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6회 詩하늘 시낭송회(4월 7일/목)-정훈교 시인-편에 초대합니다.(장소:명덕네거리 남구청소년창작센터)
시하늘은 미래가 촉망되는 젊은 시인과 시낭송회로 만나고자 한다.
정훈교 시인은 2010년 『사람의 문학』으로 등단해서, 시집 『또 하나의 입술』(시인동네,2014)을 상재했다. 경북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졸업(석사)했으며, 현재 <젊은 시인들> 편집장, 월간 《시인보호구역》 발행인, 인문•예술 공동체 ‘시인보호구역’ 대표시인으로 일한다.
서평에서 발췌한 자료로 안내하고자 한다.
정훈교 시인은 첫 시집 『또 하나의 입술』에서 섬세한 감수성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고유한 언어 감각을 펼쳐 보이며, 그 특유의 서정성으로 세상의 수많은 ‘당신들’을 호명한다. 그는 시적 사실에 의해 그 진정성과 깊이, 감동을 산출하는 당신들과의 이러한 관계 맺음을 기록과 읽기라는 시 형식을 통해 역사와 우주의 층위로 확산하며 시집 전편에 거쳐 불가능한 꿈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한 개인의 흔적이란, 강물의 수심 위로 사라질 물결 같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결국 물결로 채워진 페이지를 남김으로써만이 비로소 ‘당신’에게 전달될 무엇을 남길 수 있다고 시인은 믿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정훈교 시인의 이러한 시적 감수성은 다분히 체험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정훈교 시인이 전체적으로 풀어내고 있는 묘사와 서정적 정조는 체험의 깊이를 담지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체험과 정서의 상관성은 이 점에서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시적 사실에 의해서 그 진정성과 깊이, 감동을 산출해낸다. 어떻게 느꼈는가와 어느 정도로 느꼈는가는 사물과 세계에 대한 시인의 존재론적인 관계 맺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현상’이고 그것이 결국 시인의 실존적 자의식을 결정해주는 것이다.
또한 정훈교 시인은 지적 관심과 사유의 열망이 상대적으로 강한 시인으로 보인다. 기록이나 읽는 행위가 단순히 ‘문자’라는 것과 연관된 것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시인의 작품에 유난히 기록, 읽기의 의미 부여가 많은 것은 그가 여전히 쓰는 것과 알려고 하는 것의 열망을 간직한 시인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들이다. 앞서 말했듯이, 정훈교 시인에게 시란 쓰는 것이면서 동시에 읽는 것이고 또한 말하면서 듣는 것이다. 기록은 그렇게 이루어진다.
벚꽃이 피고 복사꽃이 만발할 즈음인 고즈넉한 저녁시간에 시를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젊은 시인의 시를 들으며 시의 피를 수혈 받고 싶다.
좋아하는 이와 같이 오십시오.
-일시 : 2016년 4월 7일 목요일 오후 7시
-장소 : 대구 남구 남구청소년창작센터 창공홀(경북여상 정문 앞)
(대구 남구 중앙대로 45길 53)/053-664-3100
-회비 : 없음
-제공 : 시하늘 봄호, 시낭송용 작은 시집
-정훈교 시인의 시세계 해설 및 질의 : 김용락 시인
-음악 : 박정호 연주자
-연락처 : 가우 010-3818-9604/ 찬솔 010-9358-5594
보리향 010-2422-6796 / 김양미 010-2824-8346
붉은 나무
-정훈교
당신은
어느 종족에도 속하지 못한 붉은 나무입니다
바람 불면
몇 잎의 꽃들 아우성입니다
당신은
쓸쓸하기도 하거니와
허공을 지우며
발아래 물아래 다녀가는 종족이기도 합니다
붉은 음색을
사위에 깔며 더디 가는 당신
우우우
곧잘 바람이 되곤 합니다
무너지는 침묵을
길 위에 펼치는 당신은
봄밤
오래된 나무
당신은
개화에도 자유롭고
낙화에도 자유로운
붉은 나무
적(赤, 迹, 敵, 吊)―작약
-정훈교
오래 바람에 머물러본 당신, 붉은 꽃잎마다 떨어지지 않는 기록들이군요 5월 흘림체로 바람을 앓는 중이군요 물결에 닿은 당신 이야기가 사방으로 번지는군요 옛 읍성에서 누군가를 품은 뿌리였다가 옛 신화에서 페이온(Paeon)* 당신이었다가 플라스틱 화분 속 짝사랑이었다가 오늘 깨뜨리지 못한 속내이기도 한 당신, 봉분 아래 꽃그늘이 더욱 환하군요
투덜투덜 여인숙을 전전하는 빗소리에 우두둑 당신이 떨어집니다 작약의 발목이 하얗게 봉분을 넘고 있군요 뿌리내린 또 한 계절을 유물론으로 채우는 당신, 울음으로 피었다가 망국으로 지는 꽃들의 전설을 지금 기록 중이군요 5월 신부의 부케였다가 생리통의 뿌리였다가 혼돈의 난장이었다가 지는 붉은 꽃들의 저 무수한 잔치 정작 쓰지 못한 문장들이 주저앉는 중이군요 당신이기 전에 당신,이 버린 최후의 不立文字
그믐
-정훈교
불안은 달을 먹고 자란다. 처음 생리하던 날, 처음 교복을 입던 날, 처음 자전거 타던 날 다양한 체위가 태어났다. 후배위 달이 당신을 먹는 거다. 막대사탕과 솜사탕의 달콤함은 미적 감각과 형태 감각의 빙의. 당신과 당신 안의 내가 접신이 되는 거다. 당신을 먹는 혀나 달을 삼키는 혀 모두 춤을 추는 일. 어느 쪽도 당신을 녹이기엔 마찬가지. 정상위 달도 당신도 서로의 등은 볼 수 없다. 당신의 먹성은 침엽수림을 닮았다. 인중 아래 파란 입술은 불안의 인공위성. 신호가 잘 잡히는 안테나. 포개어지면 불안과 달의 합궁. 목덜미에 붙은,
불안은 달의 혀로 지우고 달의 혀는 적막으로 지운다 두 개의 무덤을 지나 하나의 문이 되는 스무고개. 당신은 그곳에서 태어났고 불안은 그곳에서 소멸된다 달은 태생이 불온한지라 날마다 배꼽 없는 아이를 흘려보낸다 오늘도 불안이 달 주위에 모여 있고
그녀는 그믐을 낳는 중이다
궤적
-정훈교
느릿한 호흡이
몸을 푼다
우두커니, 섰는 당신은
길이 되고
당신이 흐른 길 위로
붉은 바다가 밀려온다
그제야 배꼽 아래 저장되었던
양수가 흘러나오고
달의 눈금을 해독할 줄 아는
당신이,
당신을 해독할 줄 아는
바람이,
몸을 푼다
오랫동안 어머니였던
붉은 바다가
점묘법으로 낡아가는,
무렵
저마다 꽁꽁 숨겨두었던 속내를,
흘려보내는 것이다
목련
-정훈교
허공에 처연히 목을 내놓은 당신이 있어, 골목마다 온통 희디흰 슬픔입니다
기울기와 절댓값
-정훈교
점에서 태어났다
분수와 미적분 어디쯤에서 점으로 태어났다
호박과 수박에 접을 붙이면
새로운 함수가 태어나는데
어머니는 그걸 포트에 담아
비닐하우스 안으로 옮겨 심었다
막 새순이 돋아나는데
벌써부터 내다 팔 걱정이 한 짐이다
이태 전 무작정 반비례로 달리던
수박 가격이 바로 허수였다
아들에 대한 기울기가 절댓값인지
땅에 대한 기울기가 절댓값인지
알 순 없지만
아들이 기울기인 것만은 사실이다
시골살림이 뻔한 수평인지라
수직으로 상승할 순 없지만
분명 어머니의 절댓값은
언제나 아들이었다
예순을 넘은 세월이,
비대칭적으로 빠진 이가
이미 곡선으로 휘어진 어머니를 나타낸다
점들이 희미해질수록
숫자 0에 가까운,
간극이다
저문 강가에서 물수제비를 읽다,
-정훈교
수면을 등지고 내게로 옵니다 돌의 무게가 파문의 크기로 옮겨 붙는 순간입니다 당신의 고요가 깨어나는, 강가에 서서
아직은 수평인 파문에게 물수제비를 띄웁니다
당신을 펼치자마자 강의 배꼽이 출렁이고 노을이 자지러집니다 파문마저 이내 수평으로 재우는 당신의 수심을 헤아려봅니다 한 획으로 갈음될 수 없는 비릿한 그 무엇이 꾸역꾸역 솟구칩니다
바람이 깨지고 물의 이마가 깨지고 붉은 노을이 깨지고 어둑한 파문이 채 가시지 않는 강가에 나와 당신에게 거룩한 나를 띄웁니다 물결로 채워진 페이지가 쌓이고 나면
당신, 어느 날엔 비스듬히 빗겨간 물결들을 읽을 테지요
벽화에 세 들어 사는 남자
-정훈교
방천시장, 김광석 벽화거리*
사람들이 흘리고 간 지문을 지우며 비가 온다
나른한 오후에 나무가 된
사내는, 가을을 지나 나뭇잎 다 떠나보내고
어느 봄, 꽃이 되어
아파트 열기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골목은
사내가 빠져나간 것과
상관없이 낡아갈 것이고 점점
무덤의 곡선을 닮아갈 것이다
서른 즈음의 휴식도
잠깐 동안의 불륜이거나
짧은 사랑으로 끝나는 것이다
어쩌면 사내는 시(詩)를 낳기도 전에
꼬리 없는 온음표로 태어나, 어느 새벽 내리는 비처럼
모든 것을 지우며 돌아갈 것이다
많이 가벼워진 것들이
종국엔 떠나거나
무너지는 것처럼,
*대구광역시 중구 대봉동 소재. 가수 김광석이 태어난 곳이다. 시어 ‘나른한 오후’, ‘나무’, ‘다시 꽃이 되어’, ‘아파트 열기 속’, ‘서른 즈음’은 그의 노래에서 따온 것임을 밝힌다.
이카로스 302호
-정훈교
당신의 날갯죽지는 바람을 가르지 못한다. 단 한 번도 바람을 품어본 적 없으므로
마른 입술이 또 하나의 입술을 물고 또 하나의 입술이 당신 이마를 짚는 밤, 낡은 TV 안테나가 당신의 신호음을 감지했다면 그것은 먼 우주에서 먼지로 부유하다 어느 골방에서 침잠하는 제2의 자전(自轉)인 셈이다 당신은 이제,
바람의 방향대로 깃을 세우고 부러 낙법을 익혀야 한다 302호 열쇠 구멍에 달을 밀어넣으며, 낡은 나무 침대를 생각한다 내일과 밤이 없고 별과 오늘이 없는 날갯짓을 하다가도
애무 없이도 붉게 타는 노을을 생각하다가도, 계단을 오를 땐
완강기 먼저 찾는다
당신의 날개는 퇴화했으므로
화아(火兒)
-정훈교
그녀가 불씨 하나를 주워왔습니다 바람에 오래 부대꼈는지 겨우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아궁이에선 옥수숫대가 화랑화랑 타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일렁일 때마다 요강에 뜬 초승달이 달그락 거렸습니다 불씨는 여전히 차가웠고 아무 것도 데워 줄 수 없었습니다 불씨는 여전히 흐렸고 아무도 웃어주지 않았습니다
붉은 엉덩이가 달을 낳았다는 소문은 그리 멀리 가지 못했습니다 그믐이면 더욱더 붉은 달이 태어난단 걸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달마다 몸을 푸는 불씨 하나였습니다 어디에도 갈 수 없는 불씨 하나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입에 넣고 화아 삼켜버렸습니다 불씨를 먹은 그녀는 이듬해 달을 낳았습니다 한 쪽 귀가 없는, 한 쪽 눈이 없는