눈 핏줄이 터졌고 아는 형은 1000명한테 깔려 죽을 뻔했습니다. 어떤 한국사람
들은 병원까지 실려갔다."<박재영(hongdeema), 7월 29일>
"공포에 질려 아무런 말도 없이 서있는 여학생을 밀어서 넘어지게 하고 무릎과 팔꿈치
배에서 피를 흘리던 여학생은 그냥 울 수 밖에 없었다."<이동윤(deri),8월 3일>는 등
의 내용이 있으나 확인은 불가능했다. 이들과의 직접 인터뷰도 이뤄지지 못했다.
△"심각하지 않았다" - 그러나 경기를 직접관람했던 중국현지 한국인들은 '비일비재한
일'이라는 반응과 함께 이번 일로 인한 양국 국민감정악화를 우려하는 분위기였다.
재중국한국인회 종철수 사무국장은 "야유를 하고 깡통과 돌을 던지는 등의 행동은 중
국인들이 중국 프로축구를 관람할 때 손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현장에 있었던 '붉은악마' 중국응원단 단장 유영훈씨는 "당시 한국응원단은 좌석배치
상 여러 군데 떨어져 앉아 다른 쪽에 앉은 한국사람들의 상황은 알 수 없었다"며 "당
시 응원현장에 있긴 했지만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조차 몰랐고 서울에 와서 이런
내용을 접했다"고 말했다.
유씨는 또 "응원 온 현지 유학생들과는 경기장 앞에서 헤어졌기 때문에 그들이 집에
돌아가는 길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덧붙여 유씨는 "당시 붉은악마 응원단도 중국인들 사이에서 응원했기 때문에 욕설을
듣거나 물병을 맞는 일은 있었다"며 "중국의 낙후된 응원문화를 볼 때 폭행사건의 가
능성을 완전 배제할 순 없다"고 추정했다.
유씨는 또 '붉은악마' 응원단은 작년 상해에서의 경기때 응원경험이 있어 중국의 분위
기를 알기 때문에 일부러 붉은 옷을 입지 않고 응원도 자제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해
서 중국인들과 마찰이 없었다고 밝혔다.
▼대사관과 한인회의 조치▼
주중국 한국대사관은 7월 31일 홈페이지 게시판에 "7·28 저녁 북경공인운동장에서 개
최된 한중축구정기전 종료후 중국축구팬들이 응원나온 아국인 축구팬들을 향해 집단
폭행을 하고 욕설을 한데 대해 당관은 7·31부로 중국 외교부에 유감을 표하는 서한을
송부하고 향후 유사한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라는 글을 올렸다.
또한 대사관측과 재중국한국인회측은 홈페이지에 전화번호와 팩스, 이메일주소를 남기
고 피해사례를 접수하고 있으니 신고를 바란다는 내용을 덧붙였다.
박노완(주중국 한국대사관)영사는 "경기 후 집단적인 구타가 이루어졌다는 내용을 확
인하기 위해 피해접수를 받고 있으나 아직 1명만이 전화로 신고했을 뿐"이라며 "조사
가 끝나는대로 11일경 다시 중국정부에 강력한 항의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사관에 신고한 장좌환씨에 따르면 벽돌이 날아와 북경대에 다니는 한국 유학생 1명
이 머리가 찢어져 병원으로 옮겨지는 것을 장씨의 아들 일행이 목격했으며 또 친구 7
명과 경기장을 나가는 도중 중국 관중들로부터, 발로 차이고 구둣발로 머리를 밟혀 한
친구가 눈을 심하게 다쳤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네티즌은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대사관에서 피해를 접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못한다"며 "형식적인 사고 조사일 뿐"이라고 불만을 나타냈다.
▼축구협회 공식입장▼
당시 한중전을 관람했던 대한축구협회 김형룡 차장은 "협회 임직원 여럿이 현장에 계
속 있었지만 이같은 일은 목격하지 못했다"며 "떠도는 얘기들은 거의 사실이 아닌 것
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차장은 "사실 확인이 된다면 중국측에 공식 항의서한도 보내고 하겠지만 확인조차
안되고 있는 상태에서 지금은 어떤 조치도 할 수 없는 상태"라고 축구협회의 입장을
밝혔다.
김차장은 또 현재 이와 관련해 시민들의 전화가 폭주하고 있어 업무에 혼선을 빚고 있
다고 털어놓았다.
김차장은 앞으로 우리나라 응원단의 해외원정시 이러한 사건이 실제 일어날 것을 대비
해 보호책을 마련하는 등 사전준비를 철저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관전태도 수준이하, 폭행은 일부사실▼
이상과 같은 취재 결과를 종합해 볼때 당시 중국관중들은 한국관중들에게 병 돌 오물
등을 던지고 욕설을 퍼붓는 등 수준이하의 관전태도를 보였다.
또 축구협회와 대사관 한인회 관계자 '붉은 악마' 등이 모여 있던 곳보다는 현지에 거
주하는 유학생등이 몇명씩 모여 있던 곳에서 더욱 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수천명의 중국관중들이 수십명의 한국관중을 집단폭행했다는 주장은 확인이 어려
우나 일부 유학생 등이 경기장 밖으로 나갔을 때 상당한 폭행을 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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