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山)
김소월
산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
산새는 왜 우노, 시메 산골
영(嶺) 넘어가려고 그래서 울지
눈은 내리네, 와서 덮이네.
오늘도 하룻길
칠팔십 리
돌아서서 육십 리는 가기도 했소
불귀(不歸), 불귀, 다시 불귀,
삼수갑산(三水甲山)에 다시 불귀
사나이 속이라 잊으련만
십오 년 정분을 못 잊겠네.
산에는 오는 눈, 들에는 녹는 눈,
산재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
삼수갑산 가는 길은 고개의 길.
(『개벽』 40호, 1923. 10)
[어휘풀이]
-시메 : 깊은 산골.
-불귀(不歸) :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뜻. 또는 죽음을 의미.
[작품해설]
이 시는 후일 발표한 「길」의 전편에 속하는 작품으로, 고향을 그리워하며 낯선 타향에서 유랑의 길을 걷는 시적 화자의 비애감을 표출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자기와 비슷한 정황의 ‘오리나무 위의 산새’를 바라보며 산새와 일체화된다. 새는 평화롭게 살았던 ‘시메 산골’을 그리워하나 높은 고개가 있어 울고, 시적 화자는 ‘삼수갑산’을 그리워하나 ‘고개’로 인해 운다. ‘삼수갑산’을 떠나 눈길을 뚫고 ‘오늘도 하룻길 / 칠팔십 리’를 걸었지만, 마음은 언제나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그 곳을 향해 ‘육십 리’를 되돌아갈 뿐이다.
‘시메 산골’을 향한 새에게 놓여 있는 ‘영(嶺)’이나, ‘삼수갑산’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시적 화자에게 놓여 있는 ‘고개’는 모두 욕망을 가로막는 ‘장애(障碍)’의 대상으로, 그 곳을 넘으려는 욕망으로 인해 그에게는 더욱 깊은 절망과 회한이 생긴다. 그러므로 시적 화자는 욕망을 단면하겠다며 ‘사나이 속’으로 다짐해 보지만, ‘십오 년 정분’의 ‘삼수갑산’을 잊기는커녕 더욱 더 깊은 미련을 갖는 나약한 태도를 보인다. ‘눈’으로 표상된 현실 세계의 고통과 ‘눈길’로 제시된 현재적 삶을 극복하지 못하고, 추억에 잠긴채 과거로의 회귀만을 꿈꾸는 화자는 분명 귀소 본능(歸巢本能)의 인물일 뿐이다. 이러한 시적 화자야말로, 불우한 환경에서 비롯된 병적인 성격으로 암울했던 식민지 시대를 정면에서 대응하지 못하고 체념과 정한의 눈물로 살다가 서른둘의 젊은 나이로 자살한 소월 자신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작가소개]
김소월(金素月)
본명 : 김정식(金廷湜)
1902년 평안북도 구성 출생
1915년 오산중학교 중학부 입학
1923년 배재고보 졸업
1924년 『영대(靈臺)』 동인 활동
1934년 자살
시집 : 『진달래꽃』(1925), 『소월시초』(1939), 『정본 소월시집』(1956)
첫댓글
오리나무 위에서 우는 🐦
감사합니다
무공 김낙범 선생님
댓글 주심에 고맙습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무한 건필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