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운문록(雲門錄) 수시대어 15. 보자화상은 몸이 몇 개인지 말해보라.
[어떤 스님이 보자(報慈)화상의 재를 베풀자 스님께서는 그 스님에게 물었다. “보자화상은 몸이 몇 개인지 말해보라.”
그리고는 대신 말씀하셨다.“오늘 재공양은 법답게 되었습니다.”]
한 때 운문선사는 어떤 스님이 “보자(報慈)화상의 재를 베풀자 스님께서는 그 스님에게 물었다.“라는 말씀은 한 때 운문선사가 보자(報慈)화상의 재를 올리는 곳에 가셨든 모양입니다.
보자(報慈)화상의 소개는 다시 설명하껬지만 재를 올린다는 것은 보자화상의 기일 즉 입적한 날을 기려 제자들이 그 날을 잊지 않을 제사를 지내는 것입니다.
보자화상은 입적을 하셨는데 어찌 입적날을 기념하는 제사를 올렸을까요? 부처님도 열반일에 재를 올리듯이 큰 스님이 열반에 들면 화장을 하여 조사당(祖師堂)을 지어서 사리나 유골을 모셔놓고 년년기일재를 지내는 풍속은 그렇게 이어 왔든 모양입니다.
지금도 해인사 백련암에 가보시면 성철스님의 무덤을 지어놓고 전각을 지어 성철스님의 사리를 봉안하여 모셔놓고 년년기일재를 올리는 것을 볼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대 재를 마친 그 재를 주관한 어떤 스님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보자화상은 몸이 몇 개인지 말해보라.”]라고 물었습니다.
이 물음은 무엇을 물은 것입니까?
오늘 년년 기일재를 지냈으니 보자화상의 몸은 몇 년전에 입적하시어 몸은 화장을 하였는데 몸이 없는데 “몸이 몇 개인지 말해보라”라고 하신 물음은 살아 생시의 몸은 몸이라고 하고 입적하시고 나서 시체로 있은 몸과 화장을 하고 나서 재가된 몸과 지금 재를 올릴 때 묘셔진 화상의 영정이나 위패등이 보자화상의 몸이냐 어느것이 보자화상의 몸이냐 그렇다면 보자화상의 마음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살아생시는 몸속에 있느냐 죽은 후에는 어디에 계신가?
같은 물음일 것이다.
이에 어떤 스님은 어떻게 대답을 하실까요.
대답하기가 참어로 난해할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도 대답이 없자
운문선사는 자문자답을 하십니다.
[그리고는 대신 말씀하셨다.“오늘 재공양은 법답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재를 올리는 스님이나 제자들이나 참석한 사부대중은 다 살아 생시에 보자화상과 인연이 있었거나 법은 들었든 인연이 있을 것입니다. 그 기억을 회상하여 지금 여기서 생시의 모습이나 행적이나 법문을 회상하며 그 그리움을 표현하는 자리를 만들어 제공을 올리면서 살아 생전의 인연에 감사함을 전하는 행사가 바로 재인 것입니다. 그래서 운문선사도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를 인증하여 “제공양은 법답게 되었습니다.”라고 시공을 뛰어 넘어 지금의 마음의 견처를 들어내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지금 여기에 등장하는 보자(報慈) 화상은 어떤 선사일까요?
조당집(祖堂集)제 13권에 나오는 보자화상의 기록을 보면 이러합니다. 장경(長慶)의 법을 이었고, 복주(福州)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는 광운(光雲)이며, 전주(泉州)의 포전현(蒲田縣) 사람이었다. 현사(玄沙)에게 출가하여 계를 받자마자 조사의 도를 두루 참문하다가 이산(怡山)에 이르러 마음 자리를 활짝 깨달았다. 나중에 민왕(閩王)이 보자원에 살라고 청하고 자의(紫衣)를 하사하고 호를 혜각(慧覺) 대사라 하였다.
보자선사께서 자리에 올라 대중에게 말했다.
『내가 도는 얇고 인격은 천미하면서도 과분하게도 황은(皇恩)을 받아, 예로부터 전하는 조종(祖宗)의 법을 전하고 지키어 끊지 말라는 황명을 받았다.』 라고 보자선사의 지나간 자기의 깨달음을 얻은 시절인연과 황제를 만나 조종(祖宗)의 법을 전하고 지키어 끊지 말라는 황명을 받았다 그러니 선사로써의 본분종사(本分宗師)로써의 인연을 설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향상일구를 한번 들어 보시길 바랍니다.
[오늘 이 대중에 법을 이을만한 이가 있는가? 나오너라.
만일 영리한 자가 나타나면 눈 깜빡거릴 필요도 없거늘 하물며 입술이나 방망이를 통해서야 비로소 알겠는가?]
사부대중에게 첫일괄은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이 종법(宗法)을 이어야 하는데 “오늘 이 대중에 법을 이을만한 이가 있는가? 나오너라.”라고 하십니다.
“만일 영리한 자가 나타나면 눈 깜빡거릴 필요도 없거늘”이라고 하신 것은 작금에 이러러 본다면 즉 조사선(祖師禪) 근본대의(根本大意)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밝히는 부문입니다.
“만일 영리한 자가 나타나면”이라고 한 것은 영리한자와 어리석은자의 상대성에서 영리한자는 부처님을 이야기 한 것이고 어리석은 자는 범부인 중생일 것입니다.
그러니 “만일 영리한 자가 나타나면”이란 비유법은 만약에 석가모니불같은 영리한 자가 지금 여기에 나타난다면 이란 뜻이됩니다.
즉 진리(眞理)에 통달한 자가 나타나면은 이란 비유법으로 가정한다면 이란 것이니 그렇다면 나 같은 선사들 앞에서는 삼천대천세계가 오직 한 마음이 그려낸 공화(空花)이며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인데 무엇이 있어 영리한 석존같은 분이 있으며 어리석은 중생도 없다는 뜻입니다. 이 조사선이 말하는 그리고 부처님이 말씀한 일체개공(一切皆空)을 먼저 밝히면서 이렇게 말씀을 이어가십니다.
“눈 깜빡거릴 필요도 없거늘”이라고 이어가시는 것은 내라는 허화공신(虛華空身)이 이렇게 상당법석을 만들어 놓고 여기에 나와서 법을 설한다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눈 깜빡거릴 필요도 없거늘 하물며 입술이나 방망이를 통해서야 비로소 알겠는가?”라고 하신 것은 조사가 나와서 법을 설하는 것은 사실 그 진여 실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선기방편이란 이름으로 깨달음의 방편인 것임을 알아야 하는데 사실 그 진실여상(眞實如常)한 진여(眞如)는 형상도 없고 모양도 없으며 보이지도 들리지도 그 말이나 글이나 생각으로도 그려 낼 수 없는 한 물건이라 이미 언어도단(言語道斷)이며 불입문자(不立文字)이며 심행처멸(心行處滅)이라 어떻한 방편으로도 드러 낼 수 없다는 조사선의 근본대의를 다시 한번 밝히면서 그러니 “눈 깜빡거릴 필요도 없거늘”이라고 하여 이것은 오직 방편으로 눈을 깜빡거리고 주장자를 들었다 놓았다 하고 고함을 치고 때리고 하는 모든 선기방편은 다 하나의 방편일 뿐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후구를 날립니다. “하물며 입술이나 방망이를 통해서야 비로소 알겠는가?”라고 하신 것은 선어록에 적힌 조사들의 향상일구나 덕산스님의 방망이를 맏고나서야 이 삼천대천 세계는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일 뿐”이지 다 찰라간에 사라지는 허상이며 고정불변(固定不變)인 진여는 없음을 바로 알아차리지를 못하니 이렇게 입술을 놀려 말을 하지만 이 역시 한 방편일뿐 고정된 진실여상한 진여는 말할 수 없고 방편으로 베풀지만 덕산의 방망이를 맏고서야 정신이 번쩍들어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가 있을 뿐”임을 알 뿐임을 밝히는 부분입니다.
이것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임을 깨닫는 것입니다.라고 하시고는 다음 말씀으로 이러집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도 제방의 눈밝은 사람들의 긍정치 않음을 면치 못할 것이니라.]라고 하시는 것은 아무리 내가 사부대중에게 선기방편을 베풀지만 이 역시 그렇게 정해진 방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 행위를 통한 상대의 마음과 내마음이 하나되어 시절인연이 맞는다면 이심전심(以心傳心)로 심등의 촛불이 상대의 심등에 불을 밝히는 것과같이 방편이지만 진정한 선지식들은 그것이 바른 방편이냐라는 꾸중을 들을 일이라고 하고 계심을 나타낸 말씀일 것입니다. 그 때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이가 물었다.
『스님께서는 깨달음을 초월하고 입을 봉쇄하는 비결을 이어받으셨다는데 어떻게 사람들께 지시하십니까?』]라고 물었다.
여기서 “스님께서는 깨달음을 초월하고 입을 봉쇄하는 비결을 이어받으셨다는데”라고 하신 것은 깨달음을 초월하고라는 말은 미혹인 무명(無明)이 중생과 석존의 심광(心光)인 이 양변을 벗어났다는 말은 즉 세속심과 진여심인 양변 이것과 저것이란 인연법과 제법무상법인 연기법과 제법공상인 공사상 등의 일체유위법을 다 벗어난 열반의 경지인 일심(一心)을 밝히신 것은 무위법(無爲法)인데 그럼 어떻게 대중이 물으면 말을 하지도 않으실 것인데 어떻게 중생들을 제도하시겠습니까?라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보자선사께서 대답했다. 『내 손에 주장자가 없기에 다행이니라.』]라고 대답했다.]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회광반조 해 보십시오. 만약 이른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그대를 내 손에 주장자가 있었다면 내가 그대를 후려 패었을 것인데 마침 내 손에 주장자가 없기에 그대는 두들겨 맞지를 않았음을 다행이라 생각해라라는 말이 될 것입니다. 마치 덕산스님이 “그대가 말을해도 30반 말하지 않아도 30방이라고 한 말씀과 무엇이 다름니까? 왜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일 뿐”임을 자각하고 있으면 되었지 그대 자신도 모르면서 “왜 남의 마음까지 흔들고 있느냐 이 미련한 중생아”라고 한 소릴 하십니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알아 들었는지 한 소리 물은 것이 사실 그러면 그런줄 알지 왜 의심을 하고 있었음을 알아 차렸는지 이렇게 변명을 하고있습니다
『그러시다면 깊고 깊으신 자비를 알아 모시겠읍니다.』라고 하신 것은 예 알았습니다. 보자선사님은 세상사를 다 깨달은 분이라 모든 것이 행주좌와 어묵동정 일체시 일체처가 다 있는 그대로라는 뜻이군요 잘 알았습니다. 오직 대자대비의 깊으신 자비를 알아서 모시겠습니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보자선사의 마음을 이어받았을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을 둘려 변명처럼 하고 있었음을 즉 이 스님의 견처를 알차차리고는 보자화상을 이렇게 말후구를 날립니다.
이에 선사께서 말했다. 『내가 그대를 긍정하게 되면 되느니라.』
라고 하신 말씀은 내가 그대의 견처와 안목을 보아 그대를 긍정하게 되는 그 때 그대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 외에도 보자화상의 법문이 많이 실려 있습니다 만 이를 다 설명하려면 또하나의 선어록이 될 것이니 멏가지만 더 소개코자합니다
[한 때 어떤 스님이 보자화상께 물었다.
『현사(玄沙) 보인(寶印) 화상께서 친히 전하신 소식을 오늘의 이 대중에서 누구에게 전하시겠읍니까?』]라고 물었다.
여기서 이 스님이 물은 것은 무엇입니까?
이제 보자화상도 법납도 있으시고 건강도 많이 좋지 않으니 현사 보인화상께서 친히 전하신 한 소식을 오늘 제자들고 많이 있는데
이 제자들 중에 누구에게 이 한 소식을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부촉하시겠습니까?라고 묻고 있다.
아니 이 한 마음을 투득하는 것은 보자화상의 상당법문과 실중어요 실중대요 등 수 많은 법문을 통하여 시절인연이 맞아서 한 순간 언하대오(言下大悟)하는 것이지 깨달음이 무슨 물건이라 감추어 놓고 주고 받는것처럼 말을 하니 참으로 한심한 중생이로다. 이 많은 대중중에는 깨달음을 증득한 사람이 한 두사람이겠느냐 그러나 스승의 법리를 넓히어 수많은 대중들이 함께 이고득락(離苦得樂)하기를 더많은 스승님의 무파비를 증득키 위하여 이렇게 스승님을 보필하는 대중들인데 이런 무지한 놈을 보았느냐 그래서 보자화상께서는 이렇게 대답을 하십니다.
[이에 선사께서 대답했다.
『우선 그대라 한다면 알아서 간직할 수 있겠는가?』]라고 대답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선 부촉은 제처두고 그대로 한다면 종문에서 이심전심으로 전해온 조사선으로 깨달았느냐 그리고 만약 깨달았다면 이 선기방편을 행하여 중생들이 깨어날 수 있도록 하는 이 무거운 법맥을 이를 만한 자신이 스스로 간직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십니다. 돌~~!!!!!!!!!
[한 때 한 스님이 보자화성께 물었다.
『여러 지위를 겪지 않고서 어떻게 도와 가까와질 수 있겠읍니까?』]
라고 물었다 이 물음은 “여러 지위를 겪지 않고서” 라고 하신 것은
처음 출가하면 부처님이 밝힌 십신(十信)부터 십지(十地)보살까지 50단계를 벗어나서 등각(等覺), 묘각(妙覺)을 최상지인 불지(佛智)까지 53단계를 수행하지 않하고도 어찌하면 깨달음의 도를 깨달을 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
[선사께서 양구하니, 중이 어리둥절하거늘 선사께서 말했다.
『비록 그렇게 물었으나 어찌 물음 없는 것과 다르랴.』]
여기서 보자화상은 바로 말씀을 하시지 않고 양구란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을 보입니다. 이것은 조사님들은 항상 침묵이라는 무심의 경지에서 일으나는 반야지혜인 방편을 사량 하는 중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묻을 스님은 어리둥절하거늘이란 것은 아니 내가 잘못물었나 하면서 자기의 마음을 한번 회광반조 할 때라는 중에 보자 화상을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비록 그렇게 물었으나 어찌 물음 없는 것과 다르랴.』]라고 하십니다. 대답할 수 없는 본래 무일물인데 어디에 의심이 있고 물음이 있고 대답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묻지않으면 답도 없고 답하지 않으면 알아차림도 없습니다. 그러니 누구나 한 마음에서 한 생각 의심이 뜨 오려면 이것이 무엇인가?하는 의구심이 일어났니다.
이 한생각이 뜨 오르는 이것이 무엇인가? 이뭣꼬?인것입니다.
수행을 하고 있다는 것이니 한 생각 뜨 오르는 것은 이 사람은 이미 수행을 하고 있는 것이며 깨달음을 얻고자하는 목표가있으니 수행을 하는 것이며, 이렇게 묻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비록 그렇게 물었으나 어찌 물음 없는 것과 다르랴.”라고 하신 것은 수행도 하지않고 의심도 생기지 않는다면 목석이나 무정물과 같은 것이지만 이렇게 한 생각 일으 나는 것이 활발발한 한 생각이라는 뜻으로 그래 잘 물었다. 그렇게 물으니 선문답이 이루어지는 것이며 이런 선문답을 통하여 선사들이 향상일구를 들을 수 있는 시절인연 맞아 떨어지면 언하대오라 말 한마디에 바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음을 밝혀 드리는 말후구입니다.
성불인연 맺으소서 옴 바아라 믹~~~~~~~~!!!!!!!!
| 조사선(祖師禪) 운문록(雲門錄)을 들어시어 인연성불(因緣成佛) 하시어서 붓다(佛陀) 같이 살아가소! 일승법문을 시절인연삼아 인연성불 하옵시고 대원성취 하옵소서 ! 원오선원 명상쉼터 천안시 두정동 611_1번지 5층(041)551 8546 무명 납승 원오선사 010 8748 6006 옴~바아라 믹!!!_()_ 탁발성원 보시구좌 농협 351 1042 1598 93 대한불교 정토회 |

첫댓글 조사선(祖師禪) 운문록을 통하여 한국불교 1300년의 선사중에서 선어록의 해설서를 쓰신분은 처음입니다. 조사선(祖師禪)의 보설을 통하여 인연성불 하시어서 본불본락 하옵소서 옴~바아라 믹!!!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