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 3:6]
요시야왕 때에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네가 배역한 이스라엘의 행한 바를 보았느냐 그가 모든 높은 산에 오르며 모든 푸른나무 아래로 가서 거기서 행음하였도다...."
노를 한 없이 계속하시겠으며 끝까지 두시겠나이까 - 이스라엘의 얄팍한 신앙의 일면이 엿보인다. 즉 그들은 하나님은 자비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호소와 항의만 하면 자기들의 무수한 악행을 눈감아 주시고 재빨리 구원해 주실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
그러나 유다는 번지르르하게 말만 할 뿐 악행을 그치지 않고 있다.
[렘 3:7]
그가 이 모든 일을 행한 후에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게로 돌아오리라 하였으나 오히려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고 그 패역한 자매 유다는 그것을 보았느니라....."
오히려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고 - 이 구절에는 이스라엘이 이방 제사 의식에 깊이 중독되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이스라엘이 우상 숭배로 인해 몇가지 시련을 당하고 난 후 여호와께로 돌아왔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그렇지 않다.
한편 남유다는 이스라엘의 범죄와 멸망에 넋을 잃고 흥미 진진하게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음 구절에서도 볼 수 있듯이 유다의 반응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렘 3:8]
내게 배역한 이스라엘이 간음을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를 내어쫓고 이혼서까지 주었으되 그 패역한 자매 유다가 두려워 아니하고 자기도 가서 행음함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그를 내어 쫓고 - 여기에는 B.C.722년에 사마리아 성이 앗수르 군대에 의해 함락되는 역사적 사실이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사마리아 멸망 전에도 이미 북이스라엘 왕국은 앗수르의 침공에 시달렸다. 디글랏 빌레셀 3세(B.C.745-727년) 당시의 앗수르군은 이스라엘 대부분의 도시들을 정복하고 수많은 백성들을 포로로 끌고 갔다
이는 북이스라엘의 배도에 대한 값비싼 대가였다. 그러나 유다는 언약을 어진 이스라엘의 심판을 목도했음에도 불구하고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우상 숭배에 빠져든 것이다.
[렘 3:9]
그가 돌과 나무로 더불어 행음함을 가볍게 여기고 행음하여 이 땅을 더럽혔거늘...."
돌과 나무로 더불어 행음함을 가볍게 여기고 - 본절의 주체는 8절과의 연관 속에서 보면 유다인 것 같고, 10절과 관련지어 보면 이스라엘인 듯하다. 문맥상 전자로 보는것이 더 자연스럽겠다. 유다의 배도는 아주 심각한 것이어서 여호와의 언약 조항을 잊었을 뿐만 아니라 우상 숭배에 빠져 있으면서도 그것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
한편 가나안 종교에 있어 주요 관심사는 풍요와 성(性)에 있었는데, 따라서 그 제사 의식도 주로 땅, 짐승, 여인의 다산(多産)을 빌기 위한 목적에서 수행되었다. 본절에 언급된 돌과 나무 역시 그들의 주요 숭배 대상이었다.
[렘 3:10]
이 모든 일이 있어도 그 패역한 자매 유다가 진심으로 내게 돌아오지 아니하고 거짓으로 할뿐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진심으로...아니하고 거짓으로 할 뿐이니라 - 이스라엘이 언약 파기로 인해 심판을 초래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유다는 진심으로 여호와께로 돌이키지않고 그 흉내만 내었다. 아마 예레미야는 여기서 요시야의 개혁을 염두에 둔 것 같다. 그렇다면 이 구절은 B.C. 622년 이후와 관계된다.
유다는 므낫세 통치 이전 즉 사마리아 멸망 때까지는 이스라엘보다는 우상 숭배에 덜 물들어 있었다. 그 이후 유다의 종교적 타락은 급속도로 심각해졌다. 그러나 요시야의 개혁과 더불어 유다는 다소 바른 길로 들어서는 듯하였으나 예레미야에게는 이것이 피상적인 것으로 보여졌다.
종교 개혁으로 말미암아 종교적 행사는 활발했을지 모르나 참된 회개는 부족했던 것이며 예레미야는 이에 환멸을 느꼈던 것이다. 이 구절의 연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율법책이 발견되기 전, 즉 오시야가 그의 개혁 운동을 강화하기 이전에 나온 것으로 보고 있으나, 그보다는 종교 개혁 조치의 초기 실패를 지적하는 것으로 보고 이 구절을 B.C.622년 이후의 내용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