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점점 크리스마스 이브로 치닫고 있었고, 점점 연극팀은 바빠져만 갔다.
은아는 자신도 도와주겠다고 하면서 무대 뒷배경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래도 물감과 붓만으로 살아왔던 탓일까, 그들은 그녀의 그림솜씨에 반하고 있었다.
"언니 그림 잘 그린다~"
그리고 한쪽에선 리허설이 한창 진행중이었다. 은재는 하나의 완성된 연극을 처음본다는 생각에 무대쪽을 보고 있었다.
한창 이야기의 절정에 다다랐을 때였다. 은율과 비령과의 대화. 여기서 은율의 배역이 죽는다.
은재는 은율을 보다가 비령을 쳐다본다. 은재는 비령을 처음 보는 것이었다.
물론 같이 노래방에 가기도 했지만 그에겐 그저 나오고 싶단 생각이 더 깊었다.
그리고 그 후론 만난 적이 없었다. 그는 무심코 지나치다가 비령의 모습에 흠칫 놀라 본다.
처음 만날때 그저 기분이 좀 나쁜게 자신 기분 탓인 줄 알었지, 그런 모습이 보이 않았던 은재라 놀라고 말았다.
그의 모습에 비치는 하나의 모습. 그의 눈엔 무언가가 스친다. 점점 합쳐지는 그들의 이미지.
'카오스와 어둠의 악마...?'
어둠의 악마란 건 아무래도 그의 기억이 아닌, 샤이 라이트의 기억이었다. 어쨌든 그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자이나 테린에 있어야 할 카오스가 왜 여기에서 버젓이 서서 은율 앞에 있단 것인가.
연극이 끝날 때까지, 은재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 은율이 다가와도 못 느낄만큼, 혼이 빠져있는 듯 했다.
"왜 그래?"
은재는 조용히 은율을 끌고 건물 뒷쪽으로 간다. 은재의 갑작스러운 반응에 은율은 당황하고 있었다.
"너 연극 당장 그만둬!"
은재의 말에 은율은 당황해서 말을 버벅거린다.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연극을 갑자기 그만두면 어떻게 하냐구!"
은재의 표정은 점점 굳는다. 하지만 은율의 표정은 은재의 전음에 더 놀라고 만다.
'호비령... 에이스보다 위험한 존재야... 모르겠어? 네가 처음에 말했잖아! 수상하다고!! 비령... 카오스야..!"
"이봐! 네가 여기에선 그런 힘을 가진 사람은 없다고 네 입으로 말했어!"
은율이 소리치듯 말하자 은재는 한숨을 쉰다.
"그건 내가 비령을 정식으로 보기 전이지.
이봐! 그런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지만, 너와 같은 경우는 사정이 달라! 모르겠어?"
"잠깐, 카오스는 차원의 벽을 넘지 못해. 대천사가 그랬다고. 차원의 벽과 연관있는 자들이 넘을 수 있다고!
결국 나도 '그'이기에 가능했는 것이고, 티어누나는 모르지만.. 어쨌든 카오스는....."
은재의 무표정한 표정에 은율은 말을 잇지 못한다. 은재의 차분한 목소리는 은율의 귓전을 때린다.
"...하지만... 카오스에게 어둠의 악마의 형상까지 보였어... 만약 카오스에게 뭔가가 있다면?
내 말은... 평범한 '왕족'이 아닌... 우리처럼 '특별한' 무언가라면.... 사정은 달라진단 거야."
은재의 말에 은율은 말이 없다. 은재는 한숨을 쉰다.
"하는 수 없어... 그 녀석은 연극이 끝나기 이전까지는 널 해치지는 못할 거야. 그 전까지 조심하는 수밖에.
그 녀석이 준 물건은 받지도 말고, 음식은 먹지도 마. 믿을 수 없는 녀석이니까."
"그래야겠지..."
은율은 중얼거렸고, 은재는 별로 마음이 편하지 않다는 듯, 고개를 젓는다.
.
공연 날. 그들이 연극하는 장소에 의자들을 빼곡하게 사람들이 채운다. 공연팀은 다들 준비하느라 바쁘다.
은재는 은율이 준비하는 것을 보며 한숨먼저 쉰다. 은율은 은재를 힐끔 보더니 피식 웃고 만다.
"웃지마. 안그래도 짜증이 많이 났는데... 기껏 인간계에 돌아와도 별걸 다 걱정해야 하니..."
"미안해."
"미안하단 소리좀 하지 말고 연극이나 잘해. 알았냐?"
은율은 고개를 끄덕였고, 은재는 피식 웃는다. 은재는 은율의 목에 걸려 있는 목걸이를 보고 의아해한다.
"생뚱맞게 그건 또 뭐야?"
"글세. 연극 소품이라고 은아 누나가 줬던 건데? 알게 뭐야. 그나저나 카오스 잘 살펴. 혹 모르니까."
은재는 고개를 끄덕인다.
.
절정의 장면... 객석의 사람들은 너무도 장면에 빠져 있었고, 그 누구도 소리를 내지 않는다.
다들 숨 죽이고 있을 때였다. 은율과 비령의 몸짓 하나하나에 그들은 시선 집중하고 있었다.
"주군은 제가 모시기에는 힘든 상대입니다."
'엥? 잠깐... 이게 대사에 있었나?'
은율은 잠시 당황해 아무말도 않는 데, 어디 그만 놀랐을까. 그 뒤에 있는 사람들은 더 당황한다.
갑자기 대사를 훽 바꿔버리는 비령의 애드립에 다들 놀라고 있었다. 은재마저도. 사람들은 그런 상황을 모르지만.
"그, 그게 무슨 말인가."
은율도 애드립으로 밀고 가기로 한다. 다들 놀라 경직되 있다. 은재는 무대로 뛰어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절박하기만 하다.
"주군은 저에게 있어서 너무도 밝으십니다. 제가 다가가기도 힘들도록... 저의 어두운 마음으론 도저히 다가가기도 힘듭니다."
비령은 주위를 살피는 척 하더니 은율에게 다가가고, 은율은 흠칫 뒤로 물러서다 비령의 손에 잡힌다.
"그런 것이 저에게 얼마나 큰 절망을 주셨는지, 주군은 아시는 지 모를테지만 말입니다."
"...카... 오스..."
은율은 말하다 움찔한다. 비령의 대역 이름, 카오스 리투스. 은율은 당황하고 비령은 씩 웃는다.
"그러니까... 이 목숨을 버려 주셔야겠습니다. 주군."
비령의 대사. 그 뒤의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듯 은율에게 말하는 소리에 그의 간담이 서늘해진다.
"아니... 나에게... 목숨을 줘야겠어... 에드링."
은율은 갑자기 지른 비령의 주먹에 정신을 잃고 만다. 사람들은 이 모든 게 연극인줄로만 알고 내용에 놀란다.
비령은 은율을 일으켜서는 무대를 나간다. 다음 장면에 자연스레 연결되고, 다들 그 장면에 다시 집중한다.
은재는 서둘러 무대 뒤쪽으로 간다. 자신의 눈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은율이 진짜로 당한 것이 틀림없다.
비령의 손은 은율의 목에 걸려 있는 목걸이에 가 있다. 보랏빛 자수정. 비령은 픽 웃는다.
그의 손가락은 그의 이마에 닿이고, 점점 서서히 은율의 얼굴, 목, 가슴깨에 걸쳐 알수 없는 문신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푸른빛의 엷은 색깔의 문신에 비령은 웃고 씩 웃고는 조용히 속삭인다.
"이 목걸이를 통해서 명계로 돌아와라. 네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네 주변의 사람들이 어떻게 될진 알겠지...
만약 네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샤이와 다른 녀석들의 심장을 먹어도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겠어. 에드링.
너 혼자여야 한다. 무조건... 너 혼자, 의심을 사선 안되. 이제부터 나의 힘이 발휘된다.
네 입으로 '에이스'라고 말한면 될 것이다. 오늘밤 12시까지... 명계로 돌아와야한다."
비령의 말이 끝나자마자 자수정의 색은 어두운 보랏빛으로 빛이 나기 시작했고, 그의 문신도 서서히 사라졌다.
그는 얼른 주위를 둘러보고는 은율을 흔들어 깨운다. 은율은 눈을 뜬다. 보이는 곳은 분장실.
"....카오스!"
"은율아, 너 평소에 그렇게 약할 줄 몰랐어. 어떻게 한방에 쓰러지고 그러냐?"
비령은 오래된 친구마냥 친근하게 대한다. 마치 자신의 주먹 한방에 갑자기 쓰러진 데에 놀랐다는 듯.
은율은 그런 비령을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본다. 하지만 비령은 태연하다.
"왜 그래? 카오스라니...? 혹시... 샤이의 말을 듣고 그런 거야? 훗... 보기보다 눈치하나는 빠르군."
비령이 태연하게 말하자 은율은 얼른 몸을 일으킨다. 비령은 하하 웃다가 말한다.
"왜 그러지? 같은 날, 같은 피를 타고난 나의 형제여?
이 더럽고 추악한 피를 너의 것으로 씻어버리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만...
이 정도 참았는데 설마 내가 즉석에서 해치우겠어?"
"카오스... 왜 여기로 온거지...?"
은율, 에드링이 말하자 카오스는 피식 웃으면서 그의 입을 막는다.
"이제 내가 나갈 차례라고. 이 일을 보통 인간들에게 알리고 싶은 생각은 없겠지?"
"......."
"훗..."
카오스가 나간 자리, 은율은 멍하니 있다가 암흑으로 감싸져있는 자수정을 본다.
"...카오스... 설마 여기까지... 정말로.. 왜 날..."
"성은율!"
"아.. 은재?"
은율은 애써 밝은 척하며 은재를 부른다. 은재가 샤이라고 할지라도 그를 끼울 생각은 없었다.
이제 겨우 돌아온 녀석을 자신이 위태롭게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꺼림칙했다.
"아~ 은재~? 지금 네가 정신이 있는 거야!"
"왜?"
금방 차분해지는 은재. 그게 거의 장점이라고 해야할까. 금방 흥분했다가 차분해지는 게.
어쩌면 아픔이 나은 후유증이겠지만. 은율의 태평한 반응에 화가 날 만도 하다.
이게 어디 죽을 뻔한 녀석의 대답이란 말인가. 뭐 은재를 잡고 울먹거리는 것도 보기는 안 좋겠지만...
"참... 나 너한테 할말이 있어."
은율의 말에 은재는 왜 그러느냐는 듯 보고, 그는 한숨을 쉬면서 뜸을 들인다.
"나 오늘 밤에 명계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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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랜만에 1빠^^ 점점 내용이...........................잼 있어요^^
어엇, 촛불님~^^? 오랜만이네요~ 전 요즘 굉장히 힘들어서요...; 그런말 해주시니 정말 기뻐요...ㅎㅎ
오우 저 오랫만에 오네요 오늘도 어김없이 저의 기대를 저 버리시지 않는 아쿠아리스님~ 저 요즘 '아린이야기'에 빠져있다가-_-; 머니가 모자라서 책방도 못 가고 있답니다ㅎㅎ
다섯살님... 저는 '마신소환사'에 빠져 있답니다.*-_-* 아린이야기도 한번 읽어보아야 할듯... 하지만 제가 사는 곳이 촌구석이라...ㅠㅡㅠ 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