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 <제2話>
아침을 명월과 겸상하여 그윽하게 마친 양곡은 개성 유람에 나섰다. 그러나 그의 눈엔 선녀(仙女)같은 명월의 모습이 앞을 가려 아름다운 개성 가을 풍광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점심때도 넘기지 못하고 허둥지둥 명월관으로 돌아왔다.
명월은 양곡이 말을 타고 명월관을 나갈 때부터 개성의 절경을 절반도 못보고 말고삐를 되돌릴 것을 생각하고 일찌감치 몸치장을 서둘렀다. 엊저녁엔 선비체면에 소극적으로 명월의 독특한 선향(仙香)이 아침안개처럼 풍기는 몸을 문만 열었을 뿐 오늘은 들소모양 덤벼들 것이 뻔해서다.
명월도 꽃잠(첫날밤)에서 사랑의 지혜를 첫 장면만 보여주었을 뿐 퇴기 옥섬 이모가 가르쳐 준 잠자리 기술을 시작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유수한테 들은 “30일을 넘기면 인간이 아니다.”란 약속을 깨도록 하려는 속내다. 명월 자신을 두고 내기를 했다는 데에 체면을 중시하는 사대부들의 콧대를 보기 좋게 꺾어 주려는 심보다.
열린 창문 밖 모과나무 위로 찬란한 가을 햇빛이 소나기처럼 쏟아지고 있다. 명월은 직접 점심상을 들고 들어갔다. 양곡은 명월을 보자 피로했던 표정이 봄꽃같이 갑자기 화색이 돌았다.
“송도 팔경을 다 보시지는 못하신 것 같네요?”
명월이 무지개빛 미소를 지으며 점심상을 들고 방으로 들어오며 던지는 말투다.
내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다.
“그랬느니라... 내 명월과 더 많은 시간을 가지려고 잠시 개성 저잣거리만 보고 돌아왔느니라! 네가 익제(益齊·李齊賢(1287~1369)의 호)의 《송도팔경》을 말하는 모양이구나! 풍류객이 이곳에 오면 첫째는 명월을 보러 오는 것 외엔 송도팔경인 곡령의 개인 봄, 용산의 늦가을, 자하동의 스님찾기, 청교의 손님 보내기, 웅천에서 술계, 용산의 들에서 봄을 찾아, 감포의 어옹, 서강의 배가 아니더냐? 참으로 아름답고 멋이 풍기는 시(詩)로다.”
의기양양한 표정이다. 네가 시를 안다고 하지만 나를 당하지는 못할 것이란 태도다.
명월의 점심상엔 태상주(太常酒:개성의 고급술)와 안주론 잉어찜과 산채, 그리고 요기를 할 두부추탕이 놓여있다. 양곡은 배가 고팠는지 두부추탕을 맞바람에 게 눈 감추듯 선비의 체면도 아랑곳 않고 단숨에 먹어치웠다.
“천천히 드세요! 체하시면 어찌하시려고 그렇게 서두르세요! 즐거운 밤은 어찌하시려고요...”
여유가 있는 명월의 태도다. 두부추탕은 가을밤이면 양반댁 마님이 은밀히 사랑채로 나갈 때 미리 내보내는 사랑의 묘약으로 통하는 음식이다.
양곡은 그윽한 표정으로 명월을 쳐다본다. 사내가 계집을 보는 표정이 아닌 신뢰와 경의가 섞인 얼굴의 분위기다. 총명한 이마와 조는 듯 고운 눈썹, 그 아래에 눈부시게 희고 검은 두 눈은 비온 뒤 나뭇잎 위에 작은 벌레집처럼 고요하고 깊은 숲속에 핀 작은 꽃 같이 향긋하며 검은 비단 모양 잔바람이 이는 연못의 파문처럼 아련하며 가녀리고 단정한 콧날은 오연하면서도 사랑스럽다.
입술은 적당한 크기로 아물게 꼭 닫혀 얌전하지만 의지가 느껴지고 갸름한 턱은 안아주고 싶도록 연약해 보이며 가늘고 긴 목은 그 곳에 파고들고 싶은 충동으로 벌써부터 가슴이 뛰고 낭심이 허리 밑에서 날뛰고 있다.
명월은 고수다. 학문만 높은 것이 아니라 남자들의 성정도 독심술(讀心術)로 읽듯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 사실 양곡은 두부추탕을 허겁지겁 먹으며 독주인 태상주 몇 잔에 어느새 정신이 혼미해졌다. 하지만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여 겨우 명월을 직접 품게 되었는데 섣불리 서둘렀다 체면을 구길까 마음이 복잡하다.
명월의 표정을 유심히 살피던 양곡이 출사표(出師表)를 던진 장수모양 비장한 표정의 긴장된 어투로
“내 실은 한양에 있는 친구들과 내기를 했느니라... 너와의 사랑을 30일을 넘기면 사람이 아니란 장담을 했느니라... 내 그 약속을 꼭 지키리라...”
라고 말하는 표정이 자못 진지하고 비장해 보이기까지 하다. 명월은 원앙 한 쌍이 지나가며 파문을 일으킨 연못 위의 물결 같은 미소를 지여 보일 뿐 입을 떼지 않았다.
가소롭다는 표정이다. 네가 내 품에 들어왔는데 어떻게 내 뜻과는 상관도 없이 네 마음대로 30일 만에 내 품을 벗어날 수 있겠느냐는 반문 같은 표정으로 양곡을 쳐다봤다. 석가가 수제자 가섭을 보는 눈초리다. 태상주 한 병이 바닥을 드러냈다. 명월도 태상주 두 병의 바닥이 보이자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사실 명월은 고금을 통 털어 우리나라 최고의 주선(酒仙)으로 선정되었다. 평생 술과 시와 자기 이상에 취해 평생을 살다가 간 수주 변영로(卞榮魯)가 2위이며 김삿갓 4위, 김시습(金時習) 5위, 임제(林悌) 6위, 임꺽정(林巨正) 8위, 원효(元曉) 10위 등이 겨우 10위권에 들었다.
명월은 15세에 기생이 되고 3년 만에 기적(妓籍)에서 빠져 나왔다. 그 후론 자기 영혼을 찾아 소위 페미니즘적 자유인이 되었다. 그래서 기생이면서 기명인 명월(明月)을 쓰지 않고 진이(眞伊)란 본명으로 끝까지 불리였으며 진이로 파란만장한 40평생을 살았다.
술은 역시 여자나 남자나 꽁꽁 묶어두었던 마음을 열어 놓는다.
“이제 주무시죠! 그렇게 시만 쓰고 계실 것입니까?”
명월이 양곡에게 잠자리를 재촉하였다. 창밖의 보름달이 창공에 두둥실 떴다. 양곡이 명월을 힐끗 쳐다 본다. 네가 웬일로 잠자리를 재촉하느냐는 표정이다. 그리고는 기쁨이 넘치는 목소리로
“그렇게 하자구나...”
하고 응수해 왔다.
불이 꺼지자 휘영청 밝은 달빛만이 꿈틀대는 남녀의 알몸뚱이를 지켜보고 있다.
“어져 내일이야 그릴줄을 모르던가/ 이시랴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태여/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이시가 명월이 네 시더냐?”
“그러하옵니다! 대감의 시에 비해 졸작 부끄럽습니다.”
그때 대장간의 풀무모양 뜨거운 양곡의 손이 명월의 가슴을 훑고 허리 밑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명월의 두 다리도 견우를 맞으려 자연스럽게 벌어졌으며 허리와 엉덩이도 덩달아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때 창밖 뜨락 오동나무 위에서 짝짓기를 하던 접동새가 푸드득 날아갔다.
카톡으로 온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