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부족하고 다른 곳에서 글도 약간씩 따온겁니다.
이해해 주시고 끝까지 읽어주세용~~! ^^*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파이란> vs <오아시스>
전설속의 새 비익조를 아는가? 높은 하늘로 힘찬 날개 짓을 하며 박차 오르고 싶지만, 한 개뿐인 날개 때문에 날지 못하는 새..... 두 마리의 비익조가 서로 사랑해 한 몸이 되어야만 자신의 한 개뿐인 날개와 상대방의 한 개뿐인 날개를 의지해 비로소 2개의 날개로 아름답게 하늘을 날아오를 수 있는 전설속의 새 비익조....
여기 2001년과 2002년 최고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멜로영화로 평가받고 있는 <파이란>과 <오아시스>의 강재, 파이란, 종두, 공주라는 4마리의 비익조가 있다. 서로 사랑하지만 다가설 수 없고, 서로 사랑하지만 함께할 수 없고, 서로 사랑하기에 더욱더 슬픈 사랑이야기. 가벼운 조폭영화와 코믹영화가 많은 관객동원을 위해 물밀 듯이 밀려드는 현시점에서 바다 위의 무인도 같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아름다운 영화 <파이란>과 <오아시스>는 이렇듯 외롭고도 힘든 세상의 풍파를 떠나 영원히 머물고 싶은 아쉬움과 그리움이 묻어져 있는 영화이다. 추운 날씨에 낙엽이 떨어지는 요즘 가슴 따뜻함과 애틋함을 느끼고자 한다면 무인도로 떠나자. <파이란>과 <오아시스>라는 무인도로.......
SCENE1. 강재 VS 종두
<파이란>의 남자주인공 강재(최민식분)는 고향친구인 용식(손병호분)과 인천으로 올라와 함께 건달생활에 발을 들여놓지만 어느새 용식은 조직의 보스가 되어있지만 강재는 아직도 용식의 밑에서 비디오가게나 관리하는 삼류건달에 불과하다. 자기 조카뻘 되는 학생들에게 포르노테이프를 빌려주다 며칠간의 구류 선고를 받고 나오자마자 들른곳은 다름 아닌 동네오락실... 이런 동네 3류 양아치에 불과한 강재에게 어느 날 한 장의 편지가 날아오고 평생 남들에게 무시당하고 소외 받았던 강재에게는 자신에게 감사하고 가장 친절하고 사랑한다는 파이란의 발자취를 밟아가며 서서히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깨닫게된다.
하지만 강재는 끝내 파이란의 얼굴조차 보지 못하게 된다. 결국 강재는 파이란의 사랑으로 살아야한다는 의미를 깨닫게 되고 친구 용식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죽음을 맞게된다.
이에 반해 <오아시스>의 종두(설경구분)는 폭행, 강간미수, 과실치사로 2년6개월형을 선고받고 이제 막 출소한 전과 3범의 전과자이다. 하지만 전과3범의 전과자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는 것은 때로는 바보스러운 사회에 적응치못하는 그의 행동들 때문이다. 가족에게조차 유익한 존재가 되기는커녕 없어져야 할 존재로 낙인찍힌 종두는 과실치사로 숨지게 한(?) 청소부의 집을 찾아가 그의 딸인 공주를 만나게 되며 어느새 둘은 절친한 친구, 연인으로 자리잡게 된다. 가로등에 비치는 나무그림자를 무서워하는 자신의 여자친구인 공주를 위해 바보스러운 주문도 외워주고 경찰서 형사과에서 조사를 받던 중에도 자신이 없는 동안 나무그림자를 보고 무서워할 공주를 위해 경찰서에서 도망쳐 나무를 자르는 등 영화 전반에 걸쳐 바보스럽도록 천진한 모습을 보여준다.
사실 홍종두라는 캐릭터는 매우 독특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희귀종은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왕따를 당하는 사람들은 다 조금씩은 홍종두를 닮아있다. 그는 법없이도 살만한 그런 유형의 인간인데, 바로 그런 그의 천진함으로 인해서 오히려 사회적으로 무능력자로 낙인찍히고 이용당한다. 하지만 이런 종두가 강재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라는 이유 중 하나는 사랑하는 여인을 직접 만나고 함께 데이트도 하며, 춤도 추는 등 종두는 분명 강재보다 행복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SCENE2. 파이란 VS 공주
앞에서 말한 사회에 적응치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남자를 사랑하는 여인 파이란과 공주는 어떤 사람일까?
우선 파이란(백란[白蘭].장백지분)은 70년대 우리의 어머니들이 그러했듯이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오게 된 충국처녀이다. 서울에 살고 있을 거라 믿었던 이모내외가 캐나다로 이민 가버린 후에 서울에 도착한 파이란은 돈을 벌고 밀입국자라는 신분을 버리기 위해 경수(공형진분)의 소개로 3류건달인 강재와 위장결혼을 하게된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이 위법이며 단지 경마에 쓸 돈을 벌기 위해 위장결혼한 강재의 행동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 채 파이란의 강재가 건네준 빨간 스카프와 증명사진 한 장만으로 강재와 함께 하지 못하는 외로움을 달래고 언젠가 돌아올 자신의 남편(물론 서류 상일 뿐이다)을 그리며 한국말도 배워 편지도 쓰며 세탁소에서 일을 하다 사망하게된 불쌍하고도 강재에게 살아갈 이유를 깨닫게 해주는 존재이다.
자신의 남편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파이란에 비해 <오아시스>의 공주(문소리분)는 종두에게 거의 받기만 하는 중증의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공주 또한 가족에게 거의 버림받다 시피한 존재밖에 되지 않는 나약한 여자이다. 이러한 무관심 속에 살아온 그녀에게 어느 날 다가온 종두가 좋아한다며 꽃다발을 선물하자 그런 장애인이란 편견 없이 같은 인간이라는 존재로 대접해주는 종두에게 고마워하며 점점 둘 사이가 깊어져간다. 난생처음 다른 가족의 잔치에 초대도 받아보고, 노래방에도 가보고 비록 쫓겨나긴 했지만 대중음식점에도 가보는 등 종두로 인해 공주는 관심이란 게 얼마나 고마운 것이며 사랑 받는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를 알게된다.
강재가 파이란의 편지를 받고 세상을 다르게 본 것처럼 공주는 종두의 꽃다발과 좋아한다는 말로 인해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깨닫게된다.
공주 역을 맡은 문소리는 뇌성마비 장애인 연기를 위해 6개월 동안 실제 뇌성마비장애인에게 연기지도를 받고, 영화촬영 후에도 얼굴에 마비증세가 오는 등 열연을 펼쳤다.
SCENE 3. <파이란> VS <오아시스>
<파이란>과 <오아시스>라는 두 영화가 나의 매력을 끌게된 이유는 두 영화의 포스터가 모두 남자주인공이 여자주인공을 업고 있다는 것이 한가지 이유로 자리잡게 되었다.
2001년도와 2002년도의 최고의 멜로 영화인 <파이란>과 <오아시스>의 이러한 공통점은 어찌 보면 단순한 일인지 모르겠으나 평소 드라마, 멜로식의 영화에 흠뻑 빠져있던 나에게는 크나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또한 한국영화음악의 거장 이재진이라는 명감독이 두 영화의 OST를 담당하게 되었는데 이재진 음악감독은 <파이란>에서는 남자주인공의 감정을 무거운 저음인 '오보에'로 처리하고 <파이란>의 적극적이고 때론 애절한 감정을 '클라리넷'으로 대신했다는 데에 평론가들로부터 극찬을 받고 있던 중 에 이번엔 <오아시스>에서 문소리에게 직접 뇌성마비 연기지도를 한 장애인이 가장 좋아하는 음악인 안치환의 '내가 만일'이란 노래를 반주 없이 담담하게 공주를 통해 부르게 함으로 영화의 하이라이트 격인 장면에서 기대이상의 느낌을 낸다. 특히 이재진 음악감독은 '박하사탕'에서의 영호의 기차신, '<파이란>'의 편지 신에서 흐르던 음악은 현실과 비 현실을 가르고 신파가 아닌 절제된 슬픔을 전달하는데 탁월했다는 평을 받았다.
아무튼 두 영화의 이러한 공통점과는 달리 아사다지로의 '철도원'중 <러브레터>를 원작으로 한 <파이란>은 상상보다는 지난 과거를 하나씩 조각을 맞추며 찾아 나서는 기법, 너무 현실적이어서 영화를 본 후에도 가슴 시리도록 저린 아쉬움이 남는 영화이다. 이런 아쉬움으로 인해 영화에 더욱 더 깊숙이 빠지게 만드는 영화 <파이란>은 최민식이라는 국민배우를 내세웠지만 조폭 신드롬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친구>라는 대작과 같이 개봉한 탓에 흥행은 얻지 못하였다. 그러나 "파이란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파사모)"의 끈질긴 요구에 몇 차례의 재 상영을 해 그나마 많은 팬을 가지게 되었다.
<파이란>은“6기통 디젤 배 한 척 딱 앞세우고 고향에 돌아가겠다"는 희망사항을 십 수년 째 되풀이하는 동네 3류 건달과, 잘사는 나라 한국에서 돈을 벌어보겠다는 착한 중국 처녀. 이는 이 땅에서 애처로운 목숨 붙이고 사는 전형적인 주변인들이다.
이 영화가 본격적으로 힘을 발휘하는 것은 강재가 여행을 떠나는 중반 이후부터다. <파이란>이 강재에게 고백한다. “이곳 사람들은 모두 친절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가장 친절합니다. 왜냐하면 나와 결혼해 주셨으니 까요. 당신 덕분에 여기서 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당신에게 줄 것이 없어서 미안합니다. 잊어버리지 않도록 보고 있는 사이, 당신을 좋아하게 됐습니다. 당신을 만나면 꼭 묻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당신을 사랑해도 되나요?” 객석에서 눈물이 터지는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파이란>이 영화 속에서 거듭 반복하는 ‘결혼',‘친절’이라는 말은, “줄 것 없는" 맨주먹으로 가진 것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 얹혀 살게 된 외국인 노동자와 외지의 동포들이 두려움에 떨리는 목소리로 타전해오는 메시지처럼 들린다. 하얀 난초 꽃이라는 뜻을 가진 파이란(白蘭)의 이름처럼 가녀리게 들려오는 요청에 대하여 우리의 대답이 너무 늦지 않았으면 좋겠다. 영화 속 대사처럼 “깨지고 나면 붙일 수 없기 때문"이다. 강재가 시를 쓸 수 있었다면 이렇게 노래했을 것 같다. “꽃이 질 듯 꽃이 질 듯 흔들리고, 그 불빛 아래서 너무 늦게 놀러온 이들끼리 술잔을 기울이겠지. 밤새 목련 지는 소리 듣고 있겠지.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간다, 그가 너무 일찍 피워 올린 목련 그늘 아래로.” (나희덕,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간다’)
반면 <오아시스>라는 영화를 보기 전에 <오아시스>의 줄거리만 대충 훑어보고는 이 영화가 한 전과자와 한 장애인간의 운명적 사랑을 감동적으로 그린 '휴먼 드라마'인 줄로만 알았다. 단언컨대 영화 <오아시스>는 장애인끼리의 사랑얘기가 아니다. 어쩌다 한공주(문소리분)를 좋아하게 된 홍종두(설경구분)는 비록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건달청년이긴 하지만 일단 그 자신이 정신지체아는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홍종두라는 캐릭터는 매우 독특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희귀종은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왕따 당하는 사람들은 다 조금씩은 홍종두를 닮아 있다. 그는 법 없이도 살만한 그런 유형의 인간인데, 바로 그런 그의 천진함으로 인해서 오히려 사회적으로 무능력자로 낙인찍히고 이용당한다. 바로 이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영화는 외면의 측면에서 볼 때 이른바 정상인과 비정상인간의 대립적 구도 속에서 파생되는 인간 소외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래서 언뜻 휴먼드라마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 내포는 그것보다 훨씬 더 포괄적이고 심층적이다. 요컨대 감독은 실제로 그가 돌려 말하고 싶은 것은 두 사람을 중심에 놓고 주변 사람들이 보이고 있는 인간적 창피함의 본질에 대한 것이다. 그것을 영화적 표현대로 하면, 교통사고의 가해자와 피해자는 다시는 상종해서는 안될 사람들이다. 가족들 잔치자리에 장애인 같은 불청객을 불러 들여서는 절대 안 된다. 장애인을 대중음식점에 데려가서도 안 된다. 하물며 장애인을 친구로 사귄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비록 가족의 일원이라도 장애인과 함께 거주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처사다. 그러나 장애인 가족을 빌미로 국가로부터 받을 수 있는 혜택을 챙기는 것만큼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등등.
하지만 영화 중간에 공주의 상상을 현실로 비추어줌으로써 관객들의 마음을 후련히 해줄 수는 있었지만, 영화 전체적인 느낌(파이란과 같은 아쉬움)들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절제가 필요하지 않았나 라는 아쉬움이 있기는 하다. 코믹영화와 조폭영화가 판을 치는 시점에서 이런 유행을 따르지 않고 멜로장르를 설경우라는 걸쭉한 배우를 내세우고, 흥행감독 이창동, 이재진이 직접 작업한 OST, 이러한 3박자가 잘 맞아 성공한 케이스라 하겠다.
♣ <파이란> : 2001년 한국최고의 영화 2위
프랑스 제4회 도빌 아시아영화제 최우수작품상, 최우수감독상, 인기상, 최우수 남우주연상
제22회 청룡영화제 감독상, 남우주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