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01일 대림 1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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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1.mp3
태평천하와 천하태평
우리말에 천하태평이라는 말과 태평천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두 말은 가출과 출가처럼 말의 앞뒤를 바꾼 것뿐인데
가출이 나쁜 뜻이고 출가는 좋은 뜻으로 정반대인 것처럼
사뭇 다른 뜻이거나 반대의 뜻일 수도 있겠습니다.
천하태평은 대체로 안 좋은 뜻으로 쓰입니다.
자기를 둘러싼 세상은 지금 난리가 났는데
혼자 천하태평이라고 하는 것처럼 부정적 의미입니다.
몇 주 전 평화 이기주의라는 말을 제가 한 적이 있는데
이와 비슷한 뜻으로 나만 편하고 평화로우면 남이 어떻게 되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건 무관하게 살아가는 태도입니다.
이에 비해 태평천하는 누구 한 사람의 평화 또는 나의 평화가 아니라
천하가 다 태평한 상태를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왜 이런 생각을 한 것일까요?
그것은 오늘 독서 이사야서가 메시아가 오시면 이루어질 태평천하를
묘사하기 때문인데 메시아가 통치하는 나라에서는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고,
사람들은 악하게도 패덕하게도 행동하지 않으리니" 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대림시기에 우리는 이런 태평천하가 오기를 바랄까요?
이런 태평성대를 모두 바랄 거라고 우리는 생각하는데 정말 그럴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모두가 평화로운 세상을 원하면 태평성대가 될 텐데
현실은 나의 평화가 깨지지 않기 위해 세상의 평화를 원하지,
다시 말해서 평화 이기주의 차원에서 세상의 평화를 원하지
진정 세상이 평화롭기를 바라거나 너와 내가 평화롭기를 원치 않습니다.
기후변화 위기나 코로나 19 시국에서도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기후변화로 기온이 올라가고 공기가 나빠지자 나의 안전과 평안을 위해
에어컨이나 공기정화기를 자기 집에 들여 놓지만 그것들이 환경 파괴의
요인중의 하나임에도 그 사용을 줄이거나 불편함을 감수하려 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묻게 됩니다.
우리는 진정 평화 공존을 원하는가?
우리는 진정 너의 평화를 기원하는가?
우리는 일본을 포함한 온 세상의 평화를 바라는가?
우리는 닭과 소들이 건강하고 평화롭기를 바라는가?
코로나 19 전염병이 지금 우리에게 큰 위협을 주고 고통도 주지만
이런 면에서 우리 자신을 성찰케 하고
서로를 위해 조심도 하게 하는 좋은 면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성찰은 하지만
평화공존을 위해 나를 희생하려고는 하는지 의문이 갑니다.
나는 오늘 이사야 말씀처럼 모든 피조물이 서로 사이좋게 지내도록
피조물도 평화롭기를 바라고 기도하며 나의 육식을 줄이겠는가?
나의 편안과 편리 때문에 파괴된 생태계의 회복을 위해
나는 일회용을 줄이고, 전기를 줄이고, 모든 불편함을 감수하겠는가?
제가 보기에 평화는 원해도 희생이나 불편함을 감수할 의지는 없습니다.
위기로 인한 위기의식은 있어도 위기에서 길을 찾으려는 의지,
더 나아가서 그 길을 알고 같이 가려는 의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역시 평화 이기주의 때문에 평화는 원해도
자기를 희생하며 평화 공존의 길을 갈 의지는 없으며,
의지가 없기에 평화 공존의 길을 찾지도 알지도 못합니다.
오늘 이사야서의 끝에 메시아의 태평천하가 어떻게 오게 되는지 말하는데
그것은 "바다를 덮는 물처럼 땅이 주님을 앎으로 가득할 것이기 때문이다."고
얘기하듯이 우리는 "지혜와 슬기의 영, 경륜과 용맹의 영"으로
하느님을 제대로 알고 경외할 때 태평천하가 오는 것임을 알아야 하고,
또 실천해야 할 것은 실천하도록 해야겠습니다.
◆ 출처: 원글보기; ▶ 작은형제회 김 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