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年10月5日(月曜日)
1.본문:歴代誌第一 19:1〜7
1 그 후에 암몬 자손의 왕 나하스가 죽고 그의 아들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
2 다윗이 이르되 하눈의 아버지 나하스가 전에 내게 호의를 베풀었으니 이제 내가 그의 아들 하눈에게 호의를 베풀리라 하고 사절들을 보내서 그의 아버지 죽음을 문상하게 하니라 다윗의 신하들이 암몬 자손의 땅에 이르러 하눈에게 나아가 문상하매
3 암몬 자손의 방백들이 하눈에게 말하되 왕은 다윗이 조문사절을 보낸 것이 왕의 부친을 존경함인 줄로 여기시나이까 그의 신하들이 왕에게 나아온 것이 이 땅을 엿보고 정탐하여 전복시키고자 함이 아니니이까 하는지라
4 하눈이 이에 다윗의 신하들을 잡아 그들의 수염을 깎고 그 의복을 볼기 중간까지 자르고 돌려보내매
5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가서 그 사람들이 당한 일을 말하니라 그 사람들이 심히 부끄러워하므로 다윗이 그들을 맞으러 보내 왕이 이르기를 너희는 수염이 자라기까지 여리고에 머물다가 돌아오라 하니라
6 암몬 자손이 자기가 다윗에게 밉게 한 줄 안지라 하눈과 암몬 자손은 더불어 은 천 달란트를 아람 나하라임과 아람마아가와 소바에 보내 병거와 마병을 삯 내되
7 곧 병거 삼만 이천 대와 마아가 왕과 그의 군대를 고용하였더니 그들이 와서 메드바 앞에 진 치매 암몬 자손이 그 모든 성읍으로부터 모여 와서 싸우려 한지라
2. 시작기도
아버지….
오늘 아침도 말씀안에서 생명의 교제로 하루를 시작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말씀 속에서 제 생각과 마음을 살피게 하시고, 잘못된 길은 돌이키며, 바른 길은 기쁨으로 따르게 하소서. 말씀 앞에 엎드립니다. 오염된 영혼을 보혈로 정케 하소서. 진리의 영으로 말씀을 조명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
3. 본문 주해
역대상 18-20장은 다윗이 치른 전쟁의 기록이다. 다윗은 주변 나라를 정복해 이스라엘의 이상적인 경계를 확보했고, 이 전쟁사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다"는 것이다(18:6, 13). 그러니 다윗의 전쟁은 곧 여호와의 거룩한 전쟁이었다.
그중 19:1-20:3은 암몬과의 전쟁을 다루며, 사무엘하 10장과 나란히 읽힌다. 발단은 작은 호의에서 시작되었다. 암몬 왕 나하스가 죽고 아들 하눈이 왕위에 오르자, 다윗은 "그의 아버지가 내게 호의를 베풀었으니 나도 그 아들에게 호의를 베풀겠다"며 조문 사절을 보냈다. 새 왕과 평화로운 관계를 맺으려는 외교적 몸짓이기도 했다. 그러나 암몬의 신하들은 다윗이 땅을 염탐하러 온 것이라고 부추겼고, 하눈은 그 말을 그대로 믿었다. 그는 사절들의 수염을 깎고 옷을 엉덩이께까지 잘라 돌려보냈다. 이스라엘 사람에게 이보다 더한 수치는 드물었다. 소식을 들은 다윗은 사절들이 부끄러움을 면하도록 수염이 자랄 때까지 여리고에 머물게 했다.
나하스는 한때 야베스를 모욕하다 사울에게 패한 인물이다(삼상 11장). 아마도 사울을 피해 도망 다니던 다윗에게 호의를 베풀었을 것이다. 다윗은 그 은혜를 갚으려 했건만, 하눈은 선을 악으로 갚고 말았다.
그런데도 다윗은 곧바로 보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암몬이 먼저 전쟁을 준비했다. 은 1,000달란트를 보내 아람 나하라임, 마아가, 소바 등에서 병거 32,000대와 군사들을 용병으로 끌어들인 것이다(사무엘하 10장에는 벧르홈과 돕도 언급되고, 병력 수치도 조금 다르다).
19:2의 "호의"는 히브리어로 '헤세드'(인자)이다. 다윗과 나하스 사이에 사울에 맞선 헤세드의 우호 관계가 있었다는 뜻이다. 헤세드는 본래 하나님의 인애를 가리키는 말로, 구약은 인자(헤세드)와 진리(에메트)를 하나님의 본성으로 말한다. 하나님은 언약 안에 거하는 자를 인자와 진리로 인도하시고, 고난당하는 자에게 그것을 보내어 응답하신다(시 25:10; 57:3). 그래서 인자와 진리는 곧 하나님의 현존이며 영광이다.
다윗이 베푼 헤세드를 하눈이 거절함으로써 두 나라의 우호 관계는 깨졌다. 여기서 다윗은 장차 오실 메시아의 그림자이고, 그가 보인 헤세드는 메시아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헤세드를 가리킨다. 하나님은 우리 죄를 위해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 사랑을 확증하셨다(롬 5:8; 요 3:14; 12:32-33). 그 죽음 안에 거하는 자는 영생을 얻는다(요 3:15). 독생자를 보내 우리를 살리신 것, 이것이 헤세드의 절정이다(요일 4:9). 우리는 의로운 행실이 아니라 오직 은혜로 구원받았고, 성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게 되었다(딛 3:4-7).
헤세드를 거절한 하눈은 큰 비용을 들여 전쟁을 준비했지만 결국 패했다. 하나님의 헤세드를 거부하는 사람도 많은 대가를 치르며 살다가 끝내 사망에 이른다. 하나님은 헤세드가 아직 선명하지 않던 때에는 눈감아 주셨으나, 이제는 모든 사람에게 회개하라고 명하신다(행 17:30).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은혜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기 죄 때문에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죄를 대신 짊어지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기에 멸망한다.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헤세드를 거절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큰 죄이다(요 16:8-9).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기를 원하시며, 그분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회개로 이끈다(벧후 3:9; 롬 2:4). 이 인자하심을 멸시하면 심판을 면할 수 없다.
하나님은 자기 힘이 아니라 그분의 헤세드를 의지하는 사람, 곧 그분을 경외하는 사람을 기뻐하신다(시 147:11).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헤세드가 항상 함께한다. 원수에게 둘러싸이고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도 그러하다. 그래서 그는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낫다고 고백한다(시 52:1; 63:3). 하나님의 인자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도 그 인자는 영원하며(시 77:8-9), 어떤 것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롬 8:38-39). 그러니 우리는 날마다 승리의 노래를 부른다.
4. 나의 묵상
어제 예배가 끝나고 한 성도가 조용히 나에게 상의할 것이 있다고 했다. 일주일에 한 번 가는 시설에서 사람들이 자기를 따돌린다는 이야기였다. 가만히 듣다 보니 "에이, 그냥 흘려버리세요" 하고 넘길 만한 일처럼 들렸다. 생명의 교제를 알기 전의 나였다면 아마 목에 힘을 주고 말했을 것이다.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라고,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니 그런 일이 생기는 거라고.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제는 달랐다. 이 성도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라는 걸 알 것 같았다. 그 성도에게는 말씀 안에서 아들의 영광을 바라보는, 아버지와의 생명의 교제가 필요했다.
오늘 본문을 읽으며 다윗의 모습이 오래 머문다. 위로하러 갔던 사절들은 수염이 깎이고 옷이 잘린 채 돌아왔다. 그런데 다윗은 "그만한 일로 뭘 그러느냐"고 하지 않았다.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하는 사람들을 맞으러 사람을 보냈고, 수염이 자랄 때까지 여리고에 머물라고 다독였다. 수치당한 자를 홀로 두지 않고 먼저 찾아가 감싸 주는 마음, 그것이 헤세드였다.
그러나 다윗은 그림자일 뿐이다. 이 헤세드의 실체는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우리가 수치 가운데 있을 때 사람을 보내시는 데 그치지 않고 친히 오셨다. 더 놀라운 것은, 그분이 우리의 수치를 직접 짊어지셨다는 사실이다. 옷을 벗기운 채 십자가에 달리셨다. 다윗의 사절들은 수염이 다시 자라기를 기다려야 했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수치를 대신 지시고 부활로 영광의 옷을 입혀 주셨다. 따돌림당하는 성도의 아픔을 그분은 이미 아신다.
생각해 보면 내가 흘려버리라던 그 따돌림은, 그 성도에게는 한 주 내내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부끄러움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마음을 헤아리기도 전에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정답부터 내밀려 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그 말에는 예수님이 계시지 않았다. 아버지를 나타내신 분은 아들이신데, 나는 아들을 통해 아버지의 마음을 보여주기보다 아버지를 설명하려고만 했다. 수치당한 자녀를 먼저 찾아오신 예수님을 내가 충분히 누리지 못하니, 성도에게도 예수님 대신 방법만 건넸던 것이다.
나는 지금껏 열심히 복음을 전해왔다. 그러나 복음이 향하는 목적지, 곧 생명 안으로는 성도들을 이끌지 못했다. 복음이라는 길 위에 성도들을 세워 놓고 비바람을 견디라고만 말해 왔다. 하눈이 의심 때문에 다윗의 호의를 밀어냈듯, 나 역시 예수님 안에서 주어진 헤세드를 받고도 그 품 안에 충분히 머물지 못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정작 생명의 교제 밖에 서 있었던 셈이다.
그래도 요즘은 조금씩 실제가 보이는 듯하다. 아버지의 집에서 아들의 영광을 바라보며, 말씀을 통해 아버지와 나누는 교제에서 흘러나오는 기쁨이 있다. 그 기쁨은 나의 노력이 아니라 예수님이 이루신 일에서 온다. 그 기쁨이 먼저 나를 살리고, 동시에 성도들을 살린다. 그 성도 또한 자기 수치를 대신 지신 예수님을 영광을 보며 생명의 교제가 이루워질때, 그 기쁨안에서 사람들의 따돌림에서 비로소 자유로워질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정답을 건네기보다 나란히 앉아 말씀을 펴고 싶다. 성도의 아픔을 먼저 들어 주고, 그 아픔을 먼저 겪으신 예수님을 함께 바라보고 싶다. 사람들이 따돌려도 아버지는 이미 성도를 맞으러 예수님을 보내셨다. 그 인자하심은 생명보다 낫다. 오늘 내가 할 일은 그 성도를 위해 기도하는 것, 그리고 먼저 내가 예수님 안에서 이 헤세드에 머무는 것이다.
5. 묵상기도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아버지의 헤세드를 다시 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연약하여 아무것도 드릴 것이 없을 때에도 독생자 예수님을 내어주시어 사랑을 확증하신 그 인자하심이 제 생명의 전부임을 고백합니다.
다윗은 수치당한 사절들에게 사람을 보냈지만, 예수님은 친히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의 수치를 대신 지셨습니다. 옷 벗기우고 십자가에 달리시면서도 그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아버지….
제가 그동안 성도들을 복음의 길 위에 세워 놓고 비바람만 견디라고 했던 것을 용서해 주세요. 정답은 말했으나 아들 예수님을 통해 나타내신 아버지의 마음은 전하지 못했습니다. 아픔 가운데 있는 성도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지 못한 제 교만을 보혈로 씻어 주세요.
아버지….
따돌림으로 상처받은 그 성도를 먼저 찾아가 주세요. 그의 수치를 이미 십자가에서 지신 주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말씀 안에서 아들의 영광을 보며 아버지와 나누는 교제의 기쁨으로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를 얻게 해 주세요. 저도 그 곁에서 함께 말씀 앞에 앉아, 정답이 아니라 예수님을 보여 드리는 통로가 되게 하소서.
오늘도 제 힘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주신 아버지의 인자하심을 의지하며, 승리의 노래를 부르며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