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종정 서암스님 열반
열반송 묻자 "그런것 없다" 4월2일 봉암사서 영결식
전 조계종 종정 서암스님이 오늘 오전 문경 봉암사에서 입적했다. 세수 87세 법납 68세. 스님의 영결식은 오는 4월2일 오전 11시 봉암사에서 봉행된다.
서암스님은 열반송을 묻자 "나는 그런 거 없다"며 "누가 물으면 노장 그렇게 살다 갔다해라"는 말만 남겼다.
행장(略譜)
1917년 10월8일 경북 안동군 녹전면 구송리에서 嚴父 宋東植님과 慈母 申東卿님의 5男1女중 三男으로 탄생. 본명은 鴻根 부친의 독립항쟁으로 참담한 유랑생활 도중에서도 마을 서당과 단양의 대강보통학교, 예천의 대창학원 등에서 한학과 신학문을 修學, 그 영민함으로 '천재소년'으로 불렸다.
1932년(16세) 경북 예천 西嶽寺에 出家, 3년간 머슴과 같은 고된 行者생활.
1935년(19세) 경북 문경 金龍寺에서 華山스님을 恩師로, 낙순스님을 戒師로 沙彌戒를 受戒 법명은 鴻根. 수계후 김룡사 講院에서 修學
1937년(21세) 김룡사에서 金烏선사를 戒師로 比丘戒와 菩薩戒를 受持. 大德法戒를 稟受. 법호를 西庵으로 받음.
1938년(22세) 김룡사 강원을 졸업하고 독학으로 日本大 宗敎學科 入學.
1940년(24세) 당시 사형선고와 같은 폐결핵 말기라는 진단을 받고 歸國.
1941년(25세) ‘세상에서의 마지막 봉사‘라는 생각으로 각혈을 하면서도 대창학원에서 학생 들을 指導.
1942년(26세) 죽음만을 기다리며 사는 것이 헛되다고 돌이키시고, ‘이제부터 생사의 근본도리를 놓치지 않으리라’고 다짐하시고 金龍寺 선원에 안거.
1943년(27세) 북쪽으로 만행중 철원 深源寺에서 1년간 화엄경을 講義.
1944년(28세) 금강산 摩訶衍에서 하안거. 大乘寺 바위굴에서 性徹스님과 함께 동안거.
1945년(29세) 大乘寺에서 靑潭,性徹스님과 하안거.
해방을 맞아 예천의 대승사 포교당에서 징병․징용당하여 죽음의 땅에서 돌아오는 사람들에게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는 보살행을 실천함과 동시에 불교청년운동을 전개.
1946년(30세) 계룡산 羅漢屈에서 단식하며 용맹정진 도중 삶과 죽음의 경계마저 한갓 공허한 그림자처럼 사라짐. 덕숭산 定慧寺 滿空스님 회상에서 안거
1947년(31세) 가야산 海印寺에서 曉峰스님 회상에서 안거
望月寺에서 金烏스님을 모시고 동안거
1948년(32세) 지리산 七佛庵에서 金烏스님를 모시고 ‘공부하다 죽어도 좋다’는 서약서를 쓰고 道川스님등과 함께 결사정진.
1949년(33세) 광양 上白雲庵, 보길도 南隱寺에서 金烏스님을 모시고 정진. 계룡산 獅子庵에서 金烏스님을 모시고 정진.
계룡산에 精進窟을 짓고 동안거
1950년(34세) 계룡산 精進窟에서 하안거. 上院寺 漢岩스님 회상에서 동안거
1951년(35세) 계룡산 精進窟에서 하안거. 속리산 福泉庵에서 동안거.
1952년(36세) 계룡산 精進窟에서 하안거. 청화산 圓寂寺에서 동안거.
1953년(37세) 청화산 圓寂寺에서 안거.
1954년(38세) 청화산 圓寂寺에서 하안거, 속리산 中獅子庵에서 동안거.
1955년(39세) 청화산 圓寂寺에서 안거.
1956년(40세) 청화산 圓寂寺에서 안거.
1957년(41세) 청화산 圓寂寺에서 안거.
1958년(42세) 청화산 圓寂寺에서 하안거. 梵魚寺 金魚선원에서 동안거
1959년(43세) 함창포교당에서 안거.
1960년(44세) 桐華寺 內院庵에서 하안거. 상주 청계산에 토굴을 짓고 동안거.
1961년(45세) 청계산 토굴에서 안거.
1962년(46세) 태백산 弘濟庵에서 안거.
1963년(47세) 김룡사 金仙臺․圓寂寺․鳳巖寺를 오가며 정진
1964년(48세) 김룡사 金仙臺․圓寂寺․鳳巖寺를 오가며 정진
1965년(49세) 태백산 覺華寺에서 金烏스님을 모시고 안거.
1966년(50세) 도봉산 天竺寺 無門關에서 안거
1967년(51세) 김룡사 金仙臺에서 안거
1968년(52세) 금정산 梵魚寺 內院암에서 안거, 제주도 天王寺에서 동안거.
1969년(53세) 김룡사 金仙臺․상주 甲長寺에서 안거
1970년(54세) 圓寂寺에 다시 주석.
구산선문 曦陽山 鳳巖寺 祖室로 추대되었으나 固辭하고 禪德소임을 자청하여 원적사를 오가다가, 1979년 이후부터 조실로 계시면서 승풍을 바로 잡으시며 낙후된 가람을 새롭게 중창, 조계종 종립선원으로 제정하여 선풍을 드날리며 衲子들을 提接하심
1975년(59세) 제10대 曹溪宗 總務院長을 2개월 동안 역임.
1991년(75세) 조계종 元老會議 議長
1993년(77세) 제8대 曹溪宗 宗正으로 추대.
1994년(78세) 宗正職과 鳳巖寺 祖室을 辭任하시고 거제도, 삼천포, 팔공산 등지를 거쳐서 태백산 자락에 가건물을 지어 無爲精舍라 이름하고 無爲自適하심.
2001년(85세) 봉암사 대중의 간청에 의하여 8년만에 봉암사 염화실로 다시 돌아와 閑居하 심.
2003년(87세) 봉암사 염화실에서 3월 29일 오전 7시 50분 무렵에 열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