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역
원제 : Decision Before Dawn
1951년 미국영화
감독 : 아나톨 리트박
오스카 베르너, 리처드 베이스하트, 게리 메릴
힐데가르트 네프, O.E. 하세, 도미니크 블랑샤르
한스 크리스찬 블레흐, 윌프리트 세이페르트, 헬레네 티믹
로베르트 프라이탁, 조지 타인, 클라우스 킨스키
2차 대전 이후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전쟁영화는 나치 치하의 독일군은 악, 나머지 연합군은 선 의 구도로 많이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연합군이 독일군에게 통쾌한 승리를 날리는 내용으로 전개가 되었죠. 노르망디 상륙작전 같은 큰 전투를 다룬 '사상 최대의 작전'도 있었고, 몇 명의 특공대의 활약을 다룬 '나바론' 같은 영화도 있었지요.
'반역' 이라는 영화는 2차 대전 종전후 몇년 지나지 않은 1951년에 만들어졌습니다. 2차대전 말기를 배경으로 했지만 전쟁장면 보다는 인간의 심리드라마에 가깝습니다. 주인공도 사실상 오스카 베르너가 연기한 독일군이지요. 미국 배우들의 가짜 독일군 흉내를 내는 영화가 아니라 진짜 독일어권 국가의 배우들인 오스카 베르너, 힐데가르트 네프, O.E. 하세, 클라우스 킨스키 등이 등장합니다. 거의 독일사람 역할은 독일어권 배우가 하는 영화지요. 물론 이 영화도 연합군측이 선역이지만 조국 독일에의 배신이라는 소재를 통하여 원치 않는 전쟁을 치루어야 하는, 또한 이길 수 없다는 걸 알면서 전쟁을 치루어야 하는 장교, 사병의 심리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영화의 처음과 끝은 미군의 통신장교인 레닉(리처드 베이스하트)이지만 본격적인 내용이 되는 중후반부는 칼(오스카 베르너) 이라는 독일병사 입니다. 이게 미국영화다보니 미국 배우를 페이크 주인공으로 하여 크레딧 맨 위에 넣었고, 실질적인 주인공인 유럽 배우는 아래로 내린 경우지요. 더구나 리처드 베이스하트는 대단한 스타도 아닌데 말이죠. 다른 영화에서도 자주 그랬듯 사실상 비중있는 조연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연합군이 승기를 잡은 1944년 2차대전이 배경
독일 포로 2명을 잡은 연합군 장교
20대 중반의 보송한 클라우스 킨스키
딱 10초 출연한다.
실질적인 주인공인 오스카 베르너
2차대전 막바지인 1944년 승기를 잡은 연합군은 독일포로들의 일부를 연합군측 첩자로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나치독일에 회의감을 느끼고 배신하여 연합군에 협력하는 포로들을 이용하는 것이지요. 독일에서 의사의 아들이었던 칼 역시 연합군에 협력하기로 한 포로입니다. 칼은 위생병이라서 직접 전투를 하지는 않았고 매우 인도적인 인물이라서 사람을 죽이는 전투에 회의를 느끼는 인물이었습니다. 어느날 칼은 새로운 임무를 받고 타이거 라고 부르는 좀 위험해 보이는 인물 등과 함께 선발되어 낙하를 통해서 독일전선에 침투됩니니다. 미군장교는 단 1명, 레닉만 참여합니다. 칼의 임무는 병원에서 퇴원하여 부대로 복귀하는 사병으로 위장하여 11부대의 위치와 상황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무사히 낙하한뒤 그는 귀대하는 병사로 가장하는데 성공하지만 그에게 친근하게 다아오는 숄츠 라는 병사의 집요한 접근, 그리고 중간에 어느 부대 대령에게 차출되어 그의 시중을 들게 되기도 하는 등 여러차례 난관에 부딫칩니다. 결국 게슈타포에게 죽을 뻔하지만 극적으로 탈출하여 천신만고끝에 타이거와 레닉이 은신한 곳까지 찾아가는데 성공하지만, 그곳마저 위험이 닥치고 이제 생사를 건 탈출을 해야할 상황에 놓닙니다.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구성하여 만든 영화입니다. 독일에서 의사의 아들로 유복하게 태어난 청년이 2차대전에 위생병으로 참여하게 되고 연합군에 붙잡히지만 조국을 배신하고 연합군 첩자로 다시 독일에 침투되어 겪는 내용입니다. 독일에 다시 침투되었을때 우연히 아는 이웃 여인도 만나고 아버지가 전출되어 근무중인 병원도 보게 되고 독일 군인과도 인연을 갖게 되고, 비참한 나락으로 떨어진 힐데(힐데가르트 네프) 라는 여인과도 엮이게 되고, 지병에 걸려서 위생병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장교(O.E. 하세)의 시중을 들기도 하는 등 여러가지 경험을 하는 내용입니다. 붙잡힐 고비, 죽을 고비도 여러번 넘기지요. 나치 독일에 환멸을 느끼고 연합군측에 합류하였지만 고향인 독일에 돌아와서 겪는 여러 상황으로 인하여 정체성에 대한 피로감을 느끼는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연합군에 잡힌 독일군 포로는 연합군측에
협력하는 첩자로 활동하기로 한다.
독일에 침투되어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지만
차마 말을 건네지는 못하는 칼
기구한 운명을 지닌 힐데 라는 여자의
관심을 받게 되는 칼
'바보들의 배' '화씨 451' '추운나라에서 온 스파이' '세인트 루이스호의 대학살' 등에서 낯익은 오스트리아 출신 배우 오스카 베르너가 20대 후반의 상당히 보송보송한 모습으로 출연합니다. 원래 40대 나이에 출연한 영화에서도 동안인 편인데 당시 29세였는데 미소년 같은 외모입니다. '백경' '카라마조프의 형제' '5인의 낙인찍힌 처녀' '전신언덕의 집' 등에서 개성있는 연기를 보여준 리처드 베이스하트는 투톱 주인공일줄 알았더니 초반부와 후반부만 비중이 있고, 중반에는 등장하지 않아서 생각외로 비중이 적습니다. 거의 오스카 베르너 혼자서 원툽 주인공 역할이지요.
오스카 베르너가 연기한 칼 이라는 주인공은 위생병인데 그 덕분에 지병이 있는 독일군 대령의 시중을 잠시 들게 되는데 대령이 발작했을때 살린 댓가로 휴가를 주겠다고 하자 휴가대신 탈영병을 죽이지 말고 살려달라고 합니다. 그때 대령(O. E. 하세 연기)의 대사가 인상적입니다
"자네는 위생병이라서 사람을 살리는게 역할이고, 나는 사람을 죽이는게 역할이네. 주변의 연합군들을 물리칠 방법은 없지만 그럴 수 있다고 오늘 회의에서 이야기할거야, 그렇게 군기를 유지하는게 내 역할이네, 그래서 탈영병을 살려줄 수 없네"
이 두 사람의 대화만으로도 정말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라는 회의감이 느껴지는 장면입니다. 즉 독일군이나 독일사람이 다 나쁜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나치에 이용당할 수 밖에 없는 처지를 동정하는 듯한 내용이 들어간 것이지요. 물론 포로수용소에서조차 나치에 냉소적인 발언을 한 포로를 다른 포로들이 독일군의 이름으로 처형하는 내용등을 보면 패전의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도 여전히 나치에 충성을 다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칼이 독일침투 임무중에 만난 숄츠 라는 군인 역시 맹목적으로 나치를 추종하는 꼰대같은 인물입니다. 칼에게 프랑스에 가봤냐고 물어서 칼이 '알사스' 에만 갔다고 대답하자 숄츠는 화를 내며 알사스가 독일땅이지 어떻게 프랑스 땅이냐고 다그칩니다. 빼앗은 프랑스 땅을 당연히 독일땅으로 인식하는 모습이지요.
위생병 신분 때문에 지병이 있는 독일장교의
시중을 들게 되어 임무수행에 차질이 생기는데....
게슈타포의 추적을 극적으로 모면하고...
필사의 도주를 하는 두 사람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이나 내용이 어떤 임무를 정하고 그걸 수행해내는 과정이 아닌(사실 칼의 임무는 일종의 맥거핀입니다. 그게 뭔지 관객은 구체적으로 알 필요가 없어요) 칼이 겪는 상황과 만나는 인물의 태도등을 통해서 표현하는 전쟁패전국 상황에 몰린 독일에서의 여러 사람들의 심리 등을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특히 사람들과 나눈 대화들을 잠자리에 누워서 회상하는 칼의 모습에서 답답한 그의 마음이 잘 표현되고 있습니다.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고 목소리만 들은 채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는 그의 모습이 아주 안스러운 장면입니다. (아버지, 나 독일에 왔어요. 연합군측 간첩노릇 하러요, 이렇게 말할 수는 없는 상황이지요)
칼이 독일에 침투한 이후로 벌어지는 내용은 장면 하나하나, 만나는 사람 하나하나에게 다 아슬아슬한 고비와 긴장되는 순간이 이어지는 재미난 상황 연출이 돋보입니다. 물론 이런 하나하나의 단락들은 영화적 재미를 위해서 만든 픽션이겠지만 비밀 침투된 연합군 첩자가 겪는 위기를 긴박감넘치게 잘 보여주어서 영화적 재미도 충분합니다. 물론 끝이 좀 허무하긴 하지요. 갑자기 주인공의 교체가 좀 황당하기도 하고.
1951년 작품이지만 우리나라에는 10년이나 지난 1961년이나 개봉되었습니다. 배우가 그리 인기있는 스타가 아니라서 개봉이 늦어졌을 겁니다. 러시아 출신의(현 우크라이나 지역) 아나톨 리트박 감독은 독일에 가서 영화수업을 경험하다가 나치 독일을 피해 프랑스에서 영화를 만들고 다시 할리우드에 와서 정착하여 활동하다 다시 프랑스에 가서 영화를 만들기도 한 유랑자 같은 인생의 감독입니다. 이렇게 타향을 떠도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의사의 아들 ->독일군위생병->연합군포로->연합군 간첩으로 신분이 바뀌는 주인공 칼의 적적한 심리를 잘 묘사한 것 같습니다. 할리우드 제작영화지만 사실 미국의 플랫폼만 빌렸고, 러시아 감독, 오스트리아 배우, 그리고 몇몇 독일권 배우들도 많이 참여한 유럽연합 영화나 마찬가지입니다. 거의 잊혀진 개봉작이지만 비참한 전쟁시기에서 각 사람들의 심리를 엿볼 수 있는 의미있는 영화이고 재미도 있는 흑백고전입니다. 세트촬영이 보편화되있던 시기에 만들었지만 실제 유럽 현지촬영을 대부분 했다고 합니다.
ps1 : 당시 25세의 클라우스 킨스키가 역시 보송한 얼굴로 단 한장면 출연합니다. 10초 정도 나옵니다. 역할은 연합군 첩자를 선발하기 위한 독일군 포로 면접을 할 때 가장 먼저 등장한 인물입니다. 뭐 이런저런 궁시렁대면서 면접에서 탈락하지요.
ps2 : '반역자는 어차피 반역자일 뿐이야' '그는 그냥 독일군일 뿐이야' 라는 비정한 엔딩부분의 대사가 인상적이네요. 어차피 포로를 선발하여 아군으로 돌리는 일은 그들을 위험한 임무에 써먹고 버리는 역할이겠지요.
ps3 : 리처드 베이스하트는 '5인의 낙인찍한 처녀'에서 쌩뚱맞게 독일군 장교를 연기하기도 했지요. 당시 미국에서 독일어권 배우를 구하는건 어렵지 않았을텐데. 할리우드에서 같은 독일어를 쓰는 국가인 오스트리아 출신 배우들도 독일인으로 잘 활용하는 편이었고요.
[출처] 반역(Decision Before Dawn, 51) 반역자의 심리를 잘 묘사한 수작|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