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의 불행한 결혼생활 3편
문종의 이혼이 두 번이나 있었던 것은 이혼에 엄격했던 조선에서 몹시 부담이 되는 사건이
었다. 할 수 없이 문종의 세 번째 혼인은 따로 치루지 않고 후궁 중에서 세자빈을 고르기로
하였다. 순빈 봉씨가 문종의 두 번째 부인으로 들어온 후에도 문종의 가정이 안정되지 않자,
대신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세종은 3명의 후궁을 더 들였었다. 이때 '승휘 권씨, 승휘 홍씨,
승휘 정씨'가 문종의 후궁이 되었고, 문종은 승휘 홍씨를 총애하였다.
그러나 세종은 새 세자빈에 안동 권씨 가문의 승휘 권씨를 정했다. 나중에 단종의 어머니가
되는 '현덕왕후' 이다.
세 번째 부인이 된 승휘 권씨는 차분하고 남편을 편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오랜만에 세자
문종의 가정이 안정되고 문종의 나이 28세가 되던 해에 승휘 권씨는 원손(元孫)을 낳았다.
이 원손은 나중에 삼촌인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죽음을 맞게 되는 '단종' 이다.
하지만 문종은 지지리도 부인복이 없었는지 승휘 권씨가 다음 날 산후병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세종 말년, 세종을 대신하여 7년간이나 대리청정을 했던 문종이 1450년 즉위하면서 승휘 권씨
는 현덕왕후로 추존되었다. 이후 문종은 결혼을 하지 않았고, 조선 왕조에서 유일하게 왕비가
없었던 왕이 되었다.
조선 초기의 태평성대를 열었던 성군 세종, 그리고 학문에서부터 군사 분야까지 다방면에 출중
한 능력을 가졌던 문종. 칭찬받는 성품과 수려한 외모까지 갖춘 왕이었지만 실제 재위기간은 겨
우 2년에 그쳤다. 서른아홉 살에 사망한 문종의 사망 원인은 등에 생긴 화농성 종기인 '등창'이
었다.
하지만 그 보다도 유교 도리를 지키려던 지나친 혹사도 문제가 있었다. 아우였던 '광평대군',
'평원대군'의 장례에서부터 어머니 소헌왕후, 아버지 세종의 상에 이르기까지, 유교군주이며 효
성이 깊었던 문종은 3년상까지 치르며 체력이 고갈되었을 것이다.
문종은 두 번의 이혼과 세 번의 혼인을 하면서 참으로 여복이 없었던 왕이었다.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가 단종을 낳자마자 사망한 후 왕비가 없었기 때문에, 어린 단종 뒤에서 수렴청정을 할
사람도 없었다. 어린 단종의 즉위와 계유정난으로 이어지는 비극의 시작은 어쩌면 문종이 제대로
된 짝을 만나지 못하던 시점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닐까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 제공 : KIMSEM과 함께 역사 다시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