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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호·모두모아 151호 여는 글 감수성의 공동체|배봉기•4 상장 / 삼 분을 기다리며|문현식•7 물고기 극장 / 물고기 극장·2|김륭•10 산마을 푹푹 눈이 내리면 / 세상에서 가장 작은 선물|김유진•12 지붕 위의 고양이 / 가위|김철순•14 악어 / 바다 미용실|박소이•16 만남 / 아파트와 고양이|이상교•18 초승달 / 가족|이영애•22 동화 미래의 친구에게|이퐁•24 딸꾹 귀신|임선영•38 응모 동시를 읽고 응모 동화 스파클링봇|유하정•75 응모 동화를 읽고 쓴 약을 먹을 줄 아는 이가 문학이라는 병을 앓을 자격이 있다|유영진•86 제4회 어린이와 문학상 심사평 동화 좌담 건강한 상징과 리얼리티를 찾아서|김윤·김지은·송수연·오세란•104 주제가 있는 책꽂이 이야깃거리 ‘로봇’|편집부•146 과학으로 상상하기 로봇에게 박수를!|정재은•148 창작 수첩 시, 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너!|이묘신•154 먼 길 쓸쓸하지 않게, 오래오래 함께|진형민•161 번역의 세계 번역, 나를 찾아오는 기적 같은 인연을 공유하는 작업|박종진•170 편집 수첩 작은 숨이, 바람이 될 수 있기를|윤보황•177 | 서평 감각적 시어와 선명한 이미지의 아우라|유하정•185 『핫-도그 팔아요』 장세정 시·모예진 그림 마음 속 보물찾기|황종금•193 『나 좀 여기서 구해 줘!』 살라 나우라 글·유혜자 옮김 저작권 정보 출판사가 저작권을 위탁관리하는 것이 불법이라는 법률구조공단 답변을 받았다면?|김하늘•199 삐뚤빼뚤 기차와 우주|강재원•206 아침이 좋은 소녀|이아인•207 엄마하고 부르면|이지아•208 그리운 이 친구|정윤아•209 안내 ‘어린이 글’을 기다리고 있어요•209 〈어린이와 문학〉을 만들어 온 사람들•214 |
표지 그림 : 안효림
쓰고 그린 그림책에 『너는 누굴까』, 『감나무가 부르면』이 있습니다. 어른이 되는 건 뭘까? 하고 궁금해하다가 문득 내 안에서 어른을 발견하고 놀랍니다. 얼른 어른이 아닌 척 아이들 과 대화를 해보면 또 놀랍니다. 아이들은 연기하는 것을 진짜 잘 알아차립니다. 아이일 땐 어른이 되 고 싶더니 지금은 아이가 되고 싶네요.
그림 설명 : 겨울 산입니다. 빨간 차가 초록 도시를 향해 달려갑니다. 빨리 가려고 구멍들을 통해 갑니 다. 자연은 오롯이 겨울 색입니다.
창작 수첩 맛보기
창작 수첩 |이묘신 - 시, 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너!
▷ 청소년 시집『내 짧은 연애 이야기』는 한 편의 소설처럼 혹은 수필처럼 풋풋한 남학생의 사랑과 이별이 펼쳐집니다. 청소년들의 사랑과 연애 감정을 다채롭게 표현하신『내 짧은 연애 이야기』의 작업 과정이 무척 궁금합니다.
우선 시 한 편을 보겠습니다.
「아줌마들의 통신망이란」
-너, 아까 걔 누구야?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엄마를 보는데
여자애랑 손잡고 가는 걸
엄마 친구가 봤단다.
하필이면 우릴 볼 게 뭐람.
-니가 지금 여자 친구 만날 때야?
엄마가 소리 지른다.
안경집 아줌마일까?
-이제 고등학교 가야지. 정신 좀 차려!
미나네 아줌마일까?
-대학가면 저절로 생기는데 왜 그래?
엄마가 계속 소리친다.
어느 아줌마일까? 누굴까?
이 시엔 청소년 연애시를 쓰게 된 계기가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동네에서 안경점을 하는 친구를 만났을 때입니다. 제 아들이 여자애랑 손을 잡고 다니는 걸 봤다는 것입니다. 순간 당황스러웠습니다. 고등학생 된 지 얼마나 됐다고요. 저녁에 들어온 아들에게 누구랑 다녔냐고 다그쳤습니다. 그랬더니 그다음부터 눈도 마주치지 않고 피했습니다. 그냥 침묵하고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환해진 얼굴로 손전화를 들고 히히덕거리는 아들이 얄밉고 눈꼴시었습니다.
몇 달 후, 아들은 다 죽을 것처럼 아파했습니다. 처음 사귀어 본 여자 친구랑 이별을 한 것입니다. 차라리 연애가 잘 되면 좋았을 걸, 축 처진 아들의 모습은 안쓰럽고 더 보기 싫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드는 생각이 청소년 연애시를 써볼까, 였습니다. 삶의 과정으로 당연히 거치고 가는 청소년기의 이성 교제와 사랑! 어느 누가 읽어도 좋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픈 아들, 슬픔에 빠진 아들을 두고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니 엄마가 맞나 싶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난 작가니까, 하면서 스스로 위로했습니다.
이별의 상처를 가진 아들에게 묻지도 못했습니다. 대신 저의 첫사랑을 떠올리고 아들의 연애를 상상하고 추측하면서 시를 써나갔습니다.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부터 달콤하게 만나고 삐걱거리며 이별을 맞이하기까지의 과정을 연작시로 썼습니다.
시간이 좀 흐르고 아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을 때 아들 앞에 시를 내밀었습니다. 아들은 진지하게 좋은 시엔 동그라미, 그저 그런 시에는 세모, 이건 아니다 싶은 시에는 엑스 표를 해가며 꼼꼼하게 살펴봤습니다. 나는 아들의 표정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일 땐 환해졌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때는 의기소침해졌습니다. 이런 시간을 거치며 청소년 시집『내 짧은 연애 이야기』(크레용하우스, 2016)는 탄생했습니다.
이묘신
1967년 경기도 이천에서 태어났어요. 2002년 MBC 창작동화대상에서 단편 동화「꽃배」로 수상하고, 2005년 동시「애벌레 흉터」외 다섯 편으로 제3회 푸른문학상 ‘새로운 시인상’을 수상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어요. 지은 책으로는 그림책『후루룩후루룩 콩나물죽으로 십 년 버티기』가 있고 동시집『책벌레 공부벌레 일벌레』,『너는 1등 하지 마』가 있어요. 청소년 시집『내 짧은 연애 이야기』도 썼어요.
창작 수첩 |진형민 - 먼 길 쓸쓸하지 않게, 오래오래 함께
▷ 지금 어린이들이 겪는 경험과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가끔 이런저런 자원 활동을 할 기회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있는 곳이라면 대체로 어디든 가리지 않고 가려 합니다. 지난가을에는 저소득층 아이들이 지내는 공간에서 한 달 동안 글쓰기 수업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등단하기 전에 초등 대안 학교 교사로 근무한 경험이 있기도 하고, 아이들과 수업하는 일을 좋아하기도 해서 큰 고민 없이 선뜻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한 달 내내 무거운 마음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내가 그동안 ‘수업 잘하는 교사’일 수 있었던 것은 ‘수업할 준비가 되어 있는 아이들’ 덕분이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누군가와의 눈 맞춤이 불편하고, 몸을 바로 세워 앉는 일이 어렵고, 공책에 글자를 쓰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싫은 아이들에게 ‘네가 겪었던 그 일’을 글로 한번 써 보자고 꼬드기는 교사는 얼마나 지겨운 존재일까요. 글쓰기는 뒤로 던져 놓고 온갖 놀이만 계속하다가, 겨우 아이들과 눈 맞춤을 시작할 때쯤 우리는 다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어른들은 몇 번의 수업만으로, 몇 번의 상담만으로 아이들이 달라질 거라고 진짜 믿는 것일까요? 위선 혹은 무지 혹은 더 나은 대안이 전무한 현실. 한동안 참담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요즘 마음 쏟아 하는 일 중 하나는 미얀마 아이들의 교육을 지원하는 일입니다. 제가 속한 교육 단체에서 몇 년 전 미얀마의 작은 마을에 어린이 도서관을 열었습니다. 가까스로 공간을 구해 어린이책들을 부지런히 모았는데 2천 권을 모으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나마 절반은 영어 그림책이나 한국 그림책이고, 미얀마말로 된 어린이책을 구하는 일은 정말 하늘의 별 따기였습니다. 그래도 도서관 문이 열리자 마을 아이들이 쉼터 삼아 도서관을 들락거리며 책 옆에서 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작년 여름 다시 도서관을 방문했을 때, 미처 예상치 못했던 장면을 목격하게 됐습니다.
그날따라 일찌감치 도서관에 나와 있는데, 한 무리의 아이들이 도서관 안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아이들이었습니다. 제가 도서관에서 만났던 아이들은 학교 끝나자마자 교복 입고 책 보러 오는 아이들이거나(미얀마에서는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모두 교복을 입습니다)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웃고 노래하고 뛰노는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무리 지어 나타난 이 아이들은 꾀죄죄한 얼굴에 넝마 같은 옷을 걸치고 도서관 안을 어슬렁거렸습니다. 아이들이 옆을 지나갈 때마다 지독한 냄새가 났습니다. 도서관 활동가가 요 근처 시멘트 공장에서 일하는 소수 민족 노동자들의 아이들이라고 넌지시 일러 주었습니다.
미얀마는 130개가 넘는 다양한 민족들이 함께 살아가는 나라인데, 그중 다수를 차지하는 몇몇 민족을 제외한 소수 민족들은 삶의 방편을 찾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다수 민족을 중심으로 개발이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물론 개발의 배후는 따로 있습니다) 도서관이 있는 도시 양곤은 버마족이 주도권을 잡고 살아가는 곳인데, 멀리 떨어진 지역의 소수 민족들이 허드렛일을 하려고 주변에 모여들어 살기도 합니다. 소수 민족 노동자들은 계속 떠돌아다니기 때문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글자를 못 읽는 것은 물론 버마족 말도 잘 모르고, 그냥 도서관에 와서 간식을 얻어먹고 그림책의 그림을 좀 보다가 가는 것이 전부라고 합니다.
그런데 한동안 낄낄대며 그림책을 보던 아이들이 갑자기 우르르 일어나 도서관을 빠져나갔습니다. 돌아보니 교복 입고 가방을 멘 아이들 몇 명이 도서관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양쪽 무리의 아이들은 서로를 쳐다보지도 않고 스쳐 지나갔습니다. 버마족 아이들과 이름도 알 수 없는 소수 민족 아이들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르는 듯 보였습니다. 작은 마을 안에서도 아이들의 삶은 서로를 외면하고 싶을 만큼 격차가 크고 골이 깊었습니다.
‘어린이 일반의 삶’은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이마다 처한 현실이 있을 뿐입니다. 부모가 사회에서 어떤 위치를 점하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처지는 하늘과 땅만큼 달라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아이의 경험, 어떤 아이의 생각에 주목할 것인지를 결정한 뒤에야 비로소 그 삶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누구를 주목할지 결정할 때도 저의 선택권이 그리 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수많은 사람들 중 유독 마음에 남는 이들, 시간이 지나도 자꾸 떠오르는 얼굴들, 나도 모르게 귀 기울이고 있는 목소리들, 결국 그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간 익숙하게 사용한 감각들이 어느새 나를 규정해 버린 건 아닌지, 이것이 신념인지 경향성인지 족쇄인지, 생각이 많아지는 요즈음입니다.
진형민
동화 작가. 지은 책으로 『기호 3번 안석뽕』, 『꼴뚜기』, 『소리 질러, 운동장』, 『우리는 돈 벌러 갑니다』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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