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새끼 고양이들의 환생
동물은
인간에 적용되는 카르마 법칙과는
다른 차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늑대가 사슴을 잡아먹는
살생 행위는 카르마(죄)가 되지 않습니다.
그 행위는 자기 생존과 보호를 위한
자연의 순환 법칙에 위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동물은 도덕적 가치를 인식할 수 없기 때문에
카르마의 관점상
중립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는 결국 동물의 경우
각자의 카르마를 소멸하거나
새로 만들어낼 수 없다는 뜻입니다
즉 동물의 세계에서는
선악이 가능하지 않다는
의미로도 해석할수 있습니다.
인간의 욕망은 이기심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동물은 인간보다
순수한 영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곁에 있는 반려동물은
어쩌면 우리의
영적 진화를 위해 필요한 존재이며.
또한 나쁜 카르마를 정화하기 위해
우리에게 와 있는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빙의, 그 영혼의 노숙자들>이라는 저서는
제 스승인
법운 선생님의 경험담을 담은 책인데,
거기에 주인의 실수로
죽어간 반려묘 새끼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섭이라는
30대 남성이 있었습니다.
섭에겐 기르던 반려묘가 있었는데
결혼 후
아내가 고양이를 싫어해
별장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고양이가 너무나 보고 싶었던 섭은
아내를 겨우 설득해 고양이를
다시 자신이
살고 있는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섭은 열흘간 아내와
해외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아침에 반려묘가
창고에서
네 마리의 새끼를 출산했습니다.
섭과 아내는 그 사실을 모른 채
집을 나서면서 창고 문을 잠가버렸습니다.
어미 고양이가
창고에 나와 있었는데 말 입니다.
어미의 보살펌을 받을 수 없던
새끼들은 결국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무렵
섭의 아내는 여행지에서 임신을 했습 니다.
그리고 10개월 후 묘성증후군
---(고양이 울음소리를 내는 병)이라는
희귀 질병을 않는 아이를 낳았습니다.
스승님의 영적 투시로는
죽은 고양이들의 영혼이
섭의 자식으로 태어났다고 했습니다.
태어난 아이는
네 살까지 살다가 죽었는데,
새끼 고양이들의 영혼이 섭의 자식으로 태어나
짧은 시간이지만 지극한 정성과
사랑을 받고 떠났다는 이야기입니다.
책에서 법운 선생님은
그때 그 고양이들이
주인의 병든 자식으로 태어나
주인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안겨주고 떠났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다르게 보고 있습니다.
새끼 고양이의 영혼이
섭의 자식으로 태어나
그 보상을 받고 떠났다고 생각합니다.
자식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주인의 사랑과 정성을
아낌없이 받았을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동물의 영혼이 사람으로 환생할 수 있을까요?
이 의문에 대해 불교의
<증일아함경 >
<상응부 ><청정도론>
그리고 여타 다른 경전에서는
---"축생계 에서의 환생도
인간이나 다른 세계에서의 환생과
똑같은 측면에서 다루어진다" 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는
축생계에서의 환생이 여러 영역 중
하나에 속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동물의 죽음 자체는
악업의 결과를 다 소멸시킨 것으로 인정되며,
따라서 잠재해 있던 어떤 축적된 선업은
그 존재를 인간으로
환생하도록 이끌 수 있다는이야기입니다.
모든 생명은
고귀하고 저마다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불교 우주론에서는
--- "그것이 유정(有情)의 존재 의식에
무엇으로 나타나든 반응을 낳고,
행위를 자극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실재하는 것으로 간주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그것이 결코 절대적이지는 않다고 말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어떤 일에서나
모두 자비와 사랑으로 되갚을 수만 있으면
그 어떤 상대에 대한
인과도 용서와 정화가 될수 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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