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 쿼바디스!
체어맨 W는 세그먼트상 디자인이나 기능성보다 컨셉의 비중이 높은 차다. 다른 표현으로는 상징성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외형적으로는 크기가 우선이고 시각적으로 날렵함보다는 품위가 중요하다. 인테리어에서도 보이는 것들은 가능한 최고급 사양으로 채워져야 한다. 그런 내용을 채우고 가능한 높은 가격을 책정하는 것도 빠트릴 수 없는 요소다.
글/채영석(글로벌오토뉴스 국장)
이는 엄청난 공을 들여 자신의 역작을 끝내고 마지막 서명을 하는 순간에 문구점에서 판매하는 평범한 볼펜보다는 몽블랑과 같은 ‘품위있는’ 펜을 원하는 것과 같다. 어느 경영자가 사회적으로 나름 성공을 거두었고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을 찾는데 마티즈나 모닝을 타고 다닐 수는 없지 않은가. 실용주의자들에게는 코웃음거리가 될 수 있는 내용일 수 있지만 사람의 심리는 그렇다. 모든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더 많은 사람들은 이성보다는 그런 감성을 더 쫓는다.
그런 의미에서 쌍용 체어맨은 적어도 한국의 럭셔리 세단 수요자들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는 모델이라는 평가를 받을만하다.
그것은 제품 측면에서의 이야기이다. 오늘날 판매는 제품의 우수성보다는 이미지에 의해 더 많이 좌우된다. 메르세데스 벤츠나 BMW, 아우디, 렉서스, 재규어 등 프리미엄 브랜드들은 디자인을 어떻게 바꾸든지 소비자들은 그저 그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를 배경으로 제품을 구매한다.
체어맨 W는 지금 그 브랜드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글로벌 프리미엄 브랜드들과 견줄 수는 없지만 한국시장의 프레스티지 세단 시장에서 나름대로의 입지를 구축해 가는 과정에서 그렇다는 얘기이다.
대형차로 분류되는 에쿠스와 채어맨의 판매 현황을 보면 상황 판단이 된다. 체어맨은 2003년 9월 뉴 체어맨으로 변신한 이후 현대 에쿠스를 제친 역사를 갖고 있다. 2004년 에쿠스 1만 2,840대 체어맨 1만 4,696대, 2005년 에쿠스 1만 3,836대 체어맨 1만 5,283대를 팔았다. 하지만 1997년에 데뷔한 모델로서 수명의 한계는 어쩔 수 없어 2006년 에쿠스 1만 4,109대, 채어맨 1만 1,846대로 다시 역전 당했고 2007년에는 에쿠스 1만 2,125대 체어맨 9,744대로 역부족 현상을 보였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체어맨은 에쿠스와 함께 ‘비싸서 잘 팔리는’ 차의 범주로 분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쌍용자동차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형차 유저의 27.9%가 배기량 때문에 구입한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두 번째가 스타일링으로 23.1%, 세 번째는 크기(19.2%), 네 번째가 가격(19.2%), 그리고 출력(10.6%)이었다.
특히 ‘좀 더 싸고 실용적인’ 차보다는 ‘남들 눈에 기죽어 보이지 않는’ 것을 중시하는 문화인 한국시장에서 체어맨 W는 그 나름대로의 존재감이 있었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기술을 유용한 모델이라는 배경도 크게 작용했다.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메르세데스 벤츠를 구매하기에는 부담이 있지만 최대 배기량의 모델을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소유하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켜준다는 얘기이다.
지금은 그런 과거를 거론할 때가 아니다. 이제는 그야말로 생존을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제품의 생존여탈권은 경영능력에 달려있다. 지금 상황에서는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다. 한국시장의 분위기는 부정적인 시각이 더 강하다. 현재로서는 제조업의 본연의 자세를 확실하게 갖추고 새로운 투자자를 찾는 것이 최선의 대안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쌍용자동차는 최근 경영정상화를 위한 일련의 조처를 발표했다. 핵심 내용은 매출 확대와 점유율 회복을 위해 현재의 제품 포트폴리오를 고연비, 친환경, 소형차 중심 추세라는 시장 환경변화에 맞도록 대폭 개편해 경제적, 대중적인 엔트리 차급과 친환경 차량 개발에 집중해 나간다는 내용이다.
주요 제품개발 방향으로는 체어맨 W를 국내 톱 모델로 육성, 중?대형 SUV 위주의 제품 포트폴리오를 중?소형 CUV 위주로 개편해 RV 전문 메이커로 재 도약, 제품 포트폴리오에 부합하는 친환경, 고효율 파워트레인 개발, 향후 5년 내 소형 EV 1개 차종 및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1개 차종 개발 등을 제시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하다.
현재 월 생산량 5,500대 수준
우여곡절 끝에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은 다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모든 조건이 갖추어져서 재가동한 것은 아니다. 어떤 형태로든 살려보겠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의 힘에 의한 것이다. 생산하고 있는 차종은 체어맨 W/H를 비롯해 렉스턴, 카이런, 액티언, 액티언 스포츠, 로디우스 등 라인업 대부분이다.
현재 쌍용자동차의 직원 수는 3,000명 전후. 2008년에는 5,400명이었다. 생산량은 월 5,500대 수준. 2008년 연간 9만 2,000대에서 올 해에는 3만 4,000 정도가 예상되고 있다. 반 토막 이하다. 오히려 생산되고 있는 것이 신기한 상황이라고 해도 좋을 듯 싶다. 그래도 이 수치는 당초 법원이 조사한 2만 7,000대보다 16% 가량 높은 수치이다. 내부에서는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도전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해 준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이후 중단됐던 수출도 재개됐다. 9월에 3,000대 가량을 수출했다. 주로 스페인과 영국, 이태리 등 주력시장인 서유럽 국가들로 나가고 있다. 중동지역과 아태지역으로의 수출도 곧 재개될 전망이다.
내수시장에서도 판매가 다시 시작되면서 영업사원 모집공고를 냈다. 내수시장에서의 영업사원 숫자는 가장 많았을 때는 1,700명을 상회했으나 지금은 1,100-1,200명 정도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턱없이 부족한 수치이다. 규모의 경제라는 숙명이 지배하는 자동차산업에서 쌍용의 존재가치는 미미하다. 재규어와 랜드로버, 볼보, 사브 등 글로벌 시장에서 강한 브랜드 이미지를 갖고 있는 메이커들도 제자리를 잡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세상 일이 언제나 전문가들의 예측대로 굴러가지는 않는다. 아니 오히려 저명한 경제전문가들의 전망은 95%가 맞아 떨어지지 않았다는 분석도 있다. 일본전산(NIDEC)의 나마모리 사장처럼 기술력만 있으면 죽어가는 회사를 인수해 1년만에 모두 흑자로 전환시키는 기적을 이룬 경우도 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쌍용자동차에 대해 무엇이 최선인지는 일치된 의견이 없는 듯하다. 거기에는 정치적인 이해까지 섞여 있다.
(2010 쌍용 체어맨 W CW700 시승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