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첨부파일
You may download English ver. of the original article(unedited) on top.
1. 서론
나이지리아 중앙은행(CBN, Central Bank of Nigeria)은 2022년 10월 26일에 자국 나이라(NGN) 화폐 중에서 3대 고액권에 해당하는 200나이라권(한화 약 560원), 300나이라권(한화 약 850원), 1,000나이라권(한화 약 2,800원)의 도안을 교체하는 화폐개혁을 발표했다. 개혁안에 따르면 신권은 동년 12월 15일부터 유통되고, 구권은 2023년 1월 31일을 기해 법정통화 지위를 상실하기에 은행에서 신권으로 교환해야 한다. 2007년 나이지리아 중앙은행법(CBN Act)의 제2b조, 제18조 (a)항, 제19조 (a), (b)항에 근거를 둔 이번 화폐개혁은(Ibrahim, 2023) 위조지폐 확산, 인플레이션, 부패, 돈세탁 등 문제에 대응하고 선거철 유권자 매수를 방지한다는 취지에서 시행된 것이자, 2012년에 발표된 비(非)현금 결제 활성화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기도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번 고액권 도안 교체 사업의 취지 자체는 높이 평가하면서도, 개인 및 법인이 인출할 수 있는 일간·주간 액수 한도가 너무 낮게 설정되는 등 시행 과정상의 문제로 화폐 부족 상태가 벌어져 사회적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현재 나이지리아 일부 지역에서는 시중은행에서 원하는 만큼의 화폐를 인출하지 못한 국민들이 폭력을 동반한 소요사태를 일으키고 있으며, 이에 따라 집권당 주요 인사들 중 일부는 이번 화폐개혁이 고의로 국민 생활의 고통을 야기해 2023년 2월 25일에 예정된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맥락 아래 본고는 나이지리아 고액권 도안 교체 사업의 배경과 진행 경과, 그리고 여기에서 발생한 각종 문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그림 1> 신규 도안이 적용된 나이지리아의 고액권 3종
자료: Vanguardngr.com
2. 고액권 도안 교체의 배경과 취지
CBN이 밝힌 이번 화폐개혁의 의도에는 ▲금융권 외부로 빠져나간 대량의 화폐 회수 ▲나이지리아 대중의 화폐 축장(hoarding) 방지를 통한 양질 지폐 유통량 부족 해소 ▲위조지폐 확산 대응 등이 있다(Vanguard, 2023). 아울러 CBN은 자국 화폐의 도안 교체 주기가 상대적으로 긴 점도 이번 결정의 배경 중 하나로 지목했는데, 이는 5~8년마다 신권을 발행하는 세계적 기조에 비해 나이지리아에서 대규모 화폐개혁을 단행한 것은 거의 20년도 전의 일이기에 신규 도안 도입의 필요성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CBN이 언급한 사항 이외에도 화폐 도안 교체를 통해 일반적으로 얻을 수 있는 효과로는 ▲지폐 보안성 강화 ▲위조지폐 확산 방지 ▲(유명 인물·사물을 도안에 사용함으로써) 국가유산 보전 ▲시중 화폐 통제력 강화 ▲통화 관리비용 절감 등이 있다. 여기에 나이지리아의 특수한 상황을 감안하면 화폐개혁이 몸값을 노린 납치 사건이나 돈세탁을 비롯한 불법 금융거래의 빈도를 줄일 수도 있고, 유력 정치인들이 축적해 놓은 대량의 지폐를 사용불능으로 만들어 선거철마다 횡행하는 유권자 매수 관행을 뿌리뽑는 효과를 낼 수도 있다(Ibrahim, 2023).
무하마두 부하리(Muhammadu Buhari) 나이지리아 대통령은 2022년 11월 23일에 신규 도안이 적용된 권종의 발행을 승인했으며, CBN은 교체 대상 구권의 병행 통용 시한을 2023년 1월 31일로 발표했다. CBN은 이어 국민들이 시중은행에 구권을 예치할 것을 주문했고(은행 계좌 미보유자도 신규 계좌 개설 및 예치 장려), CBN에서 구권을 신권으로 교환할 수도 있다고 안내했다(CBN, 2022).
이에 더해 CBN은 2022년 12월 21일에 개인이 한 주간 인출할 수 있는 액수를 10만 나이라(한화 약 28만 원)로, 법인의 경우 50만 나이라(한화 약 140만 원)로 제한한다는 지침을 발표했다. 하지만 인출액 한도가 너무 낮다는 성토가 이어지자 주간 인출 한도는 각각 50만 나이라(한화 약 140만 원)와 500만 나이라(한화 약 1,400만 원)로 인상되었고, 대신 일간 인출 한도가 신설되어 하루에 개인은 2만 나이라(한화 약 5만 6,000원), 법인은 50만 나이라(한화 약 140만 원)까지만 신권을 지급받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제3자가 발행한 수표의 액면가가 100만 나이라(한화 약 280만 원) 이상인 경우, 시중은행 창구를 통한 통상적 인출이 불가능하다(Ujah, 2022).
이와 같은 인출액 제한 조치는 시중에 유통되는 화폐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한다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부하리 대통령의 방송 연설에 따르면 나이지리아의 화폐 공급량은 그가 취임했던 2015년 당시 1조 4,000억 나이라(한화 약 3조 9,000억 원)에서 출발해 2022년에는 3조 2,300억 나이라(한화 약 9조 1,000억 원)로 폭증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에 금융권 외부로 빠져나간 화폐의 비중은 78%에서 85%로 늘어났는데, 이는 화폐개혁이 발표된 2022년 10월을 기준으로 금융권 밖에 존재하는 화폐 규모가 2조 7,000억 나이라(한화 약 7조 7,000억 원) 어치에 달하고 나이지리아 금융권 내부에서 유통되던 화폐 액수는 5,000억 나이라(한화 약 1조 4,000억 원) 정도에 그쳤다는 점을 의미한다(Radio Nigeria Ibadan, 2023). 즉, 화폐의 절대적 공급량이 크게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시중에 실제로 유통되는 화폐는 부족한 상황이 전개되며 경제활동이 어려워지고 경제성장이 저해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3. 화폐개혁 시행 과정의 문제
이번 화폐개혁의 문제는 시행 과정에서 여러 부작용이 발생하며 나이지리아 국민들에게 큰 고통을 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Ebhohimen, 2023). 이 중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신권 보급량의 부족으로, CBN은 지금까지 교체 대상 구권의 80%를 회수하고 5,000억 나이라(한화 약 1조 4,000억 원)어치의 신권을 인쇄해 여러 은행에 적정 액수를 배포했다고 밝혔지만, 시중은행들은 인도받은 신권의 양이 너무 적다는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신권 부족 현상이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CBN 관계자 및 전문가들은 은행 고위층이 유력 정치인들과 결탁해 2023년 2월 25일(1차투표)에서 3월 11일(결선투표)에 걸쳐 열리는 총선에서 유권자 매수용으로 쓰일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지폐를 빼돌리고 있다고 주장한다(Arisenews, 2023). 실제로 나이지리아 경제·금융범죄위원회(EFCC, Economic Financial Crime Commission) 및 CBN의 주도로 진행된 시중은행 기습 수색에서도 이러한 범죄 행각이 발각되어 은행 관계자들이 체포된 사례가 존재하며, 이는 선거 자금 확보용 지폐 횡령이 단순한 의혹에 그치지 않고 현실로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범죄 행위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자행되고 있는지, 그리고 CBN이 어째서 지폐 횡령을 막기 위한 제재를 강력히 시행하고 있지 못한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 시중은행이 나이지리아 당국의 통제를 따르는데 적극적이지 않다는 사실은 이미 신권 유통이 개시된 이후인 2023년 1월 23일까지도 여러 은행의 ATM기에 회수 대상 구권이 사용되었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으며, 이 문제는 신규 지침이 발표되고 나서야 겨우 해소되었다(Silas, 2023).
화폐 부족 현상은 나이지리아 국민들의 경제생활에 이미 크나큰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 핀테크 인프라 발전 수준이 높지 않은 나이지리아에서는 계좌이체나 포스(POS)기 등 비현금 결제수단이 현금을 완전히 대체하는 데 무리가 있으며(Emejo, 2023), 국가 경제의 80.4%를 차지하는 비공식 부문에서도 현금 결제 관행이 깊게 뿌리내려 있다(Radio Nigeria, 2023). 물론 당장 쓸 수 있는 현금이 부족해지자 비현금 결제 빈도가 늘어나긴 했지만, 많은 이들은 현금 직거래에 비해 절차 완료에 추가 시간이 소요되는 비현금 결제의 특성 때문에 불편을 겪고 있다. 이러한 상황 아래 나이지리아 전역의 암시장에서는 지폐가 주요 거래 대상으로 떠올랐고, POS기 운용자들은 일상생활에 현금을 시급히 요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지폐를 판매하며 터무니없는 웃돈을 챙겼다(Igoni, 2023). 화폐 부족 현상은 이외에도 전례 없는 생활비 상승, 그리고 ATM기와 은행 앞에 사람들이 줄지어 기다리면서 발생하는 노동시간 손실과도 같은 추가적 문제를 함께 가져왔다.
한편 나이지리아 기업들이 받은 타격도 엄청나다. 일례로 나이지리아 제조기업연합(MAN, Manufacturing Association of Nigeria)이 배포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현금 부족으로 제조기업 매출이 25%나 급감한 것으로 나타나며, 이 때문에 생산설비 가동률도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상태이다. 게다가 나이지리아 각지의 시장에서 활동하는 소상공인들의 피해도 막심한데, 특히 신선식품 등을 판매하는 상인은 현금이 부족한 고객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가격을 내리거나 대규모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4. 화폐개혁의 정치화
화폐개혁이 진행 과정에서 여러 문제점이 드러나는 와중에 나이지리아 국가보안국(DSS, Directorate of State Security)이 고드윈 에메필레(Godwin Emefiele) CBN 총재에 대한 체포·구금 영장을 상급법원에 신청했다가 기각당하는 일이 발생했고, 이는 화폐개혁 정책이 정쟁의 대상으로 비화하는 발단이 되었다(Olasanmi, 2023). 영장 발부 신청 자체는 물론 법원 결정 이후 상황 전개도 비밀에 부쳐져 알려진 정보가 별로 없다는 사실은 이번 사태가 CBN 총재를 체포해 화폐개혁을 무위로 돌리려는 집권당 고위층의 시도였다는 정황을 말해준다.
이 시도가 실패로 끝나자, 이번에는 나이지리아 집권당 범진보회의(APC, All Progressives Congress)의 차기 대선 후보인 볼라 아흐메드 티누부(Bola Ahmed Tinubu)가 이번 화폐개혁이 자신의 선거 패배를 조장하려는 의도에서 시행된 것이라는 주장을 펴기 시작했다(Odunsi, 2023). 그러자 티누부 후보를 지지하는 APC 내 파벌도 그의 주장에 동조해 부하리 정부와 CBN이 고의로 국민의 고통을 유발해 총선에 영향을 주려 한다는 비판을 연이어 제기하고 있다(Ibrahim, 2023).
화폐개혁을 둘러싼 분쟁은 이제 나이지리아 사법부로까지 번져가고 있다. 원래 부하리 대통령은 APC 소속 주지사들과 회동한 뒤 회수 대상 구권의 통용 시한을 당초의 1월 31일에서 2월 10일로 연장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뒤이어 해당 시한을 선거 이후로까지 추가로 연장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되자, 나이지리아의 5개 정당 연합체는 CBN을 법원에 제소해 시한 추가 연장을 금지한다는 결정을 얻어냈다. 이에 집권당 APC 측은 항고하고 싶었지만 남은 시일이 촉박해 법원의 심사가 선거일까지 완료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인지했고, APC 소속 주지사 3인은 해당 사안에 대한 관할권 자체가 없는 나이지리아 대법원에 연방정부를 제소하는 시간 끌기 전략을 채택했으며, 그 결과 소송 종결시까지 연방정부가 구권 사용을 금지할 수 없다는 가처분 결정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Ukpe, 2023). 게다가 공판일인 2월 15일이 다가오자 APC 소속 주지사 7인은 이 소송에 추가 참여를 신청했는데, 소송 참여인이 늘어나자 법원 관행에 따라 공판일은 대선 직전인 2월 22일로 연기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소송에 참여하는 주지사들이 지금까지 축적해 둔 구권을 유권자 매수용으로 활용하기 위해 사용시한 연장을 기도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러자 부하리 대통령은 방송 연설을 통해 법원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구권 사용 시한이 이미 초과했다고 주장했으며, 다만 국민 불편 해소를 목적으로 200나이라권 구권을 시중에 다시 풀어 향후 60일간 신권과 병행 사용할 것을 CBN에 지시했다. 하지만 카두나(Kaduna)주 나시르 엘루파이(Nasir El-Rufai)를 비롯한 APC 소속 주지사 중 일부는 부하리 대통령의 입장에 정면으로 도전해 자신들의 주 안에서는 대법원의 금지 판결이 있기 전까지 구권을 계속 사용할 수 있다고 선포했다. 이처럼 지도층의 입장이 갈리면서 발생한 혼란은 주로 티누부 후보의 출신지인 나이지리아 남서부 지역에서 폭력적 시위사태를 촉발했으며, 이 사태를 통제하지 못하면 2월 대통령 선거 악영향이 미칠 수 있다는 예상도 있었다.
5. 화폐개혁의 경제적 순효과
비록 지금까지는 화폐개혁 시행 과정에서 발생한 부작용이 공론의 중심에 있었지만, 고액권 도안 교체는 여러 경제적 순효과도 가져왔다(Radio Nigeria, 2023). 일례로 나이지리아 정부는 이번 개혁의 교체 대상 액수 중 80%에 해당하는 2조 1,000억 나이라(한화 약 5조 9,000억 원)어치의 구권을 성공적으로 회수했고, 그 결과 거시경제 지표 개선, 과도한 화폐 공급량 제어, 화폐유통속도 감소 등의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이외에도 비공식 부문을 포함한 많은 분야의 기업이 POS기와 계좌이체를 도입하는 등 비현금 거래를 늘리면서 금융 접근성이 증대된 점, 현금 몸값을 노린 납치범들의 활동이 대폭 줄어든 점 등도 화폐개혁의 순효과로 볼 수 있다.
6. 결론
비록 나이지리아 정부가 단행한 고액권 도안 교체와 인출 한도 설정은 분명 바람직한 취지에서 나온 조치이지만, 화폐개혁이 나이지리아 정치권의 권력투쟁과도 시기적으로 결부되면서 상황이 매우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외부 시각에서 볼 때 지금까지는 현정부와 CBN이 화폐개혁 발표와 함께 천명한 의사를 대부분 관철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나, 집권당 내 티누부 후보 지지세력 등 경쟁 파벌은 아직 이 개혁을 무위로 돌리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만에 하나 사법부의 최종 결정이 적시에 나오더라도 화폐개혁과 관련한 분쟁이 원만히 해소되지 못할 가능성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정치권 일각에서 국민 생활의 고통을 명분으로 조장하는 폭력시위가 제대로 통제되지 못하면 나이지리아 사회는 더욱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첨부파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