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여년간 무술 수련을 하는 가운데 체(體)와 용(用)의 관계는 나를 괴롭혀왔던 난제이자 화두였다. 체(體)는 바탕이고, 용(用)은 쓰임이다. 이 쉬운 것이 도대체 뭐가 어려워 나는 10년의 세월을 말하고 있는가.
무술에서와 마찬가지로 커플 댄스에서도 의심의 여지 없이 받아들여지는 명제중 하나는 '기본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댄스에서 있어 '기본'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만약 스텝을 열심히 연습했는데도 기대했던 만큼 향상이 안되었다면?
모든 몸 공부는 크게 신체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체(體)의 수련과 기술의 숙련도를 높이는 용(用)의 수련, 둘로 나눌 수 있다고 했으니 커플 댄스도 예외는 아니다.
체(體)를 기르는 연습은 다시 세 가지로 분류될 수 있는데 근력 운동(=웨이트트레이닝, 필라테스...), 유연성 운동(=하타요가...), 그리고 명상적 움직임(=왈츠, 탱고, 폭스...)이다.
용(用)을 기르는 연습, 즉 '스텝'은 무수히 많으며 각 춤의 독특한 개성은 어떤 스텝을 채택하여 어떻게 가르치느냐에 따라 구별될 수 있다.
그러니까 커플 댄스에서 처음 배우는 기본기는 용(用)에 익숙해 지는 연습에 해당한다. 배우러 온 사람도 자신의 신체 능력 수준은 생각지 않고 스텝을 많~이 배우고 싶어한다. 그리고 스텝을 다 기억했으니 춤을 다 배웠다고 착각한다.
익숙한 파트너와 순서대로 짜맞추어 할 때에는 잘 되는 것처럼 보인다. 즉흥적으로는 못 춘다. 매일 열심히 하는데도 실력이 어느 선에서 정체 상태에 머물고 있는 이유는 명백하다. 스텝 위주로 연습하면서 그것을 기본기라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커플 댄스 잘 추고 싶은데 왜 근력 운동을 하라고 할까? 그냥 음악에 맞추어 걷는 건데 유연성은 왜 좋아야 하나?
당연히 커플 댄스도 근력과 근지구력이 좋아야 한다. 근력 운동은 무조건 필요하다. 이에 더하여 무진장 중요한 이유는 '몸 힘'의 정체를 깨닫기 위해서다.
몸 힘은 하나로 집중된 힘이다. 몸 힘은 탄력이 더해진 힘이다.
몸 힘은 파워하우스로부터 나온다. 파워하우스를 통제하는 것은 단전(=무게중심)이다. 단전을 통제하는 것은 정신력이다.
척추를 바로 세워 정두현(頂頭懸)을 만드는 힘도 단전이고, 단전이 이동하는 것이 바로 체중이 이동하는 것이고, 단전에서 회전이 일어날 때 골반으로부터의 회전이 일어난다.
단전에 대한 자각 없이는 아무리 체중이동을 하라고 해도 무게중심의 이동 없이 발만 나가기 일쑤이고, 회전은 말할 것도 없고, 양 팔도 팔 힘으로 들고 있게 된다.
홀드를 위하여 들고 있는 양 팔은 삼두근으로 드는 것이 아니라 활배근으로 들고 있는 것이고, 활배근은 파워하우스로부터 나오는 것이고 파워하우스는 단전의 통제를 받는다.
이에 대한 자각 없이는 양 팔의 프레임을 한결같이 유지할 수 없게 되어 할 수 없이 팔 힘을 쓰게 된다.
팔에 힘이 너무 들어가는데 근력 운동을 하면 더 경직되지는 않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파워하우스를 이용하지 않는 엉터리 근력 운동을 할 때 경직과 부상이 생긴다. 파워하우스를 이용하는 운동은 몸에 탄성을 붙여 줄 뿐 경직은 일어나지 않는다.
안타까운 현실은 커플 댄스 학원에서 이런 거 시켰다가는 다음날 안 나올거다. "놀자고 나왔는데 죽자고 운동 시키더라"면서 안 나올거다. 그렇지만 커플 댄스의 비결도 역시 스텝 연습이 아니라 체(體)를 통한 깨달음이다.
그런데 그냥 근력 운동을 하래도 안 할 판국에 파워하우스를 이용한 근력 운동을 하라고 하니 이건 또 뭐냔 말이다.
파워하우스라는 것은 단전 주위를 감싸고 있는 근육을 일컫는 말인데 크게 봐서 제일 중요한 근육이 복근과 배근이다. 즉, 복근과 배근을 써서 모든 근육 운동을 하란 얘기다.
예를 들어 팔굽혀 펴기의 경우 삼두근에 고통이 오기 때문에 의식이 여기에 집중이 되기 쉽다. 의식적으로 활배근에, 가능하면 복근에 집중해라. 그것만으로 움추러들었던 어깨가 펴지면서 파워하우스를 이용한 운동으로 바뀐다.
바벨로 하는 운동은 파워하우스를 쓰지 않으면 부상을 당한다. 이는 꼭 파워하우스를 쓸 수 밖에 없는 운동이라는 뜻도 된다. 무게에 대한 욕심은 버리고 다른 것보다 파워하우스와 관련되서는 데드 리프트, 루마니안 데드 리프트, 오버 헤드 스콰트를 연구해 봐라.
체(體)를 기르는 연습은 힘들고 지루하고 효과가 당장 나타나지 않지만 어느 때에 체(體)를 통해 용(用)의 깨우침을 체험한 순간부터는 상황이 일변한다.
진정한 기본은 체(體)를 기르는 수련이다.
체(體)를 통해 춤의 움직임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는 시점은 향상된 신체 능력과 더불어 단전을 분명하게 자각한 이후 부터다. 이 모두의 통합으로부터 자기 몸 속에 감추어진 진짜 힘(=몸 힘)을 쓸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용(用)을 통해서 단전을 자각할 수는 없을까? 사실은 가능하다. 커플 댄스는 단순한 놀이를 뛰어 넘어 명상적 움직임으로의 접근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명상적 움직임을 통해서만이 몸의 한 점을 인식할 수 있게 되고 무게 중심 이동의 개념을 정확히 알 수 있다. 바른 길을 알고 있는 아주 훌륭한 선생님을 만남으로써 다른 운동보다는 상대적으로 빠르게 이것을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좋은 가르침을 받을수 있는 환경 안에 있다고 해도 깨달음을 얻는 것은 스스로 해야 한다. 선생의 역할은 산이 저기 있다, 저 산으로 가야 한다고 말해 줄 수 있을 뿐이다. 자기 발로 산을 올라가야 한다. 남의 등에 업혀 산을 오를 수는 없다.
불행하게도 이 세상에는 훌륭한 선생님보다 허접한 인간들이 훨씬 더 많은 것 같다. 아예 개념 파악도 안 된 자칭 선생들이 허다하다. 이런 인간들은 잘 가르쳐주고 싶어도 스텝밖에 못 가르친다.
원리보다는 폼 잡는 법이나 가르친다. 몸에 힘 주고 있어도 어떻게 빼라고 얘기도 못해주고, 무지막지하게 라이즈&폴만 시킨다. 그래서 인연이 안 되거든 차라리 배우는 것을 깨끗히 포기하는 게 현명하다. 짝퉁한테는 아무리 잘 배워봐야 짝퉁인 거다.
용(用)의 연습만으로 단전을 자각할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오래 춤을 춰도 지치지 않기 위해서는 어차피 근력과 유연성이 필요하다. 결국에는 용(用)으로부터도 체(體)의 연습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이제 댄스는 진화한다. 지식에 불과했던 스텝들이 체(體)를 통한 깨달음으로 인하여 전혀 새로운 형태의 본질을 꿰뚫는 지식으로 탈바꿈한다.
경험이 다시 피드백되어 체(體)를 완성의 길로 이끈다. 체(體)가 완성되어 갈수록 춤은 더 자유롭고 편해진다.
첫댓글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글이네요.... 체라.... 저도 참 지루해 하는 편인데...^^;;; 좋은글 감사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