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릉2리 외갓집을 출발,
이만 구천보,17.1km를 걸어 용수성지
聖 김대건 신부 표착지 기념관에 도착 하였습니다.
허승조바오로 신부님,
다행히 사제관에 계셨습니다.
연동성당 주임 신부 시절, 총회장 김종배 미카엘 일행을 반가이 맞아주셨습니다.
1971년,사제서품 받으신 허신부님은
2년 후 2021년 사제수품 50년 되는
금경축입니다.
몇년 전 유난히 눈이 많았던 겨울 어느날,
연동성당 소임을 마치고 용수로 떠나는 이임식 미사가 떠오릅니다.
그날
미카엘 총회장은 떠나는 허승조신부님께
"부디 잘 가십시오, 신부님 계셨던 지난 시간
저희는 너무 행복 하였습니다"라는 인사말에 연동성당은 눈물 바다를 이루었지요.
허신부님은 최근
성당 뜰에 14기도처를 만드는 작업에 온 정열을 쏟고 있습니다.
(임금자알퐁소 수녀 소설 파격 뒷 부분670P-674P에서 따옴)
열여섯 소년 김대건안드레아는 신부가 되겠다고 부모님과 고향을 이별하고 마카오로 떠난 지 구년 만인 1845년 8월 17일 금가향 성당 신품 성사,
김대건 신부는 제대 아래 두 팔을 벌리고 엎드렸다.
뜨거운 눈물이 가슴을 적셨다.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오랜 꿈을 이루어 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오직 한 가지 소망이 남아 있습니다."
"조선을 당신께 바칩니다.
부디 조선을 받아 주십시오,"
프랑스 페레올 주교와 다뷜뤼 신부 그리고 조선국 최초의 신부 김대건안드레아 신부를 태운 라파렐호 목선.
천주인들을 찾느라 눈에 불을 켠 관가에 발각 되어 체포 되면 바로 죽음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조선땅으로 숨어 들어 가는 숨 가뿐 장면.
점차 바람이 거세지더니 파도가 거품을 뿜어 대며 덤벼 들었다.
깊은 공포와 절망이 엄습했다.
모든 것을 파도에 맡길 뿐,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김대건 신부는 돛대를 자르기로 했다. 도끼질을 한참 하고 나자 돛대기 부러져 나갔다.
절망 속에서도 졸음이 찾아왔다.
파도에 운명을 맡긴 채 모두 자리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뜨자 날이 환하게 밝아 있었다. 푹풍우가 멎고 파도도 잔잔해졌다.
모두가 무사했다.
김대건 신부는 수평선에 검은 점들이 떠 있는 것을 보았다.가까워지자 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선이다 조선 땅이 보인다"
배를 대고 김대건 신부가 혼자 뭍으로 올라왔다.마침 지나가는 어부가 있었다.
"여기가 어딥니까?"
어부는 김대건 신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제주땅 용수 마씀"
제주는 한국 최초의 신부 김대건안드레아 신부가 신품 성사 이후 그가 처음 밟은 거룩한 조선 땅입니다.
1846년 병오박해 때 26세 나이,
1년 남짓한 사제생활로 굵고 짧은 지상 생애를 마친 첫 사제 김대건 신부를 만났습니다.
녹남봉,수월봉,당산봉 오름과 새파란
용수 바다가 어우러진 를 올레 12코스, 하이라이트는 한국최초의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2021년 금경축 맞는 허승조바오로 신부님 만남입니다.
김대건 신부(1822~1846) 1845년 8월 17일 중국 상해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후 8월 31일 라파엘호를 타고 상해를 출발, 조선으로 오던 중 태풍을 만나 28일간 표류 끝에 이곳 용수리 해안에 도착했다.
강훈일다니엘
한치오징어
사뿌렀습니다
월요 훈련 모쳥
김순선데레사 원장님께서
고기국수,쇠고기김밥, 막걸리
쏘아뿌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